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과 같은 IT 불황기에 기술혁신을 이뤄야 ‘신산업혁명’에 대비할 수 있다. 반도체 생산라인.
더욱 답답한 것은 새 정부가 초기 대응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새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의 개혁 페이스에서 취임 후에는 보수·안정 페이스로, 그 다음에는 개혁 페이스에 대한 반격과 그에 따른 보수·안정 페이스로의 회귀라는 널뛰기를 되풀이하면서 ‘신뢰의 위기’에 빠졌다.
부분의 합이 전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정책의 각 부분은 좋다 해도 서로 간에 음율이 맞지 않아 전체적으로 ‘구성의 모순’에 빠지고 있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시스템 해저드가 정책적 엇박자로 나타난다. 여기에 경제 외적 위기가 연계되고 있다. 북한의 핵 개발과 미국 부시 정부의 ‘새로운 전쟁’ 전략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국내에 팽배한 집단이기주의는 해외에서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는커녕 국내 기업의 해외 이탈을 가속화한다.
또한 엄청난 규모의 가계 부채와 카드채, 그리고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부동산 가격은 일본형 은행 위기와 장기 침체의 위험성을 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메이드 인 차이나’ 제품이 한국의 노동집약적 상품 분야는 물론, 반도체나 휴대전화 같은 최첨단 상품 분야까지 모조리 삼킬 듯한 위세다. 400조원에 이른다는 유휴자금은 또 어디를 쑥대밭으로 만들 것인가.
이쯤 되면 1997년 위환위기 때보다 더 심각한 총체적 위기가 우려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은 재정금융이 출동할 수 있는 여력도 없고, 그 약효도 없으며, 지정학적 리스크와 ‘메이드 인 차이나’의 본격적 위협 등이 연계된 병발 위기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정부를 비판하는 측에서도 정략적 비난이나 감정적 흠집 내기에 머물러선 안 될 것이다. 정부도 구구한 변명이나 무책임한 남 탓 타령에 급급한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이제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모두가 가슴을 열고 진지하게 검토해 총체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바꾸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는 네루다의 시(詩)처럼.
위기 불감증·위기 부풀리기·위기 알레르기
여기에서 위기론에 대응하는 자세에 대해 살펴보자. 한 편에는 ‘위기 불감증’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위기 부풀리기’가 있고, 또 다른 한 편에는 ‘위기 알레르기’가 있다.
한국에선 늘 위기 속에 안정이 있어 왔다는 체험 때문인지 외환위기가 올 때도 위기의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전쟁 또한 사전에 별 위기의식 없이 지내다가 당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 양상에서도 정략적 차원의 것을 제외하면 위기의식이 미미하다. 그래서 ‘위기 불감증이 최대의 위기 요인’이라는 말도 나온다.
위기 부풀리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경우를 말한다. 정치적 반대 세력이 정략적으로 위기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해 상대방을 공격하기도 한다.
위기 알레르기는 위기 부풀리기의 대응 현상으로서, 위기론이 정책 실패를 의미할 뿐 아니라 불안을 조장하고 사태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인식에서 공연히 불온시하고 반발하는 것이다.
위기론은 이 세 가지 현상을 피해 합리적, 전략적으로 제기돼야 한다.
2000년 중반 무렵 외환위기에서 벗어난 한국 경제는 낙관적인 분위기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때 우리는 위기를 경고했다. 미국 주가의 PER(주가수익률)는 정상 수준인 15배는 물론, 대공황 때의 30배 수준을 훨씬 넘어 40배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돌연 거품이 꺼졌다. 무시무시한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수년 후의 국제수지 적자 우려를 경고하며 미리 대비할 것을 주장했으나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것이 합리적 위기론이었음은 그 해 말에 이미 위기론이 대세를 이룬 것으로 증명됐고, 최근의 국제수지 적자 행진으로도 증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