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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 교수가 쓰는 ‘시대정신과 지식인’ ③

신념윤리의 보수적 개혁가 정몽주…책임윤리의 진보적 개혁가 정도전

정몽주와 정도전

  • 김호기│연세대 교수, 사회학 kimhoki@yonsei.ac.kr

신념윤리의 보수적 개혁가 정몽주…책임윤리의 진보적 개혁가 정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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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몽주와 정도전은 고려 말 대표적인 지식인 정치가였다.
  • 두 사람은 똑같이 개혁을 추진했지만, 방법론에선 그 방향을 달리했다.
  • 체제 내 개혁을 추진한 정몽주는 충(忠)을 위해 목숨을 내던졌고, 혁명적 개혁을 꿈꾼 정도전은 조선 왕조의 모든 개혁정책을 주도했다.
신념윤리의 보수적 개혁가 정몽주…책임윤리의 진보적 개혁가 정도전
가끔 학부생들에게 상당히 무거운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이다. 나 역시 대학을 다닐 때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는지라 상세히 답변해주곤 한다. 역사는 과연 무엇이 만드는가. 구조인가 아니면 개인인가.

역사는 마땅히 개인, 다시 말해 집합적 개인이 만든다. 하지만 역사를 곰곰이 들여다보면 집합적 개인 못지않게 구조적 조건 또한 중요하다. 개인의 의지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이 의지를 제한하는 구조적 조건이 강고할 때 그 의지는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다. 이 점에 주목해 사회학은 흔히 구조를 중시하는 시각을 구조주의, 개인을 중시하는 시각을 자원주의라고 부른다.

이러한 역사 해석의 틀에 대해 나는 절충적 시각을 선호하는 편이다. 그래서 내가 주목하는 역사 변동의 세 가지 주요 요소는 ‘구조적 강제(structural constraint)’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 그리고 ‘전략적 선택(structural selection)’이다. 먼저 구조적 강제란 말 그대로 구조가 강제하는 힘이다. 제도로서 정착된 구조는 일종의 관성을 갖게 되며, 이러한 관성은 그 구조를 변화시키려는 집합적 개인의 의지를 제한한다.

한편 경로의존성은 그 제도에 내재된 개별 국가 또는 사회의 역사적 특성이다. 예를 들어 동일한 봉건사회라 하더라도 나라마다 차이가 있으며, 제도에 내재된 이러한 경로의존성은 사회 변동에 일정한 영향을 주게 된다. 동일한 전통사회라 하더라도 중국, 한국, 일본의 경우 그 경로의존성은 유사하면서도 사뭇 다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요소가 전략적 선택이다. 전략적 선택이란 위에서 말한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 아래 집합적 주체가 자기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선택하는 일종의 기획이다. 어떤 전략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집합적 의지가 실현될 수도, 좌절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전략적 선택과 구조적 강제, 그리고 경로의존성 간의 관계다. 구조적 강제가 이완되고 경로의존성이 약화될 때 사회 변동의 가능성은 높아지며, 이때 어떤 전략적 선택을 모색할 것인가에 따라 역사의 방향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전략적 선택과 시대정신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그 경계가 모호한 직업 중 하나가 지식인과 정치가다. 대다수 지식인은 어린 시절부터 학문을 연마하고, 과거시험을 통해 정치가의 길로 나섰다. 여기에는 학문적 연구와 정치적 실천을 통합하고자 한 유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물론 서경덕이나 조식처럼 재야의 학자로 연구에만 전념한 이도 없지 않았지만, 이황과 이이, 송시열과 허목, 박지원과 정약용처럼 학문과 정치를 병행한 이들이 주류를 이뤘다(이점에 주목해 우리 전통사회의 주요 지식인 다수를 ‘지식인 정치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서 유교사상에 입각해 사회 개혁을 모색한 것은 멀리 통일신라 말기 최치원과 고려 초기 최승로의 활동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성리학자임을 표방한 이들이 본격적으로 정치 일선에서 활동한 시대는 고려 후기였다. 신진 사대부 세력이 바로 그들이며 이제현, 이색, 정몽주, 정도전 등은 그 대표자였다. 이들은 한편으로 성리학을 연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 유교사상을 현실에서 실천하고자 했다.

유교적 질서의 현실적 구현이야말로 이들의 정치적 기획이자 시대정신, 다시 말해 전략적 선택이었다. 고려 후기에 씨가 뿌려지고 조선 개국을 통해 구체화된 이러한 시대정신은 이후 조선시대 500년 내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 기획에서 앞으로 다룰 이황과 이이, 송시열과 허목, 박지원과 박제가, 정약용과 김정희는 모두 주자학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이로부터 절대적 영향을 받았다.

시대정신으로서 유교 이념이 갖는 의미는 현재에도 살아 있다. ‘한국적 공동체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개인주의에 맞서는 공동체주의는 여전히 그 영향력이 작지 않은바, 한나라당이 제시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나 민주당이 제시하는 ‘기회·정의·공동체’의 뉴민주당 선언 3대 가치는 구체적인 증거다. 공동체 자유주의나 기회·정의·공동체가 유교적 가치의 현대화라고 주장할 수는 없지만, 시대정신으로서의 공동체와 개인의 조화를 모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갖는 이른바 후기전통적 사회(post-traditional society)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정몽주와 정도전은 바로 이 유교사회의 기초를 세운 이들이다. 고려 말기 대표적인 지식인이자 정치가였던 두 사람의 삶은 널리 알려졌듯이 대단히 극적이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학문적으로, 정치적으로 노선을 함께했지만, 조선의 개국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다. 정몽주가 고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졌다면, 정도전은 조선을 세우기 위해 개국을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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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기│연세대 교수, 사회학 kimhoki@yonsei.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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