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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 대학 학과 판도가 변한다

수재들의 경연장, 연극영화학과의 대도약

  • 송홍근 <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 carrot@donga.com

수재들의 경연장, 연극영화학과의 대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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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첫 학번인 ‘00’학번 입시결과가 발표되자 중앙대 예술대학에선 탄성이 터져나왔다. 30년 동안 의예과의 몫이었던 전체수석이 연극영화학과에서 나왔기 때문. 당시 이종훈 중앙대 총장이 연극영화학과가 수석을 배출한 ‘사건’을 20세기와 21세기를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학교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동국대 연극영화학과도 전체수석을 배출했다. 지난해 특차전형 영화영상전공의 합격자 수학능력시험 평균점수는 390.8점(400점 만점)이다. 일반전형 합격자의 평균점은 384.5점. 연극전공 특차전형 합격자의 평균도 383.9점에 이른다. 이런 성적은 고려대 연세대 등 사립명문대에도 지원이 가능한 점수. 동국대 의예과의 합격자 평균점이 388.8점임을 고려하면 연극영화학과 학생의 상당수가 의예과에도 합격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최근 수년 동안 우리 학교 전체수석이 영화 관련학과에서 나왔습니다. 공부 잘하고 재주있는 수재들이 모인 곳이라고 할 수 있죠. 연극전공과 영화영상전공으로 나뉜 뒤로는 더욱 체계적인 교육이 가능해졌습니다. 어렵게 들어온 탓도 있지만 학생들의 자부심이 무척 강합니다.”

동국대 대학원 영화영상학 전공에 재학중인 이혜심씨의 말이다.

단국대 한양대 등에서도 연극영화학과 관련 전공 중에 실기시험을 치지 않는 분야의 합격선은 다른 인문계열 학과에 비해 5~20점 정도가 높다. 의예과 치의예과 등 일부학과를 제외하고는 연극영화학과가 가장 들어가기 힘든 곳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연극영화학과의 합격선이 이처럼 높아진 것은 필기전형을 하는 연출전공 분야를 중심으로 370~390점 대의 수능시험 고득점자들이 대거 지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기와 필기전형을 병행하는 연기전공에도 수능시험 고득점자가 상당수 지원하고 있다.

동국대 연극학과를 졸업하고 극단에서 무대감독으로 일하는 손효원씨는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려면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기시험의 경우도 능력보다는 인성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객관적인 근거가 되는 것은 성적밖에 없지요. 실기능력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수능성적이 좋은 학생이 뽑히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논술·영어·창의력 테스트 등의 자체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하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의 한 관계자는 “지적 수준이 높은 학생이 아니면 시험에 통과하기 어렵다”며 “방대한 독서를 통해 ‘창의력’을 갖춘 학생들만 입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진다. 가장 고전적인 방법은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모두 거쳐 입학하는 것이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특차전형과 동국대학교 연극전공 실기선택 전형, 중앙대학교 연극학과 연기전공 등이 실기고사를 거쳐 신입생을 선발한다.

실기시험 없이 내신성적과 수능시험점수 혹은 수능시험점수만으로 입학할 수 있는 곳은 한양대 연극영화학과 일반전형과 동국대 영상영화학과, 중앙대 영화학과와 연극학과 이론·연출 전공, 단국대 연극영화학과 이론·연출·스탭·전공 등이 있다. 특차전형에선 실기시험을 보고 일반전형에선 필기시험만으로 선발하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의 선발방식이 이채롭다.

또다른 방법은 연예계 활동을 통한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것.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한 최지우, 서유정씨가 대표적인 예다. 최지우씨는 제34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수상했고 서유정씨는 MBC 방송대상 신인연기상을 탄 경력이 참작됐다. 동국대의 전지현 김소연씨, 중앙대의 김희선씨, 동덕여대의 박경림 박진희씨, 경기대의 송승헌 문희준씨 등이 모두 이런 경우. 언뜻 가장 쉬운 방법처럼 보이지만 ‘스타’가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동국대학교 연극학과 신영섭 교수는 신입생 선발기준에 대해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 전문적인 영역에서 뚜렷한 성과를 거둔 학생, 연극제·영화제 등에서 창의적인 활동을 벌인 학생, 외모 등 신체조건이 탁월한 학생을 뽑는다”고 말했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신일수 교수는 “우선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한 뒤 희곡을 많이 읽고 공연이나 영화를 자주 감상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남미녀(美男美女)가 없다

그렇다면 연극영화학과에서는 어떤 학생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을까.

10월8일 오전 동국대 연극영화학부 과방(科房). 품이 넉넉한 티셔츠와 엉덩이에 걸친 헐렁한 바지에 흰색 ‘스니커즈’ 신발로 한껏 멋을 부린 학생, 장발에 귀고리를 멋스럽게 단 학생, 아저씨 냄새가 흠뻑 나는 촌스러운 검정색 등산모자를 눌러쓴 학생… 과방에 모여 있는 학생들은 모두가 개성 넘치는 옷차림을 하고 있다.

연극영화학과를 찾은 방문객이 가장 놀라는 것은 미남미녀(美男美女)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실기시험을 치고 들어온 학생들도 어떻게 실기시험에 통과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평범한 외모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쁘고 잘생긴 사람은 없지만 모두가 개성으로 똘똘 뭉친 멋쟁이들이죠.”

연극학과 한 학생의 말이다.

과방 한쪽에선 영어 원서의 해석을 두고 열띤 토론이 진행중이다. 한 학생이 귀띔한다.

“그래도 고등학교 때 전교에서 몇 등 하던 애들인데, 영어실력이 어디 가나요. 외국어고 과학고 출신도 학교에 꽤 있어요.”

무리 중에 유달리 나이가 들어보이는 영화영상전공 98학번 강석류씨. 그는 연세대를 다니다 ‘영화가 그냥 좋아서’ 이 학교 연극영화학부로 옮겨왔다.

“만화책을 보든 영화를 보든 공부를 하든 영화는 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살아 있습니다. 늘 함께 하고 생각할 수 있는 인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지요.”

강씨는 연극영화학부에 입학하기 전까진 늘 고민이 따라다녔다고 한다. ‘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원하는가’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인가’ 하는 회의 끝에 학교를 옮기기로 결심했다. 수능시험에서 녹슬지 않은 실력을 발휘, 연극영화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명문대에서 옮겨온 학생도 상당수

“무엇보다도 연극영화학과는 저 같은 사이코를 수용할 수 있어요. 수업, 작업, 촬영 눈코 뜰새 없이 바쁘지만 열정과 열의가 있으니 즐거울 수 밖에요.”

강씨의 말이 끝나자마자 한 학생이 너털웃음을 지며 큰소리로 맞받아친다.

“야! 졸업하면 바로 실업자가 되는데 뭐가 즐거워. 연극영화과 다니면 예쁜 여학생들이랑 보낼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백수가 될 게 눈에 훤한데.”

“원래 대학에 다니다 그만두고 들어온 친구들이 많다는 게 연극영화과의 특징이에요. 명문대를 졸업하고 입학한 형도 있고, 외국에서 공부하다 온 친구도 있어요. 오히려 제때에 들어온 학생이 신기해 보일 정도죠”

연극영화학과엔 강씨 같은 ‘늦깍이’가 유난히 많다. 과방에 모여 있는 10명 남짓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원래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두번째로 다니는 대학이라고 한다.

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이 입학시험을 치러가며 연극영화학과에 몰리고 있는 것도 최근 눈에 띄는 경향 중 하나다. 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학한 학생이 열 명 중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영화 ‘친구’로 관객 300만을 넘겨 ‘대박’을 터뜨린 곽경택 감독과, ‘식스 센스’로 할리우드에 새바람을 일으킨 나이트 샤말란 감독도 의사의 길을 버리고 영화감독이 된 사람들이다.

99학번 최재용씨는 촬영을 전공한다. 촬영특기자로 입학해 남들보다 쉽게 입시 관문을 통과한 경우다.

“점수로만 보면 연극영화학과가 명문대 인기학과 이상이잖아요. 그런 점에선 시험점수와 무관하게 들어온 저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죠.”

지하에 자리잡은 소극장에선 연극학과 학생들의 실기수업이 한창이다. 수업은 학생들이 준비한 연극을 진행하고 담당교수가 그에 대해 코멘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연극의 한 대목을 두고 교수가 큰 소리로 꾸중한다.

“야! 거기서 여자 주인공이 왜 웃는데… 왜 웃냐고, 말들을 좀 해봐. 대본에 어떻게 나와있어!”

연출자로 보이는 한 학생이 군색한 변명을 한다.

“대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교수의 호통이 더욱 커진다.

“그렇게 되면 앞뒤가 이어지지 안잖아. 이렇게 한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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