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1월호

수재들의 경연장, 연극영화학과의 대도약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입력2005-03-22 13: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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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영화학과에 수능시험 고득점 수험생들이 몰리고 있다. 계열수석을 배출하는 것은 예삿일이고 전체수석이 연극영화학과에서 나오는 대학도 있다.
    젊음이 세상을 깨고 나가는 도구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통기타와 생맥주가 1970년대 젊은이들의 ‘틀거지’였다면 80년대 젊은이들은 사회과학이란 ‘무기’를 들고 세상에 맞섰다.

    그렇다면 21세기 영상세대는?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애니메이션 등이 ‘텔레비전’과 ‘비디오’를 먹고 자란 신세대들의 틀거지요 무기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신세대들의 욕구를 반영하듯 각 대학 연극영화학과에는 ‘학력’과 ‘끼’를 겸비한 우수한 인재들이 대거 모여 들고 있다.

    영화감독·배우를 꿈꾸는 영상세대

    “하나! 둘! 엉덩이 빼지마.” 다리엔 힘이 없고 몸은 땀으로 뒤범벅이다. “다시 한번 해봐. 좀더 부드럽게.” 지시에 따라 몸을 다시 움직여 보지만 좀처럼 춤사위가 멋스럽게 나오지 않는다. 지난 9월부터 저녁시간 짬을 내 재즈댄스 학원에 다니는 대입 삼수생 김모씨(21). 김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치른 첫번째 입시에서 서강대 인문계열에 합격했다.

    합격의 즐거움도 잠시, 한 달 남짓 대학생활을 하고 나니 ‘권태’가 밀려왔다. 전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는 1학년 1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부모님의 반대로 접을 수밖에 없었던 ‘예술가’의 길을 찾아 다시 대입준비에 나섰다. 목표는 서울 소재 대학 연극영화학과.



    “어렵게 들어간 대학을 그만두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꼭 연극영화학과가 아니더라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길은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대학에서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습니다.”

    김씨는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371점을 받았다. 특차전형에서 동국대 예술대학 영화영상전공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낙방. 여러 학교에 원서를 낸 일반전형 결과도 모두 불합격이었다. ‘추가 합격자 명단’에서조차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합격선과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재수에 실패한 뒤 그는 다니던 대학을 자퇴했다. 마음이 약해져 도전을 포기하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기 때문이다. 지난 8월 모의고사 점수가 생각처럼 나오지 않자 배우기 시작한 게 연극실기, 그리고 ‘특기시험용’ 재즈댄스다.

    “수능성적만으로 뽑는 곳에 입학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물론 성적만 잘 나온다면 그간 땀 흘린 게 쓸모없어질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실기시험을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김씨는 매주 토요일 고등학교 연극동아리 시절 선배에게 대사법·발성법·호흡법을 배운다. 연극영화학과 실기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틈틈이 시나리오를 쓰고 희곡작품을 읽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면접시험을 위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스탠리 큐브릭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는 그는 “연극영화학과에 합격해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해보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말했다.

    10월6일 늦은 오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춤 연습을 위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다. 곧이어 소형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춘 춤판이 10분 남짓 이어졌다. 그들이 추고 있는 춤은 비 보잉(B-boying). 1970년대 미국 뉴욕에서 시작한 브레이크 댄스로 힙합문화의 대표적 상징이다.

    에어트랙(물구나무를 서고 공중회전을 하는 동작) 연습에 여념이 없는 강형인군이 브레이크 댄스에 입문한 건 2년 전. 장래희망이 영화배우라고 한다.

    “여러 사람의 동작과 음악이 하나가 돼 작품이 완성된다는 점에서 꼭 춤은 영화와 똑같습니다.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서 배우가 될 거예요.”

    “다른 학과는 관심 없다”

    그는 반에서 5등 밖으로 떨어져본 적이 없는 우등생이다. 공부도 잘하고 춤도 잘 추는 ‘재주꾼’이라는 게 옆에서 헤드스핀(머리를 지지대로 회전을 하는 동작) 연습을 하던 친구의 평이다. 내년에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강군은 올 겨울부터 연기학원에 다니면서 본격적으로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할 생각이다.

    함께 춤 연습을 하던 그의 친구 3명도 연극영화학과에 지원할 계획이다. 스타가 돼 ‘폼’ 나고 ‘튀는’ 일을 하고 싶다는 게 그들의 희망. 또래의 대중스타들이 방송에서 환호받는 모습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는 강군은 연극영화학과가 아니면 대학에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한 반에 10명 정도는 될 걸요, 연극영화과 시험 본다는 애들이. 요사이 인기 있는 애들 대부분이 연극영화과 출신이잖아요. ‘스타’가 되는 지름길이 연극영화과 아니예요? 꼭 배우가 아니더라도 뮤직비디오 등과 관련된 일을 하려면 연극영화과가 유리하잖아요. 다른 학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강군은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는 게 무척 어렵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연극영화학과 입학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내던질 준비가 돼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춤을 잠시 포기하더라도 대학입시 공부에는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대학 재학생이나 졸업생이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기 위해 다시 입시를 준비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고, 중·고생들 사이에서는 연극영화학과가 최고 인기학과가 된 지 오래다. 각종 연기영화 관련 학원은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로 늘 만원이다.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번쯤은 ‘뭇 사람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스타’, ‘영상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드는 영화감독’을 꿈꿔본다. 하지만 오랜 기간 예술이나 창작 분야에 직접 발을 들여놓는 데는, 이를 가로막는 일종의 사회적 편견이 있었다. 그런데 1990년대 이후 중·고등학교를 다닌 영상세대들이 성인이 되면서 이러한 장벽은 더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연예·예술인이 청소년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의 하나로 등장한 것은 연예·예술인에 대한 기존의 사회적 편견이 영상세대들에겐 더이상 큰 의미를 갖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청소년개발원이 서울시내 중·고생 698명에게 장래 희망직업을 물은 설문 조사결과에 따르면, 디자이너(9.8%), 연예인(8.8%) 예술인(8.8%) 등 예술관련 직업에 종사하고 싶다고 응답한 학생이 전체의 45.8%인 반면 의사·약사(5.7%) 교수(5.1%) 법조인(3.9%) 등 전통적인 전문직은 34.2%에 불과했다.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를 뭉뚱그려 놓은 ‘생비자(prosumer)’란 조어처럼 영상광고·텔레비전·인터넷·뮤직비디오와 함께 자란 영상세대들은 영상텍스트의 소비자 역할에 만족하지 못하고 생산자로 직접 뛰어들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연극영화학과의 경쟁률은 매우 높았다. 하지만 연예인에 대한 동경이나 막연한 기대감으로 지원한 학생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연극영화학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은 영상산업에 대한 비전과 열정을 갖고 있다는 게 과거와 가장 다른 부분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 재학중인 송혜진씨는 연극영화학과의 인기에 대해 “미디어를 향한 욕구를 터뜨리는 분출구로 영화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새천년 첫 학번인 ‘00’학번 입시결과가 발표되자 중앙대 예술대학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30년 동안 의예과의 몫이었던 전체수석이 연극영화학과에서 나왔기 때문. 당시 이종훈 중앙대 총장이 연극영화학과가 수석을 배출한 ‘사건’을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학교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도 전체수석을 배출했다. 지난해 특차전형 영화영상전공의 합격자 수학능력시험 평균점수는 390.8점(400점 만점)이다. 일반전형 합격자의 평균점은 384.5점. 연극전공 특차전형 합격자의 평균도 383.9점에 이른다. 이런 성적은 고려대 연세대 등 사립명문대에도 지원이 가능한 점수. 동국대 의예과의 합격자 평균점이 388.8점임을 고려하면 연극영화학과 학생의 상당수가 의예과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수년 동안 우리 학교 전체수석이 영화 관련학과에서 나왔습니다. 공부 잘하고 재주있는 수재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연극전공과 영화영상전공으로 나뉜 뒤로는 더욱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렵게 들어온 탓도 있지만 학생들의 자부심이 무척 강합니다.”

    동국대 대학원 영화영상학 전공에 재학중인 이혜심씨의 말이다.

    단국대 한양대 등에서도 연극영화학과 관련 전공 중에 실기시험을 치지 않는 분야의 합격선은 다른 인문계열 학과에 비해 5~20점 정도가 높다. 의예과 치의예과 등 일부학과를 제외하고는 연극영화학과가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극영화학과의 합격선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필기전형을 하는 연출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370~390점 대의 수능시험 고득점자들이 대거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기와 필기전형을 병행하는 연기전공에도 수능시험 고득점자가 상당수 지원하고 있다.

    동국대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극단에서 무대감독으로 일하는 손효원씨는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려면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기시험의 경우도 능력보다는 인성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인 근거가 되는 것은 성적밖에 없지요. 실기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수능성적이 좋은 학생이 뽑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논술·영어·창의력 테스트 등의 자체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한 관계자는 “지적 수준이 높은 학생이 아니면 시험에 통과하기 어렵다”며 “방대한 독서를 통해 ‘창의력’을 갖춘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모두 거쳐 입학하는 것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특차전형과 동국대학교 연극전공 실기선택 전형,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연기전공 등이 실기고사를 거쳐 신입생을 선발한다.

    실기시험 없이 내신성적과 수능시험점수 혹은 수능시험점수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곳은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일반전형과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중앙대 영화학과와 연극학과 이론·연출 전공,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이론·연출·스탭·전공 등이 있다. 특차전형에선 실기시험을 보고 일반전형에선 필기시험만으로 선발하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의 선발방식이 이채롭다.

    또다른 방법은 연예계 활동을 통한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것.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최지우, 서유정씨가 대표적인 예다. 최지우씨는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서유정씨는 MBC 방송대상 신인연기상을 탄 경력이 참작됐다. 동국대의 전지현 김소연씨, 중앙대의 김희선씨, 동덕여대의 박경림 박진희씨, 경기대의 송승헌 문희준씨 등이 모두 이런 경우. 언뜻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스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신영섭 교수는 신입생 선발기준에 대해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 전문적인 영역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학생, 연극제·영화제 등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벌인 학생, 외모 등 신체조건이 탁월한 학생을 뽑는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신일수 교수는 “우선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한 뒤 희곡을 많이 읽고 공연이나 영화를 자주 감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남미녀(美男美女)가 없다

    그렇다면 연극영화학과에서는 어떤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10월8일 오전 동국대 연극영화학부 과방(科房). 품이 넉넉한 티셔츠와 엉덩이에 걸친 헐렁한 바지에 흰색 ‘스니커즈’ 신발로 한껏 멋을 부린 학생, 장발에 귀고리를 멋스럽게 단 학생, 아저씨 냄새가 흠뻑 나는 촌스러운 검정색 등산모자를 눌러쓴 학생… 과방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모두가 개성 넘치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연극영화학과를 찾은 방문객이 가장 놀라는 것은 미남미녀(美男美女)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실기시험을 치고 들어온 학생들도 어떻게 실기시험에 통과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한 외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개성으로 똘똘 뭉친 멋쟁이들이죠.”

    연극학과 한 학생의 말이다.

    과방 한쪽에선 영어 원서의 해석을 두고 열띤 토론이 진행중이다. 한 학생이 귀띔한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몇 등 하던 애들인데, 영어실력이 어디 가나요. 외국어고 과학고 출신도 학교에 꽤 있어요.”

    무리 중에 유달리 나이가 들어보이는 영화영상전공 98학번 강석류씨. 그는 연세대를 다니다 ‘영화가 그냥 좋아서’ 이 학교 연극영화학부로 옮겨왔다.

    “만화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공부를 하든 영화는 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살아 있습니다. 늘 함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강씨는 연극영화학부에 입학하기 전까진 늘 고민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 끝에 학교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수능시험에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 연극영화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명문대에서 옮겨온 학생도 상당수

    “무엇보다도 연극영화학과는 저 같은 사이코를 수용할 수 있어요. 수업, 작업, 촬영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열정과 열의가 있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강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학생이 너털웃음을 지며 큰소리로 맞받아친다.

    “야! 졸업하면 바로 실업자가 되는데 뭐가 즐거워. 연극영화과 다니면 예쁜 여학생들이랑 보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백수가 될 게 눈에 훤한데.”

    “원래 대학에 다니다 그만두고 들어온 친구들이 많다는 게 연극영화과의 특징이에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입학한 형도 있고, 외국에서 공부하다 온 친구도 있어요. 오히려 제때에 들어온 학생이 신기해 보일 정도죠”

    연극영화학과엔 강씨 같은 ‘늦깍이’가 유난히 많다. 과방에 모여 있는 10명 남짓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원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두번째로 다니는 대학이라고 한다.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이 입학시험을 치러가며 연극영화학과에 몰리고 있는 것도 최근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한 학생이 열 명 중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 ‘친구’로 관객 300만을 넘겨 ‘대박’을 터뜨린 곽경택 감독과, ‘식스 센스’로 할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킨 나이트 샤말란 감독도 의사의 길을 버리고 영화감독이 된 사람들이다.

    99학번 최재용씨는 촬영을 전공한다. 촬영특기자로 입학해 남들보다 쉽게 입시 관문을 통과한 경우다.

    “점수로만 보면 연극영화학과가 명문대 인기학과 이상이잖아요. 그런 점에선 시험점수와 무관하게 들어온 저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죠.”

    지하에 자리잡은 소극장에선 연극학과 학생들의 실기수업이 한창이다. 수업은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을 진행하고 담당교수가 그에 대해 코멘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연극의 한 대목을 두고 교수가 큰 소리로 꾸중한다.

    “야!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왜 웃는데… 왜 웃냐고, 말들을 좀 해봐. 대본에 어떻게 나와있어!”

    연출자로 보이는 한 학생이 군색한 변명을 한다.

    “대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교수의 호통이 더욱 커진다.

    “그렇게 되면 앞뒤가 이어지지 안잖아. 이렇게 한번 해봐!”

    수업이 끝났다고 자유롭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게 아니다. 본격적인 하루 일과는 수업이 모두 끝난 저녁시간부터 시작된다. 오후 6시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선배들의 ‘콜’이 떨어진다.

    촬영, 공연을 위한 작업이 시작되는 것이다. 시나리오 회의, 장소헌팅, 배우섭외, 무대장치 점검, 조명설치가 이어진다. 작업이 끝나는 시간은 밤 11시를 넘기기 일쑤다.

    “1학년 때는 교양과정에서 연극에 대한 기초개념을 배웁니다. 교양과정을 마치면 기초적인 신 만들기에 들어갑니다. 이때부터는 일주일에 반 이상 야근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촬영이나 공연이 임박하면 주말도 반납해야죠. 현장에서 작업복을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게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의 참모습입니다. 작품준비와 공연에 치이다 보면 개인생활을 할 시간이 거의 없지요”

    연극학과 졸업생 손효원씨의 말이다.

    연극영화학과 학생들은 교양과정 1년을 마치고부터 그야말로 눈코 뜰새 없는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연기를 위한 호흡 발성 발음 훈련뿐만 아니라 조명 무대제작 녹음 편집 의상 극작 연출 공연기획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태프 교육이 계속된다.

    다음은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졸업생 이인의씨가 회고하는 대학생활.

    “2학년 1학기 워크숍을 마치면 연극전공, 영화전공 등으로 각자 전공이 결정됩니다. 그때부터 고생이 시작되는 거지요. 우리 학교는 한 학기에 2편의 작품을 의무적으로 찍게 돼 있어요. 스스로 책임을 지고 시나리오에서부터 배우섭외, 연출, 편집 작업을 모두 끝마쳐야 합니다. 일요일을 빼고 일주일 내내 철야작업을 한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생활에 부대껴 1년 정도 휴학을 하지 않는 친구가 없을 정도로 고된 생활이죠. 그래서인지 여자친구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영화사 연출부나 극단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런 생활을 계속 되풀이해야 한다. 대졸자 초임 월급액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100만~200만원의 연수입으로 고된 작업을 계속해야 하는 것이다. 연극영화과 한 학년 동기중에 영화감독이나 배우로 데뷔하는 사람은 한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졸업반인 장명숙씨는 이렇게 말했다.

    “입학한 순간부터 ‘고난의 길’이 시작됐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영화에만 매달려야 하는 거지요. 졸업을 한다고 벌이가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자기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행복한 것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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