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新봉쇄정책에 고뇌하는 시진핑
- 한국은 미국보다 보수적인 레드라인 적용해야
- 이스라엘型 핵무장 불가피
한중 간 뜨거운 감자인 사드 배치와 중국의 경제 보복은 외교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다. 비핵화에 대한 온도차,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에 대한 견해차 등 갈등의 이면엔 역사적으로 상존한 군사적 적대성이 있다. 한중 협력이 올바르게 이뤄지려면 군사적 적대성을 해소하는 방안이 마련돼야 하나 사안의 중요성에 비해 논의는 거의 없다.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베이징이 총력전(Total War) 형태로 6·25전쟁에 개입하면서 시작됐다.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엔 냉전(Cold War) 관계로 지냈으며, 1992년 한중수교 이후엔 경제 중심으로 협력을 강화하면서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는 등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2015년 9월 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중국의 항일전승 70주년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중관계는 최고조에 이르렀으나 박근혜 정부의 남중국해 항행의 자유 보장에 대한 미국 지지와 사드 배치 결정으로 인해 급속히 냉각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미중 간 균형적 정책 기조가 우려를 낳았으나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문에 한·미·일 공조를 명시했으며 남중국해의 항해 질서와 관련해 사실상 미국을 지지하는 등 한미동맹 강화 조치가 예상과는 달리 빠르게 진행됐다. 북한의 ICBM급 미사일 발사 이후에는 사드 임시 배치를 결정하기도 했다.
한미관계와 달리 한중관계는 악화했으며 미중관계도 우려스럽다. 7월 31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와 관련해 대(對)중국 제재 방안을 예고하자, 8월 1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서의 승리를 언급하면서 대(對)미국 강경 대응을 시사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중관계를 어떻게 구성해야 할 것인가. 해법을 찾으려면 상존하는 한중 간 적대성을 들여다봐야 한다.
최룡해 북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의 아버지 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은 6·25전쟁 개전 당시 북한군 2군단장으로 동부전선을 담당했다. 1950년 10월 1일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할 때 생존한 북한군 대부분은 북쪽으로 철수했으나 최현의 2군단은 게릴라전을 벌이면서 철의 삼각지대 중앙지역(이천-평강-금화-철원-화천)에서 청천강에 이르는 중동부 산악지대를 장악했다. 김일성이 북중 국경지대의 피난지이던 자강도 만포지역에서 초라하게 은거할 때다.
한중관계의 기원 : 항미원조 전쟁
유엔군은 중공군의 기습에 급속히 붕괴했다. 12월 1일 청천강 방어선에서 철수를 시작했으며 12월 15일엔 임진강 방어선으로 후퇴했다. 한국과 미국이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미국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주도나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우라고 권유했을 정도다. 중공군은 15일 동안 청천강에서 평강을 거쳐 임진강까지 250㎞의 산악 종심 돌파에 성공했다. 세계 전쟁사에 유례없는 기록이다. 제공권을 완전히 장악한 미군이 간선도로를 따라 차량으로 철수하는 속도보다 빨랐다. 유엔군은 중공군과 북한군 2군단을 ‘걸어 다니는 공수군단’이라고 일컬었다.
중공군의 산악 종심 돌파를 선도한 부대가 최현의 북한군 2군단이다. 북한군 2군단은 중공군 1차 공세 때는 유엔군 병력의 3분의 1을 후방에 붙잡아뒀다. 특히 경원선을 차단해 미8군과 미10군단 사이 중부산악지대에 80㎞에 달하는 공백을 만들었다. 2차 공세 때는 국군 2군단의 배후를 습격했으며 중공군이 추격으로 전환하자 선도 역할을 맡았다. 최현의 게릴라들은 중공군에 요충지 선점, 도로 보수, 식량 및 탄약 보급, 숙영지 설치 및 경계를 제공했다.
최현은 중공군의 2차 공세 때 이렇듯 혁혁한 공을 세운다. 패전의 궁지에 몰린 김일성을 구원한 것이다. 당시 중국 수뇌부는 정규전을 경험하지 못한 대규모 신생 부대를 세계 최강 미군과의 전쟁에 투입했다. 그러한 중국 수뇌부에 미국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최현은 전쟁영웅 이상이었다.
1954년, 1959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열병식 때 김일성이 차지한 위상은 최현 덕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현의 아들 최룡해가 특사로 자주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은 이 같은 가족사가 배경에 있다. 북한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중국과 수평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중국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력 또한 한계가 있다.
1951년 1월 4일 서울을 점령한 중공군은 1·2월 공세에서 한미연합군의 방어선을 돌파해 부산을 점령하는 공격로로 동부전선을 선정했다. 서부전선을 방어하던 미1·9군단 지역보다는 험준한 지형을 방어하던 한국군 2·3군단 지역을 집중적으로 돌파하고자 했으나 연이어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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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전쟁의 서막, THAAD
8월 1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합병 이후 시행돼온 서방의 경제 제재 연장선에서 북한·러시아·이란에 대한 통합제재 법안에 서명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통상법 301조 적용을 경고했다. 만약 중국이 북핵 문제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러시아·이란·북한 봉쇄 라인에 중국을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미국의 요구를 거부한다면 규모나 성격은 상이하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소련이 영도하는 공산진영의 확장을 저지하고자 시행한 봉쇄정책 형태의 강경책이 소련 해체 이후 최초로 시행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미중의 대결구도를 냉전체제 회귀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전제다. 냉전시대는 미국과 소련이 영도하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군사 분야를 중심으로 정치·경제·사회 등 전 영역에서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공히 시장경제 체제를 공유한다. 심지어 북한조차 변형된 시장경제 체제인 장마당과 특권 경제구조를 도입했다. 북핵 때문에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가능성 또한 희박하다. 어떤 형태든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현재 지구촌은 미중의 대결 구도와 유사한 형태의 하이브리드(핵+정규전+비정규전+심리전+사이버전) 전쟁으로 몸살을 앓는다. 정보기술 시대의 총력전인 하이브리드 전쟁은 1·2차 세계대전 시기의 총력전과 냉전을 거쳐 현재 진화 중인 전쟁 형태다. 총력전은 국가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대규모 전쟁을 수행하는 것인 반면 하이브리드 전쟁은 특정 국가를 합병하거나 정부 전복 등을 목표로 한다.
하이브리드 전쟁은 전통적 군사작전보다는 사이버전 핵 위협 등 비대칭 군사력과 심리전을 앞세운다. 또한 상대 국가의 정치·경제·사회·군사적 약점을 이용해 전략적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중국의 사드 보복은 총성 없는 전쟁인 하이브리드 전쟁의 서막이다.
러시아는 중동과 동유럽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서방과 하이브리드 전쟁을 벌인다. 핵무기를 가진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일 나라는 지구상에 없다. 핵무기를 뒷배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합병했으며 남오세티아, 압하지아에서 친러 정권을 수립했다. 시리아에서는 재래식 전쟁으로, 우크라이나에서는 비정규전으로, 동·서유럽의 선거에는 사이버전과 가짜 뉴스를 통해 친러 성향의 정부 수립을 도모하고 있다.
독일은 9월 총선을 앞두고 가짜 뉴스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선거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미국 대선 때 러시아가 개입했다는 추문이 워싱턴 정가를 휩쓴 바 있다. 이러한 러시아에 대해 세계 각국은 경제 보복이라는 하이브리드 전쟁으로 맞선다. 북한 또한 우리가 익숙해 무감각해졌을 뿐 전형적인 하이브리드 전쟁 집단이다.
북한 핵 개발에 대해 ‘전략적 인내’로 대응한 오바마 행정부의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전 국장은 2013년 3월 12일 상원 청문회에서 “북한 정권은 생존의 위협을 느낄 경우에만 핵무기를 사용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이 그런 위협을 어떻게 정의하는지는 불확실하다”고 답변했다. 반면 마이크 폼페오 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5월 11일 상원 청문회에서 “(한반도는) 화약고와 같은 위협에 직면해 있어 재래식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전쟁 위협에 대한 미국의 평가가 4년 전과는 달라졌음을 의미하는 발언이다.
4월 26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댄 코츠 DNI 국장이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를 긴급한 국가안보 위협이자 외교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두는 ‘최대의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 Engagement)’를 공동 발표했다. 외교·안보 부서 수장이 총출동해 합동성명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개입(engagement)과 확산(enlarge–ment)은 탈냉전시대 미국 안보전략의 핵심이다. 워싱턴은 냉전시대의 대(對)소련 봉쇄전략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출혈이 컸다고 평가한 후 미국에 적대적인 국가가 출현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또한 자유시장 경제체제와 민주주의를 확산하면 적대적 국가의 출현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예방(Prevention)의 개념이다.
예방과 억제, 그리고 격퇴
예방적 방어(Preventive Defense)는 이러한 목적을 구현하기 위한 군사전략이다. 군사 개입보다는 비군사적 수단(Defense By Other Means)을 앞세운다. 그러나 예방(Prevention)과 억제실패(Deterrence Fail) 때는 격퇴(Defeat)를 적용한다. 격퇴를 적용한 경우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공격이다. 미국이 북한과 관련해 예방이나 억제 단계로 회귀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표1> 한국은 미국보다 보수적인 레드라인을 적용해야 한다.한미 군 당국은 2016년 10월 20일 열린 제48차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북한, 중국군 동향과 관련해 양자·지역·세계적 범주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확고히 했다. 한미동맹은 북한의 침략 또는 군사적 도발, 서북 도서 및 NLL 일대에서의 도발, 각종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북한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 것이다. 진화를 거듭한 북한의 핵전쟁 전략과 중국의 군사굴기(崛起)를 반영한 조처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안보 관련 대선공약을 수정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 ‘임기 내 전환’을 ‘조속한 전환’으로, 병 복무 개월 수 18개월 단축 시기를 특정하지 않은 것 등은 북한 문제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핵심 인사들이 전술핵 재배치, 참수작전, 한국 핵무장 등을 논하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계속 개발하거나 동결 후 재개발을 시도한다면 미국이 이 같은 문제를 한국과 협의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한국의 핵무장을 연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레이건 행정부 때 일본이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 능력을 확보한 사례를 눈여겨봐야 한다. 향후 미국과 협상 할 때에는 북한의 핵 위협이 가중되는 상황에 대비해 한·미·일 삼각동맹과 이스라엘형(型) 핵무장 등을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중국에 앞선 정부가 추진한 사드 배치 및 전작권 환수 연기, 개성공단 폐쇄, 한·미·일 군사공조가 북한의 핵전쟁 전략에 대응 불가피한 조치였음을 설명해야 한다. 또한 북한의 위협이 더욱 가중되면 불가피하게 추가 조치 즉 한·미·일 삼각동맹(전술핵 재배치), 참수 및 정권교체, 핵무장, 핵시설 타격 등을 미국과 공조해 취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