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일파만파 육군 장성진급비리 수사내막

“국방장관, 수사팀에 직접 ‘장성 수사 가이드라인’ 제시했다”

  • 글: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4-12-24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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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급 탈락한 두 장성의 인사불만 표출이 내사 계기
    • 심사 전 진급예정자 결정, 선발위원회는 ‘거수기’
    • 국방장관, 비밀리에 수사팀 만난 사연
    • 기무사 추천 진급대상자 2명, 청와대 조율과정에서 탈락
    • 죽느냐 죽이느냐, 군검찰·육본·국방부의 3각 충돌 내막
    • 소령 군검찰관이 군복 입고 장성 조사하는 까닭
    일파만파 육군 장성진급비리 수사내막
    “아는사람에게는 상식일 뿐이다. 몰랐다면 바보지. 어제오늘 일도 아닌데 뭘 새삼스럽게….”

    육군본부(이하 육본) 진급과에서 장성 진급심사 전에 진급예정자 명단을 작성하고, 실제로 명단에 있는 사람들이 그대로 진급한 사실이 군검찰 수사로 밝혀진 데 대해 인사통인 군 관계자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윗선 개입여부에 대해서는 “유치원생 같은 질문”이라며 웃어넘겼다. 뻔한 얘기를 왜 하냐는 것이었다.

    ‘하나회 파동’ 백승도 장군의 불만표출

    장성진급비리를 수사하는 군검찰의 칼끝이 육본의 심장부를 겨누고 있다. 자체 내사와 청와대 투서 파동, 거기에 괴문서 살포사건이 덧붙여지면서 가속도가 붙은 군검찰 수사는 이제 고지 점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장성 진급심사자료 작성과정에 어떤 비리가 있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곧 이번 수사의 최종 목표인 군 인사시스템의 구조적 문제점을 파헤치는 것이다. 앞으로 외압만 없다면 수사팀은 소기의 성과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육군 장성진급비리에 대한 군검찰 수사가 시작된 것은 2004년 11월 중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국방부 검찰단으로 넘긴 투서가 계기가 됐다. 투서에는 준장으로 진급한 J대령의 음주운전 전력 등 10월에 있었던 장성진급인사에 대해 비리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군검찰은 그 전에 이미 장성진급비리의혹을 내사하고 있었다. ‘하나회 파동’의 주인공인 백승도 준장과 육군복지단장을 지낸 최광준 준장의 인사불만 표출사건이 있은 후다.



    백 준장은 남재준 참모총장이 승진탈락자를 위로하는 자리에서 남 총장에게 장성인사의 문제점과 ‘잘못된 진급사례’를 거론하며 격렬히 항의했다. 1993년 대령 시절 하나회 명단을 살포해 군 안팎에 파문을 일으켰던 백 준장은 인사 때마다 늘 주목대상이었다. 그가 속한 육사 31기가 소장진급 대상에 오른 것은 2001년. 진급기회는 보통 세 차례 주어진다. 그런데 육사 31기의 경우 2004년에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다. 백 준장이 전역지원서를 낸 것은 네 차례의 진급인사에서 모두 탈락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최 준장은 계룡대 참모총장실을 찾아가 보직이동 신고를 하는 자리에서 남 총장의 측근인 육본 고위관계자에게 “총장에게 인사문제로 진언할 내용이 있으니 시간을 따로 내달라”고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그 자리에서 전역지원서를 냈다. 최 준장은 신고식을 하지 않은 것은 물론 고위관계자의 악수도 뿌리친 채 돌아섰다.

    장성진급인사 직후 발생한 두 사건은 얼마 지나지 않아 군검찰의 첩보망에 걸려들었다. 이를 계기로 장성진급비리에 대한 내사에 들어간 군검찰은 청와대 투서를 명분삼아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자세한 내막은 ‘주간동아’ 2004년 11월30일자 참조).

    그 과정에 육군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진급심사 전에 진급예정자가 사실상 결정되고, 갑·을·병 진급선발위원회 및 선발심의위원회로 구성된 4심제는 ‘거수기’ 노릇만 한다는 것. 군검찰이 확보한 진급예정자 명단은 이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 중 하나다.

    진급과에선 계장이 과장보다 실세

    군인사는 크게 진급인사와 보직인사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육군에서 인사업무를 관장하는 부서는 인사참모부와 인사운영실 두 곳이다. 인사참모부에서는 진급인사를 총괄하고 인사운영실에서는 보직인사를 관리한다.

    인사참모부장이나 인사운영실장이나 모두 소장 보직이다. 하지만 인사운영실의 경우 실장이 공석인 탓에 준장 보직인 인사운영차장이 실질적인 책임자다. 현 인사운영차장은 이번에 군검찰에 불려가 참고인 조사를 받았던 박종왕(육사 32기) 준장이다.

    인사운영실은 진급인사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모든 장교에 대한 인사파일을 관리하는 까닭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진급과에서 진급심사자료를 작성할 때 인사운영실이 넘겨주는 인사파일을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 군검찰 주변에서는 남재준 총장이 지난번 장성진급인사 때 박 준장으로부터 몇 차례 보고를 받고 인사문제를 상의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진급인사업무를 지휘하는 인사참모부장은 남 총장의 핵심측근으로 알려진 윤일영(육사 29기) 소장이다. 인사참모부는 인사관리처 근무처 인사기획처 등으로 구성되는데, 그중 진급인사를 관리하는 부서는 인사관리처다. 이 때문에 인사관리처장은 ‘진급처장’으로도 불린다. 현재 이병택(ROTC 16기) 준장이 맡고 있다. 이 준장은 남 총장이 사단장을 지낼 때 예하 연대장이었다.

    인사관리처에는 인사관리과, 진급과 등이 있는데, 두 부서 모두 대령이 과장이다. 인사관리과에서는 주로 제도와 관련된 업무를 다루고, 진급인사의 실무는 진급과가 맡고 있다. 군검찰 수사과정에서 허위공문서 작성,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된 C, J 두 중령은 모두 진급과 소속 장교다.

    진급과에서 심사자료 작성 등 핵심 업무는 중령인 진급계장이 맡고 있다. 전통적으로 진급과장엔 비육사 출신이, 진급계장엔 육사 출신이 임명돼왔다. 이런 역학관계 때문에 인사시스템을 아는 장교들은 ‘진급과에서는 계장이 과장보다 실세’라고 말한다. 주요 사안의 경우엔 진급계장이 직접 인사관리처장에게 보고하기도 한다는 것.

    소문만 무성하던 진급과의 비리의혹은 2000년 6월 군검찰 수사에 의해 사실로 밝혀졌다. 당시 육본 고등검찰부는 진급청탁과 관련해 진급계장 문모 중령과 인사운영실 소속 김모 중령을 각각 1000만원, 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했다.

    그러나 이 수사는 숱한 의혹만 남긴 채 흐지부지 끝났다. 수사팀 주변에서는 진급비리 관련자가 100명에 이르고 장성들의 진급비리혐의가 포착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수사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고, 두 사람이 선고유예 판결을 받고 전역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그 과정에 축소·외압 의혹이 제기됐다. 군검찰 고위관계자가 군 고위층 압력에 굴복해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았다는 게 군내 정설이다.

    진급선발위원회에 간사로 배석

    진급과의 영향력이 큰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진급심사자료를 작성하기 때문이다. 진급인사의 첫 단계가 바로 진급과의 심사자료 작성이다. 진급과는 인사운영실에서 넘겨받은 장교 개개인의 인사파일을 근거로 해 심사자료를 작성한다. 이 과정에 기무사가 보관하고 있는 비리 관련 자료가 중대한 변수가 된다.

    작성된 자료는 진급선발위원회에 제출되기 전 인사검증위원회를 거친다. 지난해 남 총장 취임 직후 신설된 인사검증위원회는 11명 이하의 위원으로 구성돼 있다. 위원은 대령이다. 이 기구는 말 그대로 심사자료에 문제가 없는지를 검증한다. 하지만 인사부서의 최고위직인 인사참모부장과 차상위직인 인사관리처장이 각각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객관성과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인사검증위를 거친 진급심사자료는 갑·을·병 진급선발위원회로 넘어간다. 세 위원회에서 모두 추천을 받은 사람은 1순위로 진급이 거의 확정되지만 한두 위원회에서만 추천될 경우 최종심인 선발심의위원회 조율을 거쳐 결정된다.

    진급과의 힘이 센 또 다른 이유는 진급과 장교들이 각각의 선발위원회에 간사 자격으로 참석해 위원들에게 자료내용을 설명하기 때문이다. 장성진급인사의 경우 인사관리처장, 진급과장, 진급계장이 각 위원회에 간사로 배석한다.

    선발위원회 위원은 진급대상자보다 한두 계급 높은 장교들로 구성된다. 예컨대 준장 진급의 경우 소장과 준장이 위원을 맡고 위원장은 중장 또는 소장이 맡는다. 또 최종 선발심의위원회에는 갑·을·병 선발위원회 위원장 3명이 위원으로 참석한다. 위원장은 선임 중장이 맡는다.

    선발심의위원회가 추천한 진급대상자 명단은 참모총장 결재를 거쳐 국방부로 올라간다. 영관장교 진급인사는 국방부 장관의 결재로 확정된다. 반면 장성 진급인사의 경우 국방부 제청심의위원회 심의와 국방부 장관의 결재를 거친 후 마지막으로 대통령 재가를 받아 확정된다.

    군 관계자들에 따르면 진급과의 심사자료 작성과정에는 업무체계상 군 고위층의 의중이 반영될 공산이 크다. 영관장교 진급인사는 인사관리처장이, 장성 진급인사는 인사참모부장 이상의 고위직이 주관하는 것이 관례다.

    인사업무에 정통한 한 영관장교는 “진급과에서 미리 될 사람, 안 될 사람을 구분해 만든 자료를 선발위원회에 제출하기 때문에 진급심사는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고 증언했다. 육본 인사참모부 근무경력이 있는 한 예비역 장교는 “윗선에서 누군가를 진급시키거나 떨어뜨리려면 진급과를 통해 불리하거나 유리한 기록을 빼거나 고치면 된다”고 귀띔했다.

    지금까지 진행된 수사내용은 이들의 증언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수사의 주요 성과물로 관심을 끌고 있는 진급예정자 명단은 진급과 실무자인 C중령이 만든 것이다. 군검찰은 육본 인사참모부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이 문서를 찾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문서 제목은 ‘임관부문별 유력경쟁자 현황’. 군검찰에 따르면 C중령이 이 문서를 처음 만든 것은 2004년 3월이다. 준장 진급정원 52명의 2~3배수에 해당하는 명단이었다.

    7~9월경엔 정원에서 2명 모자라는 50명의 진급예정자 명단에 동그라미가 표시됐다. 2명이 빠진 것은 기무사 추천 몫이었기 때문이다. 진급심사 이틀 전인 10월3일엔 기무사 추천 몫 2명을 포함해 진급정원과 같은 52명의 진급유력자 명단이 작성됐다.

    이 명단은 갑·을·병 심사위원회와 최종심의를 하는 선발심의위원회 및 국방부 제청심사위원회를 거쳐 청와대에 올라간 준장 진급후보자 명단과 거의 똑같았다. 심사 당일 최종 작성된 명단에 오른 대령 52명 중 기무사 추천 2명을 제외한 50명이 진급했다. 기무사 소속 진급후보자 2명이 바뀐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일파만파 육군 장성진급비리 수사내막

    군검찰의 장성진급비리수사와 관련해 사표를 제출했던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은 “장성진급인사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졌다”며 공개적으로 군검찰 수사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냈다.

    진급과에서 작성한 명단은, 진급심사가 형식적인 절차이고 실제로는 그 전에 진급대상자가 내정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에 대해 명단 작성자인 C중령은 “임관부문별 공석(TO)을 판단하기 위해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작성한 것으로 선발위원회에는 넘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또 명단과 실제 진급자가 청와대 재가과정에서 바뀐 2명을 빼고 똑같은 데 대해서는 “매년 1월부터 인사철인 10월까지 우수자원에 대한 판단작업을 벌인다”며 “적중률이 낮다면 오히려 이것이 부끄럽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C중령의 항변은 타당한 것일까. 인사통인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전에 진급예정자 명단을 만드는 데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선발위원회에서 진급대상자 600여명에 대한 심사자료를 하루 이틀에 검토할 수 있나. 제대로 하려면 아마 1년 내내 심사를 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불려온 심사위원이 뭘 안다고 심사를 하겠나. 따라서 사전에 상부 조율과정을 거쳐 진급대상자를 내정해둘 수밖에 없다. 심사는 어느 정도 (자료가) 정리된 상태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개인적인 차원에서 만들었다”는 C중령의 주장에 대해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발견됐으니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거지, ‘참고용’이라고. 윗사람의 지시는 말로 이뤄지지 문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본인이 시인하면 모를까 윗선 개입을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진급인사 비밀을 아는 사람은 군내에서 극소수다.”

    진급심사와 관련해 군 인사부서 장교들 사이에서는 예비역 중장인 김복동 전 의원 관련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 1980년대 초 김 전 의원이 육사교장으로 있을 때 군 고위층 인사가 그에게 장성진급심사위원회 위원장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내가 실제로 심사할 수 있게 해주면 맡겠다”고 조건부 수락의사를 밝혔다. ‘당연히’ 그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심사위원장직 제의는 없던 일이 됐다.

    윗선 개입사실을 부인하던 C중령은 영장실질심사 때 군판사에게 “상관의 지시를 받아 진급유력자 명단을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검찰은 C중령의 상관인 모 장성이 진급유력자 명단 작성과 일부 진급대상자들의 인사기록 변조과정에 개입한 혐의를 잡고 조사하고 있다.

    군검찰에 따르면 육본 인사참모부는 진급이 내정된 대령 50명을 위해 이들과 경쟁관계에 있는 대령 10~15명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비리의혹을 별도 문서로 작성해 진급선발위원회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검찰은 또 인사참모부의 실무자들이 2004년 9월23일 열린 인사검증위원회에 이 문서를 제출하지 않았으면서도 문서에 적힌 비리혐의가 인사검증위원회에서 사실로 확인된 것처럼 서류를 조작해 진급선발위원회에 제출한 혐의를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 혐의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인사부서 고위 장성을 비롯한 육본 수뇌부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군검찰은 이번 기회에 진급인사비리의 뿌리를 파헤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인사부서 장성들을 소환조사하는 것은 그 같은 의지의 강력한 표출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사가 순풍에 돛을 단 것만은 아니다. 육본측이 워낙 강하게 반발하는 데다 국방부 수뇌부도 수사확대를 부담스러워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사 초기엔 육본과 국방부가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군검찰이 육본 인사참모부를 압수수색한 것은 실무자들이 수사에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남재준 총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윤광웅 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내가 군검찰에 직접 내사를 지시하고 육본 지휘부에 협조할 것을 지시했는데 실무자들이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그래서 압수수색을 하게 됐다”며 군검찰 수사를 지원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청와대 검증과정에서 2명 탈락

    장관과 총장의 대립은 이번 수사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군검찰 수사가 자체 내사에 이은 청와대 투서사건으로 촉발됐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장관과 총장의 갈등설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장관이 남 총장에게 준장진급인사와 관련해 재고를 요청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도 마찬가지다.

    군인사에 정통한 국방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번 장성진급인사는 ‘남재준 총장의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다. 관례적으로 ‘우대’를 받아온 합참과 국방부 소속 대령들의 진급률이 육본 소속에 비해 현저히 낮은 것만 봐도 그렇다. 김종환 합참의장이 장성인사 문제로 남 총장과 크게 언쟁을 벌이는 한편 남 총장의 측근인 모 장성을 심하게 몰아세운 사실은 국방부 주변에 널리 알려져 있다(‘주간동아’ 2004년 11월30일자 참조).

    과거엔 장성인사에 국방부 장관의 몫이 있었다. 실세 장관의 경우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의원 등 정치권 인사의 입김도 배제할 수 없었다. 군 통수권자가 앉아 있는 청와대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장관과 대통령이 인사에 관여하는 것을 무조건 외압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장관이나 대통령이 결재과정에서 인사안을 조정하는 것은 법적으로 주어진 인사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긴 해도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장관과 대통령의 영향력 행사는 외압 또는 부당한 개입으로 비칠 소지가 다분했다.

    과거 장성인사는 발탁인사의 성격이 짙었다. 대령 진급까지는 대체로 내부 경쟁으로 결정됐지만 준장 이상의 경우 청와대가 통치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번 일로 육본은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말하자면 외부 개입을 배제하고 대부분의 진급대상자를 군이 독자적으로 결정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를 일으켰으니 앞으로 인사기준과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난감해졌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육군 장성진급인사의 경우 청와대나 국방부가 사전에 개입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국방부와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육본에서 작성한 원안이 거의 그대로 통과된 것으로 보인다. 예외라면, 앞서 언급했듯 기무사에서 추천한 진급대상자 2명이 청와대 결재과정에서 바뀐 것이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이 ‘청와대의 인사개입’이라고 보도하자 청와대는 ‘정당한 인사권 행사’라고 반박하며 기무사에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 사건을 계기로 기무사의 권한과 기능을 재조정하는 개혁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청와대와 마찬가지로 윤광웅 장관도 인사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가 해군 출신이라는 점. 3군의 역학관계상 군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육군을 타군 출신이 지휘하는 데는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문민정부 시절 공군 출신인 이양호 장관이 뇌물수수사건에 휘말려 불명예 퇴진한 것도 군인사를 둘러싸고 육군 수뇌부와 갈등을 빚은 것이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게 군내 정설이다. 청와대로부터 군 개혁의 임무를 부여받고 취임한 윤 장관은 육군측의 거센 저항에 직면해 있다. 육본의 협조가 없으면 군 개혁작업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인사에 대한 장관의 영향력이 원천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 장관, 수사팀 직접 만나

    현재 군검찰과 육본, 국방부는 3각 갈등관계다. 군검찰과 육본, 육본과 국방부의 충돌에 이어 군검찰과 국방부 관계도 삐걱거리고 있다. 이는 이번 수사에 대한 군 안팎의 반발을 의식한 국방부 수뇌부가 적당한 선에서 수사가 마무리되기를 원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갈등은 육본 인사참모부 소속 J대령에 대한 군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국방부 수뇌부가 승인하지 않고 있는 데서도 엿볼 수 있다. 현행 군 사법체계에 따르면 군검찰이 군사법원에 대령급과 장성급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각각 국방부 차관 및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사전 결재를 받아야 한다.

    J대령은 진급과 소속 J중령에게 서류조작 등을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군검찰은 J중령이 허위공문서 작성과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된 만큼 상관인 J대령에 대한 구속수사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방부측은 “영장에 청구된 범죄혐의가 약해 좀더 보강하라는 취지”라면서도 “증거인멸 우려가 없는 대령을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며 수사 강도를 조절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군내 유력한 소식통에 따르면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최근 수사팀 책임자를 비밀리에 만났다. 군검찰 지휘부의 보고만으로는 사태 파악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수사팀으로부터 직접 수사 진행상황을 보고받기 위해서였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수사팀 책임자에게 수사범위를 장성급으로는 확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일종의 가이드라인인 셈이다. 그러나 수사팀은 이에 반발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 장관은 이에 대한 ‘신동아’의 질의에 대해 국방부 대변인실 관계자를 통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원칙과 법에 따라 수사해야 한다’는 윤 장관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

    국방부 장관이 군검찰 수사에 관여하는 것은 위법사항은 아니다. 군 사법체계상 장관은 관할관으로서 국방부 검찰단 수사를 일반적으로 지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민간에서 법무부 장관이 검찰수사를 일반적으로 지휘하는 권한을 가진 것과 비슷한데, 법무부 장관과 달리 국방부 장관이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다. 국방부 장관은 장성 수사의 경우 입건, 구속영장 청구, 기소, 심판관 선정, 군사법원의 선고형량 조정 등 수사와 재판 전 과정에 관여할 수 있다.

    그렇긴 해도 장관이 수사중인 사건과 관련해 직접 수사팀에 이런저런 지시를 했다면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군검찰 수사에 정통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이 그런 지시를 하는 것은 위법은 아니다”라면서도 “수사범위를 제한하는 발언을 했다면 구체적으로 수사에 개입한 것이 된다. 이는 주어진 권한을 벗어난 적절치 못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윤 장관이 군검찰 수사팀에 장성 수사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는 얘기는 청와대 주변에서도 들린다. 청와대 관계자는 “그런 얘기를 들었다”며 “수사가 진행중인 상태에서 그런 언급을 했다면 장관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든 군검찰이든 수사는 성역 없이 해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철학”이라며 “청와대는 군검찰의 수사를 주시하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군복 입고 장성 조사

    군검찰은 영장 청구 문제로 국방부와 갈등을 빚으면서도 성역 없이 수사한다는 원칙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다른 사정도 있다. 군검찰이 수사권을 갖고 있다면 육본은 인사권을 갖고 있다. 비리를 확실하게 밝히지 못하고 수사를 어정쩡하게 끝낼 경우 육본측으로부터 ‘보복’당할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 향후 보직인사에서 수사에 참여한 군법무관들이 피해를 입는다면 자연스럽게 육본의 보복 의혹이 제기될 것이다.

    육본측도 필사적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다. 남재준 총장은 취임 직후 인사청탁 척결방침을 밝히면서 인사검증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유난히 공정한 인사를 강조해왔다. 역대 장성인사에 비하면 외부의 압력이나 청탁을 많이 물리친 편이라는 평도 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인사후유증이 심하게 나타난 것이다. 인사비리를 고발하는 청와대 투서 및 괴문서 파동에 이어 군검찰 수사로 창군 이래 처음으로 육본 인사참모부가 압수수색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면서 육본의 체면은 여지없이 구겨졌고 남 총장의 자부심은 산산조각이 났다.

    남 총장에겐 엄청난 모욕이었다. 그의 사표 제출은 인사비리 파동에 대한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에게 모욕감을 안겨준 군검찰 수사를 ‘허락한’ 장관과 대통령에 대한 항의 표시였다.

    남 총장의 항의성 사의 표명이 정당한 행위였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군검찰 수사가 성과 없이 끝나야 한다. 군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고 있는 인사부서 장교들이 혐의사실을 철저하게 부인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군검찰관은 평소 사복을 입는다. 피의자를 심문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번 수사과정에서 일부 군검찰관은 장성을 조사하는 경우에 한해 군복을 입고 있다고 한다. 수사를 주도하는 국방부 검찰단 검찰부장의 계급은 소령이다. 소령인 군검찰관이 장성을 조사할 때 굳이 계급장이 붙어 있는 군복을 입는 것은 이런 뜻이다.

    ‘당신이 진정 장군이라면 하급자 앞에서 거짓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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