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취재현장

청와대 발표하고 언론 받아쓰는 관행 정착

출입기자가 본 ‘문재인 청와대’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hyun0325_@naver.com

    입력2017-08-20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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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보’의 홍수
    • ‘알맹이’의 빈곤
    • ‘자율 취재’ 극도로 제한
    “대통령이 본관 집무실이 있는데도 참모진과 소통하기 위해 집무실을 여민관(비서동)으로 옮긴 것은 파격적이다. 단순히 장소 하나 옮긴 데서 끝난 게 아니라 파생되는 효과가 큰 것 같다. 저 위에 있던 사람이 땅으로 내려온 느낌이 든다.” (청와대의 한 행정관)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이전 정부의 청와대와 달라진 점으로 ‘소통’을 꼽는 청와대 출입기자가 많다. 문 대통령은 행사장에서 시민들과 휴대전화 ‘셀카’를 자주 찍는다. 사인을 받으려는 초등학생이 가방에서 종이를 꺼낼 때까지 무릎을 굽히고 앉아 기다려준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아버지를 잃은 여성이 눈물의 편지를 읽고 돌아서자 예고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 ‘따뜻한 포옹’으로 위로해준다. 이런 모습들을 통해 그는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으로 확실히 각인되고 있다. 이전 보수 정권 9년을 상징하는 키워드가 ‘불통’인 데 따른 반작용으로 비친다.

    직전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에선 지시하는 대통령과 고개를 숙이고 받아 적는 수석·장관의 모습이 주로 전파를 탔다. 청와대 참모진과 격의 없이 티타임을 갖고 토론하는 문 대통령의 모습은 이와는 뚜렷하게 대비된다. 대선 때의 ‘광화문 대통령’이라는 상징적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 문 대통령은 앞으로도 ‘소통’에 최우선 방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입장해도 사담 나눠

    우선, 문 대통령은 청와대 참모진 다수를 50대로 배치했다. ‘70대 전성시대’로 불린 이전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비해 훨씬 젊어졌다는 느낌을 준다. 대통령비서실장에 51세인 임종석 실장을 발탁했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김기춘(78), 이병기(70), 이원종(74), 한광옥(74) 비서실장에 비하면 20년 이상 나이를 낮춘 것이다. 전병헌(59) 정무수석, 조국(52) 민정수석, 홍장표(57) 경제수석, 하승창(56) 사회혁신수석, 김수현(55) 사회수석, 윤영찬(53) 국민소통수석도 50대다. 수석비서관들이 주로 50대다 보니 그 이하 비서관 및 행정관 자리엔 30~40대가 배치됐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30~50대로 청와대 참모진을 구성한 것 자체가 ‘소통’으로 비친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의 관계에서도 ‘탈(脫)권위’가 드러난다. 출입기자들은 돌아가면서 청와대 내부 회의에 들어가는데, 회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장면은 문 대통령이 입장해도 참모들이 도열하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대개 회의 시작 직전에 회의장에 들어온다. 먼저 와 있는 수석비서관, 보좌관, 비서관들은 눈인사나 가벼운 목례 정도로 그를 맞이한다. 문 대통령은 가끔 손수 커피를 따라 손에 든 채 삼삼오오 모여 있는 참모진에게 다가가 대화에 끼어든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수석·보좌관 회의는 방식과 분위기에서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수석비서관 회의와 구분된다. 후자의 경우 테이블 위에 필기구와 수첩이 세팅돼 있었다고 한다. 수석비서관들의 좌석도 서열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수석비서관들은 준비된 ‘대통령 말씀자료’를 수첩에 받아 적느라 바빴다. 토론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적는 사람만 살 수 있다’는 ‘적자생존’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비선실세’ 최순실 씨가 대통령의 회의 발언을 미리 정해 지시한 정황이 나오기도 했다.  


    취재 기회 평등하게 제공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는 아직 초기지만 언론사의 논조나 성향을 가리지 않고 고르게 기회를 주려고 하는 편이라고 한다. 현재 청와대는 신규 매체 등록을 받아 출입 언론사를 확대하고 있다. 청와대 춘추관 내에 있는 언론사 부스가 부족하자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선 평상시 닫아놓고 있던 2층 기자회견장을 열어 부스가 없는 언론사의 출입기자들이 자유롭게 앉을 수 있도록 했다.

    정규 출입기자 전체가 등록돼 있는 카카오톡 대화방을 통해 국민소통수석실 관계자들과 기자들 간 소통이 상시적으로 이뤄지는 점도 평등한 취재 기회 제공의 연장선으로 비친다. 윤영찬 국민소통수석, 박수현 대변인, 권혁기 춘추관장 등 공보 라인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들은 새벽에 출근해 밤늦게까지 취재 및 보도와 관련된 기자들의 전화에 시달린다. 박 대변인은 어떤 사실관계를 잘못 확인해줬다가 통화한 기자들에게 일일이 다시 전화를 걸어 정정해주기도 했다.



    홍보성 내용 일방 전달

    그러나 청와대와 언론 간 관계와 관련해, 보완해야 할 점도 거론된다. 브리핑과 발표가 쉼 없이 이뤄지다 보니 일각에선 ‘소통 과잉’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종합일간지나 방송사는 지면이나 방송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그런데 청와대는 각종 현안에 대한 발표를 한꺼번에 쏟아내기도 한다. 그렇다 보니 이를 뉴스로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춘추관과 뉴미디어 간 조율이 면밀하게 이뤄지지 않을 때도 있다. 뉴스거리 제공 시점에 관한 기자들의 문제제기로 자료 제공이 연기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청와대의 브리핑이나 발표가 조간신문의 기사 마감 시간인 오후 4시께에 이뤄지면서 해당 기자들이 마감시간에 쫓기는 경우도 빈번하다. 몇몇 조간신문 기자들은 박수현 대변인에게 ‘4시의 남자’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이런 ‘홍보의 홍수’와 관련해, 보도 자료를 너무 많이 쏟아내는 것은 아예 안 내는 것보다는 덜 심각한 문제인지 모른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언론 홍보에 있어, 진짜 심각한 일은 청와대의 일방적 내용만 담은 자료 제공에 벌써부터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민감한 현안을 다루는 청와대의 사정이 있겠지만, 주요 수석들에 대한 기자들의 개별 전화 취재가 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언론사들이 홍보라인을 통해 나오는 자료나 발표, 핵심 관계자들의 수박 겉핥기식 배경 설명만 보도해야 하는 상황이 적지 않다.

    한 방송사의 청와대 출입 기자는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가 언론과의 스킨십에 적극적이기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들이 발표하거나 이야기하는 대로 보도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뼈아프게 여길 만한 날카로운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전화번호는 땄지만…

    7월 독일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당시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동행취재에 나선 기자들을 상대로 백브리핑(※ 우리나라 언론사들은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줄여서 관행적으로 ‘백브리핑’ 또는 ‘백블’이라 칭함)을 진행했다. 그러나 알맹이가 거의 없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기자들은 “이런 내용 없는 백블을 할 거면 왜 왔느냐?”라고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기자들의 문제 제기를 인식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그간 기자들이 수석과 비서관들의 전화번호 제공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최근 비서관급 이상에 대해선 전화번호를 제공했다. 그러나 “전화번호는 땄지만 여전히 비서관급 이상 인사들과 통화하기는 쉽지 않다”는 게 대다수 기자의 전언이다.

    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백악관도 기자들의 개별 취재엔 잘 응해주지 않는다. 새 정부의 청와대는 언론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시간이 지나 서로간의 규칙이 형성되면 언론의 불만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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