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歸農人 장영란의 우리 땅, 우리 맛 ④

내가 기르는 작물은 내 삶의 거울

  • 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내가 기르는 작물은 내 삶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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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르는 작물은 내 삶의 거울

빈터를 축구장으로 만들기 위해 누나가 낫으로 풀을 베면 동생이 갈퀴로 긁어 모은다.

나무들은 짙푸르고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난다. 사람이 날마다 지나는 길, 차들이 다니는 길도 풀이 자라 낫질을 할 정도다. 그 사이 보랏빛, 흰빛 도라지꽃이 피어난다. 더덕꽃도 핀다. 눈에 확 띄지는 않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신기한 모양이다. 종처럼 생겼는데, 꽃부리가 다섯 갈래로 갈라져 뒤로 젖혀져 있고, 그 속에 오각형의 무늬가 있다. 사람이 흉내내기 힘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태풍이 여러 차례 쏜살같이 몰려오곤 한다. 비 그치고 나면 곡식들은 부쩍부쩍 자라난다. 풀들은 번쩍번쩍 자라나고. 큰비가 온다면 미리 대비하랴, 비 설거지하랴 일거리가 쉼이 없다. 여름풀과 막바지 싸움이다. 이때가 지나면 풀들도 씨 맺을 준비를 하느라, 하루가 다르게 뻗어나가지 못한다. 또 곡식들도 웬만큼 자라 풀에 자리를 빼앗기지 않는다. 그래도 생명이 살아 있는 한 풀은 끝없이 자라난다. 김매는 일이 밥 먹는 일로 몸에 익는 수밖에.

소서(小署) 무렵이면 모내고 40일이 지난다. 나락은 포기나누기를 마치고, 통통하게 굵어지며 알차기에 들어간다. 사람으로 치면 사춘기인 셈. 한창 영양을 빨아들이며 이삭을 맺을 준비를 하는 때다. 논에 마지막으로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고 김도 매준다. 논에 들어가면 모 포기 하나하나가 자세히 보인다. 이때가 지나 이삭이 나온 뒤 논에 들어가면 발길에 잔뿌리가 드득드득 끊기는 걸 느낄 수 있다. 또 김을 매려 몸을 숙이면 나락 잎이 얼굴을 찌른다. 논은 사람 손을 벗어나 스스로 설 차비를 하고 있으니 마지막 손질을 하자.

올벼는 대서 전에 이삭이 패기 시작한다. 볍씨는 일찍 이삭이 패는 올벼(조생종), 늦게 이삭이 패는 늦벼(만생종), 중간인 중생종이 있다. 올벼부터 차례차례 이삭이 올라온다. 우리 동네는 일찍 서리가 오니, 올벼를 많이 한다. 우리도 논 두 다랑이는 올벼를 한다. 여럿이 함께 물길을 쓰니, 물길이 지나가는 논은 아래 논과 함께 물을 떼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나머지 논은 이삭 여무는 기간에 긴 벼를 한다. 그러니 이삭도 차례차례 나온다. 논에 가면 이삭이 나오는가? 살핀다. 이삭 소식이 중요한 뉴스다.

가지, 호박, 오이, 고추, 풋콩 열매가 살그머니 굵어져 주렁주렁 달린다. 여름 해 기운이 영글었으니 이걸 먹으면 해 기운을 먹는 셈이다. 가만 있어도 땀 흐르는 한여름. 씨암탉 잡아 몸보신하는 날도 있지마는, 햇살을 담뿍 받은 싱싱한 남새, 여름열매보다 더 좋은 찬 어디 있나? 햇보리를 절구에 콩콩 방아 찧어, 올콩 따서 위에 얹어 여름 밥을 지어놓고. 가지 호박 오이로 반찬을 한다. 찐 가지를 쭉쭉 찢어 무친 가지나물 맛. 갓 딴 호박을 썰면 단면에서 송송 솟아나는 맑은 진액, 오이를 따 맨손으로 잡으면 따가운 걸 내 손으로 농사하기 전에 어찌 알았으랴. 비름나물, 고추 순, 콩잎, 호박잎, 동부콩잎도 빠질 수 없고, 박잎전도 입맛을 돋운다.



큰비, 몇날 며칠 이어지는 비가 오면 온갖 병이 나타난다. 고추에 탄저병, 토마토는 배꼽썩음병, 나락은 도열병, 호박과 박 속에는 애벌레가 자리 잡고. 약을 치지 않는 우리 농사는 병이 안 나게 예방을 해야지 한번 병이 나면 손 쓸 길이 없다. 그러려면 먼저 땅이 건강해야 하고 그 땅 힘에 맞는 곡식을 제 때 심어 튼튼히 키우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사람이 맛으로 먹는 고추와 토마토, 과일들에는 병이 오곤 한다. 그걸 막아보려 굴뚝물(목초액), 현미식초, 백초효소를 뿌려주곤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내가 기르는 작물은 곧 내 삶의 거울이다. 작물이 건강하면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거고, 작물에 병이 나면 내 생활부터 돌아봐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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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장영란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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