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특별 기고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한반도 전문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의 북핵 위기 해법

  • 글: 케네스 퀴노네스 번역 : 이흥환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2/5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농축 우라늄’ 발언 파문의 주인공 강석주 북 외무성 제1부상(왼쪽에서 두번째)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강석주가 켈리에게 확인해 주었다는 것이 무엇인가도 명확하지 않다. 미 정부는 북한이 현재 핵무기 제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려는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평양은 그런 프로그램을 구축하기 위한 장비 획득을 확인해 주고 있다. 지금까지도 미 정부는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평양이 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거나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한 시설건설과 관련, 그 어떤 정보 서류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농축 우라늄은 손쉽게 빨리 생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농축 우라늄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2200개의 기계 장치를 전환하는 데는 대략 3500~7000개의 고강도 알루미늄 튜브가 필요하다. 이 2200개의 기계장치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가동된다고 해도 2개의 소형 핵무기를 제조하기에 충분한 고농축 우라늄을 얻으려면 대략 3년6개월이 걸린다.

북한은 아직 이런 기계 장치를 제조하지는 못했으며, 단지 이 기계를 만드는 데 필요한 물질을 획득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핵무기용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기 위해 그런 장비를 획득했다는 것만으로도 평양은 핵무기 프로그램을 중단하겠다는 약속을 위반한 것이기는 하다.

이런 사태전개는 10년 전 상황을 연상케 한다. 1992년 가을, 서울-도쿄-워싱턴은 대북 화해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해 9월 남북한 총리가 평양에서 회동했고, 미 국무부는 당시 국무부의 북한 담당관이었던 나를 뉴욕에 보내 북한의 김용남 외상과 만나게 했다.

당시 도쿄에서는 북-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또 하나의 수교회담이 준비중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협력을 끝내 거부했다. 북한은 소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다고 공개적으로 시인했으나, IAEA는 그보다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생산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한반도 핵 위기는 한국 대통령선거 전야인 그해 가을에 아주 조용히 시작되었다.



1994년 5월, 제2의 한국전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짙어졌다. 1994년 10월21일 다행스럽게도 북-미간 기본 합의는 그 위기의 불씨를 껐고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동결시켰다.

北, ‘생존’이 첫 번째 목표

2002년 가을, 한반도는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한국의 대통령선거 직전에 제2의 핵 위기를 향해 치달았다. 기본합의안이 없다면 북한은 IAEA의 사찰을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1993년 평양은 IAEA에서 빠져나오면서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라는 초강수로 국제사회를 위협했다. 북한은 지금 NPT에 남아 있고 IAEA에 협조하고 있다. 이는 오로지 기본합의안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 상황은 어떤가. 평양과 워싱턴은 10년 전 고생 끝에 얻은 합의안의 ‘무효화’를 고려하고 있다. 북한은 언제든 IAEA 사찰팀에게 북한을 떠나라고 말할 수 있다. NPT 탈퇴를 선언할 수도 있다. 실제로 북한은 12월12일 핵 동결 해제를 발표했고, IAEA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 앞으로 “감시카메라 및 봉인 해체를 요구한다”는 서한을 보냈다. 이로 인해 북-미간 불화와 동북아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 막다른 상황이 협상을 통해 외교적으로 풀리지 않는 한 동북아에서의 전쟁 가능성은 또다시 높아질 수밖에 없다.

1994년의 기본합의안은 결국 북한의 핵 야망을 중단시키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합의안 자체는 실패작이 아니다. 합의안을 효과적으로 이행하지 못한 것이 문제이며 이는 양국 정부에 책임이 있다.

처음부터 워싱턴과 평양은 아주 다른 이유로 합의안에 서명했다. 전 부시 행정부를 비롯해 클린턴 행정부와 현 부시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워싱턴이 고려하는 최우선 순위는 대량살상무기를 가진 북한을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다. 워싱턴이 기본합의안에 서명한 주된 이유는 다음 세 가지였다.

△NPT 조약이 깨지지 않도록 보존한다.

△동북아에서의 핵무기 확산을 방지한다.

△북한의 핵 탄두탄 개발을 방지한다.

이 전략은 평양이 대량살상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경제적 이득을 얻으면서 국제사회와 외교 및 통상 관계를 정상화하도록 설득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에 비해 북한의 우선 순위는 사뭇 달랐다. 북한의 첫 번째 목표는 ‘생존’이었다. 평양 지도부는 미국으로부터 영토를 지키기 위해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거나 아니면 워싱턴과 평화를 유지하면서 외교 경제 관계를 정상화시키는 것이 곧 그들의 운명에 직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북-미 관계 정상화가 북한의 경제를 되살리고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든다고 믿었다. 달리 표현한다면 평양은 무장을 해제할 의도가 없었던 셈이다.

평양은 기본합의안을 교환의 하나로 보았다. 미국과 평화적인 관계를 맺고 국제 시장에 진입하는 대가로 핵 야망을 포기하겠다는 것이었다(기본합의안의 이행에 대한 평가는 ‘협상을 넘어서-기본합의안의 이행’이라는 제목으로 도쿄의 ‘중앙공론신사’에서 곧 발행될 예정임).

2/5
글: 케네스 퀴노네스 번역 : 이흥환
목록 닫기

“부시, 전제조건 없이 평양 껴안아라”

댓글 창 닫기

2021/11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