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가지 능력, 2가지 기본 자질 갖춘 대통령 나와야
국민과 원활한 소통 위해 4가지 언행 자질 필요
권위주의 시대 사회관, 효력과 타당성 상실
지도자는 사회적 영역과 국가 영역 구분해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박해윤 기자
2025년 3월 현재, 대한민국은 헌법 1조가 얼마나 통용되고 있는 걸까. 주권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은 헌법 77조를 들어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또한 국민이 선출한 국민대표자회의 ‘국회’는 헌법 65조를 근거로 ‘탄핵’으로 맞서고 있다.
‘찬탄’ ‘반탄’으로 국론 분열
12·3 비상계엄과 12·14 대통령 탄핵안 가결, 그에 따른 헌법재판소(헌재)의 탄핵심판까지 모두가 헌법과 법률에 따른 민주적 절차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은 ‘찬탄(탄핵 찬성)’과 ‘반탄(탄핵 반대)’으로 나뉘어 자신들의 주장만 옳다며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다. 같은 하늘을 이고 사는 국민이 맞나 싶을 정도로 극단적 주장이 난무한다. 헌재가 어떤 결과를 내놓든 절반 가까운 국민이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광복 80년 만에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화까지 이뤄내며 세계가 부러워하는 문화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선 대한민국은 어쩌다 하루아침에 ‘찬탄’과 ‘반탄’이 난무하는 분열 국가가 된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12·3 계엄이 국론 분열의 분수령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진의가 어디에 있든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 한 사람의 계엄 선포로 작금의 혼란이 초래됐다. 12·3 계엄 선포가 대통령직을 파면할 만큼 중대한 위헌·위법 행위인지는 헌재가, 그리고 야당 주장처럼 계엄 선포를 내란으로 볼 것인지 여부는 사법부가 결정해 판가름 날 것이다.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있다. 동아DB
‘정치적 내전’이 심화하고, ‘물리적 충돌’까지 우려되는 2025년 3월 중순, 대한민국 국정 최고책임자에게 요구되는 ‘대통령의 자격’은 무엇일까.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과 환경부 장관을 지낸 윤여준(86) 전 장관에게 계엄과 탄핵으로 흐트러진 대한민국 국정을 바로잡을 ‘대통령의 자격’에 대해 물었다.
윤 전 장관은 2011년 이명박 정부 당시 ‘스테이트크래프트(statecraft·통치역량, 치국경륜)’라는 개념으로 역대 대통령을 분석한 책 ‘대통령의 자격’을 펴낸 바 있다. 그는 박근혜, 문재인, 윤석열 세 명의 대통령에 대한 평가까지 추가해 최근 개정증보판을 펴냈다.
협약에 의한 민주화 산물 ‘87년 체제’
12·3 계엄과 국회에서의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87년 체제는 일종의 ‘협약에 의한 민주화’의 산물이다. 체제를 유지하려는 힘과 기존 체제를 바꾸려는 힘이 교착에 빠진 상황에서 지배 세력이 체제 변화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수용함으로써 여야 합의로 평화적 개헌이 가능했다. 당시 개정 헌법은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위에 경제·사회적 진보 진영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다. 문제는 양김(김영삼·김대중)의 정치적 경쟁이 지역 구도와 연결됐다는 점이다. 체제는 민주화되고 제도 또한 민주적으로 발전했지만 현실 정치의 행태는 지역감정을 바탕으로 한 지역 구도 위에서 ‘동원 체제’ 성격이 강했다. 양김 집권 후 한동안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권위주의적 정치 행태는 지속됐다.”
양김이 정치 무대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양김은 퇴장했지만 흑백논리와 극한의 대결정치라는 권위주의적 정치 행태는 지금까지도 청산되지 못했다. 지역 구도의 동원 체제는 약화된 반면 세대 동원, 심지어 청년세대에서는 젠더 동원 체제가 새로이 추가된 양상이다.”
이념과 정책에 기반을 둔 ‘정당정치’가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 아닐까.
“우리나라에 과연 정당정치가 존재하기는 했는지 의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정권이나 대선에 도전하려는 정치인들에 의한 동원 정치가 의회정치나 정당정치로 포장됐다. 그런데 실제로는 정당이 정권 유지를 위한 거수기 역할에 그치거나 명망가 위주의 명사(名士) 정당 수준에 머물렀다. 말이 정당정치이지 실제로는 붕당정치에 불과했다.”
윤 전 장관은 “오늘날 한국 정치는 ‘적대적 공생관계’라는 말이 상징하는 것처럼 거대 양당의 기득권 독과점적 카르텔 구조만 남아 경제·사회적 발전을 가로막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거대 정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청산해야 한다는 요구는 일찍부터 있어왔다.
“2012년 ‘안철수 현상’은 독과점적 정치 카르텔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로 볼 수 있다. 당시 정치인 안철수는 그 같은 국민적 요구를 수용할 역량이 없었다. 이후로도 한국 정치권에는 이른바 ‘제3지대’가 국민 요구에 의해 급조됐다가 해당 정치인의 역량 부족과 선거법의 한계로 금방 해체됐다. 현재의 양당 체제는 지극히 불안정하지만 그 구조는 쉽게 깨지지 않고 있다. 여전히 양당의 기득권은 강고한 상태다.”
현재와 같은 양당의 기득권 구조를 깨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민주화 이후 시민사회 세력이 꾸준히 성장해 왔다. 이들이 한국 정치를 바꿀 새로운 동력을 제공해 정치 풍토를 개선했어야 한다. 그런데 시민사회 세력 또한 과거의 건전함이나 활기를 잃은 모습이다. 시민사회 세력을 형성했던 리더와 활동가 상당수가 정치권에 합류했지만,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고 형해화됐다. 2020년과 2024년 두 번의 총선에 시민사회 세력이 주장한 준연동제로 선거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성정당, 자매정당이란 꼼수로 시민사회 세력이 민주당에 ‘금배지 지분’을 요구한 것으로 느껴진다.”
시민사회가 정치개혁의 새 주체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정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민 없는 시민단체’다. 일부 지식인 혹은 운동가 중심 시민단체가 마치 시민사회 전체를 대변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경향이 있다. 더욱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생명으로 하는 시민단체 중 일부는 권력과 유착하면서 정치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했다. 이로 인해 민주정치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이 대두하고 있다. 좌우를 막론하고 정부와 유착하려는 시민단체의 활동은 자율성을 지닌 새로운 시민단체 형성을 방해할 수 있다.”
‘시민 없는 시민단체’가 문제
윤 전 장관은 특히 정치권과 시민단체의 유착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유착은 과거에는 민주당 정부에서 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른바 ‘아스팔트 우파’라는 시민단체가 보수 정부와 개신교계 후원으로 육성되면서 ‘좌파 시민단체’보다 더 관제적 성격을 띠는 존재가 됐다. 민주당 정부 집권 시에는 아스팔트와 유튜브에서 반정부 투쟁을 전개하다가, 보수 정부 집권 후 지분을 요구하는 집단이 됐다.”
윤 전 장관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사회관은 효력과 타당성을 상실했으며 △사회적·공동체적 성격을 무시하거나 경시하려는 경향 역시 오늘날 시대정신과 부합하지 못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영역과 국가 영역을 구분하는 게 특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 민주사회가 전통 사회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자율성이란 토대 위에서 연대성과 공동체성을 추구한다는 점”이라며 “시민사회에 권력이 개입하면 결국 시민사회는 국가의 하수인이 되고, 정치의 ‘동원’ 대상으로 전락해 민주정치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는 또 “시민단체나 시민운동가 출신도 얼마든 정치를 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 막 피어나는 시민사회를 보호하고, 그 자율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며 “특히 청년들이 자율적으로 시민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기성세대가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극단적 정치투쟁이 일상화하면서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란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정치란 국가의 운영 원리를 수립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일이다. 다시 말해 공공 부문에 관한 집단적 결정 과정을 관리하는 일이다. 정치의 핵심은 국민 대표인 국회의원과 국가의 최고 행위자인 대통령을 선출하는 각종 공직선거다. 국민주권을 토대로 한 민주국가에서는 공직선거를 통해 주권이 발휘된다. 즉 피통치자가 될 국민의 선택으로 통치자인 리더가 결정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는 민주화 이후 네 번에 걸친 수평적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독특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좌우의 국가운영 노선을 모두 경험해 봤다. 또 전업 정치인 출신과 전문가 출신 정치인 모두를 대통령으로 가져봤다. 그 결과 제대로 된 스테이트크래프트를 갖춘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않으면 국가 발전은커녕 정상적 국가 운영 자체가 어렵게 된다는 사실을 통감할 수 있었다.”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6가지 능력
정상적 국가 운영을 위해 차기 대통령이 갖춰야 할 통치 역량이 뭐라고 보나.
“지도자는 시대적 과제를 비전으로 제시하고, 그 과정에 국민의 동의를 얻어 국가 역량을 결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비전 제시’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둘째는 제시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정책 역량’이다. 정책 역량에는 좋은 정책을 만들어내는 정책 수립 역량, 만들어진 역량을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정책 추진 역량이 있다.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두 역량을 겸비해야 한다.”
비전 제시와 정책 실현 능력 외에 지도자가 갖춰야 할 역량은 또 뭐가 있나.
“민주국가에서 국정을 운영하려면 제도 관리 능력과 인사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인사 능력은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밖에 외교 역량과 분단된 한반도 상황을 유지하기 위한 북한 관리 역량도 필요하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이 갖춰야 할 6가지 통치 역량이 발휘되려면 기초 소양, 즉 기본 자질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도자의 기본 자질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하나는 투철한 공인 의식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다.”
‘공인 의식’을 지도자가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라고 보는 까닭은 뭔가.
“프랑스 정치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공공성이 용해돼야 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특히 대통령은 공공성의 상징적 존재다. 공공성을 관리하면서 신장시키는 게 대통령의 기본 책무라 할 수 있다. 만약 공공성에 대한 대통령의 이해가 부족해지면 권력에 대한 사유 의식이 초래된다.”

2024년 12월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찬성 204표로 가결됐다. 동아DB
“권력을 남용하고, 정실 인사를 하고, 부정부패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갖춰야 할 두 번째 기본 자질로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를 꼽았다.
“생각과 행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를 단순히 제도로만 인식하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지도자는 민주공화국 헌법의 가치와 운영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특히 국민주권과 권력분립이라는 핵심 가치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 국가의 의사결정은 공공성을 지키는 다수 구성원에 의해 민주적 과정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과정’이다. 비민주적 통치는 아무리 결과가 좋아도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산업화 공로를 세운 박정희 대통령이 ‘유신’이란 과오 때문에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게 대표적이다.”
윤 전 장관은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일 뿐, 국가원수라고 착각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이 국가원수 역할을 하는 것은 순전히 대외관계 영역에서일 뿐이다. 그런데 그동안 국내 정치 영역에서도 대통령이 행정부를 초월한 국가 원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입법권을 가진 통치 기구는 국회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당을 국민을 동원하는 통치 수단으로 간주하고,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정치적 파탄을 초래한 경우가 많았다. 대통령에게 공인 의식과 함께 민주적 가치의 내면화가 기본 소양으로 가장 중요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그 같은 자질과 소양을 갖췄는지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민주정치의 핵심은 ‘소통’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생각이 합리적이고 타당하다는 것을 ‘언어’를 통해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말은 논리적이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타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려면 높은 품격과 설득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국가 지도자인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 국가 최고 행위자다운 언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감성을 자극하는 현란한 어법으로 대중을 선동하려는 사람은 경계해야 한다.”
민주정치 핵심은 ‘소통’
윤 전 장관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언행의 자질로 △자신의 삶 속에서 녹여낸 절제되고 기품 있는 언어 구사 능력 △말의 일관성 △언행일치 △신중한 자세와 금도가 있는지 여부를 꼽았다.
“최근 정치권의 언어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원색적이고 천박하게 변했다. 자기편에 대해서는 ‘선의’라는 관대한 심정 윤리를 적용하고, 상대편에 대해서는 엄격한 법 규정을 들이대며 ‘악의’란 전제를 깔고 보려 한다. 이런 사고방식 뒤에는 선악의 이분법적 흑백논리가 깔려 있다. 구체적 사안에 대해 비판하고 정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추상적 관념과 일반론적 거시 담론을 앞세워 자신은 선으로, 상대방은 악으로 매도하는 정치인은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뿐 아니라 정치인의 자격도 중요한데….
“요즘 정치권에서 발생하는 정쟁의 질이 현저하게 나빠졌다. 흔히 정치인 수준이 국민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게 문제라고 하는데, 이는 책임을 정치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불과하다.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정치인과 정치세력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민주사회에서는 이들 정치인 역시 국민 선택에 의해 출현한다는 점에서 결국 국민의 문제로 귀결된다.”
정치 수준을 높이려면 주권자 국민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나.
“장기적으로는 제대로 된 스테이트크래프트를 갖춘 지도자를 육성하는 게 필요하고, 단기적으로는 향후 몇 년간 치르게 될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이 중요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제대로 된 스테이트크래프트를 갖춘 인물과 세력을 국민이 선택하느냐 그러지 않느냐에 한국 정치의 미래가 달려 있다.”

신동아 4월호 표지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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