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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에세이

엘리베이터 맹신

엘리베이터 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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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게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확실하다고만 생각하면 여러 사람에게 누(累)를 끼치게 된다. 그러니 특히 지성인이라면 남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지식체계와 확신을 구축해야 한다. 공학도들도 그렇게 해야 여러 난관을 뚫고 나라와 사회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민족은 본디 정신력과 체력이 강한 민족이다. 그런데 작금에 이르러선 의지박약한 생활에 방치되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상업자본은 소비자의 심리조작에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에 따르는 폐단에는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매스컴은 인기만 뒤쫓을 뿐 젊은 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건 ‘나 몰라라’ 하고 있다. 옛날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려 했는데, 요새는 오히려 정권이 나서서 ‘자유’의 이름으로 ‘방만’을 유도하고 있는 듯하다.

서구에서 민주주의는 평범한 시민들이 힘을 합쳐 못된 귀족에 대항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룩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결력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힘을 합쳤다. 그런 그들에게 몇 세대에 걸쳐 한 정당에게만 지지를 보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우리에게는 성군이 모든 일을 해결해줄 것이며, 신성한 통치이념을 위해서라면 혼자서라도 싸울 수 있다는 정신이 흐른다. 혼자서라도 악의 뿌리를 단칼에 쳐내고 사태를 원상 복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과 서는 다른 것이다.

만민이 평등하다는 민주주의는 유연성 있게 흥정할 줄 알고, 매스컴의 선동에 속지 않으며, 그리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을 그 기반으로 삼는다. 때문에 그러한 기반이 없는 사회에서 무조건 투표 결과를 따른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원활하게 이룩될 수는 없는 것이다.



민주주의적 기반이 아직 약한 우리에게 동양적인 공동체 질서체계, 즉 도덕과 율법은 버리기 아깝다. 예로부터 내려온 율법이 우리의 사회질서를 유지시켜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 내면에 깊숙하게 깔려 있는, 마음을 가다듬으면 훤히 보이는 옛 질서체계를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천천히 서구 기법을 따라가야 할 것이다. 그 이상의 빠른 속도를 내는 세계화는 일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서 나온 위험한 선전이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실을 잘 모르는 채 용감하게 이웃을 견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사실을 판단할 정확한 자료를 공급하는 것이 지성이 할 일이다. 물론 여러 주장을 소개할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는 민주주의적 풍토도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해보지 않고 주워들은 바를 그대로 되파는 일은 참으로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느 정당에도, 어느 상술에도, 어느 심리조작에도 속지 않는 자신을 기르면서 동시에 예의와 충효 등 우리의 아름다운 재래 가치에 대해 자신감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신동아 200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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