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 출신의원들이 한나라당으로 뿔뿔이 떠난 자민련에는 뒤늦게 입당한 이인제·안동선 의원을 포함해 10명 남짓한 의원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심지사는 “자민련은 없어지는 정당이 돼서는 안 되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며 대선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자민련을 떠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JP)에 대한 의리도 변함이 없었다.
1995년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개막된 이래 전국 15개 시도 중에서 심대평 충남·이의근 경북·김혁규 경남지사가 내리 3선을 기록해 다음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됐다. 세 번 연임한 도지사들의 거취와 정치적 선택은 여러 모로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거물 국회의원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중에는 선거 전략용으로 ‘대통령 감 한번 키워보자’는 분위기를 띄워 ‘작은’ 선거에서 쉽게 이겨보려는 전략을 쓴다. 심지사도 지방선거 때 ‘충청이 한국을 바꾸겠다’는 구호를 내세웠다. 그러나 정작 차기 대권 도전 의사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더니, ‘국무총리 한번 하고 싶지 않으냐’는 물음에는 “기회가 오면 하고 싶다”고 명쾌하게 대답했다.
심지사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후 총리실에서만 12년 근무했다. 정일권·김종필·최규하 총리 밑에서 일했고, 청와대를 거치고 다시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으로 돌아와 노재봉·정원식 두 총리를 보좌했다.
유서 깊은 충남 도지사관사에서 심지사를 만났다. 1932년 충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옮겨오면서 건축된 이 관사는 6·25 전쟁 발발과 함께 서울을 급히 빠져나온 이승만 대통령이 부산으로 가기 전 2박3일 동안 미국 대사와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 관사 뜰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그윽한 풍치를 돋우고 있었다.
심지사 부인이 차려준 저녁상에 맛깔스런 토속 음식이 입맛을 돋우었으나 인터뷰 시간에 쫓겨 일찍 상을 물렸다. 이런 이야기를 써서 실례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심지사보다 일곱 살이나 젊은 부인(54)은 조선시대 신윤복이 그린 미인도의 모델 같다.
―2002년 11월11일 지방분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던데 대통령선거에 눈과 귀가 쏠려 중앙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지방분권 선언의 핵심 내용이 무엇입니까.
“지방자치가 실시된 지 10년이 넘었고 자치단체장을 선거로 뽑기 시작한 지 7년4개월 되었습니다. 3선 임기를 마무리하는 내가 다른 사람이 꺼리는 일을 맡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지방분권 선언을 했습니다. 선거 때 ‘충청이 한국을 바꾸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습니다. 선거가 끝난 뒤 그게 무슨 실체가 있는 것이냐, 아니면 선거용으로 한번 얘기하고 지나간 것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지요. 자치의 틀을 충청도에서부터 바꾸어 한국을 바꾸는 첫걸음을 내디디려고 합니다.
둘째로는 충청이 정당정치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왜곡된 한국의 정치에 경종을 울릴 수도 있습니다. 당장 실현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런 방향으로 나가려는 복안을 가지고 있습니다.
선거 기간 내내 자민련을 지키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지금보다 발전된 모습의 자민련을 만들려는 꿈을 갖고 있습니다. 자민련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정당구조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는 중앙정치만 있고 지방정치는 없습니다. 지방정치를 활성화해 중앙정치를 바꾸고 싶은 의욕이 있습니다.
자치의 주역은 지역 주민입니다. 지금처럼 중앙당에서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일방적으로 공천하는 형태로는 중앙정치의 예속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원봉사 당원들의 손으로 선거 혁명을 이룩해 정당 구조를 바꿔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