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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리뷰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택시운전사’와 ‘화려한 휴가’ 그리고 춘향전과 레비나스

  • 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영화 ‘택시운전사’ 안에 ‘춘향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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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전문학의 백미로 꼽히는 작품 중 하나가 ‘춘향전’이다. 교과서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묻곤 한다. 춘향전에서 제일 중요한 장면이 어느 대목이라 생각하느냐고. 열에 아홉은 ‘암행어사 출도요’ 하는 장면을 꼽는다. 다시 묻는다. 그럼 ‘이몽룡전’이어야지 왜 춘향전이겠냐고. 그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답을 묻는다. 그럼 짓궂게 답한다. “친일파인 이인직도 아는 걸 당신은 왜 모르시냐”고.

전통 소설을 신소설로 바꿔 쓴 이인직이 춘향전의 제목으로 택한 게 ‘옥중화’다. 옥에 핀 한 떨기 꽃이란 소리다. 신임 사또의 수청 들기를 거부했다고 옥에 갇힌 춘향에게 한줄기 희망은 이몽룡이었다. 그런데 ‘백마 탄 왕자님’이 되어 나타날 줄 알았던 몽룡이 거지꼴로 나타났다. 모든 희망이 거품이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때 열여섯밖에 안 된 이 소녀의 반응이 어떠했는가. ‘이 길이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 할지라도 나는 나의 길을 걸어갈 터이니 사랑하는 저 사람에게 내 남은 것을 다 줘 고이 보내달라’고 오히려 어머니에게 읍소한다. ‘원나잇 스탠딩’도 마다 않고 사랑 타령만 하던 철부지 소녀가 부당한 공권력에 무릎 꿇느니 꽃다운 목숨을 버리겠노라며 민중의 영웅으로 거듭나는 장면이다. 회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인간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당당히 그 운명의 십자가를 짊어지겠다는 일대의 윤리적 전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운명을 사랑하라’(아모르 파티)의 실천이란 점에서 춘향전 최고의 명장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여기에 대고 ‘일부종사’라는 유교적 가치관을 들이대는 것이야말로 춘향에 대한 모독이다.



춘향 만섭과 몽룡 피터

영화 ‘택시운전사’를 보면서 춘향전이 떠오른 것은 두 작품이 모두 호남을 무대로 해서만은 아니다. 부당한 공권력이 행사될 때 인간적 위엄을 지키기 위해 가시밭길 걷기를 마다하지 않는 윤리적 전회의 진한 감동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영화 최대 수작이라 할 ‘택시운전사’를 ‘춘향전’과 오버래핑해보면 이는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실상을 카메라에 담아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목격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태우고 서울과 광주를 오간 택시기사 김사복의 실화를 극화한 영화다. 영화의 주인공 만섭(송강호)이 춘향이라면 그의 손님인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는 몽룡이다. 사실 만섭에겐 춘향의 모습만 있는 게 아니다. 그 어머니인 월매의 속물적 모습도 함께 서려 있다. 10만 원이란 거금이 탐나 1980년 5월 계엄령이 선포된 광주까지 왕복운행을 가로챌 뿐 아니라 광주에 도착한 뒤 그 실상을 목도하고 겁에 질려 달아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피터는 그런 만섭의 속물근성을 바로 간파한다. 몽룡이 춘향에게 접근할 때 기생 출신인 월매의 속물근성을 십분 활용한 것처럼 피터 역시 위기상황마다 지폐로 만섭을 어르고 달랜다.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한 춘향-몽룡 커플과 달리 만섭-피터 커플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오해와 경멸로 관계 맺음을 시작한다.

이런 냉랭한 관계는 광주에서 벌어지는 신군부의 무자비한 만행 앞에서 돈독한 관계로 변해간다. 그것은 피터가 ‘암행어사’임을 만섭이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부터다. 광주로 잠입한 그가 찍은 영상이 7년 뒤 전두환 군부정권의 ‘봉고파직(封庫罷職)’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피터는 암행어사인 셈이고, 그의 카메라는 마패인 셈이다. 이는 집회 중인 광주시민들이 카메라를 앞세운 피터를 열렬히 환영하는 장면에서도 확인된다. 그와 함께 이 영화 속 변학도가 누구인지도 확실해진다. 영화에 직접 등장하지 않지만 전두환이다.

하지만 돈 때문에 멋모르고 광주에 왔던 만섭은 적나라한 폭력 앞에 공포를 느낀다. 그래서 손님을 버려두고 도망갈 생각을 한다. 그것도 두 번이나. 두 번째는 손님 피터마저 이해해준다. 아내를 먼저 저세상에 보내고 초등학생 외동딸 은정(유은미)을 홀로 키우고 살아가는 가장의 선택을 누가 손가락질하랴. 그래서 새벽녘 혼자 빠져나가는 만섭을 붙잡지 않는다. 심지어 그들에게 하룻밤 숙식을 제공한 광주 택시기사 황태술(유해진)을 통해 약속했던 10만 원도 보내준다.


교차로 회차 장면의 미학

그렇게 만섭은 간다. 서울로 간다. 외동딸이 기다리는 서울로 간다. 선물로 줄 꽃신도 사들고 서울로 간다. 울적하고 찜찜한 기분을 씻어내려는 듯 ‘강물은 흘러갑니다, 제3한강교 밑을’로 시작하는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목 터져라 부르며. 그런데 이어지는 노랫말에 갑자기 목이 멘다. ‘어제 다시 만나서 다짐을 하고/우리들은 맹세를 하였습니다/이 밤이 새면은 첫차를 타고/행복이란 거리로 떠날 거에요.’

전날의 기억을 주마등처럼 흐르게 하는 가사여서다. 피터를 광주에 내려준 만섭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바로 차를 돌려 도망가려다 피터를 다시 만나게 되고 결국 서울까지 다시 데려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온갖 위험을 넘기며 취재에 동행하고 밤까지 함께 보냈지만 결국 새벽에 빠져나와 홀로 서울로 가고 있지 않은가.

교차로에서 신호가 바뀐 것도 모르고 멍한 눈빛으로 입술까지 떨던 만섭은 결국 차를 돌리고 만다. 춘향이 모든 희망의 등불이 꺼진 상황에서 자신을 짓밟으려는 정치권력에 홀로 맞서 싸우기를 결심했듯이 만섭 또한 어떤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야만적 쿠데타 세력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광주시민들의 애끓는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기자가 사실을 보도해야 하듯 택시기사는 손님을 원하는 곳까지 태워 줘야 한다. 돈 때문에 광주에 왔던 만섭이 ‘차마 어쩔 수 없는 마음(측은지심)’으로 인해 고귀한 사명감의 화신이 되는 윤리적 전회를 보여준다. 그걸 카메라 앞에서 표정연기 하나로 응축해낸 송강호의 연기 또한 일품이었다. 춘향전에서 옥중 재회 장면이 그러하듯 ‘택시운전사’에서 교차로 회차 장면이 최고의 명장면인 이유다.

차이도 존재한다. 춘향은 그 순간 자신과 변학도 간 싸움에 끼어들었다가 괜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몽룡을 놓아준다. 그가 자신을 구해줄 동아줄임을 까맣게 몰랐기 때문이다. 반면 만섭은 피터와 그를 쫓는 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피터의 탈출을 돕는다. 그가 광주시민을 도와줄 동아줄임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타자의 시선으로 포착된 광주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 중에서 대중적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는 김지훈 감독의 ‘화려한 휴가’(2007)가 있다.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의 작전명을 제목으로 삼은 이 영화는 사건의 주체였던 광주시민군을 전면에 내세웠다. 순박한 택시운전사 강민우(김상경)와 고교생인 동생 진우(이준기), 예비역 대령 출신의 택시회사 사장인 박흥수(안성기)와 딸인 간호사 신애(이요원) 같은 소시민들이 왜 죽음을 각오하고 국가 공권력에 맞서 싸우게 됐는지를 최루성 짙은 화면에 담아냈다.

당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100억 원이 넘는 제작비가 투입된 이 영화는 여름 블록버스터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신파로 중무장했고 당당히 살아남았다. 80년 광주의 진실에 대해 ‘몰랐던 게 아니고 알려고 하지 않았던’ 대중적 죄의식에 대한 일종의 ‘씻김굿’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사’는 이와 달리 타자의 시선으로 80년 광주를 포착한다. 그것도 이중적 타자의 시선으로. 첫 번째는 한국말도 못하는 외국 기자의 눈에 포착된 광주다. 이는 힌츠페터가 남긴 뉴스 영상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토대로 재현됐다. 더 끔찍한 장면도 있었지만 장훈 감독은 반박하기 어려운 최소한의 장면만으로 진실의 일말을 전한다. 대신 그 과정을 지켜본 또 다른 타자로서 만섭의 심리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영화 초반부 만섭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데모만 하는 녀석들”이라며 학생시위대를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중동 건설 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앞세우며 “사우디 사막 땡볕 아래 일해봐야지 정신을 차린다”고 말하는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꼰대’라 부르는 소시민적 정치관을 지닌 인물이다. 그에겐 일상이 진짜고 정치는 거품일 뿐이다.

그런 만섭이 일상을 열심히 좇다 도달한 곳이 하필이면 광주다. 거기서 그는 자신이 그렇게 신봉하던 일상이 정치권력에 의해 철저히 짓밟히는 것을 목도한다. 첫 반응은 외면이다. 못 본 척 그냥 지나가버리면 그만이다. 그래서 내빼려 했다. 그러다 측은지심에 주저앉은 할머니를 태워줬는데 그게 하필 병원이다. 공수부대원들의 폭압적 진압에 다친 부상자로 아수라장이 된 거기서 피터를 다시 만나고 만다.

새침하고 말이 없어 왠지 재수 없어 보이던 저 이방인은 도대체 왜 이 아수라장을 떠나지 않는 걸까. 그제야 만섭은 발견한다. 자신조차 외면하고 부인하려 했던 진실을 그 이방인은 열심히 카메라에 담고 있음을. 그리고 그런 그를 환대하는 대학생 구재식(유준열)과 황태술로 대표되는 광주시민의 순박하고 슬픈 얼굴을. 그 얼굴은 곧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가 말한 ‘절박하게 도움을 갈구하는 타자의 얼굴’이다.

제1철학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윤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설파한 레비나스는 그 윤리학의 핵심을 ‘타자에 대한 환대’로 풀어냈다. 여기서 타자는 누구인가. 레비나스의 표현을 빌리면 ‘춥고 어두운 밤 내 현관문을 두드리는 과부와 고아의 얼굴을 한’ 그 누군가다.

만섭은 그 얼굴을 봐버렸다. 김수영의 시 ‘사랑’에 등장하는 ‘번개처럼 번개처럼 금이 간 너의 얼굴’을 그만 보아버린 것이다. 만일 그 얼굴들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여전히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학생 시위대와 ‘광주의 폭도들’을 욕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가성인의 미학

‘보지 못한’ 만섭과 ‘봐버린’ 만섭은 결코 같은 사람일 수 없다. 피터를 광주에 남겨두고 홀로 상경길에 오르던 만섭이 불현듯 깨달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개인을 넘어서 자신을 닮은 무수한 대한민국 사람들에 대한 생각으로 확장된다. 보지 못한 그들도 봐버린다면 달라지지 않겠는가. 그 판도라의 상자를 열 사람이 누구인가. 카메라를 들고 고군분투하고 있는 저 이방인 아닌가.
 
‘택시운전사’는 이렇게 레비나스가 말한 타자성 속에서 구원의 연쇄효과를 발견해낸다. 이는 춘향전에서도 발견된다. 몽룡이 암행어사 신분을 감추고 춘향이 사건에 대한 민심을 떠보는 장면이다. 농부들은 춘향이 겪고 있는 봉변을 기생집 딸년의 스캔들로 취급하지 않는다. 힘없고 약한 민중에 대한 폭정을 상징하는 정치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일상을 위협하는 정치 앞에 나와 너가 따로 있을 수 없다는 혜안을 갖췄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춘향의 투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폭정에 신음하는 민중의 투쟁으로 격상된다.

이런 타자성의 연쇄효과는 피터에게도 적용된다. 만섭을 알기 전과 (비록 김사복이라는 가명일지언정) 만섭을 알고 난 후 피터가 대하는 한국 택시가 같을까. 저 수많은 택시 중 하나를 그가 ‘내 친구’라고 부르는 만섭이 몰고 있다 생각될 때도 여전히 심드렁할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만섭과 피터의 재회라는 해피엔딩으로 영화를 마무리하지 않은 선택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만가성인(滿街聖人)이라는 말이 있다. 온 거리에 성인(聖人)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구원이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자성과 익명성 속에 숨어 있다는 깨달음이 담긴 말이다. 지극히 평범한 제목의 이 영화에서 그 만가성인의 비범한 경지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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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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