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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리포트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좌파이론은 정치적 슬로건… 현실과 타협하는 실용주의자들

  • 글: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라틴아메리카학 kwakwak@khu.ac.kr

부활하는 중남미 좌파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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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말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Porto Alegre)에서 열린 ‘대안적 세계화운동’인 ‘세계사회포럼(World Social Forum)’은 여느 해와 같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세계사회포럼은 애초 단발 행사로 기획됐다가 세계적으로 큰 호응이 일자 연례행사로 자리잡았다. 올해 3회 포럼이 개최됐고 4회 포럼은 인도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세계사회포럼의 성향은 반미·반세계화. 2회 포럼에서 발표된 ‘외채에 관한 국제민중법정 최종판결’을 보면 그 색채를 쉽게 알 수 있다.

“북반구의 은행, 초국적기업, 정부, IMF, 세계은행과 기타 국제 금융기관들은 …(중략)… 높은 삶의 비용을 일반화했으며 제3세계의 생산 가능성과 삶의 질을 파괴했고 빈곤, 유아사망률, 사회적 착취, 죽음의 경제, 환경파괴를 증가시켰다. 이 법정은 부채의 불법성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고 …(중략)… 부채에 대한 거부와 탕감을 결정하는 대안적인 길을 제시하고자 한다.”

세계사회포럼이 중남미의 한 나라인 브라질에서 열리며 다수의 중남미 좌파 운동가들이 참여한다고 해서 이를 중남미의 좌경화와 결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이 포럼은 중남미의 정치권과는 거의 연관이 없다.

혹자는 이 행사가 브라질 노동자당의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2001년 당시 정치적 수세에 몰렸던 브라질 노동자당이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이와 같은 국제적 행사를 계획했다는 것. 포럼이 열린 포르투알레그레가 지난 13년간 노동자당이 장악해왔던 정치적 거점도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자당의 룰라가 정권을 잡은 올해의 포럼에서는 ‘노동자당의 기수인 룰라’를 옹호하는 목소리보다 ‘브라질 대통령 룰라’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더욱 컸다. 따라서 이는 전혀 근거 없는 음모이론이었을 뿐이다.



이처럼 정치는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도 중남미와 큰 연관이 없는 세계사회포럼으로 중남미 국가들의 좌경화를 설명할 수는 없다.

현실주의자들은 “오늘날의 좌파 이데올로기는 자본주의의 틀을 유지하는 상태에서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역시 중남미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유럽식 사회민주주의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틀이 바로 국가주의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국가가 고율의 세금을 거둬 빈민층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교육과 의료보장을 해주며 심지어 노후까지 책임지는 연금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그런데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공기업 민영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중남미의 신자유주의 개혁의 방향은 그 정반대다. 신자유주의 개혁은 ‘시장’을 살리는 대신 ‘국가’를 죽였다.

돈 없어 못하는 유럽식 사회민주주의

더 처절한 이유는 중남미 국가가 아무리 사회민주주의를 도입하고 싶어도 더 이상의 재원이 없다는 것이다. 멕시코를 비롯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이윤을 창출하는 공기업을 갖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다. 유일한 재원 마련은 세금인데 불행하게도 중남미 대다수 국가들은 세금을 거두는 데 있어 좋은 수완을 갖고 있지 못하다. 가장 두드러진 예가 멕시코다.

멕시코의 조세징수율(Tax Collection Rate)은 GDP의 11.3%에 불과하다(미국 20%, 칠레 19%). 더 한심한 사실은 9500만 멕시코인 중에서 소득세를 납부하는 사람은 겨우 700만명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서 세금이 국가 정책을 뒷받침할 수 없는 형편이다.

2년 전 취임한 폭스(Vicente Fox) 대통령은 이전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의 잔재들을 없애고 무분별한 자유화 조치로 인해 피폐해진 국민 복지수준을 끌어올리는 등 사회정책을 개혁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조세정의를 실현하겠다고 큰소리쳤다. 하지만 현재 정부가 세금을 제대로 거둬 국민의 복지수준이 대폭 향상됐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세금을 납부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국민과 기업은 물론 국세징수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들도 타성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기 때문.

멕시코에는 세원 부족을 이유로 쓰레기 처리시설 하나 설치하지 않은 주가 태반이다. 이런 상태에서 사회민주주의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무색하다. 대안이 있다면 이미 민영화된 공기업들을 다시 국영화하는 것인데, 이 역시 요즘 세계 추세에 역행할 뿐더러 실효를 거두기도 쉽지 않다.

1970년대 초 칠레에서 시행된 아옌데 독트린을 도입하자는 목소리도 있다. 아옌데 독트린이란 동(銅)산업 부문의 다국적기업을 국영화하면서 인수대금을 계산할 때 나온 방식으로 중심논리는 다음과 같다. 그동안 기업에서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초과이익을 발생시켜 본국에 송금했기 때문에, 이를 상계하면 정부가 지불해야 할 인수금액은 없고 오히려 받아야하지만 이를 굳이 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그냥 떠나라는 것. 세계 최초로 선거에 의해 집권한 사회주의자인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이 시행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같은 논리가 더 이상 통할 것 같지 않다. 우리나라에서 활발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사 한국법인을 우리 정부가 국유화하면서 ‘그동안 너희 돈 많이 벌었으니 조용히 놔두고 떠나라’면 과연 통할까?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중남미에는 좌파 혹은 대안적 좌파가 집권할 수 있는 현실적인 조건이 존재하지 않는다.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면 중남미에서 좌파의 집권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최근 중남미에서의 정권 교체와 우리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소위 ‘좌파’의 집권을 이해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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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곽재성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교수·라틴아메리카학 kwakwak@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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