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2월호

상식파괴하는 말총머리 한의사 김홍경

  • 곽대중

    입력2006-07-28 10: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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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존 권위는 무시당해야 마땅하다’고 말하는 김홍경. 사람들은 이런 그를 재야 한의학자, 언더그라운드 강사, 청개구리, 돌팔이 한의사 등으로 부른다. 도올이 잠든 노자를 흔들어 깨웠다면 금오는 앉은뱅이로 굳어 있던 사암을 일으켜 세우는 중이다. 10월30일부터 EBS 방송특강 ‘김홍경이 말하는 동양의학’을 통해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금오(金烏) 김홍경(50). 매주 토요일 있는 방송 녹화시간은 200여 방청석을 가득 메운다.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희끗희끗한 꽁지머리, 다듬지 않은 턱수염, 늘 털털한 생활한복 차림. 왜 머리를 기르고 다니느냐는 질문에 “그냥 좀 특이해 보이려구요. 아마 세상 사람들이 다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면 그때 전 빡빡 밀고 다닐 걸요” 하면서 호쾌하게 웃는다. 금오는 외모만큼이나 살아온 과정도 독특하다.

    일본 오사카 근처에서 광병(狂病) 치료로 이름이 높았던 조부, 명문대학을 나온 부모 슬하에서 그 역시 청소년기에 이른바 ‘서울대병’을 앓아야 했던 사람이다. 서울대 의대를 두 번 떨어지고 꿩 대신 닭으로 선택한 것이 경희대 한의학과.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한의학에 대한 주위의 멸시와 천대가 심해 좌절하다, 수석으로 입학한 대학을 꼴찌 문턱에서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졸업 후 한의원을 개원하여 부족하지 않을 만큼 돈도 벌었으나 술과 노름에 빠져 약혼녀마저 달아나버리고, 몇 번이나 자살할 생각까지 하였다는 그의 젊은 시절은 그야말로 방황의 연속이었다.

    “돈이 없으니 월급쟁이 생활도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마산에서 남의집살이를 하던 어느 날, 꿈속에 조부님이 나타나더군요. 발가벗고 요가 자세를 취한 채 붉은 만장을 든 모습이었는데, 그 만장에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사암침법’을 터득해야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전국을 떠돌며 ‘스승’을 찾아 다녔다. 사암침법은 동의보감의 허준, 사상의학의 이제마와 함께 조선의 3대 의성(醫聖)으로 불리는 사암(舍岩)도인의 전설적인 침법. 그러나 그 해설서라 할 수 있는 ‘침구요결’은 처방이나 응용법은 없이 온통 난해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 한의과 수업시간에도 그저 몇 분만 설명하고 넘어가는 정도였다. 그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금오는 주역과 선(禪)을 배우러 다니는 데 주력하였다.



    좋은 스승이 있다면 천릿길을 마다않고 달려가 만났던 재야의 스승 중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은 주역학자 아산 선생과 85년 102세로 입적한 수덕사 방장 혜암 스님. 금오는 이 두 사람을 자기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스승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아산 선생에게는 주역을 배웠습니다. 정통으로 입문한 것은 아니지만, 저는 거기서 가설, 힌트를 얻어 나왔습니다. 결정적인 도움을 받은 것은 혜암 스님의 선문답(禪問答). 선문답을 탁마하면서 뒤집어 생각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선문답은 알 듯 말 듯 아리송하지만 의외로 답은 대단히 단순합니다. 사람들이 선문답은 골치 아프다고 하는데 답이 너무 코앞에 있어서 못 푸는 겁니다.”

    난해했던 ‘침구요결’의 구절들을 하나하나의 원리로 깨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뒤집어 생각하고 도식화된 이론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게 되니 ‘마음의 눈’이 열리기 시작한 것이다. 400년간 주저앉아 있던 사암침법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암기 침법이 아닌 원리 침법

    겉으로 볼 때 사암침법은 사용하는 침이 약간 더 굵고, 손과 발에만 시술하는 것, 그리고 약간 비스듬하게 침을 꽂는 것을 제외하고는 다른 침법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가느다란 대롱침은 한의학 용어로 이야기하면 보사(補瀉)가 불가능합니다. 보사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사침법(斜針法)으로 경락의 흐름에 따라 시술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모든 침술경전에는 보사를 행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쓰이는 모든 침법은 보사를 무시한 일종의 체침법(온몸에 침을 꽂는 침법)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엇을 쓰면 어디에 좋다, 어디가 아프면 어디에 침을 놓아라. 이건 완전히 암기식 침법이죠. 진정한 침법은 원리(原理) 침법이 되어야 합니다.”

    사암침술의 원리를 어느 정도 깨달아갈 즈음 방랑생활을 정리하고 대학 강단에 서보기도 했고, 종로에 있는 큰 건재 약방의 관리의사, 종로구 한의사회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자신의 침술을 알리고 싶은 생각에 친구에게 부탁하여 채용된 곳은 동국대 한의과 대학 외래 임상강사. 그러나 원리에 대한 가르침은 없이 암기만 강요하는 한의학 교육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이를 성토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국 자의반 타의반으로 1983년 한 해 만에 물러나야 했다. 약방 직원생활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처방된 약재의 양보다 줄여서 조제하거나 무면허 의사가 진료하는 것을 보다못해 보건소에 고발하는 등 타고난 반골기질로 인해 스무 군데를 옮겨 다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러던 1984년 12월. 1년 동안 그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사암침법을 알고 싶다고 찾아왔다. 열 평 남짓한 약방에 스무 명을 모아놓고 ‘사암도인 침술전수 40일 강좌’라는 이름의 과외수업을 시작하였다. 수가 늘어나 폐교를 빌려 사용하기도 하면서 이어진 것이 현재까지 22차에 걸쳐 3000여 명의 제자를 배출했고 ‘사암 한방의료봉사단’의 요람이 되었다. 지금도 방학 때면 전국에서 학생들이 몰려든다. 이제 금오의 40일 강좌는 한의대 학생들의 ‘학점 없는 필수과목’이 되었다고도 한다. 처음엔 한의대 학생들만 수강하다가 이젠 개업 한의사들이나 공대, 법대 출신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도 찾아오고 있다.

    합숙훈련 방식으로 진행되는 40일 강좌는 그 수업방식부터 독특하기로 유명하다. 정작 배우고 싶어하는 침술은 가르치지 않고 하루종일 논밭 일을 시키고 해가 저물 때 몇 시간씩 명상 시간을 갖게 한 다음, 밤이 깊어 시작되는 수업은 새벽녘에야 끝난다. 취침시간은 길어야 두세 시간뿐.

    “일반인을 상대로 한 강의야 재미있고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대학생들은 나중에 그것으로 밥벌이를 하고 환자의 생명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 아닙니까. 그러니까 혹독하게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칩니다. 가르치다 보면 애들이 너무 똑똑해서 탈이라는 걸 느껴요. 한의학을 제대로 배우려면 지금까지 배워온 것, 고정관념, 이런 걸 다 무시하고 비워둬야 하는데, 무슨 말을 하면 자기 과거의 기억으로 자꾸 연상하려 들어요. 원리를 따르지 않고 제 지식을 따르는 거죠. 그래서 그런 것을 부수는 데 가장 큰 힘을 쏟는 건데, 못 견디면 거의 쫓아내다시피 합니다. 100명 들어와서 열댓 명 남는 수준입니다.”

    이런 그를 두고 사람들은 재야 한의학자, 언더그라운드 강사, 청개구리, 돌팔이 한의사 등으로 부르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죄값은 받아야죠, 뭐. 대학원이나 박사코스 같은 정상적인 과정을 밟지 않았고, 또 그것을 제 스스로 거부했습니다. 약간은 좀 안티 유니버시티하게 대학가의 공부를 거부하고 재야학자들에게 배우러 떠다녔기 때문에 정규코스를 밟은 사람들한테는 눈엣가시처럼 보였을 겁니다.”



    이론은 배운 다음 잊어 버려라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사암 한방의료봉사단장이라고 불러주면 제일 영광이고, 한의사 김홍경이라고 불러주면 더 영광”이라고 대답하는 금오는, 그러나 한의사라기보다는 오늘도 사람들의 잘못된 건강상식과 사고습관을 질타하는 데 더욱 많은 힘을 쏟으며 돌아다니는 아방가르드에 가깝다. 벌써 10여권의 책을 냈고, 최근에는 밀려드는 강의 청탁을 ‘거절하느라’ 바쁘다. 그러나 이론보다는 직관을 강조하고 과거의 권위나 상식에 얽매이지 말라고 주장하는 그의 강의는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저는 이론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이론을 배운 다음 어느 날은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는 것입니다. 옛날에 추사 김정희 선생이 글을 열심히 써 숙필 단계에 이른 다음에는 다시 생필, 즉 어렸을 때 필법으로 돌아가라고 했거든요. 바둑으로 말하면 정석을 배운 다음에는 지금까지의 정석을 내던져야 응용이 가능한 거죠. 저는 한의학 강의를 쉽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단순하다, 심하게는 저질스럽다고도 하는데, 저는 이건 몸에 좋으니 먹어라, 어디가 아플 때는 무엇을 어떻게 먹어라 하는 이런 암기식 한의학이 아니라 ‘생각하는’ 한의학을 만들자는 것이고, 제가 이렇게 쉽고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기까지는 저 역시 수많은 언어와 이론을 넘어선 고충이 있었습니다.”

    파격적인 주장으로 과거의 권위를 흔들면서 사람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그는 ‘기존 권위는 무시당해야 마땅하다’고 딱 잘라 이야기한다.

    “학문의 시작은 의심 아니겠어요. 의심을 자주 하고 질문을 자주 하는 건 ‘지혜의 시작’입니다. 저는 강의중에도 약이면 독을 한번 생각하고 독이면 약을 한번 생각하라고 이야기합니다. 탄력성 있는 두뇌를 개발하자는 거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한의학이나 양방에서는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해 있습니다. 정치적인 용어로는 절대주의죠. 저는 좀 상대주의적으로 사고하자, 의심을 가져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달변가다. 질문을 하면 주저없이 대답한다. 손짓 발짓 섞어가며, 영화와 음악을 두루 예로 들면서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금오의 강연을 듣다보면 저절로 흥이 난다. 그가 늘 강조하는 화두(話頭)는 ‘매사를 뒤집어 사고하라. 상식에 매이지 말고 원리에 눈떠라’. 그러나 정작 환자들 앞에서는 웃기고 울리며 진지하게 진료하는 그를 지켜보면 그가 단순히 기존 권위와 질서에 무작정 덤벼드는 돈키호테적 기인(奇人)만은 아님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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