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엔 확실한 진리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프로 스포츠 감독은 반드시 목이 잘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그 어느 곳에서건 마찬가지. 그만큼 프로 스포츠 감독은 파리 목숨이다.
한국에서 축구 감독은 ‘기술자’로 취급된다. 현역 시절 공 잘 찬 사람이 감독도 잘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축구선진국에서 축구 감독은 ‘최고경영자(CEO)’다. 당연히 기술 능력보다는 사람관리 능력이 뛰어나야 된다. 굳이 비율로 따진다면 기술 20%에 사람관리 80% 정도라고나 할까. 히딩크 감독이 현역시절엔 그다지 뛰어난 선수가 아니었지만 명감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사람관리’를 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트루시에 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 어시스턴트 겸 통역이었던 프랑스인 디바디는 “트루시에에게 있어 현대 축구의 90%는 매니지먼트(팀관리, 심리학)다. 훈련은 10%에 불과하다. 그는 선수들에게 ‘당신들은 인간이며 성인이다. 위대한 선수가 되려면 좋은 인간이 돼야 한다’고 가르친다. 휴머니즘과 교육은 모든 것의 열쇠다”라고 말한다.
매니저와 헤드코치의 차이

히딩크 감독.
그뿐인가. 수많은 취재진을 상대해야 한다. 선수단 지휘권에 틈만 나면 간섭하고 싶어하는 구단 관계자도 견제해야 한다. 한국에선 감독을 부하직원 쯤으로 아는 구단 고위층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업무 중의 하나다.
유럽 축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AC밀란 등 세계적인 명문팀 감독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명감독이라 할지라도 한 팀에서 잘했다고 다른 팀에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그 쟁쟁한 감독들이 명문 클럽팀에 갔다가 얼마 견디지 못하고 목이 잘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것은 그들의 축구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 팀의 경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유럽은 나라마다, 팀마다 축구 스타일이나 분위기가 뚜렷하게 다르다. 따라서 경영 스타일도 그 팀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 잉글랜드나 독일 팀에서 감독의 권위는 거의 절대적이지만 네덜란드나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는 꼭 그렇지도 않다.
영국의 보비 롭슨 감독(69)의 예를 보자. 롭슨은 현재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뉴캐슬 감독. 2002년 11월22일 버킹엄궁에서 찰스 왕세자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을 정도로 영국 축구에 크게 공헌했다. 더구나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잉글랜드 대표팀을 맡아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를 4위에 올려놓은 명장이다.
하지만 1996~97 시즌 요한 크루이프가 떠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지휘하던 그는 한 시즌 만에 바르셀로나를 떠나야 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엔 호나우두가 맹활약하고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롭슨은 이미 이탈리아 월드컵이 끝난 뒤 1990년부터 1992년까지 2년 동안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감독으로 있으면서 쓰라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롭슨이 있는 동안 아인트호벤은 리그 선수권을 두 차례 차지했다. 그러나 정작 팬들이 기대했던 각종 유럽대회에서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결국 그는 아인트호벤을 떠나야 했다.
네덜란드 선수들은 전술과 베스트 11 선발 등에 대해서 감독에게 거침없이 자기 의견을 말한다. 감독이 그들을 설득하지 못하면 그들은 감독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롭슨은 명령과 복종의 수직관계가 분명한 영국 축구에서 커온 사람이다. 그는 선수들이 감독의 지시에 이러쿵저러쿵 의견을 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수들은 롭슨의 훈련 방법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불평했다. 아인트호벤 수비수 베리 판 아를러는 후에 “롭슨은 괜찮은 사람이긴 하지만 지난 2년 동안 그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영어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