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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언어사적 측면에서 본 고구려어의 뿌리

“백제·신라와 동일언어권… 고구려어는 한국어의 모태”

  • 글: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국어학 tohsh@chol.com

언어사적 측면에서 본 고구려어의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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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근본은 부여에 있음이 확실하다. 고구려가 후에 동부여를 통합하였으니 부여의 역사를 승계한 나라다. 백제 역시 부여의 다른 지파로 나타난다. 백제의 경우도 왕의 성씨는 ‘해’씨 또는 ‘부여’씨였다. 백제의 귀족 중에는 ‘해루, 해충, 해수, 해구(解婁, 解忠, 解須, 解仇)’처럼 ‘해’씨가 많다. 한때 백제의 성왕은 공주에서 부여로 수도를 옮기면서 백제의 뿌리를 찾아 국호를 ‘남부여(南扶餘)’라 고치기도 했다. ‘南扶餘’는 “남쪽에 있는 부여”란 뜻으로 백제의 근원이 ‘부여(扶餘)’임을 밝히는 것이다.

즉, 고구려와 백제는 언어적으로도 ‘부여’라는 한 뿌리에서 갈라진 나라다.

‘햇빛(日光)’의 의미가 고구려, 백제, 신라 3국의 왕명에 고루 들어 있음도 깊이 새겨볼 일이다. 신라의 시조 혁거세(赫居世)는 신라어로 ‘누리(밝은누리)’로 불렸다. ‘삼국유사’는 ‘누리’를 ‘블구내(弗矩內)’로 음차표기하고 그 뜻을 “밝게 세상을 다스린다(言光明理世也)”로 한역했다.

여기서 ‘광명(光明)’이라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잉태 설화에도 ‘햇빛’이 나오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의 한 대목을 보자.

“금와는 그녀를 이상히 여겨 방 속에 가두어 두었더니 햇빛이 비쳐왔다. 몸을 피해가니 햇빛이 또 따라가 비치었다. 그로 인하여 태기가 있어 닷 되들이 크기의 알을 낳았다(金蛙異之 幽閉於室中 爲日所炤 引身避之 日影又遂而炤之 因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許).”



이처럼 고구려 건국신화에서도 신라와 마찬가지로 ‘햇빛’을 확인할 수 있다.

삼국 관직명, 거의 일치

‘삼국유사’는 “본성은 ‘해’씨였으나 지금 자기가 천제의 아들로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까닭으로 스스로 ‘고’로써 씨를 삼았다(本姓解氏也 今自言是天帝子 承日光而生 故自以高爲氏)”고 세주(細註)를 달기도 했다. 고구려 시조 이름은 동명(東明)이고, 그 아들의 이름은 유리명(琉璃明)이다. ‘동명’은 고구려어로 ‘새’이며, ‘유리명’은 ‘누리’이다.

고구려와 신라 시조의 이름에는 모두 ‘혁, 명(赫, 明)’의 뜻이 들어 있다. 초기 왕명의 동질성, 즉 ‘햇빛=(赫, 明, 昭, 昌)’은 후대로 이어져 고구려 유리명왕의 태자 해명(解明)을 비롯하여 고구려 문자명(文咨明)왕과 명리호(明理好)왕, 신라의 명지(明之=신문왕)왕과 비지(>비치)왕(昭知∼毗處), 백제의 성명(聖明∼明횕)왕과 창(昌)왕처럼 삼국의 후대의 왕명 속에 고루 나타났다. 신라 시조 ‘누리’와 고구려 제2대 왕 ‘누리’를 비교하면 형태소는 동일한데 순서만 바뀌었을 뿐이다.

고구려, 백제, 신라는 이름을 지을 때 자연현상이나 사람의 기능과 행동을 소재로 삼은 공통점이 있다. 예를 들면 ‘비류(비류국, 비류강에서 유래)’ ‘온조(온세상)’ ‘주몽·활보(명사수)’ ‘뱀보(뱀처럼 기어다님)’ ‘거칠부(荒宗)’ ‘이사부(苔宗)’ 등이 그것이다.

고구려 고국원왕(제16대)의 이름은 쇠(斯由∼劉)이다. 이것은 신라 진지왕의 이름 쇠돌이(舍輪∼金輪)의 ‘쇠’와 같다. 궁예가 창건한 후고구려의 수도는 ‘쇠벌(鐵原)’로 불렸다. 신라의 인명에도 ‘쇠나(素那=金川)’라는 어휘가 나온다. ‘쇠(金·銀·銅·鐵)’는 고구려와 신라에서 보편적인 성명, 지명으로 쓰였다.

부여 왕 이름에 ‘해부루(解夫婁)’라는 것이 있다. 고구려에는 ‘해애루, 삽시루, 모두루, 미구루, 해루(解愛婁, 歃矢婁, 牟頭婁, 味仇婁, 解婁)’ 등의 이름이 나타난다. 백제에서도 ‘다루, 긔루, 개루, 근개루(多婁, 己婁, 蓋婁, 近蓋婁)’ 등의 성명이 있었다. 부여, 고구려, 백제 모두 인명에서 돌림자 ‘루(婁)’를 즐겨 사용했다.

고구려 왕명에선 대무신(大武神)왕, 대해주류(大解朱留)왕, 대조대(大祖大)왕, 차대(次大)왕, 신대(新大)왕처럼 ‘대(大)’를 관형어로 썼다. 또한 관직명에도 대가(大加), 고추대가(古鄒大加), 대대로(大對盧)와 같이 ‘대’를 썼다.

백제의 경우는 건길지(鞬吉支), 근귀수(近貴首), 근개루(近蓋婁)처럼 ‘건’ 또는 ‘근’을 사용했는데 이는 ‘大’를 음차 표기한 것이다. 신라의 관직명에서도 대사(大舍) 〔=한사(韓舍)〕, 대나마(大奈麻) 〔=한나마(韓奈麻)〕의 표기가 발견된다. 고유어인 ‘한’은 ‘大’를 뜻한다.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밝힌 발해국의 시조 대조영(大祚榮)의 왕명도 고구려의 역대 왕들처럼 ‘大’를 사용했다. 대조영은 자신의 성씨를 ‘한’씨로 삼았다. ‘한’은 현재의 한국어에서도 ‘大’의 의미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백제어 ‘근’은 현대어 ‘큰(크다)’이 됐다. 이렇듯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명은 단일 토착 한국어로 기록되어 있다. 발음과 의미도 세 나라가 거의 일치한다. 이는 중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세 나라만의 공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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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도수희 충남대 명예교수·국어학 tohsh@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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