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출발점
그러자 북한이 핵 활동을 중지합니다. 한 달 뒤 미국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다수당이 됩니다. 이 사건이 ‘북한 핵’ 비극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죠. 클린턴 행정부는 의회 권력을 잃게 되자 ‘3개월 내 북-미 수교 협상 개시’라는 북한과의 약속을 이행할 수 없게 됐어요. 공화당이 사사건건 반대했으니까요.이렇게 미국이 사실상 합의를 어겼지만 북한은 미국을 기다렸어요. 막대한 양의 전기를 얻는 것도 큰 이득이니까요. 1997년부터 북한에 제공할 전기를 생산할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의 경수로 공사가 시작됐어요. 이 공사는 2002년까지 진행됐죠. 이 동안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장난을 안 쳤어요.
그런데 조지 W 부시 대통령 측은 북한이 농축 우라늄 핵폭탄을 개발한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어요. 그러자 북한은 미국에 대한 기대를 접고 KEDO의 원전 공사를 중단시켰죠. 한국은 막대한 돈만 대고 아무 소득도 얻지 못한 것이고요.
경수로 사업 중단 후 북한은 핵 활동을 재개했어요. 그러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를 막기 위해 ‘6자회담’을 만들어 북한을 불러들이죠. 그 결과로, 2005년 ‘북한은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고 NPT로 복귀하는 대신 한반도 평화협정과 북한에 대한 핵무기 불공격을 약속한다’는 9·19 공동성명이 나옵니다. 북한 핵 문제가 이제 해결되나 했어요.
그러나 곧바로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의 북한 비자금 건을 들어 대북 제재를 시작하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비자금이 2500만 달러밖에 안 돼요. 북한은 미국이 또 합의를 깼다고 보고 핵 활동을 재개했죠. 그로부터 1년 후에 북한은 핵 실험을 했어요. 북한 핵 문제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거죠.
부시 정부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주겠다면서 또 협상에 들어갔어요. 그래서 2007년 2·13합의를 만들어내죠. 그러나 미국 내에서 또 북한과 무슨 합의냐 하는 반대론이 나왔어요. 부시 정부는 임기 말이라 관철해나가지 못했죠.
“미국이 북-미 합의 자꾸 어겨”

정세현 전 장관은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에 대해 “가장이 가족 먹여살리려 아등바등 장사하는 모습이 연상된 다”고 평했다.[박해윤 기자]
오바마 정부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008년 2월 29일 북한 비핵화와 수교 문제를 ‘패키지 딜’로 처리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가 이를 거부하죠. 자기들의 ‘비핵개방3000’과 맞지 않다는 거죠. 이렇게 한국과도 손발이 안 맞으니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부터 북한 핵 문제에 대해 거의 손을 놓는 ‘전략적 인내’로 돌아서죠. 아주 무책임하고 게으른 정책이죠.
박근혜 정부는 ‘북한이 곧 붕괴하니 통일을 준비하자’는 통일 대박론으로 북한 목 조르기를 시도하죠. 그러는 사이에 6자회담도 없어졌죠. 회담이 유용한 게, 적어도 회담이 지속되는 동안엔 핵·미사일 실험을 한다든지 도발을 안 해요. 결국, 북한은 5차 핵실험까지 했고 미국까지 핵을 날릴 상황이 됐어요.
이렇게 북한 핵이 고도화된 것은 1차적으로 북한 책임이지만 2차적으로 미국 책임도 적지 않아요. 미국이 합의한 대로 이행했으면 북한이 지금의 핵을 안 가졌을 겁니다. 미국은 북한이 반발하도록 만들고, 북한이 반발하면 또 제재하고 그랬죠. 그러면서 북한 핵이라는 화마(火魔)를 이렇게 키운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