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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東亞-미래硏 연중기획 中·國·通

시진핑은 ‘習황제’가 되려는가 “권력 집중은 더 큰 개혁 위한 수단”

자오후지 前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

  • 이문기|미래전략연구원 원장 송홍근 기자|carrot@donga.com

시진핑은 ‘習황제’가 되려는가 “권력 집중은 더 큰 개혁 위한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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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력 강해야 정경유착 깰 수 있어
  • ●파열음 날 만큼 권력투쟁 심해
  • ●싱가포르式 일당우위 다당제로 갈 것
  • ●한국 대선은 학생회장 선거 같아
자오후지(趙虎吉·64) 전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우창(五常)시에서 태어난 중국인이다. 한국인, 북한인과 정체성 일부를 공유한다. 부모 고향이 각각 평안도, 경상도다. 한국식 이름은 조호길.

중앙당교는 중국공산당 고위간부를 교육하는 기관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008년 국가부주석에 오른 후 교장을 맡았다. 마오쩌둥(毛澤東), 후진타오(胡錦濤)도 교장을 지냈다.

소련, 동유럽 공산주의가 몰락한 것과 달리 중국공산당은 어떻게 건재함을 과시하는가. 중국의 당-국가 체제는 어떻게 변화할까. 일당제 모델은 지속될 것인가.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이 의미하는 건 뭘까. 공산당 당헌과 헌법에 시진핑 사상을 새겨 넣은 후 마오쩌둥 같은 반열에 올라 ‘시황제(習皇帝)’가 되려는가.

신동아-미래전략연구원 연중기획 ‘中·國·通’ 8회가 한국의 중국통이 아닌 한국, 북한과 정체성 일부를 공유하는 그를 만난 것은 내부자 시선으로 중국 정치권력의 특징, 본질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일자무식 노동자처럼 일해”

①무엇을 개혁하는가 ②왜 개혁하는가 ③어떻게 개혁하는가 ④개혁을 통해 어떤 나라를 지향할 것인가.

그는 1980년대 말 이 4가지 고민을 품고 베이징(北京)대 대학원에 늦깎이로 입학했다.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25년간 중앙당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중국공산당의 정치철학, 운영체계를 탐구했다.

젊은 시절엔 농촌 생산대대와 기업소에서 사회를 배웠다. 생산대장, 건축회사 반장 및 시공팀장, 공산주의청년단 서기로 일했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됐을 때 투먼(圖們)시 당위원회 선전부장이었다.

“우리 세대는 소학교를 온전히 다녔으나 6학년 때 문화대혁명(1966~1976)이 터집니다. 중학교에 가긴 했는데 공부를 제대로 못했어요. 마오쩌둥이 중학교를 6년제→4년제로 개편합니다. 4년제 중학교인데 문화대혁명 때라 공부는 하나도 안 했죠. 경제가 완전히 파산 상태였습니다. 일자리가 있었겠어요? 그러니까 하방이지, 하방.”

하방(下放)은 중국공산당이 당·정·군 간부의 관료주의·종파주의·주관주의를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고학력자, 지식분자를 낙후된 농촌, 변경의 공장으로 보낸 것을 가리킨다.

“두만강변 월청향으로 하방했습니다. 5년을 지냈는데 그곳에서 많이 배웠어요. 사회주의가 우월하다는데, 다들 왜 이리 가난한지 의문이 들더군요. 월청향에서 투먼시로 옮겨 건축회사에서 5년 일했습니다. 벽돌 쌓고, 시멘트 발랐어요. 일자무식 노동자처럼 밑바닥 삶을 살았죠.”


“중국은 서구와 文明史 달라”  

중학교 졸업 학력(한국 고졸 학력)은 1970년대 중국에서 고학력자였습니다.
“우리는 지식인이었습니다, 지식인! 학교 공부는 온전히 못해도 독서를 했거든요. 건축회사에 출근하면 순진한 노동자들이 신문 읽어달라, 그림책 읽어달라 보챘습니다. 농민, 노동자와 함께하면서 정말로 많이 배웠어요. 공산주의청년단 서기로 뽑히면서 6개월 훈련받고 농촌교육대에서 2년 일했습니다. 자본주의 고리를 자른다면서 장사 다니는 사람 교화할 때죠.”

그는 투먼시 선전부장으로 일할 때가 특히 고통스러운 시절이었다고 회고했다. 중국공산당에 입당한 때는 1975년이다.

“투먼시 선전부장으로 4년을 살았어요. 개혁·개방을 막 시작해 정책이 내려오는데 밑에서 반발이 거셌죠. 하루아침에 시장경제로 이행하는 게 아닙니다. 인민에게 땅을 나눠주는데, 난리도 그런 생난리가 없습니다. 뭘 개혁하냐, 왜 개혁하냐, 어떻게 개혁하냐는 질문엔 그 나름 답하겠는데, 개혁을 통해 어떤 나라가 되는지는 알 수 없었죠. 세상에는 사회주의, 자본주의밖에 없는데 사회주의는 뜯어고치면서 자본주의는 아니라는데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고민을 풀어보려 독서를 많이 했는데 촌구석에서 책 읽은들 답이 나왔겠습니까.”  

그는 1981~1986년 통신대를 다니면서 학사 학위를 받았다. 통신대는 한국 방송통신대와 비슷한 형태다.

“한 달에 한 번씩 수업 듣고 독학했어요. 졸업장 따자마자 베이징대 대학원에 입학원서를 넣었죠. 석·박사 과정 7년을 거치면서 완전히 개변됐어요. 중국이 어디서 왔으며, 어느 곳에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보였습니다. 인류문명사에서 중국이 서구와 어떻게 다른지도 눈에 들어왔고요.”



“다당제 난맥 대안이 일당제”

중국공산당이 생존한 것은 미스터리입니다. 세계 정치사의 독특한 경험이고요. 중국은 공산당 일당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했으며 세계화 흐름에 편승한 동시에 편입됐습니다.
“서구의 시각으로 중국공산당을 들여다봐선 안 됩니다. 1950년대 중국을 설명하면서 일당제, 전체주의 같은 낱말을 쓰던데, 그건 서구의 시각일 뿐입니다. 1960년대 문화대혁명이 터지니 파벌주의나 소집단 이론으로 들여다보더군요. 1990년대 이후엔 권위주의적 발전이니 개발 독재라는 말을 갖다 붙였으나 대부분 틀린 얘기입니다. 서구의 틀로 중국을 들여다보니 빗나갈 수밖에요.”

한국 국제정치학계도 서구의 이론 틀로 중국의 정치체제를 탐구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 시각 중 조반니 사르토리의 ‘정당과 정치체계(Parties And Party Systems)’는 잘 쓴 책이에요. 사르토리는 일당제는 다당제가 실패한 곳에서, 그 실패를 수습하고자 나타난다고 여깁니다.”

사르토리는 서구 정당에 대해 민족국가 형성 이후의 산물로서 ‘전체 속의 부분’이라고 설명한다. 정당이 ‘전체’ 속 ‘부분’의 이익을 대리하면서 국가를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현대 정당이 두 가지 함정에 직면했다고 본다. 하나는 권력이 과도하게 집중·독점되면서 전체주의가 나타나는 것, 다른 하나는 권력의 과도한 분산 또는 파벌화로 ‘전체’가 해체되는 것이다. 

“1912년 청(淸)이 무너진 후 정당 내지 정치조직이 342개에 달합니다. 나라가 산산조각 나요. 각 성의 군벌이 혼전을 벌이죠. 국가가 통합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당제가 등장하니 국가가 그 꼴이 된 겁니다. 다당제가 전체를 해체하는 상황에서 국가를 통합하는 수단으로 등장한 게 중국식 일당제예요.”

분열된 중국을 재통합하는 수단으로서 공산당이 구실을 했다는 거네요.
“서구 정당은 민족국가 수립 후 산업화가 이뤄지는 과정에서 부르주아지가 왕권에 맞서 권리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했습니다. 서구 정당의 기능은 이해관계에 따라 나뉜 세력이 이익을 집단 표출해 정책화하는 것입니다. 중국의 정당은 달라요. 중국에서 공산당은 엘리트가 모여 민족국가를 통합해가는 조직입니다. 서구와는 전혀 다른 배경에서 정당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왜 이 같은 정당이 등장했을까요? 역사제도주의 시각으로 살펴봐야 합니다. 역사제도주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는 추상적 개념일 뿐 실제로 조직된 것은 다양한 제도입니다. 역사제도주의 핵심 개념을 쉽게 설명하면 앞에 일어난 일이 뒤에 발생한 일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亂世→小康→大同

소련, 동유럽과 다르게 공산당이 살아남은 것은 중국 특유의 역사·전통 덕분이라는 건가요.  
“중국은 2000년 넘게 과거제와 관료제를 통해 중국 특색의 엘리트 충원 제도를 유지했습니다. 중국 전통의 정치철학이 공산당에서 구현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정치철학이 어디에서 비롯합니까? 동중서(董仲舒)예요. 동중서!”

동중서는 유교 국교화의 길을 연 사람으로 기원전 2세기 한(漢)나라 때 학자면서 관료다.
“진시황이 대륙을 석권한 후 연좌제 등 강한 처벌을 통해 질서를 잡았으나 통일 후 14년 만에 진(秦)이 무너집니다. 한(漢)고조 유방이 재통일한 후 진시황이 만든 법제와 유가 전통이 병존하면서 어정쩡한 상태가 이어졌으나 한무제가 동중서의 의견을 받아들여 유교만 남기면서 통치 이상을 확정합니다. 유교의 대동사상(大同思想)을 구현하는 게 국가 목표가 된 거죠.”
청대(淸代) 개혁가들은 난세(亂世)→소강(小康)→대동(大同)으로 발전 단계를 나눴다. 대동사상은 인륜의 구현, 만민의 신분적 평등, 재화의 공평한 분배를 강조한다. 중국공산당의 지향이 한무제 때 확정돼 19세기 캉유웨이(康有爲)가 변법자강운동 때 강조한 대동사상에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중국공산당은 온포(溫飽·먹는 문제가 해결된 사회)→소강(小康·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삶의 질이 보장된 사회)→대동(大同)을 발전 목표로 제시했다. 1921년 상하이(上海)에서 태동한 중국공산당이 100년째 되는 2020년 이전에 ‘전면적 소강사회’를 달성하는 게 베이징의 목표다.

“소강사회는 의식주 걱정은 않으나 내 자식만 사랑합니다. 대동사회는 내 자식뿐 아니라 모든 젊은이를 사랑하는 곳이고요.”
주지하듯 대동사상은 사회주의 이상을 닮았다. 중국 특색의 공산주의를 이해하려면 유교 전통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중국 정치철학은 동중서 이래로 바뀐 게 없습니다. 한무제 때 삼강오상(三綱五常)을 제도화하면서 구성한 정치철학이 중국공산당까지 이어집니다. 동중서가 강조한 천인합일(天人合一)은 자연법칙을 삶의 원리로 해석한 겁니다. 황제가 왜 최고였을까요? 황제는 천자(天子), 즉 하늘의 대표예요. 인간은 우주의 법칙을 따르는데 그 법칙을 대표한 게 천자였습니다.”



“고도화한 관료사회 형성”

천인합일 사상은 동중서에 의해 대일통(大一統) 사상으로 전개된다. 하늘의 아들인 천자를 중심으로 세상이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이다. 대일통을 이뤄내려면 고도화한 관료사회가 필요했다. 

“동중서가 통치철학을 도덕화, 이념화한 후 당나라 때 약간의 변화와 명·청대 주자학으로 인해 또 다른 변화가 있었으나 정치철학의 기본은 한차례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과거제도 또한 2000년을 대일통했습니다. 진시황 때 관료제가 처음 나타납니다. 한무제 때 시험을 통해 관료를 선발하는 제도가 정착하고요. 아래부터 위까지 관료행정기구가 황권을 위해 일한 것은 황제가 관료를 장악했기 때문이 아니라 유교 이데올로기가 강력하게 작용한 덕분입니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국가 엘리트를 과거제를 통해 흡수했습니다. 똑똑한 이들은 하나같이 황권 안으로 들어간 겁니다. 또한 관료를 유교라는 하나의 이념으로 동일화했습니다. 진시황 이래로 호적제도를 통해 유민의 할거를 막았으며 인간에 대한 통제권을 황제한테 집중시켰고요. 중국인은 귀족 밑에 노예로 산 적이 없습니다. 천자에게만 복속된 자유민이었죠. 이 같은 역사적 경험을 중국공산당이 고스란히 이어받았습니다.”

중국 특유의 관료제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 조직 형태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논리다. 중국의 현재 정치체제는 대륙 전체를 ‘극도로 고도화한 관료사회’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엘리트를 당으로 빨아들였으며 하나의 이념으로 국가를 통합했습니다. 중국의 산업화는 선진국을 좇는 형태지, 새로운 걸 창조하는 게 아니었죠. 위로부터의 지시에 따라 동원하고 조직해 산업화를 이뤄낸 것이지 민간이 주도한 게 아닙니다. 중앙정부가 힘을 가졌기에 국가가 가진 능력을 종합적으로 활용했습니다. 중국공산당의 정당성은 산업화 과정에서 보여준 성과에 기인합니다. 권위주의 혹은 전체주의라는 지적이 있겠으나 중국에선 지금과 같은 체제가 먹힙니다.”



“한국인 불행은 탐욕 탓”

국가 지시에 순종하는 데 불만이 없다?
“중국인은 관리를 받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요. 기댈 곳이 필요합니다.”

투박하게 질문하겠습니다. 중국공산당과 서구 정당 중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까요.
“누가 누구를 이기는 게 아니에요. 중국, 서구 체제가 각각 장단점이 있죠. 한국과 서구는 공정한 법치와 정부 문책이 이뤄집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한 게 일례죠. 그만큼 법치가 구현됐으나 약점은 정부가 너무나 약하다는 거예요. 반대로 중국은 정부는 강력한데 공정한 법치 부분이 미흡합니다. 결국 중국도 공정한 법치를 추진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 정치체제를 어떻게 평가합니까.
“단기적, 중장기적 이익을 아울러 정책을 결정해야 하는데 한국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습니다. 국민은 중장기적 이익을 잣대로 투표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단기적 이익을 확실하게 파악해 정책이 수립되는 것도 아니더군요. ‘우리 지역은 무조건 문재인’이라는 식으로 투표하는 것은 이성적인 게 아니죠. 대중은 이성적일 수 없습니다. 이성적이면 대중이 아니에요. 로베르트 미헬스는 ‘다수는 현재를 대변하고 소수만이 미래를 대변한다’고 일갈합니다. 엘리트는 대중을 이끌고, 대중은 엘리트를 따라갈 때 균형이 잡혀요. 대중에 의해 모든 게 결정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얘기예요.”

그가 덧붙여 말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한국의 삼포세대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밖에서 보기에 한국의 전체적 재부(財富)는 충분해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량인데 물가 차이를 고려해 삶의 품질을 따지면 유럽의 5만 달러 국가와 비슷합니다만 분배에 문제가 있습니다. 탐욕에 젖어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남보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욕심 탓에 무한경쟁이 벌어집니다.”



“중장기 전략에 약한 서구 모델”

중국식 거버넌스가 오히려 적합하다는 주장인가요.  
“서구 모델로는 중장기 이익을 담보할 수 없어요. 한국 대선을 보면서 학생회장 선거 아닌가 싶더군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 개를 만든다는 둥 하는데, 야, 이거 진짜 대선후보 맞나? 과장, 국장이 할 얘기를 하는 걸 보고 투표한단 말이에요. 어떻게 인기 끌까, 어떻게 표 받을까만 궁리하는 상황에선 미래에 주목하지 못합니다. 중국식 체제는 서구 모델과 달리 중장기 전략의 연속성이 이어집니다.”

100년 앞을 내다보고 정책을 짠다?
“그렇죠. 또 다른 장점은 인재를 조기에 선발해 장기 훈련한 후 적재적소에 배치한다는 것이고요.”

단점도 많죠.
“권력이 집중됐기에 부패합니다. 중국은 부패를 극복해야 하고 한국은 중장기 전략을 짜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이 거대한 나라를 효율적으로 통치하면서 경제성장을 이끌어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앞으로도 그럴 수 있느냐죠. 부패한 데다 경쟁이 공정하지 않으며 법치, 인권 문제가 다 약점입니다.
“맞아요. 중국공산당은 역사적 유산에서 비롯한 강점을 살려가면서 단점을 보완해야 합니다.”

중국공산당이 자기 혁신과 변화에 성공하면 세계사적으로 보편성을 갖춘 새로운 정치 모델이 되겠으나 그러지 못한다면 생명력이 의문시될 수 있죠.
“자유, 평등 같은 이념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시장경제는 전체 중심이 아니라 개인 중심이죠. 자유로운 개개인이 경쟁자입니다. 또한 등가교환이 시장경제의 원칙입니다. 등가교환이 이뤄지려면 평등해야 합니다.”


“경제도 정치도 무한경쟁 안 돼”

중국식 일당제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중국에 서구식 정치체제가 이식된다? 그런 일은 없습니다. 중국 또한 자유, 평등의 방향으로 가겠으나 서구식 다당제는 대안이 아닙니다. 시장경제라는 완전히 새로운 생산양식이 중국 문화를 바꾸고 있으므로 중국, 서구 모델의 접합점을 찾을 겁니다.

중국은 일당우위의 다당제로 갈 겁니다. 법적으로 공산당 외 8개 당파가 있어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가 공산당을 포함한 9개 당파가 협상하는 곳입니다. 정협이 앞으로 활성화할 겁니다. 전국인민대표자회의(전인대)도 내실화할 것이고요. 

중국 정치체제는, 공산당이 전체를 확실히 통합한 상태에서 다른 당파의 역할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갈 겁니다. 반대와 비판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면서도 일당우위가 계속된다는 얘기예요.싱가포르 모델을 떠올리면 됩니다. 인민행동당이 국가를 절대적으로 통제하면서 야당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게 싱가포르의 정치 구조죠.”

그는 중국의 정치 발전 단계를 넷으로 나눴다.

“첫째는 국가 통일 및 국민성 통합 단계입니다. 공산당이 이 단계를 잘 처리했습니다. 둘째는 중앙정부 권위 확립 단계입니다. 중앙정부의 권위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편적 참여와 선거가 이뤄지면 혼란이 일어납니다. 중남미 국가와 태국이 이런 상황에 처해 있죠. 셋째는 중앙정부의 권위가 제도화, 절차화, 법제화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단계가 보편 참여입니다. 중국은 현재 둘째 단계에서 셋째 단계로 나아가는 중인데, 싱가포르와 비슷한 형태로 중국식 민주화가 이뤄질 거예요.”

그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에서도 무한경쟁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경제는 물론이고 정치에도 경쟁이 없어선 안 됩니다만, 서구식 무한경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중국은 공산당 우위에서 각 당파가 각자 의견을 제시하는 유한경쟁을 지향해야 합니다. 한국을 예로 들어봅시다. 한국의 정당은 당(黨)이 아니라 파(派)예요. 친문이니 하면서 사람 중심으로 뭉쳐 사생결단의 다툼을 벌입니다. 한국과 같은 심한 경쟁 속에서는 삶의 질을 높이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한국도 경제력이 이만큼 올라왔으니 자신감을 갖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안정되게, 조화롭게 살지 연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시진핑 체제가 반(反)부패운동을 광범위하면서도 과감하게 진행합니다. 제도화·법제화·절차화의 과정으로도 이해하겠으나 최고지도자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됨으로써 정치 발전이 퇴행하거나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습니다. 서구 언론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21세기 중국의 황제 격이 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마저 나옵니다.
“부패와 정경유착이 심합니다. 기득권을 깨지 않으면 개혁이 더는 못 나아가요. 시진핑으로의 권력 집중을 부정적으로 여길 게 아니라 더 깊은 개혁을 위한 준비라고 봐야 합니다. 일을 더 하고자 권력을 집중하는 것이지 권력만을 강화하기 위한 게 아닙니다.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習仲勳)과 마찬가지로 권력이나 개인적 성취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기득권 세력이 커질수록 그것을 깨는 권력은 강해야 합니다. 분산된 권력은 기득권을 깰 수 없어요.”



“기득권 깨려면 권력 집중돼야”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 체제 및 권력승계 시스템은 장쩌민, 후진타오 체제를 거치면서 제도화, 규범화했습니다만 11월 중국공산당 18차 전국대표자대회를 통해 시진핑 주석으로의 권력 집중이 더욱 강화하리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포스트 시진핑’ 후보군 중 하나이던 쑨정차이(孫政才) 전 충칭시 당서기가 7월 24일 해임돼 조사를 받는 것도 이 같은 전망에 힘을 실었습니다. 시 주석이 10년 임기를 수행한 장쩌민, 후진타오와 다른 길을 걸으리라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시진핑이 다른 길을 도모한다는 것은 서구적 시각일 뿐입니다. 후진타오 시절이 너무 약했어요. 10년을 낭비했다고까지 하거든요. 중국은 풀어야 할 문제가 태산 같습니다. 금융개혁 등 난제가 산적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체제가 아니었으면 군 개혁 못 해냅니다.

후진타오는 꿈에도 생각 못한 군 개혁을 해냈잖아요. 집단지도 체제는 총체적으로 변한 게 없어요. 다만 같은 체제 안에서 후진타오 때 너무 약화된 총비서의 권력이 강화된 것이죠. 어떤 면에서는 너무 간 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긴 한데 큰 틀에서는 집단지도 체제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다 얘기하기는 어려운데 그사이 별의별 일이 다 있었습니다. 내부에서 파열음이 난 적도 있어요. 권력투쟁이 장난이 아닙니다. 중국에는 역사적으로 모략, 권모술수가 많았어요. 이번에도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상황을 이해하려면 이 같은 배경을 봐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건대 더 큰 일을 하기 위한 리더십의 확립일 뿐 권력을 위한 권력 집중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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