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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 나의 아버지

“엄마, 나 이제 아버지 용서해도 되는 거지?”|손숙

  • 글: 손숙 연극배우

“엄마, 나 이제 아버지 용서해도 되는 거지?”|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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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가신 아버지는 새로운 문화, 새로운 세상에서 나날이 변화하셨다. 세월이 흐를수록 시골에서 어른들과 함께 4대에 걸친 제사를 모시면서 사는 어머니와는 점점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결국 동경에서 새로 만난, 이른바 신여성과 살림을 차렸고 일년에 두어 번 오던 고향집 나들이도 이 핑계 저 핑계로 건너뛰는 일이 잦아졌다.

결국 그곳에서도 아이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속절없이 그저 멀리서 남편을 그리워하며 긴 세월을 견뎌야만 했다. 집안에선 물론 난리가 났다. 대를 이을 아들이 없으니 친가와 외가의 할머니들은 매일 장문의 편지를 일본의 아버지에게 보내셨고, 결국에는 할아버지가 아버지를 데리러 일본으로 가셨다. 그 후 강제로 끌려나온 아버지에게 추상 같은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네가 열 계집을 보든 스무 계집을 보든 상관하지 않겠다. 그러나 조상의 제사를 서자에게 받들게 할 수는 없으니 아들 하나는 낳고 떠나거라.”

양가 할머니의 엄명으로 아버지는 사랑 없는 어머니와 합방을 하게 되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게 바로 나였다. 비록 어처구니없고 기막히게 나를 낳게 되었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열 달 내내 행복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바람처럼 다시 일본으로 떠나셨지만 8년 만에 아기를 가진 어머니는 온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셨다. 집안에 경사가 났다고 동네 전체가 매일같이 잔칫집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나는 모두가 원하던 아들이 아닌 딸로 태어났다.



“이 일을 우짜노, 이 일을 우짜노.”

산바라지를 해주셨던 이웃 할머니가 혀를 차자 어머니는 울기 시작했다. 마루에서, 안방에서, 사랑방에서 사내아이 소식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집안 어른들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셨다. 할아버지는 두루마기를 챙겨 입으시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가셨다고 한다. 산모가 미역국도 먹지 않고 아이에게 젖도 물리지 않은 채 내내 흐느끼기만 하자 아이는 그때부터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목놓아 기다리던 아들 소식

“그만 울고 애기한테 젖부터 물려요. 온 집안이 이 모양이니 삼신 할머니가 화가 나셨어요. 그렇게 울다간 아이한테 큰일이 나요.”

이웃 할머니가 버럭 화를 내시면서 아이를 안겨주자 그제서야 아이가 뭘 아는 것처럼 울음을 그치더라고 언젠가 어머니께서 내게 얘기해주셨다.

나는 그렇게 시끄럽게, 그리고 서럽게 태어났다. 2년 후에 또 한번 난리를 치른 뒤 다행히도 남동생이 태어났고 그 후로 아버지는 우리에게 영원히 잊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안 계셔도 우린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았다. 집안에는 우리를 애지중지 사랑해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계셨고 어디를 가더라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먹을거리와 입을거리도 풍성해서 아버지가 그립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채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에서 학업을 마친 아버지는 그 곳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4남매와 함께 서울에서 호텔을 경영하면서 1년에 한두 번씩, 명절이나 집안에 큰일이 있을 때만 바람같이 다녀가셨다.

어쩌다 아버지가 고향집에라도 오시는 날이면 할머니는 어떻게 해서든 우리 3남매를 아버지와 가까이 있게 하려고 애를 쓰셨다.

“아버지 진지 잡수시라고 해라.”

“아버지 담배 피우시게 재떨이 갖다 드려라.”

할머니는 계속해서 우리의 등을 떠밀었지만 우리 3남매는 어색하고 낯설고 부끄러워서 아버지 얼굴조차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일이 거듭되면서 속이 상할 대로 상한 어머니는 어른들이 보지 않는 집안 구석에서 자주 눈물을 훔치시곤 했다. 당연히 어린 우리도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집에 오시는 것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머니는 당신의 한을 푸는 일은 우리 3남매를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는 것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 그래서 무작정 우리를 끌고 서울로 올라오셨다. 아버지가 계신 서울이었지만 우리는 아버지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쪼들리고 스산한 서울살이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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