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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시스템의 승리

영혼으로 만나는 세상

  • 글: 김성태 서강대 강사·영화학

이야기의 힘, 시스템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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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힘, 시스템의 승리

찰리 채플린의 대표작 ‘위대한 독재자’

미국의 스튜디오(제작사)는 대략 1912~28년에 구축됐다. 유니버설사가 1912년, 파라마운트는 1914년, 폭스필름(20세기 폭스 전신)은 1915년에 건립됐다. 그러나 이들 영화사가 규모를 갖추고 확장된 것은 1919년, 채플린과 당시 모험활극 주인공으로 큰 인기를 모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그리피스 등이 연합해 만든 유나이티드 아티스트사의 등장에 위협을 느낀 때문이었다.

채플린 등은 영화의 생산이 좀더 조직적이고 규모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인물들이었다. 유나이티드에 이어 콜럼비아(1922), 워너브러더스(1923), MGM(1924), RKO(1928) 등의 거대 제작사가 잇따라 설립됐다.

비슷한 시기, 영화사들은 동부 뉴욕을 떠나 여러 모로 좋은 조건을 갖춘 서부의 광활한 대지, 할리우드로 이동을 시작했다. 바야흐로 진정한 의미의 ‘할리우드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할리우드는 영화 생산지로서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자연 환경만이 아니었다. 동부보다 개발이 덜 된 탓에 인건비와 땅 값이 쌌다. 주정부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뉴욕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호조건이었다.

이 같은 상황은 할리우드의 성격을 규정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로부터 영화사의 경제적 이윤이 극대화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윤의 극대화를 노린 여러 조치들은 그 자체로 영화생산의 개념을 확정짓는 기초가 됐다. 영화는 하나의 당당한 산업 시스템으로 자리잡았으며, 더 이상 니켈로데온 극장(1905년부터 성행한, 아주 짧은 영화와 버라이어티 쇼 등을 뒤섞어 보여주던 5센트짜리 영화관. 당시 5센트 동전이 구리로 만들어진 데 착안해 이런 이름이 붙었다) 시대처럼 시정부가 저급하고 유치하다는 이유로 문을 닫아라 마라 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1912년, 뉴욕 시정부는 시의 도덕적 질서와 안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이 극장의 폐쇄를 결정한다).



산업화, 그것은 곧 대량생산을 의미한다. 영화는 그야말로 새로운 노다지였으며, 미친 듯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꿈의 광산이었다. 마치 포드자동차사의 컨베이어 벨트에서 자동차를 만들어내듯 모든 공정은 분업화(전문화)되었다. 그렇게 할리우드는 ‘꿈의 공장’이 되었다.

장인의 시대에서 숙련공의 시대로

이제 1920년대, 영화 미학이 정점에 달한 동시에 산업적으로는 오늘과 같은 모델이 형성된 시기에 대해 알아보자.

대량생산은 단순한 경제적 메커니즘이지만 그것이 영화에 적용될 경우, 곧바로 영화적 내용을 결정짓고 그 미학적 수준을 조절하는 하나의 지표가 된다. 대량생산은 보다 더 저렴하게, 또 보다 더 빨리 상품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시스템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신속하게 만드는 동시에 돈을 아낄 수 있는 방법이란 무엇일까 ? 만일 우리가 늘 단순화된 작업, 똑같은 공정만 되풀이한다면, 상품 생산 시간은 급격히 줄어들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포드자동차의 분업이요 노동의 체계화 아닌가. 할리우드도 영화를 생산함에 있어 기꺼이 이 개념을 차용했다.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이야기를 표준화하면 되는 일이었다.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드느라 애쓰기보다는 어떤 틀을 만들어 그때그때 몇 가지 독특한 상황을 솜씨 좋게 조합해 넣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부극이라면, 늘 등장하는 캐릭터, 사건들이 대략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해 아주 쉽게 수많은 아류작을 탄생시킬 수 있다. 바로 이런 생각에서 탄생한 것이 장르 영화다. 서부극, 공포물, 드라마, 멜로물, 형사물, 스타필름 등등. 여기서 장르란 일련의 이야기를 조직하는 법칙 혹은 그에 대한 형식화된 구분이다.

이로써 할리우드는 정말 ‘공장’이 됐다. 이야기에 법칙을 적용하고, 그 법칙의 각 부분을 책임질 전문가들을 고용해, 여기저기서 따온 장면과 이야기들로 새 영화를 만드는 것. 인물과 상황의 작은 차이 때문에 이들은 각기 다른 영화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같은 형식과 같은 구조를 갖고 있는 것들이었다. 관객들은 속았지만 아무도 그에 마음 쓰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그들은 서부극의 매혹적인 줄거리에, 멜로물의 따뜻한 위안에 익숙해져 갔고, 그렇게 종류별로 구분된 영화들만을 찾는 ‘중독자’가 되었다. 장르 영화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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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태 서강대 강사·영화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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