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이 누워있던 바위를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한 입석대.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은 지리산으로, 1967년 지정됐다. 하지만 국가가 직접 국립공원을 관리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1980년 중반까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다가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되면서 전국적인 통합시스템이 갖춰졌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국립공원의 관광상품화가 더딜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의 파괴가 빠르게 진행됐던 것이다.
2004년 4월 현재 한국에는 모두 20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15개가 산이다. 국립공원이 국가를 대표하는 자연자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새삼 한국에서 산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이 모두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국립공원이다. 결국 백두대간은 한국 관광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건 백두대간을 둘러본 외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작점고개에서 만난 중학생들

추풍령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작점고개에 내리니 30명쯤 될까,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차례로 대간에 붙었다.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학생에게 물으니 경기도 파주중학교에서 온 백두대간 종주대란다. 이 학교의 백두대간 동아리 ‘파주마루’는 3주에 한 번씩 대간에 오른다고 했다. 신입생 때부터 그렇게 걷다 보면 졸업할 때까지 백두대간을 모두 밟게 된다는 것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소년에게 “산보다 재미있는 게 많은데 왜 하필 산이냐”고 묻자,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요”고 응수한다.
학생들에게 자극받은 탓인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숨도 고르지 않고 내달아 473m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한 중년남성이 봄소풍을 즐기듯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다. 그는 설악산에서부터 역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내미는 술잔을 마다하고 용문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봄기운이 완연해 따스한 햇볕과 탁 트인 시야에 바람마저 시원했다. 용문산을 넘어서자 오른편 능선 아래쪽으로 용문산기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용문산기도원은 1950년 나운몽 목사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최근 이곳에는 실버타운이 조성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