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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북한의 황장엽 망명 보복작전

암호명 모란봉! 김현철을 납치하라

  • 최영재cyj@donga.com

암호명 모란봉! 김현철을 납치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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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황장엽망명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김영삼 대통령의 누이동생 남편인 김창원박사를 평양에 초청할 계획이었다. 김창원씨는 미국 시민권자로 미국 이름은 리처드 김이었다. 경제학박사인 그는 한일은행 고문, 워싱턴은행 총재를 지냈다. 서강대에서 경제학을 강의하기도 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아끼던 인물이다. 김박사는 친인척은 청와대에 출입하지 말라는 김영삼 대통령의 주문에 따라 정부 일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의 고급 경제 정보를 청와대에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96년 5월 당시 세계적인 금융회사인 ‘페레그린’의 홍콩현지법인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북한은 당시 페레그린과 북한의 대성은행이 합작으로 설립한 대성 페레그린 평양현지법인 차기 지점장으로 김창원씨를 요구했다. 대성 페레그린의 초대 평양 지점장은 영국인이었으나, 이 사람이 한국말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지장이 많았던 것이다.

당시 김창원박사는 북한 비자까지 발급받고 평양으로 부임할 차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김영삼대통령의 친매제인 그가 평양에 간 후 만에 하나 북한의 공작으로 돌아오지 못하면 국가 안보에 큰 위협이 될 수 있는 인물이었다.

손충무씨는 96년 5월께 워싱턴DC에서 북한이 김영삼대통령의 친매제인 김창원씨를 평양으로 데려가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홍콩에 있는 영국 정보기관 에이전트가 김창원 박사가 북한 고위층과 두 번이나 만난 사진을 그에게 보여준 것이다. 손씨가 영국 정보기관에 문의한 결과 김창원박사가 곧 평양에 들어간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는 이 사실을 북한측 인사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손씨는 96년 7월 중순께 도쿄에서 북한의 부총리급 인사를 만났다. 이 북측 인사와 손충무씨의 대화록이다.



북측 인사 : “YS 동생 중에 김창원씨가 있느냐?”

손충무: “동생이 아니라 매제다.”

북측 인사: “워싱턴에 살았으니 손선생과 잘 알겠네.”

손충무: “아는 사이다.”

북측 인사: “그분이 YS와 어느 정도 사이인가?”

손충무: “하나밖에 없는 매제다. 상당한 경제 전문가이기 때문에 YS가 아끼는 인물이다.”

이 북측 인사는 손충무씨에게 김창원박사의 초청 계획을 확인해주었다. 물론 이 때는 황장엽씨가 망명하기 전이었다. 하지만 이 무렵 손충무씨는 1∼2년 전부터 준비하던 우리 정부의 황장엽 망명 작전을 대략 짐작하고 있었다. 김창원박사가 평양에 가서 억류된다면 황장엽씨 망명 작전에 차질을 빚을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김박사가 자칫하면 황장엽씨와 맞바꾸는 카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손씨는 김창원박사를 직접 만나 “당신이 평양에 가서 남북정상회담에 밑거름이 된다면 큰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이 내놓지 않으면 남북관계가 구렁텅이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떠나라”고 설득했다.

김박사를 만난 뒤 손씨는 이 사실을 권영해 안기부장에게 전했다. 당시 남한 쪽 정보기관은 황장엽을 서울로 망명시키기 위해 작전을 펴고 있었다. 물론 북한이 이 사실을 알고 김박사 초청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었다. 당시 평양이 김창원 박사를 데리고 가려 했던 것은, 남한의 쌀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또 김창원박사는 YS의 친인척이라 김대통령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결국 김창원 박사의 방북 계획은 안기부의 사전 차단으로 무산되었다.



첫 번째 대상인물 김정원

이 사건 이후 당시 안기부 내에서는 해외에 거주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친인척을 보호하는 일이 급선무로 떠올랐다. 당시 샌프란시스코에는 대통령의 큰아들 은철씨 부부가 살고 있었다. 또 YS의 세 딸 부부가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었다. 게다가 워싱턴DC에는 여동생 부부가 살고 있었다. 황장엽 망명 작전을 준비하던 정부로서는 이들을 보호하는 문제가 커다란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권영해 안기부장은 대통령의 해외 가족을 보호하기 위한 특별작전에 들어갔다. 권부장은 미국 현지에서 전직 FBI 요원 같은 경호요원을 특별고용해 가족들을 경호하게 했다. 물론 해당 가족들은 이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황장엽씨가 한국으로 들어온 직후인 97년 3월, 권영해 안기부장은 손충무씨에게 “북한에서 황장엽 사건에 대한 보복 내지 이에 상응하는 전시 효과를 위해서 남한 요인들을 북한으로 유인하여 망명을 선언하게 하는 정치공작이 우려된다”면서 이와 관련된 정보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부탁한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YS 친인척에 대한 유인 방북 공작을 지켜보라는 주문이었다. 이 말을 들은 손충무씨는 미국 CIA와 일본 공안청에서 한반도 문제 정보업무에 종사하다 퇴직한 취재원들에게 이와 관련한 정보를 계속 수집해달라고 부탁했다.

황씨망명사건 후 YS친인척 평양 유인작전에 본격 착수한 북한이 첫번째로 노린 인물은 96년에 초청하려 했던 김창원박사의 친형 김정원박사였다. 97년 7∼8월 안기부는 미국 워싱턴DC에서 ‘프랑스 북한대표부에서 근무하며 김정일의 유럽자금 총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김범철과 긴밀히 접촉하는 한국동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인물은 과거 유신정권 당시 워싱턴에서 ‘한국신보’라는 신문을 발행한 적이 있는 데이비드 한(David Han)이었다. 그는 김정원박사를 노리고 있었다. 김정원박사는 1987∼90년 통일민주당총재특보, 1990∼92년 민자당총재특보, 1993년에 안기부 제2차장을 지낸 인물이다. 북측의 초청 공작이 진행되던 1997년 7∼8월에는 외무부 산하 국제협력단(KOICA) 총재를 맡고 있었다. 김정원씨는 YS의 신임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당시 그는 대통령의 든든한 후원 아래 한국의 전통 문화를 전세계에 알리는 문화협력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한은 김정원씨에 대한 북한정부의 초청장까지 갖고 국내로 들어와 김정원씨를 만나려고 시도하고 있었다. 이 또한 사실을 사전에 입수한 안기부의 저지로 무산되었다.

북한이 노린 두 번째 인물은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였다. 하지만 북한이 김현철씨를 평양으로 데려가려는 시도는 딱히 황장엽 망명 사건과 연관된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95년께부터 북한은 김현철씨를 평양으로 데려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북한은 김현철씨를 북한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세 번이나 사람을 보냈고 현철씨도 평양방문을 여러 차례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당시 대북 비선조직을 운영했고, 남북정상회담을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었다. 문민정부 당시 현철씨와 그의 사조직은 베이징과 도쿄에서 여러 차례 북한 쪽 인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했다. 당시 김현철씨와 그의 사조직은 북한에 상당한 식량을 제공하는 대신 남북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시나리오를 작성해서 북측 인사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현철씨와 그의 사조직의 무분별한 대북 접촉은 자연히 공조직인 안기부나 통일원 팀과 불화를 빚었다. 문민정부의 대북 정책 혼선은 이런 사정 속에서 벌어진 것이다. 북한측 창구는 단일화되어 있는데, 남한측은 현철씨로 대표되는 청와대선과 권영해부장으로 대표되는 안기부선이 이중으로 대북 문제를 맡고 있었다. 북한은 이 두 채널을 적절히 이용했고, 남한측이 이용만 당하고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자주 벌어졌다.

북한은 현철씨의 이용가치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교묘히 이용했다. 북한은 ▲1995년 제1차 남북한 쌀 협상 때 중도에서 현철씨가 뛰어들어 별다른 대가 없이 쌀 15만톤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었으며 ▲YS는 현철씨의 말을 믿기 때문에 대통령을 움직일 수 있고 ▲비공식적인 남북 협상을 반대하는 미국과 한국 정보기관의 반대를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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