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8일 오전 민주당사에서 열린 중앙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서 정대철 위원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노당선자의 대선 승리는 그동안 한국 정치를 지배해 온 ‘3김 정치’의 주류를 일거에 퇴장시키는 동시에 노당선자를 중심으로 한 비주류가 정치의 중심무대로 진출한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노당선자를 비롯한 비주류 집권세력은 젊고 개혁적이라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국정 전반을 커버할 수 있을 만한 인적 네트워크를 아직 형성하지 못했다는 취약성을 안고 있다. 따라서 노당선자는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정치권 인사보다는 전문성 있는 테크노크라트를 대거 기용하거나 외연 확대를 염두에 둔 초당적(超黨的) 인사정책을 펼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노무현 세력’은 과거 동교동계나 상도동계처럼 일정한 역사를 갖고 있는 계보집단과는 거리가 멀다. 노당선자 스스로가 1988년 13대 총선을 통해 정치권에 진입한 이후 특정 계보에 속해 본 일이 없고, 스스로도 수직적 형태의 인적 관계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계보를 따지자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운동권 출신 보좌진 몇 명 정도가 늘 그와 함께해 온 직계라고 할 수 있다.
‘노무현 세력’은 노당선자가 2000년 4월 16대 총선 낙선 이후 대권 도전의 꿈을 키워가던 때 합류했던 인사들과 당내 경선에서 대통령후보로 선출된 이후 선대위를 중심으로 모여든 인사들의 집합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할 것이다.
이들은 크게 재야 입당파, 쇄신파,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統推) 출신, 비동교동계 인사로 구분할 수 있다. 초기에는 쇄신파가 주도하는 형국이었으나, 대선 과정에서 탈(脫)DJ 전략과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와의 후보단일화 문제 등 선거전략상의 핵심문제를 둘러싼 노선 투쟁과정에서 쇄신파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재야 입당파가 중심세력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겪기도 했다.
또한 한화갑(韓和甲) 대표를 비롯한 동교동계 신파는 당내 경선과정에서 노당선자와 제휴관계였으나, 대선 과정에서는 거리가 멀어지는 등 ‘노무현 지원세력’의 구성은 이합(離合)을 계속해 왔다. 대선기획단 체제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동교동계 신파인 문희상(文喜相) 최고위원과 한때 DJ 직계부대였던 정동채(鄭東采) 이강래(李康來) 의원이 선대위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2선으로 밀려나는 등 부분적인 세력교체 현상도 나타났다.
이와 별도로 노당선자는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와 집권 5년간 국정운영 공조에 합의했고, 양자간 정례회동을 통해 주요 국정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로 한 만큼 과연 정대표가 노무현 정권의 2인자로서의 역할을 행사할지도 관심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