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문재인 대통령 100일 공과

소탈 행보로 ‘큰 감동’ 협치·탕평 실패로 ‘큰 불안’

  • 유창선|시사평론가 yucs1@hanmail.net

    입력2017-08-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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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도보수까지 포섭
    • 실적 없는 이미지 홍보 과잉
    • 적폐 청산 남발하면 피로감 줄 수도
    • 사람 단죄 아니라 제도 개혁해야
    8월 17일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100일을 맞았다. 전대미문의 최순실 게이트 사태, 사상 최대 규모의 촛불집회,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구속을 거치면서 문재인 정부가 탄생했다. 그렇기에 상처받은 국민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컸고, 문 대통령은 이러한 바람에 적극 화답하면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정권교체를 선택한 국민이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상식이 파괴되고 정의가 무너진 나라를 제대로 일으켜 세워달라는 것이었고, 또다시 실패한 정권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취임 초 문 대통령은 반드시 성공하는 정부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거듭했다.



    진보 정권 10년 ‘성찰’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성찰’에 관해 이야기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이명박 박근혜 정부 10년, 그 20년을 다 놓고 성찰하는 자세로 노력해나가겠다.”  과거 정부들이 실패한 데서 얻은 교훈을 잊지 않고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대목이다. 특히 보수 정부 10년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뿌리라 할 수 있는 진보 정부 10년의 기간도 성찰하겠다는 말은 곱씹어볼 만하다. 대선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집권하면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2라운드가 될 것이고 그때의 실패가 반복될 것’이라는 불신의 시선도 적지 않았다.

    취임 후 문 대통령은 자신을 지지한 사람들만의 정부가 아닌, 국민 모두의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러한 통합 의지는 자신이 몸담았던 노무현 정부가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 논란에 갇혀 결국 국정 성과를 내지 못한 데에 대한 성찰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동시에 41.1% 득표율로 당선된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정권의 안정적 기반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기도 했다. 새 정권이 들어서면 으레 국민통합을 약속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의 학습효과를 갖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는 한층 절박한 과제로 인식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자신을 찍지 않은 국민의 지지까지 대거 얻는 호조의 출발을 보였다. 취임 초 80%대를 기록한 국정 지지율은 현재도 70%대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집권 초라고는 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에 비해 높은 수치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을 감안하면 취임 후 30% 이상의 국민이 추가적 지지자가 된셈이다.

    대통령 후보 시절 문 대통령은 이른바 ‘반(反)문재인’ 정서로 인해 비토 층이 많았다. 특히 대선 기간에도 문 대통령을 싫어하는 중도보수 성향 유권자가 광범하게 존재했다. 이들은 ‘안보 불안’ ‘이분법적 편 가르기’가 문재인 정부에서 만연할 것이라는 불신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대선 기간 중도보수층의 표심은 문재인을 이길 다른 대안을 찾아 반기문, 안희정, 안철수를 배회했다. 문재인을 거부한 이런 중도보수층도 정작 집권 후 지지를 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산책, 대화, 포옹  

    우선,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실패에 따른 반사효과를 꼽을 수가 있다. 박근혜 정부가 워낙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기에 이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이는 새 대통령은 어지간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되어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국민 앞에 몸을 낮추고 소통하는 당연한 모습이 국민의 박수를 받는 광경이 그것을 말해준다. 모든 것이 비상식적이었기에 정상적인 모습만 보여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시기였다. 문 대통령은 역설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수혜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힘이 된 것이 국민의 기대 심리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을 내놓았다. 반복해서 실패한 정권을 접해야 했던 국민에게는 보수냐 진보냐를 떠나, 국가적 불행 속에 들어선 이번 정부만은 반드시 성공한 정부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출발에 큰 기대를 걸고 지켜본 것이다.

    물론, 문 대통령에 대한 높은 지지가 국정의 실질적인 성과에 근거한 것은 아니다. 아직은 실현되지 못한 기대의 반영인 셈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그 기대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선명한 자기 모습을 국민에게 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파격적이고 소탈한 소통 행보다. 여왕처럼 행세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고개를 저었던 국민은 낮은 자세로 국민과 소통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에 신선한 감동을 받곤 했다. 커피 산책, 낮은 경호, 길 가던 시민과의 대화, 5·18 유족과 포옹하는 모습에 이르기까지 소탈하고 격의 없는 행보는 대통령과 국민 사이의 정서적 거리를 좁혀 놓으며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정신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밝히곤 했다. 그는 “새 정부는 촛불혁명의 정신을 이을 것”이라며 핵심 가치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끈 촛불정신의 계승을 전면에 내세웠다. 또한 “새 정부는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받들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온전히 복원할 것”이라고 밝혔으며, “6월 항쟁의 정신 위에 서 있다”고 선언했다.

    이는 이전 보수 정부와는 확연히 다른,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는 정부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정권교체로 새 정부가 들어섰을 때 흔히 국민통합을 의식하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던 정권의 정체성 문제에 대해 문 대통령은 예상보다도 과감하고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지난 정부의 실정(失政)에 대한 국민의 염증이 워낙 컸고 그로 인해 촛불시민혁명이 가능했던 특수한 상황을 인식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입장은 적폐 청산에 대한 요구가 강력한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일단 국민의 동의를 얻는데 연착륙한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를 둘러싼 보수-진보 이념 갈등은 생각만큼 크게 나타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와는 분명하게 다른 정부를 원하는 국민의 바람이 문재인 정부 출발에 탄력을 붙여준 셈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도 국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보수층의 정서를 자극하는 일이 없도록 상당히 신경을 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통령의 지지율이 5년을 그대로 유지한 적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이런저런 국정의 난맥상 드러나고 국민의 기대 심리도 꺾여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것은 하나의 법칙과도 같다. 문재인 정부라고 해서 예외가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물론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시절의 국정 경험이 큰 힘이 되고 있다. 더구나 그때의 오류를 성찰하겠다는 자세도 갖고 있다. 그러니 쉽게 추락하거나 하는 일은 없을지 모른다. 그래도 어려운 것은 어쩔 수 없는 환경이다.



    무시당한 듯한 기분  

    문재인 정부가 계속 순항하리라고 예상하기에는 주변 환경이 녹록지 않다. 여소 야대 상황에서 120석 여당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 임기 초반인 2018년 말까지를 ‘혁신기’로 설정하고 과감한 개혁과제를 이행하기로 했다. 임기 초반 국민의 높은 지지라는 동력이 있을 때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 가운데 91개 과제가 법령을 손질해야 하는 입법 사안이다. 법률을 제·개정해야 하는 것만 465건에 달한다. 일단 시행령·시행규칙 개정만으로 이행 가능한 국정과제는 연내에 완료하겠다는 구상이지만, 국회를 우회하는 개혁 방식에는 근본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 대해 협조 의사가 없어 보이는 자유한국당은 도리가 없더라도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의 협조를 얻어내 ‘개혁 공조’가 이루어져야 국회입법을 통한 국정과제 수행이 가능한 상황이다. 문재인 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재벌개혁, 검찰개혁, 방송개혁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와 관련해 100일 동안 협치를 위한 문재인 정부의 노력은 매우 미흡했다. 이런 얘기를 꺼내면 청와대는 반론을 펼지 모르겠다. 취임하자마자 야당 당사를 찾아가고, 국회를 찾아가고 청와대로 초대하면서 야당 대표들과 대화하는 대통령이 어디 있었느냐고. 그동안 야당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이 얼마나 노력했는데 그러냐고 말이다.

    하지만 협치를 위해 진정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 손 내밀기를 넘어서는 보다 적극적인 정치력이다. 청와대가 자신의 권력을 다소 줄이면서 일정 부분을 야당, 특히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에 넘겨주는 과감한 선택을 했더라면 여야 관계가 이렇게 차가워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누가 집권하든 협치 혹은 연정은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다당제 구도 아래에서 그 누구도 자신의 힘만으로는 국정 운영이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청와대는 ‘민주당 정부’임을 강조하며 굳이 야당들을 끌어들이려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야당에 장관 후보자 추천을 요청한다든지, 중요 정책 현안을 결정하는 데 있어 야당들의 의견을 수렴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자신의 철학대로 간다는 점을 강조했을 뿐, 굳이 야당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집권 초기만 하더라도 협조의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열어놓으며 청와대의 태도를 지켜보던 국민의당이나 바른정당은 무시당한 듯한 기분을 느끼며 협조보다는 견제에 방점을 찍는 태도를 굳혔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 여야 관계가 풀리지 않고 계속 꼬여가는 데에는 물론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무조건적 반대와 다른 야당들의 비협조에도 책임이 있지만, 청와대 스스로 협치를 위한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못한 탓도 크다. 결국 여권이든 야권이든 아직 협치에 적응되지 않은 100일의 시간을 보낸 셈이다.

    여야 모두가 협치의 정치를 몸에 붙이지 못하고 이대로 계속 간다면 정부도 국회도 계속 혼란의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기서 협치의 열쇠는 우선은 집권세력 쪽에 달려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캠프 출신 좁은 인사(人事)

    ‘우리끼리 가겠다’는 분위기는 그동안의 인사(人事)에서도 읽힌다. 7월 14일까지 발표된 11명의 청와대 수석비서관 이상 고위 참모 가운데 8명이 문재인 후보 선거 캠프에서 활동한 인물이다. 청와대 수석의 72.7%를 캠프 출신이 차지한 셈이다. 캠프 출신의 대거 중용은 1기 내각에서도 나타난다. 차관급 이상 44명 가운데 13명(29.5%)이 캠프에서 활동했고, 장관급 이상 18명만 따로 분석하면 캠프 출신 비율이 61.1%(11명)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때 캠프 출신 인사들이 차지한 비율보다 훨씬 높다.

    캠프에서 호흡을 같이하며 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가 “탕평 내각, 국민대통합 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약속한 것을 생각하면 폭이 좁은 인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연정을 하지 않는 상황이라 야당 인사의 등용까지는 어렵다 하더라도, 자기 사람들만을 중용하는 형태는 ‘코드 인사’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보수 성향 인사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더라도, 특별한 이념적 성향 없는 비정치적인 인재들을 보다 폭넓게 중용해야 했다. 노무현 정부 기간까지 성찰하겠다고 다짐한 문 대통령의 인사라 하기에는 결국 그 시절로 다시 가버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살만하다.

    좁은 인재풀 안에서의 대표적인 참사가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사퇴 파문이었다. 자신들끼리 학맥, 인맥에 얽혀 추천하고 기용하는 과정에서 검증의 날이 무뎌진 결과다. 문재인 정부의 이런 ‘자기들끼리 인사’ 경향은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계속되는 것으로 보인다. 시간이 지나면 정권의 기반을 스스로 좁혀놓은 잘못으로 판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문재인 정부의 인사는 처음에는 파격의 신선감에 대한 호응으로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전 정부와 특별히 다를 것 없는 한계를 드러내고 말았다. 많은 고위직 후보자가 문 대통령이 공약한 ‘공직 배제 5대 원칙’에 위배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 청문회 과정은 진통을 거듭했다. 결국 안경환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사퇴했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후보자는 야당의 반대 속에서 임명이 강행됐다. 꼭 야당의 발목잡기라고만 볼 수 없었고 청와대의 부실검증 논란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부실검증이나 5대 원칙 번복에 대해 청와대는 제대로 된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 무겁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특히 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을 향한 사퇴 요구가 빗발치는 데도 청와대가 이런 국민여론을 외면해온 것은 문재인 정부 초기의 일대 오점이라 할 만하다. “그를 대신할 만한 사람이 없다”는 내부적 이유로 국민의 뜻을 거부한 것은, 소통을 다짐했던 정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2004년 황우석 교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태의 공동 책임자인 박기영 교수를 최근 과학기술혁신본부장으로 다시 발탁하는 인사를 한 것도 국민의 시선을 외면한 선택으로 반발을 사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문재인 정부의 1기 내각 인사는, 기대에 부응하는 만큼의 성적표를 받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은 국정 결과다. 국정으로 답하고, 국정으로 말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따라서 문재인 정부는 지나친 이미지 연출을 자제하고 이제는 국정으로 승부를 건다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가 대통령의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지나치게 매달리는 모습을 보여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런 노력이 있었기에 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이 유지되어왔다고 할 수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런 방식이 먹혀들기는 어려운 일이다.



    성공한 정부 위해 노력 중

    청와대는 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 참모진의 일상과 관련된 내용을 수없이 언론에 제공한다. 문 대통령이 취임 초 비서진과 커피를 들고 산책하던 모습에서 시작된 이미지 전달 콘텐츠는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여야 대표들과의 회동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직접 테이블을 옮긴 이야기, 김정숙 여사가 수해복구 현장에 가서 손가락이 다쳤는데도 일했다는 이야기, 김 여사가 청와대 회의에 낙과 화채를 보냈다는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시시콜콜한 사연이 기사로 이어지고 있다. 급기야 문 대통령이 이틀 동안 기업인들과 호프 미팅을 가졌을 때도, 정작 경제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보다 메뉴에 관한 사연이 주관심사가 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쯤 되면 이미지 홍보의 과잉이라 할 만하다. 물론 어느 정권이든 대통령의 이미지를 언론과 국민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달하려고 애쓴다. 청와대 참모의 중요한 책무 가운데 하나일 수 있다. 하지만 파격적인 이미지 연출 효과를 보았다고 그에 재미라도 들린 듯이 남발한다면 식상함을 안겨줄 수 있다. 미담(美談)은 세상에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 이미지 기획에 주된 책임을 맡고 있는 탁현민 행정관이 엄청난 논란 속에서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장면은, 청와대가 대통령 이미지 연출에 얼마나 매달리고 있는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제 취임 100일을 지난 시점에서는 더 이상 이미지가 아닌 국정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이 요구된다.

    지난 100일 동안 문재인 정부는 세상이 달라졌음을 실감하게 해줬고, 국민은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문 대통령은 성공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는 듯하다. 하지만 국정 운영의 내용으로 들어가면 앞날에 대한 불안감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여러 민감한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적지 않은 혼선은 정부의 준비 정도에 대한 의구심을 낳았고, 국정의 큰 그림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연결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사드 배치 문제다. 집권 직후 박근혜 정부의 사드 졸속 배치 과정을 문제 삼는 듯했던 문재인 정부는 파장이 커지자 덮고 가는 모습을 보였다. 대신 환경영향평가 방침을 밝혔다가 다시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자 발사대 4기에 대한 임시 추가 배치를 결정했다. 이 임시 추가 배치의 내용에 대해서도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미국, 중국, 국내 찬반 여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적으로 대단히 중대한 사드 문제에 관한 큰 구상 없이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대응하는 모습이다. 탈(脫)원전이나 최저임금 인상 문제도 향후 대안에 관한 준비가 없는 상태에서 국정 방향이 발표됨으로써 찬반 논란을 격화시키는 측면이 도드라졌다. 문재인 정부의 철학과 가치대로 정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세심한 고려가 필요해 보인다.


    초심으로 돌아가…

    취임 직후만 하더라도 문재인 정부는 준비된 면모를 보였다. 인수위원회 기간도 없이 곧바로 집권한 상황을 감안하면 문 대통령이나 청와대는 상당히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정작 시간이 지나면서 국정과 정국 운영에 대한 밑그림을 갖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낳고 있다.

    아직은 높은 지지율에 고무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점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기대 심리가 아닌 실적으로 평가받는 시기로 들어가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1~2년이 지난 이후에 경제, 민생, 안보 등 각 분야에 대한 채점표가 나올 것이고, 이때 국민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한 결과가 나오면 분위기는 점차 반전될 수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핵심의 분위기를 보면 초기의 지지율에 고무되어 낙관론에 경도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당장 야당들을 협조의 대열로 끌어들일 전략 없이는 국정은 제자리걸음을 하게 될 위험이 크다. 적폐 청산을 내세워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인기를 얻는 방식은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의 적폐를 청산하는 일은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이 무절제하게 남발되면 국민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국 사람 청산이 아니라 제도 개혁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 문재인 정부는 다시 100일 전 초심으로 돌아가 새롭게 긴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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