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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이 경쟁력이다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도 인공적인

보이는 것 그 너머

  • 글: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사진학 / 사진가 chuha123@hanmail.net

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도 인공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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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인간적인, 너무도 인공적인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1932), 아우구스트 잔더(‘페인트공’·1932), 도로시아 랭(‘이주자의 어머니’·1938)의 작품

이 세 명의 작가를 대표로 하는 사진의 리얼리즘은, 회화사와 예술사에서 이야기하는 리얼리즘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즉 회화에서는 귀스타·쿠르베(1819∼77)를 중심으로 하는 리얼리즘이 이미 19세기 중반에 전통적인 회화의 대상과 표현의 의미를 사실적으로 전환시키고자 애썼고, 예술사적으로는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러시아와 유럽 일부에서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있었다. 그리고 1960년대 팝아트 이후에 다시 미술사 안에는 극사실적인 묘사를 중시하는 포토리얼리즘이 생성되었다.)

그러니까 사진사 속에 위치하는 이 리얼리즘 운동은 사진이 탄생하고 50여 년이 흐르면서 매우 빠르게 기술적으로 발전하면서 예술로 인정받기 위해 몸부림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자신이 가진 ‘표현 매체로서의 근본적인 가능성’을 진정으로 깨닫게 되는 ‘사진이해의 여명기’라고 할 수 있다.

위에 열거한 세 명의 작가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자신들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가진 이들의 사진을 들여다보면 때론 신비한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서로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직업적 입장을 가지고 있던 이 작가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통해 인간의 삶을 매우 여실하게 들여다보고 재현해놓기를 열망했다. 특히 독일의 하인리히 칠레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가 죽은 후 발견된 사진들을 보면 카메라를 가지고 그가 어떻게 인간의 삶에 파고들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그 당시 그는 사진으로 예술을 보여준 것이다.

이제 사진은 매우 빠르게 발전한다. 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광학과 기계학의 급격한 발전으로 카메라의 부피가 작아지고 필름 감광시간이 줄어들면서 촬영 방법이 다양해졌다. 그동안 사진을 찍기 위해서는 늘 무거운 카메라를 고정시킬 든든한 삼각대가 필요했다. 때문에 사진가의 시각은 당연히 고정적일 수밖에 없었으며 정적인 대상을 표현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라이카로 대표되는 소형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사진의 내용은 매우 역동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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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태생의 사진가 카르티에 브레송은 이러한 소형 카메라의 달인이다. 그는 매우 독특한 시각으로 세상을 연극 무대처럼 표현한다. ‘결정적 셔터 찬스’라고 알려진 그의 사진 미학은 소형 카메라에 표준렌즈(50mm)를 장착하고 절대로 대상에 의식적인 개입을 하지 않으면서, 그 대상이 가지고 있는 절묘한 순간성에 집착하였다. 그의 사진들에 나타난 재미(삶의 단면으로)는 이전의 사진들과 매우 다르다. 그러나 그의 사진이 가지고 있는 그 재미가 다시 그의 사진을 폄훼하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스냅이라고 일컬어지는 기법의 사진들이 가지는 가벼움이 사진 읽기를 재미로 그치게 하기도 한다는 뜻이다(그 시대에는 그것이 매우 중요했지만).

같은 시대를 살던 아우구스트 잔더(1876∼1964)는 매우 다른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쾰른에서 사진관을 하던 그는 ‘20세기의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자신이 살던 시대의 사람들을 직업별로 구분해 유형화한 후 그들의 초상사진을 찍는다. 언뜻 보면 지루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사진들은,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의 ‘전모’를 전면에서 밝힐 수 있게 해준다.

사진이 가지고 있는 ‘증명의 기운’과 ‘보존의 기운’을 모두 잘 이용한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아트제가 이러한 사진의 힘을 이용해 판매 원고로 사진을 제작했다면, 잔더는 그 힘을 시대의 증빙자료를 만드는 데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지금까지도 유형학적 사진(Typology Photo- graphy)이라는 장르로 유효하게 진행되는 잔더 부류의 사진은 사진이 어떻게 인류를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본보기다.

유럽에서 시작한 사진은 유럽에 국한하지 않고 전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갔다. 그중에서도 미국은 사진을 가장 열렬하게 받아들인 나라다. 19세기말까지 별 독특한 문화를 갖지 못했던 신생국 미국은 남북전쟁을 사진으로 기록할 정도로 그 받아들임이 활발했다. 뿐만 아니라 192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경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루스벨트는 농업안정국 산하에 사진가들을 고용해 자신의 뉴딜정책을 실현하는 밑거름으로 삼기도 하였다. 미국은 이처럼 사진을 사회의 공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매체로 사용한 것뿐만 아니라, 사진이 예술로 가장 강력하게 안착된 나라이기도 하다. 이미 유럽은 1차 세계대전과 2차 대전을 겪으면서 많은 지식인과 예술가가 신대륙으로 이주하는 사태를 맞는다.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학교로는 대표적이고, 미국으로 이주한 예술가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러한 고급 두뇌들의 유입으로 미국은 점차 매우 지적인 나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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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주하 백제예술대 교수·사진학 / 사진가 chuha1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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