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출에 물든 영종도 개펄. 날아오르는 비행기도 발갛게 물든다.
바다를 차고 떠오르는 꿈
‘나는 도시(The Winged City)’, 인천국제공항엔 그런 ‘날개 달린 꿈’이 가득하다. 하루 평균 350대 비행기가 그 양력(揚力)으로 뜨고 내린다. 낮 시간엔 2분에 한 대꼴. 충북 진천 인구와 맞먹는 5만7000명의 승객이 들고난다. 반도의 심장부를 차고 세계의 하늘로 날아오르며, 또는 지친 다리를 쉬려고 집으로 돌아오며 사람들은 이 관문을 보고 거기 또 꿈을 심는다.
인천 시내 공장의 굴뚝을 비집고 떠오른 겨울 해도 공항 지역에선 꿈을 꾼다. 발 아래 올망졸망 박힌 섬 사이를 오가는 통통선과 희부염 퍼지는 해무에 졸던 해는 날개를 펄럭이며 비상하는 날것의 굉음에 눈을 뜨고, 저도 그만 떠나고 싶은 마음에 발갛게 볼을 달군다. 새 아침을 가르며 나는 비행기가 화답하듯 동체를 태양 빛으로 물들인다.
“길 떠나면 고생이요, 두려움”이라는 건 이제 옛말이다. 최신식 대형 제트기로 열린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것은 도전이요 도약이다. 불과 100년 전 나랏문을 절대 열 수 없다며 ‘양이(洋夷)’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던 바로 그 인천 앞바다에 아시아 최대급이자 세계 3위권의 국제공항이 들어선 것도 어찌 보면 꿈이 빚은 잔치 같기도 하다.
2001년 3월 29일. 착공 8년 만에 인천공항이 문을 열기 전 언론은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 항공관제 시스템이나 여객 화물처리 능력이 떨어져 엄청난 혼잡과 부작용은 물론 대형사고가 터질 가능성도 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날 이후 지난해 말까지 항공기 21만대, 여객 3500만명, 화물 330만톤이 인천공항을 통과했다. 물론… 큰 사고는 없었다.
회초리 맞고 자란 자식이 경쟁력이 있다 했던가. 한 언론은 공연한 호들갑이 무색했는지 “유쾌한 오보였다”고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때의 질책 덕분인지 인천공항은 이제 한국의 간판 관문으로 손색 없는 위용을 갖추었다.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에 매치시킨 터미널의 청자빛 외관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유혹을 간질이며 색감과 질감을 자랑한다.
인천공항은 인천 앞바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닷길을 메워 만든 해상 공항이다. 여객 터미널과 활주로가 있는 자리는 심청이 빠진 인당수 만큼은 아니어도 물길이 제법 깊은 곳이었다. 여기에 15톤 트럭 1800만대분의 토사와 자갈돌 등 골재에 레미콘 아스콘 160만대분을 쏟아부어 서울 여의도 면적의 18배에 이르는 공항부지를 조성했다.
48만장의 설계도에 따라 연 1380만명의 건설 인원이 동원됐고 사업비 6조2370억원이 투입됐다. 기행문답지 않게 웬 복잡한 수치냐고 짜증을 낼지 모르나 그러지 않고는 도무지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인원, 물자, 장비와 돈을 쓴 것이다. 헤아리기 힘든 사람들이 쏟은 땀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며 꾸는 꿈으로 이어졌다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여객 터미널 안에도 꿈의 공간이 있다. 터미널 한가운데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대리석 벽으로 연결된 만남의 장소, 밀레니엄홀이 그 곳이다. 홀 중앙 연못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꿈을 담아 던진 동전들이 수북이 쌓여 있다. 일주일에 보통 70만~80만원어치씩 수거되는 그것들은 한국인의 소망과 정성으로 포장돼 국제아동기금에 보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