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인터뷰

“건강한 출산 위한 난임 정책 절실”

‘임신시키는 남자’ 이성구 대구마리아병원장

  • 최호열 기자|honeypapa@donga.com

    입력2017-09-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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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출산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출산을 기피하는 여성이 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데도 임신이 안 돼 고통받는 난임 부부도 많다. 23년째 난임 부부에게 임신의 기적을 안겨주고 있는 난임전문의 이성구 박사가 들려주는 수태 이야기.
    우리나라는 가까운 미래에 ‘인구절벽’에 처하게 된다. 전 세계 꼴찌 수준인 현재의 출산율(1.17명, 2017년 2월 통계청 발표)이 지속되면 2100년엔 인구가 지금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게 된다. 정부에서 이런저런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저출산 문제가 해소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자의든 타의든 출산을 기피하는 경향이 더 공고해지는 느낌이다.

    하지만 임신과 출산을 절실하게 바라는 사람들도 있다. 난임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다. 대구마리아병원 이성구(56) 원장은 23년간 6만여 건의 시험관 시술을 통해 3만 쌍 이상의 난임 부부에게 출산의 기적을 안겨준 대표적인 난임전문의다. 요즘도 한 달 600여 건의 시험관시술을 주재하고, 하루 진료 환자가 160여 명에 달한다.

    그가 ‘신동아’ 9월호부터 ‘난임전문의 이성구의 수태 이야기(522쪽)’를 연재한다. 칼럼을 통해 난임전문의로서의 생생한 경험담과 난임 극복을 위한 노하우, 이 시대 최대 과제인 저출산 해법을 위한 묘책 등을 들려줄 예정이다. 대구마리아병원에서 만난 이성구 원장은 “여성이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의학적·생물학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내겠다”며 각오를 밝혔다.



    저출산 해결의 비책

    난임전문의가 된 계기는.
    “나 자신이 난임으로 고통을 겪었다. 결혼 8년 만에 시험관시술을 통해 어렵게 자식을 얻으면서 의사로서 사람을 살리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람에게 가장 큰 행복(기다리던 자식을 얻는)을 안겨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감동적인 의술이란 걸 느꼈다.”



    가장 보람을 느낀 때가 있었다면.
    “환자를 보는 순간순간이 보람되고 기쁘다. 여러 차례 시험관시술에 실패한 환자가 임신에 성공하면 기분 좋고, 다른 병원에서 임신이 안 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내게 왔는데 한 번에 성공하면 기분 좋고, 폐경인 줄 알았는데 검사 결과 난자가 생성되는 게 보여 시험관시술을 통해 임신에 성공했을 때도 기분이 좋다.”

    난임의 기준은.
    “임신 가능한 시기에 꾸준히 부부관계를 했는데 1년 이상 임신이 안 되면 난임이라 할 수 있다. 난임 치료 방법으로는 검사를 통해 정확한 배란 일자를 알려줘 부부관계를 통해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 그리고 시험관시술을 통한 체외수정이 있다.”

    난임 환자가 증가하는 추세인가.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난임 진료를 받은 환자가 2004년 12만7000명에서 2014년 21만5000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22만 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부 7쌍 중 한 쌍(전체 부부의 15%)이 난임으로 고통을 겪는 것으로 조사됐다. 난임 치료 병원을 통해 태어나는 신생아가 전체 신생아의 10~15%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출생아 수가 40만6300명이었다. 올해는 40만 명이 안 될 것으로 예상된다. 난임 부부의 출산율을 높이는 게 저출산 해결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난임의 원인은.
    “의학적 난임보다 사회적 난임이 더 많다. 가장 큰 원인은 늦은 결혼이다. 특히 여성은 나이에 자유롭지 못하다. 35세가 넘으면 수태 능력이 떨어진다. 마흔 넘어 결혼하는 여성은 난임을 각오해야 한다. 젊은 부부라도 부부관계 횟수가 적은 경우가 의외로 많다. 특히 주말부부처럼 부부가 떨어져 사는 경우 배란기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임신이 힘들다. 이외에도 맞벌이, 스트레스 등 임신을 힘들게 하는 요소가 많다.”



    난자 냉동 보관

    나이 들어서도 건강한 난자를 유지할 방법은 없나.
    “여성은 평생 쓸 난자를 갖고 태어난다. 사춘기 무렵엔 20~30만 개가 있는데, 초경(15세 기준)에서 폐경까지 400~450회 배란을 하면서 다 사용한다. 매달 1개의 난자를 배란시키기 위해서 수십 개 이상 사용한다. 초경으로부터 10년까지(25세) 가장 좋은 난자가 우선적으로 사용되고, 25~35세까지도 쓸만한 난자가 배란이 된다. 문제는 35세 이후부터다. 그때가 되면 부실난자가 많다. 따라서 결혼 계획이 없는 여성도 35세가 넘기 전에 어찌될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난자를 냉동 보관하는 게 좋다. 문제는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인데, 저출산 해결 차원에서 정부가 미혼 여성의 난자 냉동 보관에 대해 의료보험혜택을 주면 좋겠다.”

    냉동 보관한 난자가 살아 있는 난자보다 좋을 수 있나.
    “냉동 난자는 유효기간이 없다. 물론 살아 있는 난자와 똑같을 순 없지만, 40세가 넘은 나이의 생난자보다는 35세 이전에 채취해 냉동한 난자가 훨씬 좋다. 20대에 난자를 채취해 냉동하면 가장 좋겠지만, 결혼과 임신에 대한 불안감을 느낄 때 서둘러서 난자를 채취해 냉동 보관할 것을 권하고 싶다.”

    난자를 튼튼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면.
    “체중 조절, 충분한 수면, 스트레스 해소가 제일 중요하다. 그 외에 운동과 영양제를 섭취하는 것도 좋다. 달마다 배란되는 난자의 질이 다르다. 인간도 동물이라 봄이면 수태 욕구가 강해 조금 더 좋은 난자가 배란된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는 여성은 걷는 운동을 많이 하면 좋다. 난임으로 고민하던 한 여성에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108배를 하도록 했더니 하체가 단단해져 반년 만에 임신이 된 경우도 있다.”

    남자의 정자는 어떤가.
    “정자는 난자에 비해 나이와 큰 상관이 없다. 나이 들수록 질이 떨어지긴 하지만 큰 차이는 없다. 고환을 차갑게 하는 게 중요하다. 책상에 앉아 있는 직업군이면 햇볕을 자주 보고 운동해야 한다. 자전거를 지나치게 많이 타거나 몸을 만든다고 남성호르몬 제제를 쓰면 안 된다. 고환에서 정자를 만드는 데 100일 걸린다. 임신을 계획한다면 그 기간은 과음을 피하고 담배도 줄이는 게 좀 더 건강한 정자를 만드는 비결이다.”


    건강한 출산

    시험관시술이 시작된 지 세계적으로는 42년, 우리나라는 32년이 넘었다. 시험관시술은 난임 치료의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지만 윤리적 문제도 제기됐다. 착상률(임신율)을 높이기 위해 여성에게 다(多)배아 이식을 하면서 쌍둥이 임신이 많아진 것.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쌍둥이 등 다태아가 지난 20년 사이에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다배아 이식이 착상률을 높일 수는 있지만 태아와 산모에게는 위험하다. 다(多)태아를 임신하면 저체중아, 미숙아를 낳는 일로 연결된다. 선택유산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솔직히 나도 2009년 이전까지는 그렇게 했다. 그 결과 다태아 임신부가 많이 나왔다. 처음엔 임신에 성공했다고 기뻐한 산모들이 건강한 아기를 안고 찾아오는 게 아니라 조산이나 유산을 하고 찾아와 절규하는 일이 생겼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고 미칠 것 같았다. 임신에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건강한 출산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험관시술이 보통 고생스러운 게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임신 성공을 높이기 위해 여러 배아를 이식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선택 아닌가.
    “지난 20년간 시험관시술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했다. 건강한 난자와 정자를 엄선해 수정시키고 3~5일간 체외 배양인큐베이터(체내와 똑같은 환경 조성)에서 배양(세포분열)해 착상률이 높을 것으로 보이는 배아를 엄선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이 됐다. 특히 우리 병원은 착상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배양 노하우가 있다. 보건복지부에서도 2015년 9월부터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식할 수 있는 배아 수를 35세 미만은 최다 2개, 35세 이상은 최다 3개까지로 제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이 이 지침을 따르고 있지만 지원 대상이 아닌 난임 부부에게는 지금도 다배아 이식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안타깝다.”



    임신성공률의 함정

    최근 보건복지부에서 전국 난임 치료 병원의 임신성공률을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위험한 발상이다. 어려운 난임 케이스가 몰리는 병원은 임신율이 저조할 수밖에 없다. 자칫 병원들이 임신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젊은 환자만 골라 받을 수 있다. 선진국들이 그랬다. 그렇게 되면 임신이 진짜 절박한 35세 이상 여성, 특히 폐경 직전 여성, 이미 여러 차례 시험관시술을 했지만 임신이 안 된 여성처럼 임신성공률이 떨어지는 케이스는 아예 시험관시술 기회 자체를 박탈당할 수 있다.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까. 환자들만 불이익을 당하는 것이다. 물론 내게 오는 환자는 어떤 환자도 포기하거나 시술을 거부할 생각이 없다. 난 그녀들과 끝까지 함께할 것이며 그녀들의 마지막 의사가 되겠다. 통계를 만들어 공개하려면 단순 임신성공률이 아니라 모집단의 나이와 상황 등 난임 상태에 따른 성공률로 분류해야 한다.”

    시험관시술 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다행히 정부에서 올 10월부터 난임 시술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할 계획이다. 저출산 해법 중에 난임 시술비 보험 적용도 한몫을 할 것이다. 다만, 횟수 제한을 없애면 좋겠다. 현재 지원금 제도도 4회까지만 허용하는데, 이걸로 임신하지 못하는 경우가 10% 이상 된다. 저출산 시대에 이들 10%에게 기회를 더 준다면 신생아가 최소 몇 천 명은 더 늘어날 수 있다. 또한 의술이 계속 발전하는 만큼 새롭게 도입되는 신보조생식술, 신처방 등이 인정비급여로 적용돼 난임 부부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임 치료는 감기 치료와 다르다. 포괄수가제가 되면 신기술이 적용될 길이 막힌다. 그 손해는 고스란히 환자에게 돌아간다.”



    임신과 여성 건강

    시대가 바뀌면서 임신과 출산을 거부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
    “이번 칼럼에도 썼지만, 여성들이 여성의 생물학적 위대함을 알아야 한다. 자식은 여자만이 낳을 수 있고, 낳을지 말지도 여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건 신이 준 축복이다. 정자는 난자 없이 생명이 될 수 없고 유전자 계승도 못하는 열세한 종자일 뿐이다. 임신과 출산은 여성 건강에도 좋다. 다산일수록 폐경이 늦게 와 그만큼 젊게 사는 기간이 늘어난다. 출산을 하면 골반에 생길 수 있는 여성 질환이 예방되고, 모유 수유를 하면 유방암 발생 확률도 낮아져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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