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연이은 파업…산업 전반 흔들
- 한국GM 철수 소문…현실화되면 30만 명 생계 타격
- 관련 단체 “협력사 3000여 곳 존폐 위기” 호소
- 통상임금 소송…법원의 신의칙 인정 여부가 핵심
여기에 더해 기아자동차의 통상임금 소송 1심 선고가 8월 중으로 예정되어 있다. 사측이 패소하면 기아자동차는 당장 3분기 수천억 원의 충당금을 책정해야 한다. 이로 인해 영업이익이 적자로 전환될 뿐 아니라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연구개발과 부품 및 자재 구매를 공유하는 현대자동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히 부품업계에도 영향을 줘 자동차 부품 공급망에 위기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사면초가
사드 임시 배치 결정은 중국 내 자동차 판매에 갈수록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 상반기에만 중국 내 판매 실적이 47% 급락했다. 이로 인해 올해 글로벌 판매량이 목표 825만 대보다 120만 대가 적은 700만 대 안팎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쳐 상반기 현대차 영업이익은 2조5952억 원, 기아차 영업이익은 7868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4%, 44%나 급감했다.현대기아자동차와 동반 진출한 국내 부품업체의 피해도 엄청나다. 현재 145개 부품업체가 중국에 진출해 총 289개 공장이 가동되고 있는데, 최근 가동률이 50% 이하로 떨어졌다. 기업들은 운영에 막대한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이에 더해 동반 파업이 가시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노조는 각각 파업 찬반투표를 가결하고,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중지 결정을 받았다. 현대차 노조는 8월 부분파업을 시작했고, 기아차 노조도 본격적으로 하계 투쟁에 돌입할 전망이다. 이에 앞서 한국GM은 7월 14일 조정중지 결정 후, 17일 4시간씩 부분파업을 진행한 바 있다. 한국 자동차업계는 지난해에도 파업으로 역대 최대 생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GM 철수 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GM이 철수하면 1만6000여 명의 대규모 실업 사태가 예상된다. 협력업체 임직원들과 가족까지 감안하면 30만 명의 생계가 위협받는다.
최저임금 인상도 소규모 자동차 관련 기업에 난관으로 다가온다. 최저임금이 2018년 7530원으로 16.4% 인상된 데 이어,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상여금이 배제돼 중소기업은 사실상 기준을 맞추는 게 불가능한 실정이다. 부품업계의 경영난이 지속돼 부품 공급망이 무너진다면 완성차 업계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결국 산업 기반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통상임금 소송
기아자동차는 패소할 경우 회계평가 기준 최대 3조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판결 즉시 충당금 적립의무가 발생해 현 회계기준으로 당장 3분기부터 영업이익 적자가 불가피하다는 것. 지금도 영업이익률이 3%에 머물고 있고, 사드 사태로 인해 사실상 차입경영을 하고 있는 기아자동차로서는 적자까지 되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져 유동성 부족으로 심각한 경영위기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소연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아자동차와 거래하는 영세 부품협력업체들이 자금 회수에 지장이 생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현재 기아자동차의 1~3차 협력부품업체는 3000여 개에 달하며, 1차 협력사에 지급되는 부품 납품액만 16조7721억 원에 달한다.
이에 자동차부품 업계와 관련 학계에서 정부, 국회, 법원에 도움을 요청하고 나섰다. 270여 개 자동차 부품업체 모임인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과 한국자동차산업학회, 자동차부품산업진흥재단은 8월 9일 공동명의로 ‘3중고에 휘둘리는 위기의 자동차부품산업계 호소’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동차산업 생태계의 특성상 완성차 업체의 위기는 전후방 3000여 업체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정부, 국회, 법원이 자동차산업에 미칠 악영향을 고려해 급격한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문제 등의 사안에 대해 신중한 정책 결정을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기아차 통상임금 판결이 상여금 제도를 운영 중인 중소 자동차부품산업계에 심각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점도 언급했다.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상여금을 임금제도로 운영 중인 다수의 중소 부품업체는 노사 간 소송분쟁과 더불어 소송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인건비 부담 리스크에 노출될 뿐 아니라 경쟁력 저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는 통상임금 판결의 영향으로 완성차 및 부품사에서만 2만3000명이 넘는 일자리가 감소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38조5500억 원의 인건비 부담 시 최대 41만8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하고, 이후로도 매년 8만5000개에서 9만6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분석했다.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여파로 인해 재계 서열 2위 현대차그룹의 존립이 흔들릴 가능성도 대두된다. 현대기아자동차는 플랫폼과 연구개발은 물론, 계열사로부터 자재, 부품 공급 등을 공유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이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왔다. 따라서 기아차의 위기상황은 곧 현대차그룹에 영향을 미쳐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신의칙 인정 3대 요건
기아자동차 소송을 포함해 현재 계류 중인 통상임금 소송의 최대 쟁점은 ‘신의칙’에 대한 인정 여부다. 신의칙(신의성실의 원칙)은 민법의 뿌리를 이루는 대원칙으로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고 민법 제2조에 규정돼 있다. 상대방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고 상대방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행동하여야 하며, 형평에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2013년 12월 갑을오토텍 소송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르면, 신의칙을 인정받기 위한 3대 요건으로 첫째 정기상여금에 관한 청구여야 하고, 둘째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한다는 노사합의가 존재해야 하며, 셋째 추가 임금 청구 시 기업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이 발생해야 한다. 또한 ‘기업 경영상 중대한 어려움 발생’의 판단 근거로 초과근로가 상시 발생하는지, 일정비율 이상의 상여금을 지급하는지, 기업의 재정 및 경영상태에 영향을 미치는지, 실질임금인상률이 교섭 당시 인상률을 상회하는지 등을 적시했다.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소송 판결문에서 “근로자 측이 앞서 본 임금협상의 방법과 경위, 실질적인 목표와 결과 등은 도외시한 채 임금협상 당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사유를 들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 가산하고 이를 토대로 추가적인 법정수당의 지급을 구함으로써, 노사가 합의한 임금수준을 훨씬 초과하는 예상외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로 말미암아 사용자에게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재정적 부담을 지워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이는 종국적으로 근로자 측에까지 그 피해가 미치게 되어 노사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가져오므로 정의와 형평 관념에 비추어 신의에 현저히 반하고 도저히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경우 근로자 측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는 신의칙에 위배되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명시한 바 있다.
혼란과 우려의 시선
전문가들은 기아자동차는 과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노사합의가 존재하는 등 이 같은 요건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월평균 20∼50시간가량 초과근무와 750%의 높은 상여금 지급률, 급감하는 영업이익률로 인한 적자 전환 우려 등 전원합의체 판결 기준을 충분히 충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지금까지 사례를 보면 현대중공업, 아시아나항공, 현대미포조선 등은 1심에서 신의칙이 부정됐다가 2심에서 인정됐으며, 만도와 현대로템 등은 1심에서 신의칙이 인정됐고, 대법원에 계류 중인 갑을오토텍, 한국GM의 소송 모두 신의칙이 인정됐다. 하지만 일부 하급심에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사례가 있어 업계에서는 혼란과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이 전 산업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런 여파를 충분히 감안한 합리적인 판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