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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아베 1강(强), ‘포스트 아베’ 경쟁자들

아베 다음은 누구인가

  • 서영아|동아일보 도쿄특파원 sya@donga.com

흔들리는 아베 1강(强), ‘포스트 아베’ 경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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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해 여름 도합 17일간 휴가를 썼다. 그해 7월 10일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서 대승을 거둔 여유 덕이다. 이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립여당은 3분의 2 의석을 장악했다. 중의원은 2014년 12월 선거에서 이미 3분의 2를 확보한 터. 아베의 숙원인 개헌 발의를 할 수 있는 의원 수가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에서 확보된 것이다. 이후 정치권에는 아베에 대적할 세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아베 1강(强)’이란 단어가 시대를 풍미했다.

불과 1년 뒤인 올여름, 상황은 180도 달라져 아베 총리는 좀체 쉬지 못하고 있다. 근 5년간 아베 1강을 이룬 힘의 원천이던 ‘강고한 지지율’과 ‘선거 승리’ 두 가지 신화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려서다. 2012년 12월 취임 뒤 70%를 넘나들며 고공행진을 하던 내각 지지율은 7월 말 최저 26%(마이니치신문 조사)까지 추락했다. 올 들어 잇달아 터진 총리와 부인 아키에(昭惠) 여사가 연루된 사학 스캔들로 국민 신뢰를 잃은 결과다. 여기에 머릿수에 기댄 오만한 국회 운영, 개헌 로드맵의 일방적 발표, 각료들의 실언과 부적절한 처신이 엎치고 덮쳤다. 아베 총리가 “축성 3년에 낙성 1일”이라 탄식할 정도였다.

7월 2일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자민당의 처절한 패배가 그 결과다. 내각 지지율은 8월 3일 단행한 개각 이후 반짝 상승 기미를 보였지만 민심 이반의 원인이 총리 개인에 대한 신뢰 상실에 있다는 점에서, 엄청난 반전이 없는 한 회복이 어려워 보인다.

아베 총리의 숙원인 개헌 로드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자민당은 내년 9월 총재 선거를 앞두고 총재 임기 규정을 바꿔 아베 총리가 ‘3기 9년’까지 연임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아베는 2021년까지 총리직을 유지하면서 그사이 개헌을 이루려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꿈은 물거품이 될 위기에 놓였다. 8월 11일 요미우리신문은 “아베 3연임에 반대한다”는 응답이 60%를 넘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이대로라면 아베 총리와 함께 자민당이 침몰할 것”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자민당 내 파벌 역학

반대로 막강한 아베의 포스에 밀려 숨죽이던 ‘포스트 아베’ 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올해 60세로 동갑내기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자민당 간사장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자민당 정조회장이 선두주자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노익장도 만만치 않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 노다 세이코(野田聖子) 총무상,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 자민당 수석부간사장도 후보군이다.

아베 1강이 흔들리면서 일본의 정치 일정도 요동칠 가능성이 커졌다. 현재 확실한 일정은 내년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와 내년 12월 이전에 실시될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다. 중의원 해산 총선거는 총리가 전권을 가지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섣불리 중의원을 해산했다가는 현재 확보된 개헌 라인을 잃을 수 있으니 지지율 추이가 중요하다. 반면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추진하는 전국 정당이 체제를 갖추기 전에 서둘러 해산 총선거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결국 언제 닥칠지 모를 중의원 해산 및 총선거, 지지율 등락 추이, 자민당 내 파벌의 이합집산, 야당의 움직임이 서로 얽히고설켜 향후 정치지형을 만들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의원내각제인 일본에서 총리는 대개 중의원에서 다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의 당수가 지명된다. 1955년 자민당이 창당된 이래 자민당 총재가 총리가 못 된 경우는 1993~1996년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하타 쓰토무(羽田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시절과 2009~2012년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 나오토(菅直人),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로 이어진 민주당 정권 기간이 전부다. 1993년에는 당시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과반을 잃으면서 자민당을 제외한 연립정권에서 총리를 옹립했다. 2009년부터 3년간은 민주당(현 민진당)이 정권을 장악해 3명의 총리를 배출했다.

현재는 어떨까. 적어도 정당 지지율을 보면 자민당이 총리를 맡을 가능성이 크다. 제1야당인 민진당은 지지율 한 자릿수에서 헤매고 있다. 자민당이 아닌 정당에서 총리가 나오려면 1993년 호소카와 정권이 수립되던 당시처럼 탈당과 신당 창당 등 정계의 합종연횡을 거친 뒤가 될 것이다.

자민당 내에서 총재로 선출되려면 당내 세력, 즉 파벌의 지지가 필요하다. 현재 파벌은 아베 총리가 속해 있는 호소다파가 96명으로 가장 많고 신(新)아소파 59명, 누카가파 55명, 기시다파 46명, 니카이파 43명, 이시바파 19명 순이다. 무파벌도 79명이나 된다. 이들의 이합집산이 어떻게 이뤄지느냐에 따라 일본 총리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유력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이시바 전 간사장도, 기시다 정조회장도 다른 파벌의 지원이 없으면 총재 자리는 ‘그림의 떡’이 된다. 그런 점에서 살펴보면 ‘포스트 아베’ 후보 중 현재 총리 자리에 가장 가까운 인물은 기시다 정조회장이다.


기시다 후미오 | “인내만이 살 길”…아베의 선양 노려


1957년생(60), 본적지인 히로시마 8선 의원으로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외무상,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 역임. 부친과 조부 모두 중의원을 지냄.


46명의 의원이 소속된 기시다파의 영수이자, 2012년 12월 아베 정권이 출범한 이래 4년 8개월간 외무상을 맡아 아베 정권의 외교를 이끌어온 인물이다. 기시다파의 전신은 ‘보수 리버럴’을 표방한 고치카이(宏池會)로 아베 총리가 매파라면 비둘기파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는 아베 정권 내내 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자신의 잠재 경쟁자를 내각에 묶어두고 당내 입지를 넓히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취해왔는데,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이 지난해 8월 이를 뿌리치고 뛰쳐나가 반(反) 아베 색채를 강화한 데 비해 기시다 정조회장은 아베 내각에 머물렀다.

그래서 그는 ‘인내의 정치인’으로 불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본인 생각은 따로 있지만 아베 치하에서 본심을 숨기고 버티고 있을 것”이란 해석이 많았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무려 4년 넘게 소리 없이 버티는 그를 보며 “본래 그런 정도의 그릇 아니었나 싶다”는 평가가 나오던 중이었다.

이번 8·3개각에서도 당초 아베 총리는 그를 유임시키려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민당 정조회장을 맡기면서 풀어줬다. 두 사람 사이에 차기 밀약설도 제기되고 있다. 아베 총리는 평소 총재선거에서 이시바 전 간사장과 1대 1 대결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을 주변에 흘려왔다. 결국 기시다를 내세워 매파와 비둘기파를 연출하고 필요할 경우 연대하는 전략으로 나갈 거라는 관측이다.

실제 이번 개각에서 아베 총리는 기시다파 소속 의원을 4명이나 기용하며 그에게 힘을 실어줬다. 개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기시다 정조회장을 “장래 일본을 중심에서 짊어질 인재”라고 띄워줬다.

이런 기시다 정조회장은 8월 9일 TBS방송에 출연해 “아베 총리 시대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며 ‘포스트 아베’에 대한 의지를 재차 밝혔다. 다만 내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 아베 총리가 나설 경우 어떻게 대응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정치의 세계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며 답변을 흐렸다. 포스트 아베를 지향하되 아베 총리의 눈치를 보면서 입후보 여부를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아베 총리가 건강 악화로 내년 9월 당 총재 선거 출마를 포기하고 기시다 정조회장 등에게 맡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2015년 12월 윤병세 당시 장관과 한일위안부 합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온유한 성격이지만 문재인 신정권에서 ‘재협상’ 등의 논의가 나오는 것에는 화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합의에 부정적인 아베 총리 등을 열심히 설득해 합의를 이끌어냈는데 한국이 이를 뒤집는다면 자신의 체면이 구겨진다고 여긴다는 얘기다.



이시바 시게루 | 반(反)아베 색 뚜렷한 정치인…
대중적 인기 크지만 당내 조직력 약해


1957년생(60). 10선. 방위청장관, 방위상, 농림수산상, 자민당 정조회장, 자민당 간사장, 지방창생상 역임. 부친은 돗토리현 지사, 자치상 역임.


아베 총리와 거리가 가장 먼 사람으로 분류된다. 아베 총리와 한판 붙은 전력이 있다. 2012년 9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당원 대상의 1차 투표에서는 아베를 꺾고 1위를 했으나 국회의원 대상의 2차 투표에서 고배를 마셨다. 당시까지 무파벌로 지낸 그는 이후 이시바파를 만들어 현재 19명의 의원과 함께하고 있다. 파벌정치인 자민당 내에서는 소속 파벌에 얼마나 많은 현역 의원이 포진하느냐에 따라 당내 입지나 총리 배출 여부가 갈린다.

그는 7월 25일 산케이신문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지금 총리에 적합한 인물’로 아베 총리를 꺾고 1위(20.4%)에 올랐다. 아베 총리는 19.7%였다. 8월 초 지지통신이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는 18%로 1위를 차지해 14.4%인 아베 총리와의 차를 더욱 벌렸다. 참고로, 이 조사에서 3~6위는 고이즈미 신지로(13.1%), 기시다 후미오(8.8%), 고이케 유리코(7.9%), 노다 세이코(4.5%) 순이었다.

수치에서 드러나듯 대중적인 인기는 많지만 자민당 내부 지지는 약하다. 그는 자민당 내에서 아베 총리에 대해 직접적인 비판을 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꼽힌다. 지난해 8월 내각에서 물러나 자민당으로 복귀한 뒤 당에 대해 “잠자코 있지 말고 잘못된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비판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과거 ‘네오콘’이라 불릴 정도로 일본의 군비 강화를 주장하면서도 대(對)아시아 외교와 과거사 문제에는 긍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일본이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려면 태평양전쟁에 대한 철두철미한 반성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반대해 일본 우익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인간의 존엄을 침해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사죄해야 마땅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여러 차례 역대 총리, 일왕까지 사죄의 뜻을 밝혔음에도 한국에서 수용되지 않는 것에 대해선 좌절감도 크다고 6월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밝힌 바 있다.

‘군사 오타쿠(마니아)’란 별명이 있을 정도로 군사안보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는다. 어린 시절부터 호위함과 잠수함 플라스틱 모형 제작에 빠졌고 철도 마니아로도 유명하다.


고이케 유리코 | 감(感)과 배짱으로 ‘고이케 극장’ 연출


1952년생(65). 중의원 8선. 환경상,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위상, 자민당 홍보본부장, 자민당 총무회장, 도민퍼스트회 대표 역임.

또 다른 ‘태풍의 눈’으로 부상 중이다. 지난해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자민당 공천을 받지 못한 채 무소속으로 나서 44.5%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 뒤 도쿄의 해묵은 현안이던 쓰키지(築地)시장 이전 문제 재검토, 도쿄 올림픽 개최 비용 하향 조정, 본인 급여 삭감 등의 정책으로 인기를 모았다.

이런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7월 2일 도쿄도의회 선거를 석권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전체 의석(127석) 중 절반을 넘긴 79석을 얻었고, 일부 국회의원의 지지를 바탕으로 전국 정당을 만드는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다만 2018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0년 도쿄 올림픽 준비를 팽개치고 국정에 복귀할 대의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자칫 정치생명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다. 도쿄도지사 임기는 2020년 7월까지다. 당장 ‘포스트 아베’의 경쟁력에서도 자민당 중진들에게 밀린다는 평가다.

다만 그의 움직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일본 정계의 합종연횡이 이뤄질 경우 그 축이 될 가능성에 있다. 1993년 자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을 잃고 연립여당이 옹립한 일본신당 호소카와가 총리 자리를 가져간 기억이 생생한데, 당시 정치 신인이던 고이케는 일본신당의 간판 스타였다. 자민당 안팎에서 고이케 지사가 전국정당 체제를 갖추기 전에 해산 총선거를 실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반면 그가 자민당과 연대할 것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실제 고이케 지사는 도의회 선거 직전까지도 자민당 당적을 유지하면서 자민당에 대한 직접 비판을 피하는 ‘눈치 보기’ 행보를 보여왔다. 비슷한 시기 아베 총리도 “고이케 지사를 적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발언한 바 있다.

TV캐스터 시절이던 1992년 일본신당을 창당한 호소카와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듬해 호소카와는 연립여당의 추대로 총리직에 오른다. 그 뒤 일본신당, 신진당, 자유당, 자민당으로 옮겨 다녀 ‘철새 정치인’이라 불렸다. 특히 정치적 입장이 극에서 극으로 다른 호소카와와 아베 사이를 옮겨 다닌 것에 대해 “권력을 향한 집념은 있지만 정치적 지향성이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적지 않다.

1차 아베 내각에서는 총리 보좌관과 방위상으로 중용됐고 개헌이 목적인 극우보수단체 ‘일본회의’에서 활동한 적도 있다. “위안부 강제 연행은 없었다”는 발언을 했고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전임 지사의 제2한국학교 부지 유상 대여 방침을 백지화한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아소 다로 | 재등판 틈새 노리는 ‘자가발전’ 노익장


1940년생(77). 12선 의원. 아소 시멘트 사장, 재무상, 부총리, 총리, 총무상, 외상, 자민당 간사장 역임.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의 묘한 움직임도 관심을 끈다. 총리 경험자인 그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과 더불어 아베 정권 내내 명운을 함께하고 있지만 정말 아베 정권 지원이 인생 최후의 목표인지 모호한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민당이 도쿄도의회 선거에서 참패해 충격에 빠져 있던 7월 3일 파벌 통합을 통해 대대적인 세 규합에 나섰다. 자신이 주도하는 아소파와 산토(山東)파, 그리고 다니가키(谷垣) 그룹 이탈 인사 등 총 59명의 의원이 참여하는 신아소파를 출범시켰다. 새로 출범하는 파벌 이름은 시코(志公)파로 하고 회장은 자신이 맡았다.

59명 파벌은 현재 아베 총리가 속한 호소다(細田)파(총 96명)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종전 2위 파벌이던 누카가(額賀)파(55명)를 뛰어넘은 숫자다. 아소 부총리는 파벌 규합의 의미에 대해 “아베 정권을 강하게 지원할 것”이라고 주장해 포스트 아베를 겨냥한 세 규합이 아니냐는 관측에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에서는 아소 부총리의 최근 행보가 결국 아베 이후를 노린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2007년 당시 아베 총리가 전격 사임한 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총리를 거쳐 아소 부총리가 총리직을 맡은 사례도 거론되고 있다. 당시 아소는 일주일 만에 아베의 빈자리를 완전히 장악했으나 그의 행태에 불만을 품은 자민당 의원들이 후임으로 후쿠다 총리를 밀었다는 뒷얘기도 있다.

결국 그가 현재는 아베 총리의 지원자 입장이지만 아베 총리에게 돌발 상황이 발생하면 본인이 손을 들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기시다파를 포섭해 거대 파벌을 구성한 뒤 본인은 킹메이커를 하거나, 직접 ‘킹’을 노린다는 말도 들린다. 만화 애호가로 말실수가 잦아 ‘망언 제조기’라 불리기도 했다.



노다 세이코 | 총무상 취임 일성이 “내년 총재 선거 출마”


1960년생(57). 자민당 8선. 총무상, 내각부 특명담당상, 우정상, 자민당 총무회장 역임. 조부가 경제기획청장관, 건설상 역임.


8·3개각에서 총무상에 임명된 노다 세이코는 입각과 동시에 “내년 9월 총재 선거에 반드시 입후보하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아베 총리와 당선 동기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행보는 전혀 달랐고 정책 차이도 큰 편이다. 2015년 치러진 직전 자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를 검토하다 아베 진영과 갈등을 빚고 포기한 바 있다.

아베 총리와 워낙 거리를 두고 있던 그의 입각은 고노 다로 외상 입각과 더불어 화제가 됐다. 일본 언론은 이시바, 기시다와 함께 노다 총무상을 ‘빅3 차기 주자’에 넣고 있다.

그는 자민당 내 조직력이 없으면서도 총재 출마를 장담하는 이유로 “당내에도 경쟁이 있고 다른 목소리도 들리는 정당이 되게 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입각 제의를 받았을 때 아베 총리에게 이 같은 의사를 밝혔고 “당연히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 본인도 8월 4일 니혼TV 방송에서 “당내 활성화에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27세에 지방의회 의원, 33세에 국회의원, 37세에 각료가 되면서 일찌감치 ‘첫 여성 총리후보감’이라 불리기도 했다. 2011년 50세가 넘어 인공수정으로 낳은 아들이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사연이 있다. 그는 “아이를 갖게 된 뒤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하고 있다.




고노 다로 | “아버지 후광은 감사하지만 난 아버지완 달라”


1963년생(54). 7선의원.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행정 개혁상 역임.


8·3개각의 핵심 인사인 고노 다로 외상도 주목되는 인물이다. 그에게는 아버지의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녔다. 1993년 군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주역인 부친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의 중량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부친은 관방장관, 외상, 자민당 총재, 중의원 의장 등 총리를 제외한 정계의 굵직한 자리를 섭렵한 자민당의 정통 주류이자 호헌파의 거두다.

대중적으로는 2002년 아버지가 C형간염으로 쓰러지자 자신의 간을 떼어주는 수술을 한 효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평소 ‘할 말은 하는’ 스타일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 이단아라 불려왔다. 탈원전을 주장하는 ‘원전제로회’ 대표를 맡기도 했고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등 차별화되는 정치 신조를 가진 것도 특징이다. 그가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을 맡았을 때는 각 부처에 ‘성역 없는 낭비 삭감’을 요구해 관료들로부터 “야당보다 무섭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이런 그가 최근 “아버지와 다르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산케이신문은 개각 다음 날인 8월 4일자 ‘고노 쇼크’ 제하의 기사에서 “고노 다로가 외상을 해도 괜찮겠느냐”는 측근의 우려에 아베 총리는 “괜찮아. 그는 아버지하고는 달라”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고노 외상은 위안부 문제에 대해 부친과 동조하는 발언을 한 적이 없다. 외상 임명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착실하게 이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기존 정부 입장에 따르는 자세를 보였다. 일본 언론은 그가 당분간 자신의 소신을 ‘봉인’하고 정권과 보조를 맞출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8월 4일 각료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내년 9월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 관해 질문받자 “한 걸음 한 걸음, 걸으며 생각하고 싶다”고 말해 출마에 의욕을 보였다. 요미우리신문은 고노 외상이 외교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면 ‘포스트 아베’ 레이스 출전 자격이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고이즈미 신지로 | 30대의 젊은 피, 대중적 인기 높지만 아직은 조연급

1981년생(36). 3선 의원. 자민당 청년국장, 자민당 농림부회장 역임.

8·3개각인사에서 자민당 수석 부간사장으로 기용된 고이즈미 신지로 의원은 차차기 리더로 꼽힌다. 여전히 대중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2001~2006 재임) 총리의 차남으로 수려한 외모와 성실한 자세로 인해 특히 젊은 층에서 인기가 높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각에서 입각 가능성도 거론됐지만, 중의원 3선 의원으로서 입각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는 지적에 당직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어 자민당의 ‘젊은 피’로 꼽히고 있다.



제1야당 민진당, 지리멸렬 넘어 당 와해 우려

일본 정치권에서 ‘아베 1강’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야권이 지리멸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아소 정권을 붕괴시키고 정권을 잡은 제1야당 민진당(당시 민주당)은 2012년까지 3명의 총리를 배출했으나 수권 태세의 부족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에 대한 미숙한 대처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이후 2012년 12월 중의원 선거 참패로 아베 자민당 총재에게 정권을 돌려준 뒤로는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왔다. 7월 2일 치러진 도쿄도의회 선거에서도 민진당은 기존 7석에서 5석으로 오히려 줄어드는 참패를 했다. 아베 총리와 자민당의 잇따른 실책에도 반사이익을 전혀 누리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9월 취임한 렌호(蓮舫·49) 대표도 당을 추스르는 데 실패, 7월 27일 취임 10개월여 만에 사퇴 의사를 밝혔다. 여기에 8월 4일에는 유력 간부인 호소노 고시(細野豪志·45) 의원이 탈당을 선언하는 등 당의 존속이 우려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9월 1일 치러질 새 대표 선거에서는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53) 전 관방장관과 마에하라 세이지(前原誠司·55) 전 외상의 1대 1 대결이 펼쳐질 전망이다. 두 사람은 리버럴과 보수로 정책지향점이 달라 결과에 따라서는 정당 재편을 촉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대두하고 있다. 민진당 내부는 개헌, 탈원전정책, 공산당과의 공동투쟁 등 굵직한 정책에서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이전부터 같은 당으로 존속할 수 있을지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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