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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격 인터뷰

황인오 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2004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치입문 제의”

  • 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황인오 전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2004년 총선 직전,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정치입문 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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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조직원 가운데 노동당에 가입한 사람은 정확히 몇 명이었나.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겠다. 5, 6명은 확실하고 해임한 사람까지 치면 6, 7명쯤 됐던 것 같다. 해임한 사람은 최씨의 추천을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자질에 문제가 있었다.”

-체포될 당시 갖고 있던 명단에 이철우 의원은 없었는지.

“나와 동생 인욱이, 그리고 최씨, 장씨, 은모씨, 양모씨가 기억나고 나머지는 기억에 없다. 최씨로부터 이철우씨에 대해 보고를 받았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내가 직접 관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다.”

잘못된 선택 대가 충분히 치러



-이 의원을 만나거나 소개받은 적도 없는가.

“사건 전에는 물론이고 재판 과정이나 교도소 안, 그리고 출소 후에도 만난 적 없다. 얼굴을 모르니 잠시 스쳐갔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 부모님이 이 의원 지역구인 경기 연천에 사신다. 늘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되던 지역인데, 이번에 열린우리당 후보가 당선돼서 유심히 보기는 했다. 그때 이철우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이철우라는 사람이 중부지역당 사건에 연루됐는지도 몰랐다.”

황씨는 안기부에 체포된 이후 자신의 혐의사실을 모두 인정했다. 또 황씨는 안기부 조사과정에서 민중당 지하지도부 손병선씨와 당시 민주당 부대변인 김부겸씨(현 의원) 등이 이선실(고정간첩)과 접촉한 사실을 제보했다며 형의 감경(減輕)을 요구한 것으로 항소심 판결문에 나타난다.

-사건 당시 프락치 또는 변절자라는 지탄을 받았는데 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그 노릇을 해서 내가 과연 무슨 이득을 봤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 나로 인해 어머니와 아내까지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했는데…. 1992년 사건 당시 많은 사람이 내가 법정에서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증언해주기를 바랐고, 실제 그렇게 부탁한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한 일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사건을 이야기하려면 1980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 수 없다. 당시 대다수 젊은이에게 이념이라고는 자유민주주의밖에 없었다. 그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한 게 바로 전두환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 뿌리는 유신이지만. 요즘 들어와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당시 어땠나. 전두환의 말살행위에 대해 겁이 나서 침묵했다면 차라리 괜찮다. 하지만 대개는 적극 지지하거나 옹호하면서 십수 년간 기득권을 누리지 않았나. 그래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없었고 뭔가 대안을 찾아야 했다.

그 결과가 좌파적 접근이었다. 1980년대 운동과정에서 민족사의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는 점에 공감했다.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한반도 통일을 위해 북한 정권은 충분히 연대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친북용공적인 생각을 분명히 가졌다. 그 시점에 3당 합당(合黨)이 있었다. 정말 좌절했다. 6월 항쟁으로 쌓아온 민주주의가 후퇴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성급한 판단이었지만. 그러면서 북한을 갔다 왔고, 조직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김일성과 김정일의 우상화, 유일사상, 세습체계 등 북한 정권의 국가 운영방식은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체포될 시점에 이르러선 북한 김일성, 김정일 정권과 교섭은 필요하지만, 나중에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한때 우리가 시대상황을 잘못 판단해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대가는 충분히 치렀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을 거쳐 지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또 지금에 와서 과거를 끄집어내는지 모르겠다.”

정형근 “나를 원망하지 말라”

-그렇다면 조사 과정에 고문이 없었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정형근 같은 사람 입장에서 보면 고문이 없었겠지만. 1980년대를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 그 사람들에게는 전기로 지지고 물 붓고 해야 고문이지, 잠 안 재우고 때리는 정도는 고문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고문이 없었다고 말할 수밖에.”

-안기부에서 조사 받을 당시 어떤 상황이었나.

“나 한 사람을 담당하는 수사관이 한 조에 10명씩 2개조, 모두 20명이었다. 2개조가 돌아가면서 수사를 했다. 당시 수사관들이 나한테 ‘우리가 당신을 괴롭히려고 (잠을) 안 재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잠잘 시간이 어디 있느냐. 오해하지 말라’면서 하루에 두어 시간만 재웠다. 그것도 한 30분 잘 만하면 깨웠다. 가끔씩 몽둥이찜질도 하고. 안기부에 끌려가면서 그 정도도 각오하지 않고 들어갔겠나. 그걸 고문이라고 호소하는 사람이 바보인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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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엄상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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