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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기⑥|작점고개에서 늘재까지

세조 따라 걸으니 견훤이 막아서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

  • 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세조 따라 걸으니 견훤이 막아서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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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리산에서부터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 6개월. 이제 절반쯤 북으로 거슬러 올랐을까.
  • 수많은 고개와 재, 봉우리를 넘으니 또 하나의 명산이 반긴다. 역사와 전설이 살아 숨쉬는 속리산. 그 우두머리 천황봉에 오르니 동으로 낙동강이오, 남으로 금강이오, 서로 남한강이다.
세조 따라 걸으니 견훤이 막아서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

조선 후기 임경업 장군이 누워있던 바위를 일으켜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한 입석대.

19세기에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다. 서부개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무렵, 한 탐험대가 옐로스톤 지역에서 놀라운 자연현상을 목격했다. 그러자 당시 미국에서는 이 지역의 토지소유권을 두고 논쟁이 일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1872년 옐로스톤을 국가 재산으로 귀속시켰다. 신비로운 자연환경을 국민 모두가 소유함으로써 쾌락을 극대화하자는 취지였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물론 미국에서도 국립공원에 대한 관점은 수차례 수정됐지만, ‘자연환경의 공동소유’라는 기본개념은 변함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은 지리산으로, 1967년 지정됐다. 하지만 국가가 직접 국립공원을 관리한 것은 1980년대 후반부터다. 1980년 중반까지는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다가 1987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되면서 전국적인 통합시스템이 갖춰졌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는 국립공원의 관광상품화가 더딜 수밖에 없었고, 상대적으로 무분별한 개발과 자연환경의 파괴가 빠르게 진행됐던 것이다.

2004년 4월 현재 한국에는 모두 20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이 가운데 15개가 산이다. 국립공원이 국가를 대표하는 자연자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새삼 한국에서 산이 차지하는 절대적 비중을 엿볼 수 있다. 지리산, 덕유산, 속리산, 소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산이 모두 백두대간에 자리잡은 국립공원이다. 결국 백두대간은 한국 관광산업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다행스러운 건 백두대간을 둘러본 외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세계시장에 내놓아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평가한다는 점이다.

작점고개에서 만난 중학생들

세조 따라 걸으니 견훤이 막아서고… 긴 세월 켜켜이 쌓인 역사와 전설
3월20일 오전. 김천역에서 1시간을 기다려 시내버스를 타고 추풍령으로 향했다. 버스에 탄 10여명의 승객은 남녀로 갈라져 왼편에는 아저씨들이, 오른편에는 아주머니들이 앉았다. 아저씨들은 이날 저녁 서울에서 열리는 탄핵반대 촛불집회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었고, 아주머니들은 길가에 새롭게 들어서는 아파트를 바라보며 옛 시절을 떠올리고 있었다. 필자의 귀는 아저씨 쪽에서 차츰 아주머니 쪽으로 옮아갔다. “우리가 자랄 때는 저기가 다 논바닥이었는데” “우리 엄니가 나를 촌구석으로 보내면서 얼마나 서럽게 울었다고” “농촌 총각 장가보내고 자식들 대학공부까지 시켰으니, 니는 큰일을 한 기다. 부처님도 복을 주실 기다” “내는 부처님도 예수님도 안 믿는다. 내는 남편과 아들만 믿는다”….



추풍령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작점고개에 내리니 30명쯤 될까, 학생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교사의 지시에 따라 학생들은 차례로 대간에 붙었다. 맨 앞에서 대열을 이끄는 학생에게 물으니 경기도 파주중학교에서 온 백두대간 종주대란다. 이 학교의 백두대간 동아리 ‘파주마루’는 3주에 한 번씩 대간에 오른다고 했다. 신입생 때부터 그렇게 걷다 보면 졸업할 때까지 백두대간을 모두 밟게 된다는 것이다. 얼굴에 여드름이 가득한 소년에게 “산보다 재미있는 게 많은데 왜 하필 산이냐”고 묻자, “시작했으니 끝을 봐야지요”고 응수한다.

학생들에게 자극받은 탓인지 발걸음이 빨라졌다. 숨도 고르지 않고 내달아 473m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한 중년남성이 봄소풍을 즐기듯 돗자리를 펴고 누워 있다. 그는 설악산에서부터 역종주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가 내미는 술잔을 마다하고 용문산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다. 봄기운이 완연해 따스한 햇볕과 탁 트인 시야에 바람마저 시원했다. 용문산을 넘어서자 오른편 능선 아래쪽으로 용문산기도원이 눈에 들어왔다. 용문산기도원은 1950년 나운몽 목사가 건립한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최근 이곳에는 실버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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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육성철 국가인권위원회 공보담당 사무관 sixman@humanrights.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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