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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의 조선사회 뒷마당 ④

수만 백성 살린‘숨은 허준’ 많았다

조선시대의 민중의(民衆醫)

  • 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수만 백성 살린‘숨은 허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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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처방과 약이 있으면 무얼 하는가? 의원이 있어야 약을 쓴다. 그런데도 의원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다. 양반 중심의 조선사회는 의원을 천시하였다. 의원이 아무리 똑똑한들, 아무리 학문이 있어본들 양반 아래다. 한심한 일이지만 사실인 걸 어쩌랴. 조선후기 지식인 이규상(李奎象)은 이렇게 말한다.

“대저 역학(譯學)이나 의학(醫學)에 모두 학(學)이란 말이 붙는 것은 글을 알아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글을 알면 지식이 생기는 법이니, 사역원(司譯院)이나 내의원(內醫院)에 속하는 사람 중에 지식이 있는 사람이 많다. … 의학과 역학은 참으로 인재의 큰 창고인데, 사대부들은 역관 벼슬을 멀리하기 때문에 그 방면의 사람을 들을 수 없으니 매우 한탄스러운 일이다(민족문학사연구소 한문분과 역, ‘18세기 조선 인물지’, 창작과비평사, 1997, 190면).”

입신양명의 조선시대적 의미는 별다른 것이 아니다. 벼슬하는 것, 곧 직업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벼슬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 하고서 일부 양반만 좋은 벼슬을 할 수 있고, 양반이 아닌 다른 사람은 배제하는 것이 온당한 일인가? 한심한 일이다. 의학과 역학(외국어)은 사람의 생명을 다루고, 국가의 외교를 다루는 중차대한 일이다. 하지만 이를 담당하는 의관과 역관은 아무리 재능이 있어도 권력의 정상부에는 결코 올라갈 수 없다. 의관과 역관이 아무리 똑똑해도 영의정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니 무슨 열의가 있어 의학이나 역학을 공부하고 발전시키겠는가? 지금도 학벌 때문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 못하는 사람이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

의원을 우습게 아는 양반들의 의식 때문에 의원에 관한 기록은 그리 흔하지 않다. 도대체 중국의 화타나 편작, 서양의 히포크라테스처럼 내놓을 만한 의원이 누가 있단 말인가? 많은 사람이 ‘동의보감’의 편자 허준(許浚)이 있지 않냐 할 것이다. 하지만 이은성의 ‘소설 동의보감’이건, TV드라마 ‘허준’이건 그 ‘허준’이라면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허준에 관한 조선시대의 기록은 한 줌도 되지 않는다. 허준은 상상력의 소산인 것이다. 나는 유희춘(柳希春, 1513~77)의 일기인 ‘미암일기초’와, 이규상의 ‘병세재언록’, 그리고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에서 간단한 기록을 보았을 뿐이다. 왕조실록에도 허준에 관해 선조와 광해군에 걸쳐 100회 이상의 기록이 나오지만, 그것은 궁중 어의(御醫)로서의 활동일 뿐이다. 우리는 소설이나 TV의 허준을 거기서 확인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허준은 왜 이토록 유명해 졌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동의보감’ 때문이다. 연암 박지원이 중국에 갔을 때 북경의 유리창에서 팔리는 조선의 서적으로 ‘동의보감’이 유일하더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서적은 중국에서도 인정받은 국제적 베스트셀러였던 것이다.

“만 명을 살리면 내 일이 끝날 것”

우리는 사실 허준 개인에 대해 별반 아는 것이 없다. 그러니 알지도 못하는 허준에 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 말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무슨 졸가리가 있는 이야기를 해보자.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의 ‘이계집’에 ‘침은조생광일전(鍼隱趙生光一傳)’이란 전(傳)이 있다. 침은이라고 했으니, 침술을 주로 하는 침의였던 것이다. 작품은 짤막하지만 내용은 사뭇 인상적이다.

조선시대에는 의원을 맡는 집안이 따로 있다. 원래 전문적 의원은 중인에 속한다. 양반이 의술을 익히는 경우가 있지만 양반 출신 의원을 의원으로 치지는 않는다. 중인은 의원·역관·계사(計士)·일관(日官)·화원(畵員)·사자관(寫字官) 등등 그 범위가 넓지만, 의원·역관·계사·음양관은 잡과(雜科)라 해서 과거를 통해 관직으로 들어서기 때문에 중인 중에서도 지체가 높은 편이고, 또 그 중에서도 의원과 역관을 가장 높이 치는 법이다.

그런데 조광일이란 사람은 그런 의원 가문도 아니다. 홍양호의 말에 의하면 그의 의술은 옛부터 전해오는 처방을 따르지 않았다고 하니, 제대로 된 의원 가문에서 자라났거나 의서(醫書)를 광범위하게 본 그런 의원은 아니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떤가? 원래 정해진 의서란 없다. 병만 나으면 그만 아닌가? 그는 가죽 주머니 속에 구리침·쇠침 10개를 넣고 다녔다고 한다. 그 침으로 악창(惡瘡)을 터뜨리고 상처를 치료하였으며 어혈을 풀고 풍기(風氣)를 틔우고 절름발이와 곱추를 일으켜 세웠는데, 즉시 효험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없었다니 명의라 불러도 괜찮은 인물이다. 그런데 그가 이런 의술로 유명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자기 호를 침은이라 붙일 정도로 침술에 자부심을 가진 명의였으나, 돈벌이에는 아주 손방이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어느 날 홍양호가 우연히 조광일의 오두막을 지나다 보니, 웬 노파가 “아들 놈이 병이 나 거의 죽게 되었으니 제발 목숨을 살려달라”고 애걸을 하고 있었다. 홍양호가 보아도 돈이 안 될 환자다. 그런데 조광일은 “그럽시다” 하면서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이 선뜻 길을 따라나서는 것이 아닌가.

뒤에 홍양호가 물었다. “의술이란 천한 기술이고, 시정은 비천한 곳이다. 그대의 재능으로 귀하고 현달한 사람들과 사귀면 명성을 얻을 것인데, 어찌하여 시정의 보잘것없는 백성들이나 치료하고 다니는가?”

조광일의 대답인즉 이렇다.

“나는 세상 의원들이 제 의술을 믿고 사람들에게 교만을 떨어 서너 번 청을 한 뒤에야 몸을 움직이는 작태를 미워합니다. 또 그런 작자들은 귀인의 집이 아니면 부잣집에나 갑니다. 가난하고 권세 없는 집이라면 백 번을 청해도 한 번도 일어서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어진 사람의 마음이겠습니까? 나는 이런 인간들이 싫습니다. 불쌍하고 딱한 사람은 저 시정의 궁박한 백성들입니다. 내가 침을 잡고 사람들 속에 돌아다닌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살려낸 사람은 아무리 못 잡아도 수천 명은 될 것입니다. 내 나이 이제 마흔이니, 다시 십 년이 지난다면, 아마도 만 명은 살려낼 수 있을 것이고, 만 명을 살려내면 내 일도 끝이 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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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hkmk@pu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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