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20대 리포트

“보수 성향 드러내면 우정도 사랑도 깨져”

우리가 보수라 말 못하는 까닭

  • 정보라|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tototobi@naver.com

“보수 성향 드러내면 우정도 사랑도 깨져”

1/3
  • ● “적폐세력” “일베충” “박사모” 낙인● 교수들도 “벌레 같은 생각” 질책● “청년 보수로 살기 너무 힘들어”● “진보 휩쓸림은 병리현상”
“너희 같은 벌레 같은 사고방식 때문에 안 되는 거야.”

얼마 전 서울 K대학 교양과목 강의에서 수강생 조모(28) 씨가 안모 교수에게 들은 말이다. 70여 명의 수강생이 듣는 유럽 문학 수업이었다. 당시 안 교수는 “문제가 있는 정권은 갈아엎으면 된다”는 취지로 말했다. 이에 조씨는 “급진적으로 바꾸기보다 점진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며 보수적 의견을 냈다. 그러자 안 교수는 “너희는 뇌에 어떤 개혁이나 개조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부류”라고 일갈했다고 한다. 많은 학생 앞에서 모욕적인 언사를 듣게 돼 조씨는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10명 중 8명 ‘진보중도’

어느덧 문팬(문재인 대통령의 팬)과 진보가 20대를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보수 성향을 가진 20대는 “청년 보수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한다. 20대 중에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수자에 속한다. 19대 대통령선거 결과가 잘 보여준다. 방송3사 출구조사에 따르면, 20대 투표자 중 47.6%는 진보 성향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12.7%는 진보 성향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17.9%는 중도 성향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찍었다. 20대 투표자의 78.2%가 진보중도 성향 후보를 지지한 것이다. 반면, 보수 성향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에 투표한 20대는 8.6%에 불과했다.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을 합해도 정당 지지도는 21.8%에 그친다. 대략적으로, 20대의 10명 중 8명은 진보중도 성향이고 2명은 보수중도 성향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소수의 청년 보수가 정치적 발언을 할 자유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또래 사회’ 내에서 소위 “적폐세력” “일베충” “박사모”로 낙인찍혀 ‘왕따’를 당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보수 궤멸’론을 주장하는 진영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런 현상은 더 심화된 것으로 비친다. 최근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을 만나 그 실상을 들어봤다.



서울 시내 모 대학 재학생인 김모(22) 씨는 4월 초 참석한 고등학교 동문회 자리에서 보수 성향을 드러냈다가 곤욕을 치렀다고 한다.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이라 30명의 동문이 참석한 이 자리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통령선거 이야기가 나왔다. 김씨는 “뽑을 사람이 없어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상당수 동문은 문재인 후보를 권했다.

“그분은 다 좋은데 안보관이 좀 불안한 것 같아요.” (김씨)

“뭐가 불안해?” (김씨 선배)

“개인적으로 안보관에 있어서는 홍준표 후보나 유승민 후보가 낫지 않나요?” (김씨)

“어? 너, 홍준표 지지자야?” (김씨 선배)


“너, 홍준표 지지자야?”

이 말 한마디에 60개의 눈이 일제히 김씨로 향했다. “넌 왜 막말하고 격 떨어지는 후보를 지지하냐?” “넌 9년 동안 당해놓고 또 찍냐?”는 질책이 이어졌다. 김씨는 훈계하는 말투에 마음이 상했지만 분위기가 험악해지는 것 같아 잠자코 듣기만 했다고 한다.
 
홍모(25) 씨는 19대 대선 때 유승민 후보 지지 의사를 밝혔다가 형제간에 불화를 겪었다. 문팬인 홍씨의 형은 대놓고 홍씨를 비난했다. 감정이 상한 홍씨는 문 대통령 당선 이후 한동안 가족과의 접촉을 피했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박모(34) 씨는 한 달 전 조기축구 모임에서 왕따를 당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주말마다 모여 축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들인 조기축구 멤버들은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대놓고 박씨를 멀리했다고 한다. 박씨가 대선에서 홍준표 후보를 지지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예 박씨에게 연락하지 않고 그들끼리만 모인다고 한다. 박씨는 “이런 일을 많이 겪어 슬프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 내에서 보수 의견을 내기 위해선 용기를 내야 한다. 그러나 환영받지 못한다. 고려대 재학생 김모(25) 씨는 지난해 4월 총학생회 측에 세월호 희생자들과 함께 천안함 희생자들을 추모할 것을 건의했다. 김씨는 “우리 또래 나이의 희생된 군인들을 우리가 기억 안 해주면 누가 기억해주나”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 커뮤니티에도 천안함 희생자 추모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그의 의견은 묵살됐다. 그는 올해 다시 총학생회 측에 카톡을 보냈지만 답이 없었다고 한다.



“7년 지기 형들과 연 끊겨”

보수적 의견을 내는 사람이 은연중에 공격받는 풍조는 대학에서 날로 확산되고 있다. 서울 모 대학 재학생 위모(19) 씨는 얼마 전 ‘한국사’ 수업에서 ‘4대강 사업’을 비판한 교수의 발언에 반대 의견을 냈다. 이후 이 수업을 함께 수강한 위씨의 친구들은 위씨를 “일베충”으로 불렀고 학과에서 “위○○은 극우”라는 소문이 났다. 위씨는 “우스갯소리로 한 말이라지만, 당사자로선 그런 말을 들으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보수 성향 20대들은 “보수 성향을 ‘커밍아웃’ 하면 친한 친구와의 우정도, 연인과의 사랑도 깨지기 쉽다”고 말한다.

음모(23) 씨의 모교인 S고교는 박근혜 정부가 만든 국정 역사교과서를 채택했다. 학생들이 균형 잡힌 사관을 접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에서 국정교과서를 보조 교재로 뒀다고 한다. 수업시간엔 검정교과서를 주로 다뤘고 시험도 검정교과서에서만 나왔다. 학생들도 큰 불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뉴스에 국정교과서 채택 사실이 보도된 뒤 S고는 ‘일베학교’로 찍혔다. 이에 음씨는 페이스북에 모교를 옹호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친한 형 두 명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냐”며 음씨를 나무랐다. 음씨는 자신의 취지를 설명했다. 형들은 “네가 무엇을 알겠느냐? 앞으로 만나지 말자”고 절연을 선언했다. 음씨는“7년 동안 친하게 지낸 형들이었는데 속이 많이 상했다”고 말했다.

서울에 사는 한 대학생(25)은 “내 친구가 막 사귀기 시작한 여자와 대화를 하던 중 ‘홍준표 돼지발정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가 절연을 당했다. 남자가 20대 여자에게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는 건 ‘연애의 자살행위’와 다름없다”고 전했다.

보수 성향인 구모(22) 씨는 친척들 앞에서 정치 이야기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구씨의 친척들은 죄다 진보 성향이고 구씨를 이해하지 않는다. 구씨는 2014년 지방선거 때 친척들 앞에서 무심코 “새누리당 소속 후보를 찍었다”고 말했다. 이후 “너는 그래서 안 돼”로 시작하는 일장 연설을 들어야 했다.


“멈춰주세요” 했더니…

청소년과 청년에겐 공용 놀이터와 마찬가지인 SNS상에서도 20대 보수는 살아남기 힘들다. 사방에서 공격이 비 오듯 쏟아지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사상자가 속출한다. 이채진(22) 씨는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정중하게 자신의 보수적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자 이씨를 향해 “그렇게 계속 노예로 살아라” “꼰대 정신을 가지고 있으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지” “병신” “일베충” “ㅋㅋㅋ” 같은 언어 공격이 이어졌다.

보수 성향 20대들은 “보수 후보를 지지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좋아요’를 누르면 친구 관계가 끊기기도 한다. SNS에 정치 성향을 드러내는 글을 올리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SNS를 그만두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온라인상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보기 위해 필자는 ‘서울 모 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와 ‘정치토론이 활성화된 모 사이트’에 익명으로 아래의 글을 직접 작성해 올렸다.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20대입니다. 보수를 적폐세력으로 모는 것을 멈춰주세요.”

얼마 지나지 않아 욕설과 비난을 담은 글이 필자에게로 쏟아졌다. 아래는 이 중 일부다.

“노인정에 가시거나 일베에 가서 노세요.”

“자유한국당 지지하면 욕먹어야 하는 거 맞죠. 욕 쳐드셔야지 뭐 자랑이라고^^”

“자살 안 하나? 병신 같은 게.”

“자유한국당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대가리 빠가사리 아니냐?”

청년 보수들은 “20대의 진보 휩쓸림도 병리현상”이라 말한다. 이들은 “소수 골통 보수 정치인을 보수 전체로 일반화하는 것을 멈춰달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실패를 보수 전체의 실패로 몰지 말라”고 주문한다. 또한, 진보 성향 사람들을 “종북”으로 칭할 수 없듯 보수 성향 사람들을 “적폐세력”으로 불러선 안 된다고 하소연한다. 보수 성향인 김동우(25) 씨는 “이젠 진보가 ‘갑’이고 보수가 ‘을’이다. 청년 보수에겐 ‘뉴라이트’ 올가미를 씌운다”고 말했다.

최모(27) 씨는 19대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친구들과 술자리 논쟁을 벌였다. 최씨가 홍준표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자 동석한 친구들은 “안보팔이 하니까 지지하냐? 너도 적폐세력”이라고 최씨를 공격했다. 최씨는 문재인 후보가 내세운 정책들의 허점을 반박했다. 최씨의 친구들은 “그런 것도 있었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최씨는 “진보 성향 20대 중 상당수가 진보 정책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유행처럼 지지한다”고 말했다. 



“가뭄도 박봉도 야당 탓”

이에 대해 진보 성향 20대는 “자업자득”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진보 성향의 김지환(23) 씨는 “지난 9년 동안 보수가 진보에게 한 일을 생각해보라. 지금은 ‘새 발의 피’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온라인에서는 “이게 다 야당 탓”이라는 말이 유행한다. SNS에 “너무 덥다” “월급이 적다” 같은 말을 올리고는 여기에다 “# 이게 다 야당 탓”이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는 식이다. “가뭄이 심하다” 같은 기사에도 “이게 다 야당 탓”이라는 댓글이 심심치 않게 붙는다.

청년 보수들 사이에선 보수 정권의 과오를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보수 성향 김동우(25) 씨는 박근혜 정권의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해 “말만 보수지 실제론 탐욕”이라 규정한다. 보수 성향 권혁준(28) 씨는 “보수 정치에 실망했다. 보수 성향을 가진 친구 중 상당수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보수의 티끌은 보수가 못 치운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보수성향 최모(27) 씨는 “보수 정권이 보수의 가치를 오염시켜 청년 보수들이 설자리를 잃고 있다”고 진단한다. “가짜 보수 때문에 진짜 보수가 힘들다”는 것이다. 권씨는 “진짜 보수는 매너 있고 예의 바르다”고 말한다.

보수 성향 홍권일(20) 씨는 “보수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게 보수가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음모(23) 씨는 “꼰대 의식만 버린다면 보수는 20대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꼰대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 상대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람’으로서, 보수 성향 기성세대 중에 꼰대가 많은 것으로 여겨져왔다.

보수 성향 이채진(22) 씨는 “청년 보수도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 이 기사는 고려대 미디어학부 ‘탐사기획보도’ 과목 수강생이 박재영 교수의 지도로 작성했습니다.




1/3
정보라|고려대 경영학과 4학년 tototobi@naver.com
목록 닫기

“보수 성향 드러내면 우정도 사랑도 깨져”

댓글 창 닫기

2021/03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