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서 언젠가 한가로운 시간이 생기면(은퇴 후?) 초등학교 때 읽었던 그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볼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대학시절엔 전공이 사회학이었던 만큼 철학·심리학·인류학·정치학·경제학 등 사회과학서적을 두루 읽었다. 개인적으로, 전공보다는 대학시절 자유롭게 읽었던 수많은 책을 통해 사회인으로서 경쟁력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처절한 사회생활의 현실’에서 종교서적도 이것저것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차별’에 분노해서 여성학 관련 책들도 많이 찾아 읽었다. 물론 사회생활에 나름대로 이력이 붙고 자신감이 붙어가면서 경영·경제서적을 읽었다.
또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할 때는 ‘일본을 제대로 알자’고 작정하고 일본어 공부를 겸해 일본문학서를 100권 돌파하고, 일본 정치사상사 및 문화사 관련 책들을 읽었다. 이런 과정에서 일본어 실력도 늘었지만, 무엇보다 일본사회를 들여다보면 그런 대로 감이 잡히고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 것인지 예측하는 나름의 능력을 갖게 돼 참으로 기쁘게 생각한다.
한국으로 돌아와 14년 간의 기자생활을 청산했다. 마치 ‘대한독립만세!’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선 누군가의 지시를 더 이상 받을 필요가 없다는 점, 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쓴다는 점, 시간당 계산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책 읽는 시간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책읽기는 직장시절처럼 ‘교양’이나 ‘오락’이 아니라 철저한 경쟁력의 원천이 됐다.
“나는 여전히 읽고 있다”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받아들이고 걸러내고 내 나름대로 가공해 글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그 자체가 부가가치를 더해 돈이 되었다. ‘자유계약선수(Free Agent)’가 되면서 나는 처음으로 지식이 곧 돈이라는 지식자본의 의미를 체험했고 지식이 직거래되는 시대를 예감했다. 그런 점에서 책을 읽는다는 것은 내게 가장 확실한 투자다. 특히 이 투자는 누가 빼앗아갈 염려도 필요없다는 점에서 안전하고 가장 수익률이 높은 투자다. 그래서 그 이후 더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쓰며 살아왔다.
요즘 내 관심사는 과학서적 읽기다. 대학시절부터 인류학에 관심이 컸지만 생물학이나 동물학엔 그리 흥미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궁극적인 관심의 대상인 ‘인간은 어디에서 왔는가?’ ‘여성과 남성은 왜 다른가?’ ‘왜 남성은 지배자였던가?’ ‘왜 남성은 폭력적인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헤매게 됐다. 그 답을 안겨준 이들은 모두 과학자나 동물학자, 생물학자들이었다.
여성 과학자 린 마골리스의 ‘생명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살아 있음의 경이를 배웠다. 데즈먼드 모리스의 논쟁적인 책 ‘털없는 원숭이’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책이다. 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는 무척 감동적으로 읽은 아름다운 책이다. 바래쉬 부부의 ‘일부일처제의 신화’,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이나 ‘게놈’은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물론 남성의 폭력성을 생물학적으로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적 대안까지 제시한 리처드 랭햄의 ‘악마 같은 남성’은 남녀불문하고 한번 꼭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라고 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런 책을 읽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