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나와 가족의 미래 가장 잘 아는 보험, 은행·투신 제치고 최후의 승자 될 것”

  • 글: 허 헌 자유기고가 parkers49@hanmail.net

    입력2004-12-27 10: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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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은 무엇인가.그 분야에선 어떻게 해야 돈을 벌 수 있는가.’
    • 당신은 이런 질문에 얼마나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가. 이는 당신이 종사하는 ‘업(業)’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냐는 문제와 직결된다. ‘업(業)’의 본질을 알면 그 업종의 현재와 미래가 한눈에 보인다. 금융업 유통업 등 각 분야에서 30년 가까이 일하며 일가(一家)를 이룬 고수들이 말하는 ‘업(業)의
    • 세계’를 연재한다.[편집자]
    “나와 가족의 미래 가장 잘 아는 보험, 은행·투신 제치고 최후의 승자 될 것”
    1990년대 초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신경영’을 선포하기 전 1급 참모들을 데리고 독일과 싱가포르 등 전세계를 돌아다닐 때의 일이다. 이 회장은 가는 곳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던져 주변 참모들이 진땀을 뺐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항공여객기는 어떤 업(業)인가.”

    “글쎄요….”

    “비행기는 뜨는 업이지. 비행 스케줄을 잘 정해서 비행기가 떠 있는 시간이 길어야 돈을 많이 벌잖아. 그럼 백화점은 무슨 업이야?”



    “유통업 아닙니까.”

    “아냐, 부동산임대업이지. 백화점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건물을 지어놓으면 그것으로 이미 80%는 성공한 거야.”

    이런 농담 아닌 농담을 주고받은 이 회장은 사실 신경영을 발표하기 전 이어령 선생 같은 미래학자 겸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업의 본질을 정리할 수 있었다.

    10년도 더 지난 얘기지만, 이 같은 질문은 아직도 유효하다.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의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당신은 경영자인가.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물어보라. 회사의 업이 무엇이냐고. 과연 당신이 정의한 업과 직원이 정의한 업이 같을까. 같다면 당신 회사는 성공하는 회사다.

    무슨 일이든지 업종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 헤맬 때, 업계에서 20∼30년 동안 활약하면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로 평가받는 우리 시대의 ‘스승’에게 업의 개념을 묻고, 10년쯤 뒤 그 업이 어떻게 변화할지 들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최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금융업부터 출발해보자.

    금융업의 미래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렵다. 은행 증권 투자신탁 보험 등 전통적인 금융업종의 경계가 사라져가기 때문이다. 은행 창구에서 종신보험을 팔고, 보험사 영업사원이 정기적금 상품이나 증권사의 수익증권을 판매한다. 그렇다면 증권사는 짜릿한 흥분을 맛보고 싶은 ‘투기적’ 투자자들의 놀이터로 변하고 말 것인가. 그렇지 않다. 증권사 직원 역시 수익증권은 물론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보험상품도 판다.

    이쯤 되면 ‘나는 은행원, 너는 보험맨’ ‘나는 증권맨, 너는 투신맨’ 식의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일터가 은행이고 보험사이고 증권사일 뿐 이들은 오로지 한 명의 고객을 앞에 두고 100m 달리기를 하는 금융회사 직원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전쟁의 최종 승자는 누가 될까.

    생일 챙겨주는 사람 누군가

    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이자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을 역임한 윤병철 재무설계 국제표준기구(FPSB) 회장은 전통 은행원 출신이면서도 보험사 직원이 최후의 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유는 간단 명료하다. “누가 가장 고객을 잘 알고 있느냐”란 질문에 “나요!” 하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 보험맨이라는 것이다.

    한번 따져보자. 은행, 증권사, 보험사 그리고 투신사 중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1년에 서너 차례 당신에게 전화를 해주고, 생일도 꼬박꼬박 챙겨주는 금융회사 직원이 누구인가. 혹시 보험사 직원이 아닌가. 필자의 경우에도 오로지 보험사 직원만이 내 가족과 내 미래의 계획에 대해 알고 있다.

    요즘은 국내 보험사 직원들도 노트북 컴퓨터를 갖고 다니면서 재무회계 프로그램을 통해 고객의 재무상태를 분석해주고, 노후대비 자금이 얼마나 필요한지 파악해주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종신보험을 판매하는 외국계 보험사 직원들만 이런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다룰 줄 알았다. 이들 보험사 직원이 경영학 석사 출신인지,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반도체 회사에서 일하다가 보험맨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이들의 프레젠테이션 솜씨를 보면 아예 굴리고 있는 돈을 통째로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다. 요즘처럼 보험사 직원이 다른 금융회사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시대가 계속된다면 앞으로 보험사 직원이 고객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나와 가족의 미래 가장 잘 아는 보험, 은행·투신 제치고 최후의 승자 될 것”

    윤병철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

    보험사와 은행은 서로 영역을 넓히기 위해 어쩌면 끝나지 않을지도 모를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할 운명에 놓여 있다. 보험상품을 만들 뿐 아니라 보험금 결산까지 해주는 보험계리사 1호이자 삼성생명 이사를 지낸 서병남 인스밸리 사장은 “보험업은 원래 리스크(위험)를 관리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지금은 장기자금을 관리하는 분야까지 영역이 넓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손해보험은 예상치 못한 사고에 대비한 위험 관리가 가장 중요한 영역이지만, 생명보험은 10년 이상 장기자금을 관리하는 쪽으로 업무의 핵심영역이 이동한다는 것이 서 사장의 예측이다. 이는 최근 들어 보험업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변액보험 상품을 들여다보면 서 사장의 예측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변액보험은 보험과 은행의 기능을 합친 퓨전 형태의 보험이다. 즉 보험과 투자신탁 그리고 예금을 결합시켜 고객의 자금을 불려주기 위해 디자인된 상품이 바로 변액보험 상품인 것. 물론 변액보험에서 손실이 발생하면 이는 고객의 책임이다. 고객과 상의해서 투자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변액보험은 투자에 대한 위험을 고객과 보험사가 분담하면서 투자 이익금을 나눠 갖는 형태를 띈다.

    서병남 사장은 “은행이나 투신상품은 삼각형이고, 보험상품은 사각형”이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들었다. 예컨대 만기 때 1억원을 받는 상품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은행에서 팔든, 보험사에서 팔든 10년 뒤에 1억원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같은 상품이다. 다른 점은 보험에 가입한 사람은 1년만 돈을 내고 사망한다고 해도 1억원을 받지만 은행이나 투신사의 금융상품은 10년간 꾸준히 돈을 투자해야만 이자가 불어나면서 1억원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행이나 투신의 금융상품이 삼각형 구조라면, 보험상품은 10년 안에 어느 때든 사망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 언제든 1억원을 탈 수 있다(물론 돈을 받는 사람은 살아 있는 가족이겠지만)는 측면에서 사각형 구조라는 얘기다.

    이 같은 상품을 팔기 위해서는 보험사 직원이 은행과 투신업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점에서도 금융회사 융합현상은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윤병철 회장이 지적한 것처럼 앞으로 금융회사의 생존 여부는 고객의 개인 자산을 누가 더 잘 관리해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개인자산관리 시장에서 1인자가 되지 못하는 금융회사는 도태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윤 회장은 은행업을 ‘돈 심부름’이라고 정의한다. 돈을 갖고 있는 고객과 돈이 필요한 고객 사이에서 돈을 빌려주고 이자와 원금을 받아주는 것이 은행원의 역할 중 핵심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은행원은 돈 심부름꾼인 셈이다.

    윤 회장은 1985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사장 시절, 금융업의 목표를 직원들과 공유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돈 심부름을 정확하게 하는 금융업의 기본원리를 사장과 직원이 공유하도록 했다. 윤 회장은 “기본원리를 공유하는 것보다 기업에 더 큰 힘이 되는 것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은행은 은행가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던 곳이다. 그러나 원래 은행이 아니라 단자회사(단기로 자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던 금융회사. 지금은 은행에 흡수돼 자취를 감췄다)로 출발한 때문인지 은행 특유의 보수적인 태도보다는 제조업체처럼 유연한 사고를 갖춰 금융권 관계자와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나은행은 일개 단자회사로 출발, 은행으로 업종을 넓히더니 대형 은행들과 경쟁하는가 하면, 지난해에는 서울은행을 인수해 외국인들의 관심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저력을 확인한 외국인들이 하나은행의 지분을 대량 매입해 지난해 가장 높은 주가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윤 회장은 하나은행의 기틀을 잡은 금융인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경험을 인정받아 우리금융지주회사의 초대 회장으로 영입되었다. 지금도 금융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해 재무설계사협회 회장을 맡는 등 현장에서 활발하게 뛰고 있다. 하나은행의 성장과정을 보면 윤 회장이 은행업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앞으로 은행의 운명이 어떻게 바뀌게 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윤 회장의 역사관에 따르면 “결국 사회는 일정한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그 방향은 자유화다. 윤 회장은 “세상의 흐름을 짚는 데 자신감을 갖는다면 분명 앞서나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 성업중인 것들은 곧 없어질 것”이라고 단언한다. 하나은행의 전신인 단자회사가 좋은 예다.

    과거 정부가 특정 회사에게만 단자영업을 허용하던 시절, 단자회사는 그야말로 잘나가던 업종이었다. 1980년대 상과대학에서 공부깨나 했던 사람들의 취업 희망 1순위가 바로 단자회사였다. 돈을 잘 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유화의 추세를 감안한다면 단자회사란 영업형태는 한시적인 것이다. 언젠가는 규제가 풀려 단자영업을 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단자영업만 해온 금융기관은 도태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 회장이 이끌던 한국투자금융 역시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내가 만약 사장이라면”

    윤 회장은 한국투자금융 사장 시절, 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할 것을 결심한다. 지금이야 이를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이지만, 시계를 20년 전으로 돌려놓고 생각해보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돈 잘 버는 업종을 버리기도 어려운 일이지만, 은행업으로 전환하는 길이 막힌 상황에서 업종 전환은 한 개인의 상상력으로만 치부됐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전 직원이 변화의 이유와 생존의 방향을 공유한다면 길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전 직원을 직급별로 한 줄로 세워놓고 가장 앞에 서 있는 몇 명에게 경영자의 역할을 맡겼고, 해마다 또 다른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경영자를 경험하도록 했다. 말하자면 ‘섀도(shadow) 경영진’을 만든 것이다.

    그들에게 ‘내가 만약 사장 또는 이사라면’이라는 가정 아래 어떤 환경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고민하도록 했다. 물론 고민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회사측에서 제공했다. 회사의 재무제표뿐 아니라 직원들이 알고 싶어하는 모든 경영정보를 공개해 합리적인 판단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수년 동안 ‘도상훈련’을 시킨 결과 직원들의 생각은 결국 ‘은행으로 가자’는 데 모아졌다. 드디어 목표와 방향을 공유하게 된 것이다.

    이후 하나은행 직원들은 분위기가 무르익기만을 기다렸다. 결국 1989년 미국이 한국정부에 무역역조 현상을 시정하라면서 금융시장 개방을 요구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면 단자회사처럼 한국에만 있는 특수 금융회사는 사라질 것이 분명했다. 이렇듯 금융시장의 구조조정 문제가 불거지고 사회문제로까지 비화되자 정부는 단자회사가 은행으로 전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행복을 배달합니다”

    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은행 직원들은 은행으로 업종을 전환하기로 하고 임금의 30%를 깎는 데에 합의했다. 기본에 충실한 하나은행에 대해 고객들은 ‘하나은행이 돈 심부름은 정확하게 하더라’는 평가를 내렸고, 세계적인 은행 평가사 유로머니도 하나은행을 국내 최고은행으로 선정했다.

    흥미로운 것은 윤 회장이 은행업을 ‘돈 심부름’에서 ‘행복 심부름’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은행장 시절 그는 돈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돈의 궁극적 가치는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편이 아닌가. 그래서 그는 행복해지는 방법 하나를 개발했다. 바로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 회장은 하나은행장 시절 미술산업을 지원하고 투자하는 데 많은 노력을 쏟았다.

    직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4000만원짜리 그림을 구입해 은행에 걸어놓았다가 1년도 안 돼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사망하면서 그림 값이 1억원으로 껑충 뛴 일도 있었다. 행복해지기 위해 시작한 일이 돈까지 벌어들이자 직원들도 회사가 미술산업을 지원하는 데 더이상 불만을 늘어놓지 않았다. 당시 ‘행복 심부름꾼’ 역할에 감명받았던 하나은행 직원은 현재 미술품을 경매하는 서울옥션의 대표를 맡고 있다.

    동네 은행의 직원이 고객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행복을 배달해준다고 생각해보자. 은행원이 천사처럼 느껴질 것이다.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을 왜 반기지 않겠는가.

    요즘 국내 은행들은 합병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유명한 은행이 한국의 은행을 인수하면서 국내 은행들을 바짝 긴장시키고 있다. 이러다 보니 언론은 언론대로 은행자산을 비교하고 선진 금융기법을 열거하면서 누가 최종승자가 될 것인지 분석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윤 회장의 말처럼 누가 가장 고객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지 분석할 수만 있다면 자산규모가 얼마가 됐든, 또 어느 나라 출신이든 최후의 승자는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대우증권 출신으로 뒤늦게 투자신탁업에 뛰어들었다가 이젠 ‘투자 전도사’로 활약하고 있는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투신업은 개인고객을 ‘꼬시는’ 업종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강 소장이 이렇게 개인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투신업은 개인고객보다는 법인고객이나 기업고객을 잡는 데만 노력을 기울였다. 기업고객의 돈은 개인고객 몇백 명의 돈을 합친 것보다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투신사들은 기업고객을 붙잡기 위해 개인고객의 이익을 희생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과거 투신사들은 공공연히 이런 영업방식을 고수했고, 비도덕적인 일부 투신사들의 행위가 언론에 폭로되기도 했다.

    이런 대접을 받은 투신사의 개인고객들은 당연히 투신사를 떠났다. 개인 투자자들이 아직까지 투신사를 불신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소장은 “현재 투신시장 자금의 80%가 기관 자금이어서 개인의 이익은 고려되기 힘든 구조”라며 “투신업이 법인의 단기자금 조달을 도와주는 업종으로 전락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강 소장은 25년간의 증권맨 생활을 청산하고 1999년 현대투자신탁 사장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 현대투신은 ‘바이코리아’란 펀드로 투신권에 돌풍을 일으켰던 곳.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이 일으켰던 ‘바이코리아’ 열풍은 초기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지만 결국 대부분 투자에 실패했고, 이 전 회장은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다.

    “나와 가족의 미래 가장 잘 아는 보험, 은행·투신 제치고 최후의 승자 될 것”

    강창희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

    당시 강 소장은 투자자들을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린 끝에 투신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결국 그는 현대투신을 떠나 굿모닝투신(현재는 PCA투신) 사장으로 옮겼다. 이후 투신업은 기업고객보다 개인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어야 성공한다는 생각에 업계 최초로 투자교육연구소를 만들었다. 강 소장은 지금도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으로 일하면서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용차도 마다한 채 투자교육이 필요한 현장으로 달려간다.

    동료나 후배들이 투신사 사장으로 갈 때 강창희 소장이 강조하는 말이 있다. “투신은 주식이나 채권을 싸게 사서 비쌀 때 파는 업이 아니다”는 것이다.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아야 수익이 나는 것 아닌가. 그러나 그는 투신은 그런 소문이 나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투신사는 돈을 잘 불리는 곳보다는 돈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이 돼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투신사가 새로운 펀드를 만든 뒤 3년내에 실패율이 높은 것도 이 기간 안에 승부를 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을 탓할 수는 없다. 일정 기간 내에 승부를 내지 못하면, 다시 말해 수익률이 업계 상위권에 오르지 못하면 퇴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기다림의 미학’

    그러나 강 소장은 3년 동안 브랜드를 알리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기다릴 것을 당부한다. 만약 이 기간을 참지 못하고 환매를 원하는 고객이 있다면 아예 처음부터 돈을 받지 말아야 한다. 도중에 내릴 사람을 태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옆 사람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일본에서도 투자강연을 하는 강 소장은(그는 일본에서 증권론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일본어로 강연한다) 일본의 한 펀드를 예로 들어 투신업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일본의 한 사모펀드 운용역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가 운용하는 펀드의 경우 시장가치가 3년 동안 하락하는 데도 수탁고는 꾸준히 늘고 있었다. 수익을 내지 못하는 데도 고객들이 몰리는 이유는 단 하나. 초기 3년 동안 무리하게 수익을 내기보다는 브랜드를 알리고, 최선을 다해서 양심적으로 운용하겠다는 신뢰를 심는 데 주력했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서 알 수 있듯 초기 3년만 신뢰를 구축하면 수탁고는 3년 뒤 급격하게 증가한다. 그래프로 그린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수탁고가 늘어나는 피라미드 모형이 아니라, 초기 3년 동안은 거의 수평적인 움직임을 보이다가 3년 뒤 수탁고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형태가 바람직하다.”

    투신사 사장들도 할말은 많다. 대부분 전문경영인 출신인 이들은 수익률로 경영성과를 평가받기 때문에 강 소장의 주장대로 운용하다가는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항변할 것이다. 그리고 돈이 많은 기업고객을 놓친다면 그것만으로도 퇴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개인고객을 위해 성심성의껏 뛰어줄 투신사는 영영 만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해 강 소장은 현재 자본금 100억원 이상이어야 투신업 허가를 내주는 규제를 완화해 10억원만 있어도 투신업을 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재능 있는 투자 전문가가 나름대로 철학을 갖고 개인고객의 자금을 불려줄 수 있는 통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에는 금융감독 당국이 관리감독을 철저하게 해서 사기꾼들을 잡아내고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감독은 철저하게 하되 놀이터는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강 소장의 소신이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에 몰려드는 이유는 한국의 개인 금융자산이 세계 10∼15위 수준으로 높기 때문”이라며 “이 자금을 한국 사람이 운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동부증권 정종열 사장은 증권업에 30년 이상 몸담아온 ‘진짜 증권맨’이다. 다른 어느 업종보다도 이직률이 높은 증권업에서 이 정도 세월을 견디면서 한 번도 샛길로 빠진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정 사장은 이 분야의 ‘최고수’라고 할 만하다.

    증권업은 유혹이 많은 직업이다. 늘 돈이 떠돌아다니다 보니 내 돈이 아닌 돈을 내 돈처럼 생각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고, 이러다 보면 고객의 돈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기본 원칙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보더라도 정 사장은 증권업계에서 커다란 신뢰를 얻고 있는 실력자임이 분명하다.

    정 사장은 독특한 철학을 갖고 있다. 1등보다는 2등이나 3등을 하는 사람이 증권업에 적합하고, 진취적인 사람보다는 보수적인 사람이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업계에서도 1등보다는 1등 뒤에서 달리는 증권사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1등이란 늘 무리하게 앞서가려 하기 마련이고, 그러다 보면 반드시 실족한다는 것을 그는 오랜 경험을 통해 터득했다.

    “나와 가족의 미래 가장 잘 아는 보험, 은행·투신 제치고 최후의 승자 될 것”

    정종열 동부증권 사장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등장한 현실에 대해서도 그는 할말이 많다. 물론 억대 연봉을 받는 애널리스트가 출현하는 것 자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과연 그들이 고객들에게 그만한 몫을 해주고 있는지는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는 ‘애널리스트’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인 1980년대부터 기업분석을 담당해 업계에선 애널리스트 1세대로 통한다. 그럼에도 정 사장은 요즘 애널리스트들은 자신 있게 종목을 추천하거나, 추천종목에서 빼지 못하고 적당히 ‘면피’하는 데만 급급하다는 따끔한 지적을 잊지 않는다. 때로는 애널리스트들끼리 모여 의견을 조율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증권업이 고객들로부터 ‘뒷북치기업’이라는 비난을 받는 것이라고 고백한다.

    정 사장은 신영증권 출신이다. 신영증권은 한 번도 업계 1위인 적이 없지만, 설립 이후 지금까지 탄탄하게 성장한 알짜 증권사다. 신영증권처럼 수익을 내서 자본금을 늘려간 증권사는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대부분 증권사는 증자를 통해 자본금을 늘렸다.

    “시장점유율에 집착하지 말라”

    신영증권 설립자인 원국희 회장은 ‘열심히, 그러나 천천히 가는’ 금융인의 대표적 인물이다. 원 회장은 서울대 상대를 졸업하고 대림산업에 입사했다가 증권가와 인연을 맺었다. 대림산업이 채권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서울증권을 설립하자 서울증권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금융시장의 생리를 익혔다.

    1971년, 38세의 나이에 동업자 7명을 끌어모아 당시 매물로 나온 신영증권을 사들였다.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던 500만원씩을 모아서 결행한 일이었다. 원 회장은 월급쟁이 시절에도 마치 저축하듯 은행주식을 사모아 거부가 된 투자자다. 이런 이유로 그는 절대 무리하게 투자에 나서지 않는다. 지금도 새해가 되면 그를 찾아오는 후배들에게 원 회장은 이렇게 조언한다.

    “대기업은 증권업에서 성공할 수 없다. 시장점유율에 신경을 쓰다 보면 망한다. 시장 상황이 나쁠 때에도 시장점유율을 유지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무리할 수밖에 없다. 고객과의 신뢰가 깨진다면 이미 증권사로서는 끝장이다.”

    정종열 사장은 “자기를 믿어주는 고객이 많은 증권맨은 성공한다”고 확신한다. 이러한 신뢰는 실력과 실적, 그리고 성실함을 갖춰야만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 고객의 입장에서 대화하고 관심을 가질 것을 주문한다.

    그는 직원들에게 “회사를 위해 뛰지 말라. 고객을 위해 뛰어라. 고객이 놀고 싶을 땐 같이 놀아줘라”고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증권사 고객이 거래하는 증권사를 친구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해줄 수 있을 때 그 직원은 성공하고, 그가 다니는 증권사도 성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고객을 상대하는 시간이 업무시간의 절반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고객이 알아주는 증권사, 놀 때도 편안한 증권사, 믿고 돈을 맡길 수 있는 증권사야말로 그가 지향하는 ‘진짜 증권사’다.

    그렇다면 미래의 금융업은 어떻게 변할까. 앞으로 10∼20년 뒤에도 살아남으려면 지금 어떤 일을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원하는 대로 골라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으려면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가. 머릿속에 여러 가지 방법이 어지럽게 떠오를 것이다.

    여러 전문가의 말을 옮겼지만, 아무래도 윤병철 회장의 ‘행복 심부름꾼론(論)’이 가장 인상 깊다. 결국 우리 모두는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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