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를 빛낸 스타들⑭]

소박과 야심의 두 얼굴 신영균 “정치? 사업? 그래도 배우가 제일 좋았어요”

마지막으로 그가 주로 맡았던 장남 역이 있다. ‘마부’에서 신영균은 여동생으로 분한 엄앵란이 밤늦게 귀가하자 아버지 대신 꾸중하고 단속한다. 가장에 버금가는 권위를 행사하며 당대의 이상적인 아들이나 남편감으로 자리매김하는 이 역할은, 후에 ‘상록수’에서 채영신의 배필로서 성실하게 주변의 땅을 가꾸어 나가는 인물이나 ‘화조’의 독립운동가, ‘쌀’의 근대화 역군 등으로 변모했다.

한마디로 신영균에게 없는 것은 최무룡이나 신성일에게 투영되는 바람의 이미지, 반항의 이미지다. 그는 영화에서나 현실에서나 늘 주류였고 아버지였다. 성실하고 책임감 넘치는 인간이자 배우였다. 예술가의 마음과 사업가의 마음이 한 몸에 공존하는 참으로 기이한 이 사내의 욕망은 그로 하여금 일탈하고 떠돌아다니도록 충동질하기보다는 머물고 다지고 모으게 만들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내면의 무의식이 그를 배우로 만들었다면, 안정지향적이고 성공지향적인 비즈니스에 관한 직관과 앞날을 보는 혜안, 그 단단한 자아 기능은 그를 성공한 ‘신영균 회장’으로 만들었으리라.

그리하여 그는 식물적인 수줍음이나 내면보다는 동물적인 능동성과 감각, 일찍이 장덕조씨가 읽어낸 강인한 표현성과 즉물성으로 한세상을 헤쳐나갔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지난해 내내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해온 그가 한국영화사에 의미 있는 자료를 남기고 싶다는 일개 평론가의 장문의 편지를 보고 선뜻 인터뷰에 응해줬다는 사실이다. 그는 그렇게 이성적인 동시에 여전히 영화를 사랑하는, 진심이 통하는 멋진 사나이였다.

-황해도 평산 태생으로 열 살 때 상경해서 연극을 하다 영화계에 입문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학교는 서울대 치대를 나왔고요. 어떻게 치대를 다니다가 연극을 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자식들 앞날을 걱정하시던 어머니의 용단이었죠. 그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어머니는 모태신앙인이었거든요. 초등학교 5학년 땐가,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축하 연극을 했는데 그게 계기였어요. 연극을 무척이나 좋아하게 됐습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영화를 즐겨 봤고요.

고등학교를 다니며 연극부에 몸담고 있던 시절에는 아예 대학을 안 가고 연극만 하려고 마음먹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졸업 후 1년 동안 연극인 생활을 했지요. 그런데 선배들 고생이 말이 아니었어요. 생활도 안 되고 질서도 없고.

하루는 대전에서 공연 하고 트럭 하나를 빌려서 배우들을 다 싣고 대구로 가는데, 차가 미끄러져서 뒤집혔어요. 그때 단원 가족들이 병원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고불고 하는 것을 보고 배우생활을 계속해야 하나 그만두어야 하나를 심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공부를 해서 치과대학에 갔지요.

당시 서울대 치대에는 박암 선배님, 작곡가 길옥윤씨도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연극부의 전통이 아주 셌지요. 미술대에는 이낙훈씨가 있었고요. 차츰 서울대 전체를 포괄하는 연극부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일었어요. 박진 선생이 연출기획한 작품을 명동의 ‘시공간’에서 공연하면서 서서히 연극에 빠져들었습니다.”

‘서울대 치대 나온 신인배우’

-영화에 입문한 계기는 따로 있겠죠. 서른둘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스크린에 데뷔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치대 졸업 후에 연극만 하다 다시 1년 동안 의사고시만 준비했어요. 해군 군의관으로 진해에서 근무할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죠. 군의관을 마치고 나서 치과를 개업해 의사로서의 삶을 살까도 생각했지만 연극에 대한 열망이 내버려두지를 않더군요. 아내는 내가 치과의사라서 결혼했다고도 하지만, 나는 병원을 단지 생활 수단으로만 생각했던 거죠. 게다가 변기종 선생님 같은 연극계 원로나 허장강, 최무룡, 윤일봉씨 등 배우들이 병원 단골손님으로 드나들고요. 이분들이 자꾸 연극을 하자고 꾀었던 거죠.

그 무렵 국립극단에서 ‘여인천하’라는 작품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낮에는 병원 일을 보고 저녁에만 연극을 하기로 했지요. ‘여인천하’는 금세 엎어지고 다른 작품을 했는데, 조긍하 감독이 그 공연을 보고 저를 자신의 영화 ‘과부’의 주인공 남자역할로 점찍었어요. 영화평론가 허백련씨가 저를 조 감독님에게 소개해주었죠. 작품을 보니 황순원 원작인 데다 참 좋았어요. 그런데 조건이 하나 있었죠, 머리를 깎으라는. 머슴 역이니까요. 그래서 진짜로 머리를 깎고 촬영했죠.

당시 영화배우 중에 의대 출신은 거의 없었거든요. 대중이 그 점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대부분 평이 좋았죠.”

인터뷰 자리에 동석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부인 김선희씨가 이 대목에서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이 양반은 배우를 해야만 했어요. 처음엔 반대했는데 대본만 가져오면 그걸 읽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더라고요. 그러니 그걸 어떻게 말려요. 당시에는 후시녹음을 했는 데도 대본을 통째로 외웠다니까요. 그래야 감정이 산다고. 참 못 말리는 양반이었죠.” (웃음)

   (계속)

1 | 2 | 3 | 4 | 5 | 6 | 7 | 8 |


 이 기사에대해 한 마디!                     의견쓰기 전체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