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백악관 NSC, 국무부, 국방부, 부통령실, 상하원 관련위원회 주요직책 & 핵심인사 35인

  • 글: 김윤재 미국 변호사·재미 정치컨설턴트 younjae.kim@cox.net

    입력2004-12-24 18: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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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 대규모 인력교체와 기존 정책 재검토가 예상되는 가운데 과연 어느 직책이 한반도 정책을 주도하고 그 자리에는 어떤 인물들이 임명될지 관심이 집중된다. ‘대통령 최측근’ 장관 등장으로 전면에 나서게 될 국무부의 담당파트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의회 상·하원 관련위원회와 실세 의원들, 최근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근본주의 기독교 그룹에 이르기까지, 행정·입법·이익집단을 관통하며 워싱턴을 움직이는 인사들의 면면을 추적했다.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백악관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고 있는 부시 대통령(오른쪽 끝). 왼쪽부터 조지 테닛 CIA 국장, 딕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신임 국무장관 지명자.

    ‘정책결정은문제해결을 위한 객관적·합리적 선택이므로 정치적인 입장이 반영되어서는 안 된다.’ 행정학 원론 교과서에 나올 만한 말이다. 그러나 워싱턴에서는 누구도 정책이나 법안이 이런 모범답안에 따라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어떤 근거로 정책이 만들어졌는지 의아한 경우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언론들이 흔히 ‘소시지와 워싱턴의 법안은,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고 나면 입맛이 싹 가신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북핵문제 등 첨예한 이슈를 안고 있는 한국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주어진 결과에 적응하며 한국의 이해를 워싱턴에 관철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내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 최소한 부시 2기 정책팀의 변화에 대응 태세를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예측과 진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부시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수립과정에 개입할 관련직책, 또는 내부의 역학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의미를 갖는 것은 이 때문이다.

    원론적으로 볼 때 외교안보정책의 주축을 이루는 행정부 내 부서는 국무부와 국방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다. 이밖에 의회나 이익집단 또한 끊임없이 영향력 확대를 꾀하고 있다. 거칠게 표현하면 민감한 정책이 행정부 내에서 합의(consensus)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의 힘의 우위로 결정되는 상황에서 외곽의 압력이나 입김은 더욱 거세지는 특징이 있다. 지금부터 그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국무장관 혹은 고위급특사

    부시 1기 행정부 내부에서 북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가장 앞장서서 대변한 이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었다. 그러나 ‘국무장관이 모든 외교정책을 관장한다’는 원칙은 그야말로 형식상의 원칙일 뿐이다. 특히 일상적인 외교업무가 아니라 국가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긴급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실 어떤 사안이 외교안보 사안이냐 아니냐조차도 해당정책에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내부적인 싸움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워싱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복잡미묘한 환경에서도 파월이 나름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조직싸움의 달인이라고 할 만한 재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워싱턴이라는 복잡한 구조에서 어떻게 목표를 관철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강경파가 이라크 문제에 집중하고 있을 때 중국을 오가면서 6자회담의 틀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핵’ 관련 문제이므로 군축·국제안보 담당차관인 존 볼턴이 6자회담의 미국측 대표여야 한다는 부통령실과 국무부 일각의 주장에 맞서 “(북핵문제는) 동아시아 지역의 문제”라고 버티며 제임스 켈리 동아태 담당차관보를 관철시킨 사례만 봐도 그의 능력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대통령이 그의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각국 정부는 파월에 대한 호감과는 별개로 그의 발언이 얼마나 영향력을 갖는지, 부시 대통령의 뜻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2기 첫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콘돌리사 라이스는 최소한 이러한 우려와 혼선을 씻어낼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라이스의 입장은 곧 부시 대통령의 입장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두번째 임기에서는 자칫 조기에 레임덕이 나타나기 쉽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처럼 ‘충성’을 제1의 기준으로 삼은 2기 행정부의 인선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라이스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이들은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 그녀가 자신의 역할인 외교안보정책 조율 및 최종제안보다는 부시의 의중을 파악해 그에 따라 움직이려는 경향이 강했다고 지적한다. 그녀와 부시는 분명한 수직관계이므로, 정치적 감각이 탁월한 그녀는 앞으로도 자신의 입장을 관철시키는 데 신중을 기할 것이라는 분석이다(실제로 라이스는 1992년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고려한 적이 있고 언젠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 또는 상원의원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무장관 수행에 있어서도 자신과 유사한 코스를 밟은 헨리 키신저나 짐 베이커 같은 정책적 창조성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어쨌든 1기 행정부와는 달리 2기 행정부에서 ‘실세 수장’이 이끄는 국무부가 외교안보정책 수행의 중심이 되리라는 점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것이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가 북핵문제 해결의 핵심 플레이어 역할을 자임하고 나설 것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라이스 지명자의 전공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라이스는 냉전시대의 소련과 동유럽 전문가다. 아버지 부시의 외교안보보좌관이었던 현실주의의 대부 스코크로프트에게 발탁될 당시 스탠퍼드 교수이던 그녀 역시 현실주의자그룹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대선 당시 그녀의 입장은 ‘미국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 간섭할 수 없다’는 것과 ‘강대국 중심으로 외교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시 대통령이 외교관련 연설에서 ‘고마운 나라들’을 열거할 때 종종 한국의 이름이 빠지는 것은, 라이스가 강대국 중심의 시각을 갖고 있는 데다 동아시아와 동떨어진 분야를 전공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그녀가 북핵문제를 최우선 사안으로 놓고 부시 대통령의 관심을 촉구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까지 라이스의 관심이 한반도에 집중된 적이 없었을 뿐더러, 이란 문제나 유럽연합과의 관계개선 등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제가 많기 때문이다.

    만약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가 한반도 문제를 자신이 전담하기 부담스럽다고 느낀다면 상원외교위원회 리처드 루거 위원장과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외교위 대표가 주장한 고위급 특사 임명을 대안으로 검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루거와 바이든 의원은 부시 대통령에게 클린턴 2기 행정부 당시 북한 미사일 문제를 해결한 바 있는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과 같은 중량급 인사를 북핵문제의 특사로 지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요구가 현실화될 경우 한반도 정책의 조정타는 거의 전적으로 특사에게 맡겨지게 된다.

    그러나 이 아이디어가 빠른 시일 내에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라이스 지명자를 비롯한 부시 행정부 정책결정자들은 북핵문제를 위기로 인정해 최고위급에서 다루는 것을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문제해결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순간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인식이다. 이러한 ‘적대적 무시(hostile neglect)’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2. 국무부 부장관,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 동아태담당 차관보, 정책기획실장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존 볼턴 차관, 아널드 캔터 전 차관, 제임스 켈리 차관보, 미첼 리스 정책기획실장

    2기 행정부에서 국무부의 역할이 강화되리라는 전제하에 한반도 문제를 주의깊게 지켜보는 이들의 관심은 국무부 내의 주요직책으로 쏠린다. 특히 파월 장관의 분신으로 불리던 아미티지 부장관의 후임자 문제는 라이스 지명자가 어떤 방식으로 국무부를 이끌어갈 것인지를 보여줄 좋은 지표다.

    현재 부장관으로 거론되는 인물들의 성향은 강경파에서 지원하는 소위 네오콘 인사, 정부 내의 이념화를 우려하는 ‘현실주의자’ 그룹의 전직 고위관료, 외교와는 무관한 행정관리 등 세 가지다. 이 가운데 행정관리 기용설은 거대조직의 안살림을 부장관에게 맡기고 자신은 외교업무에 전념하려는 라이스 지명자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한다.

    그간 대북문제를 다뤄온 인사가 부장관으로 임명된다면 대북문제에 경험이 적은 라이스 지명자는 신임 부장관에게 북핵문제를 맡길 가능성이 있다. 강경파에서 거론하는 존 볼턴 현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이 부장관으로 승진될 경우 6자회담의 성공은 비관적이다(꼭 부장관이 아니어도 그가 어느 자리로 가느냐에 따라 북핵문제의 외교적 타협이라는 의제는 계속 방해받을 공산이 크다).

    행정관리나 한반도 비(非)전문가가 부장관에 지명된다면 그 아래 직급인 차관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지만 이 또한 가능성이 크지는 않다. 단언할 수는 없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로버트 키미트나 아널드 캔터 같은 공화당 출신의 전직외교관료가 타협안으로 국무부에 진출할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인다.

    그렇다면 차관 혹은 차관보 급 가운데는 누가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게 될까.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한 부처에 여러 명의 차관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한반도 문제와 관련된 곳으로는 우선 현재 북핵문제를 다루고 있는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속해있는 차관실이 있으며,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실이나 클린턴 시절 신설된 글로벌문제 차관실도 경우에 따라 개입할 수 있다.

    글로벌문제 차관실은 마약이나 인권을 다루기 때문에 국무부 부장관에 강경파가 지명되는 경우 관여도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군축·국제안보담당 차관실과 관련해서는 1994년 북핵협상의 미국 대표가 이 차관실 소속 로버트 갈루치 당시 정치군사담당 차관보였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사례는 결과적으로 북미대화가 핵이라는 협소한 주제 안에 갇힘으로써 보다 포괄적인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결국 북핵문제를 정상적인 통로로 다룬다면, 1기 행정부 시기의 제임스 켈리처럼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책임을 맡게 될 것이다. 2기 행정부에서 누가 이 자리를 담당하게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켈리가 이 자리를 떠난다는 것 외에는 아직 전혀 알려진 바 없다.

    그러나 켈리가 보여줬듯 차관보라는 직책은 협상에서 재량권을 가지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윗선에서 결정된 내용을 북측에 전달하고 북측의 반응을 윗선에 전달하는 상황에서 협상이 효과적으로 진행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도 갈루치 차관보가 워렌 크리스토퍼 당시 국무장관과 독대해 협상 진행과정을 상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는 후문이다.

    더구나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책임영역이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이므로 북핵문제에만 전념할 수도 없다. 동아태담당 차관보 아래에 한국과장이 있으나 실무직급의 경우 정책결정과정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고 봐야 한다. 현재의 제임스 포스터 한국과장은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상급자인 차관보가 바뀌면 역시 교체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차관보급 직책 가운데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이 깊은 자리는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이다. 이 자리는 다른 차관보급과는 달리 상원 인준을 받지 않는다. 정책기획실은 트루먼 행정부 시절 조지 마셜 당시 장관이 냉전시대 대표적 전략가 조지 케넌에게 국무부내 민간인 전문가 중심의 싱크탱크를 만들라는 지시를 내려 만들어졌다. 현재는 국무장관의 연설문을 작성하고 국무부의 장기적 외교전략을 수립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외교정책의 큰 틀이 정해지는 곳인 만큼 한국과장 같은 실무자보다 북핵문제에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

    부시 1기 행정부에서 초대 정책기획실장을 맡았던 리처드 해스 현 외교협의회 회장은 국무부 밖 강경파의 견제에 지쳐 일찌감치 사임했다. 바통을 이어받은 미첼 리스 실장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등에 관여한 한반도 전문가로 파월 그룹의 온건파에 속하는 인물. 그러나 정책기획실장은 장관이 바뀌면 동반사임하는 것이 관례이므로 유임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 자리에 한반도에 정통한 인사가 등용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할 포인트 가운데 하나다.

    3. NSC 안보보좌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동아시아담당 보좌관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스티븐 해들리 보좌관 지명자,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

    전통적으로 NSC는 정책조율을 담당했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가 안보보좌관으로 재임하던 닉슨 행정부 시절 국무부, 국방부와 대응하며 사실상 외교안보정책을 결정하는 역할로 탈바꿈했다. 닉슨 대통령의 중국방문은 철저하게 대통령과 키신저가 이끄는 NSC의 작품이었다. 당시 중국대리대사였던 아버지 부시조차 준비협상과정을 전혀 몰랐다고 한다. 키신저는 주요 국가의 안보보좌관과 연결되는 직통전화를 설치해 문제가 생길 때면 직접 해결했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키신저 보좌관 시기 국무부는 그야말로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이러한 안보보좌관의 권력비대와 은밀한 업무처리방식은 훗날 레이건 2기 행정부에서 터진 이란-콘트라 스캔들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에도 대통령과 지근거리에 있는 NSC의 현실적인 권력은 막강하다. 워싱턴을 찾는 각국 외교관이나 정치인들은 여전히 국무부보다 NSC 방문을 선호한다.

    스티븐 해들리 안보보좌관 지명자는 부시 1기 행정부 당시 부보좌관으로 일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게 정책조율에 충실한 스타일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부시 대통령이 연설에서 잘못된 정보를 근거로 이라크 핵무기 개발을 언급하자 이 연설문의 작성자가 자신이라며 사직의사를 밝히고 나섬으로써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은 그가 한층 더 대통령의 신임을 얻는 계기가 되었다. 윗선에 영향이 미치기 위해 희생양을 자청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기 때문이다.

    NSC에서 한반도 정책을 담당하는 직책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과 동아시아를 전담하는 보좌관이다. 북핵문제의 경우 비핵확산 분야 담당파트에서도 개입할 수 있다. 1기 행정부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었던 마이클 그린의 위치는 유동적이다. 재임기간 그의 역할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동아시아담당 보좌관의 경우 조지타운대의 빅터 차 교수가 내정됐다고 보도된 바 있다. 그는 그간 외곽에서 강경입장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학자다. 일단 부시 행정부 내 다수파인 강경파와 ‘코드가 맞는’ 인물이지만, 라이스가 떠난 NSC에서 그가 얼마나 영향력을 가질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해들리 보좌관이 이끄는 NSC가 라이스 시절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국무부의 새 수장이 자신의 전 직속상관이며 대통령의 절대신임을 받는다는 점, 국방부와 부통령실이 해들리 본인도 그 일원이라 할 네오콘의 집결처임을 감안하면, NSC는 정책과정에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상호입장을 조정·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할 것으로 보인다. 9·11 테러 직후, 국무부 정책기획실에서 주도적으로 작성한 신외교안보전략 문건을 전면폐기한 뒤 자신들이 새 문건을 작성하고 나섰던 라이스 시절의 NSC는 2기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 폴 울포위츠 부장관

    국방부는 도널드 럼스펠드 장관의 유임이 확정되면서 안정을 되찾는 분위기다. 이라크 전후복구 실패와 포로학대 문제로 비난에 시달려온 럼스펠드는, 의회 내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고 체니 부통령의 지원사격이 효력을 발휘해 일단 불명예 퇴진의 고비를 넘겼다.

    이 과정에서 체니 부통령과 럼스펠드 장관의 오랜 인연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 럼스펠드는 포드 행정부 대통령비서실장 시절 체니를 보좌관으로 발탁한 장본인. 이후 럼스펠드는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체니를 자신의 후임자로 천거해 역대 최연소 비서실장으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그러나 겨우 한숨 돌린 72세 베테랑 럼스펠드 장관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우선 그는 척 헤겔, 존 매케인 등 베트남전 참전자 출신 공화당 의원들의 추가병력 파견요구에 직면해 있으나 뾰족한 대책이 없다. 미국 상황에서 징병제는 용납되기 어렵고 그렇다고 선뜻 병력을 파견할 동맹국가도 찾기 어려운 현실이다. 일각에서 그의 유임을 두고 ‘이라크에서 완전히 손털고 나올 시점에 대비한 희생양 남겨두기’라고 해석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이 그의 진퇴 여부에 관심을 가져야할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수십 년간 구상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군의 현대화·기동화 문제 때문이다. 주한미군 재배치와 긴밀한 관계가 있는 이 사안은 앞으로도 계속 한국의 국방전략에 변화를 요구하면서 한미관계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특히 주한미군 재배치에 대해 과도하게 불안해하는 한국의 국내상황을 지켜보면서, 이 노회한 관료는 원래 목적 이외의 추가효과를 얻을 계산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방부에서 럼스펠드 못지않게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폴 울포위츠 부장관의 거취다. 그는 네오콘의 전략가이며 사실상 이라크전을 입안한 인물로, 이라크 상황이 수렁에 빠져들면서 비난의 중심에 서 있다.

    정작 본인은 1기 행정부 조각 당시 CIA 국장을 희망했고 재선 뒤에는 안보보좌관 등에 거론되기도 했으나, 네오콘을 상징하는 그가 의회의 인준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의원들도 1기 외교안보팀의 난맥상에 분노를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한때 꿈꿨던 국방장관이 될 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향후 언젠가 럼스펠드가 물러나게 되면 그 또한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 럼스펠드 이외의 인물과는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부시 1기 출범 직후 제의받은 적이 있는 유엔대사(현재 공석)에 관심을 보였다는 설도 있지만 이 또한 반대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울프위츠 부장관이 이 자리를 노려 로비를 벌인다는 소식에 “국제사회가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라고 비꼰 한 언론인의 촌평은 워싱턴의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유엔대사는 정책입안의 이너서클에 포함되는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클린턴 2기 행정부에서 올브라이트에게 국무장관 자리를 내준 리처드 홀브룩의 경우 유엔대사를 맡고 있는 동안에도 외교안보정책의 핵심적 이너서클 멤버로 대접받았다. 이렇듯 워싱턴에서 중요한 것은 직책보다는 경력이나 능력이다. 울포위츠가 아무리 한직으로 밀려난다 해도 한반도 문제에 긴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과 동아태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그는 어느 자리에 가든 한반도 정책 결정에 관여할 ‘자격’을 갖고 있다.

    그밖에도 한반도 문제를 담당하는 국방부내 실무자급으로는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보와 마이클 피네간 한반도팀장이 있다. 롤리스 부차관보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다룬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의 미국측 대표를 맡아 우리에게도 친숙한 인물. 그러나 이들이 한국정부의 직접적인 업무상대이긴 하지만 국무부 한국과장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5. 부통령실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딕 체니 부통령, 루이스 리비 비서실장

    미국의 부통령 자리는 대통령의 의지와 선거 당시의 약속, 부통령 본인의 경험에 따라 그 위상이 크게 달라진다. 잘 알려진 대로 딕 체니 부통령은 역대 최고의 실세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4년 봄 이후 이라크가 혼란에 빠지고 체감경기가 침체되면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부시 대통령과 함께 재선(再選) 관문을 돌파하면서 다시 상승세를 타고 있다. 선거 기간 보수주의자들이 보여준 열렬한 환호는 그가 ‘스타’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기본적으로 체니 부통령은 북한을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핵문제는 외교적 노력으로 해결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거듭된 천명에도 백악관 주변에서 끊임없이 북한 정권교체 시나리오가 등장하는 것은 딕 체니를 중심으로 하는 강경파들의 주장에 기인한다.

    체니 부통령 본인은 대선 때 공화·민주 어느 쪽도 전혀 유세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초보수지역’ 와이오밍주의 유일한 하원의원 출신이다. 하원에서 공화당 원내부총무로 활동하면서 누구보다 보수적인 투표성향을 보여온 체니는 현재도 공화당 하원지도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부시 대통령의 어젠더를 관철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다.

    부통령 비서실장인 루이스 ‘스쿠터’ 리비는 아버지 부시 대통령 때 울포위츠 밑에서 일한 정부 내 네오콘의 핵심멤버다. 그밖에 부통령실에서 한반도 문제에 의견을 제시할 만한 인물로는 국무부에서 일한 바 있는 홀리 모로 아태지역담당 특보가 있다.

    6. 하원 국제위원장, 아태소위원회 위원장, 국방위원장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톰 딜레이 원내대표, 헨리 하이드 국제위원장, 짐 리치 아태소위 위원장, 던컨 헌터 국방위원장

    한국에서는 대선에 밀려 함께 치러진 미 의회선거가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의회 또한 한반도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외교안보정책의 입안에는 대통령이 절대적 권한을 갖지만 정책결정에 수반되는 비용, 국민정서, 관련된 수많은 부차적인 사안에 있어 의회가 행정부에 가할 수 있는 압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미국 하원은 상원과 달리 외교정책에 관여할 법적 근거가 없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사안에 따라 국내정치를 통해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흔들 수 있다. 클린턴 행정부가 1994년 북미 제네바합의를 이루고도 이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난항을 겪은 것은, 합의 직후 있었던 중간선거에서 뉴트 깅리치가 이끄는 공화당 보수파가 40년 만에 하원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이들 공화당 지도부는 당시의 북미간 합의 결과를 ‘줄 것을 다 주면서 협상이 안 될 턱이 있냐’는 말로 평가절하했다. 당시의 공화당 지도부는 깅리치가 은퇴한 지금도 여전히 의회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눈여겨볼 사람은 공화당의 실력자 톰 딜레이 의원이다. 세간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하원의장 대신 원내대표로 막후조정을 담당하는 역할에 만족하고 있지만, 2004년 선거를 앞둔 지역구 재조정 과정에서 탁월한 술수를 발휘해 민주당 현역의원 4명을 낙선시키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이 선거를 통해 공화당은 의석수에서 민주당을 압도, 격차를 1994년 이래 가장 크게 벌리면서 장기집권에 돌입했다. 필리버스터(filibuster·의사진행발언권)가 없는 하원에서는 다수결로 사안을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소수당인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대북문제의 경우 소위 ‘친한파’ 민주당 하원의원 몇몇이 부시 행정부의 강경정책을 비난하거나 대북협상을 촉구한다 해도 반향을 얻기 힘든 상황이 돼버렸다. 이러한 하원의 분위기는 한반도 문제에 있어 ‘주고받는(give and take)’ 협상이 승인을 얻기 힘들다는 문제를 낳는다. 공화당 하원의원의 상당수는 근본주의기독교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북한을 타협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간 북핵문제 협상과정에서 파월 국무장관이 ‘북한의 안전을 문서로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이 방안이 의회승인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원에서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위원회로는 국제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있다. 국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헨리 하이드 의원은 제2차 세계대전 참전군인 출신의 보수파지만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순번에 따라 위원장을 맡았기 때문에 현안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각종 기록을 보면 오히려 민주당 국제위원회 대표인 캘리포니아 출신의 톰 랜토스 의원과 협력한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반도 문제는 자연히 하원 국제위원회 산하 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인 짐 리치 의원에게 집중된다. 프린스턴대 출신으로 선배인 럼스펠드가 하원의원일 때 그 밑에서 일한 적이 있는 리치는 중도적이고 합리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역구인 아이오와 2지구에서 1976년부터 내리 승리해 장수하는 비결도 이러한 성향 때문이라는 것. 2002년 10월 이라크전 결의안 표결 당시 반대표를 던진 6명의 공화당 하원의원 중 한 명이다. 노무현 정부가 하원에서 친구를 찾는다면 이만한 인물이 없을 듯하다.

    국방위원회의 경우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위원장인 캘리포니아의 던컨 헌터 의원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변호사 출신. 1980년 레이건 후보의 대선 승리에 편승해 의회에 진출했고, 당선되자마자 국방위에 입성해 깅리치 군단의 일원으로 관련이슈를 주도했다. 이렇듯 국방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헌터 위원장이 한반도 문제에서 노무현 정부와 입장을 같이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美 한반도 정책을 움직이는 사람들

    샘 브라운백 동아태소위 위원장, 빌 프리스트 원내대표, 리처드 루거 외교위원장, 존 워너 국방위원장

    지역구 조정 없이 각 주에서 2명씩 선출되며 임기 6년인 상원은 그 자체의 역사와 권위를 섬긴다고 할 만큼 독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이미 검증된 인사들이 도전하는 상원은 의원 100명 모두가 대권의 꿈을 갖고 있다고 말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특히 1972년 이래 처음으로 양당 모두 뚜렷한 선두주자가 없이 2008년 선거를 앞둔 상황이어서 의원들의 꿈은 더욱 부풀고 있다(체니 부통령은 건강 등의 이유로 일찌감치 대권도전 포기를 선언했다). 따라서 상원을 정확히 살펴보려면 2008년 대선을 컨텍스트로 깔아둘 필요가 있다.

    공화당의 경우는 현재의 세력을 지키려는 보수파와 대중적 기반이 두터운 중도파의 격전이 예상된다. 보수파 주자 가운데는 두 사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선 원내대표인 빌 프리스트는 테네시 출신의 의사로 보수진영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특히 부시 대통령의 핵심 브레인인 칼 로브와 관계가 돈독하다. 다른 한 명은 캔자스 출신의 샘 브라운백 의원. 상원 외교위 동아시아태평양 소위원회 위원장이다. 브라운백 의원은 논란을 일으킨 ‘북한인권법’ 발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두 사람 모두 1994년 깅리치 혁명 당시 연방정치에 입문했다.

    다수당 원내대표로서 프리스트 의원이 상원에서 행사하는 권한은 막강하다. 원내대표는 모든 법안의 심의 스케줄을 잡고 표결처리나 의회토론 여부를 결정한다. 의회에는 매년 수백 개가 넘는 법안이 제출되지만 대부분은 소리 없이 사라지거나 해당 위원회에서 몇 년씩 묵는 경우도 있다. 물론 백악관의 입장을 존중해야 하고 지도부 의원들의 이해를 반영하는 협상과정이 있지만, 법안을 언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최종결정은 원내대표의 몫인 만큼 프리스트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다.

    상원 외교위원회와 국방위원회는 외교안보정책 결정과정에서 하원보다 큰 목소리를 낸다. 하원의 경우는 그보다는 정책집행의 예산사용에 있어 상원보다 영향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상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인 리처드 루거 의원은 보수적인 정치인이지만 외교의 초당파적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물로 전해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외교위원장이 된 이래 필리핀의 독재자 마르코스 대통령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던 레이건 대통령과 공개논쟁을 벌여 끝내 필리핀 민주화를 밀어붙인 경력이 있다.

    루거 의원의 민주당 카운터파트너는 그와 함께 고위급 대북특사 임명을 주장했던 바이든 의원이다. 이 두 의원의 동아시아 담당 전문위원인 케이스 루스와 프랭크 자누지는 2004년 1월 북한의 초청으로 평양과 영변을 방문한 바 있다. 두 전문위원의 경우 한반도 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담당하고 있으므로 북한문제에만 집중할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상원의 지도급 의원들을 정책보좌하면서 결정적 정보를 제공하는 이들을 의사전달 창구로 삼는 방안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상원 국방위원회 위원장인 버지니아 출신의 존 워너 의원(공화당)은 루거 의원만큼 초당파적 인물은 아니지만 민주당 카운터파트너인 미시간주의 칼 레빈 의원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해군 최고위직을 지냈기 때문에 군의 이해에 민감하고 부시 1기 행정부에서도 럼스펠드의 국방부를 전폭지원했다. 이라크 상황이 악화된 이후 비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고 전해지지만 그가 대통령이나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이와 함께 공화당 중도파 인맥 가운데 부시 행정부에 끊임없이 한반도 문제의 심각성을 상기시키는 의원으로는 네브래스카의 척 헤겔, 애리조나의 존 매케인, 메인의 수전 콜린스, 로드아일랜드의 링컨 섀피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섀피 의원의 경우는 민주당에서 당적 이적을 권유할 정도로 공공연히 반(反)부시 입장을 견지해왔다. 외교위원회 소속으로 이라크전뿐 아니라 9·11 직후의 탈레반 공격에 대해서도 고민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들 공화당내 중도파의 영향력은 2004년 공화당의 의석수 증가로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새로 당선된 의원 대부분이 과거 민주당 표밭이었으나 지금은 공화당 보수파의 산실로 변해가는 남부지역 출신이라는 데 심각성이 있다. 2004년 선거를 통해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에서 선출된 공화당 초선 상원의원들은 1994년 깅리치 혁명 당시의 극보수적 사고를 유지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기독교근본주의그룹의 절대적 지원으로 당선됐다고 믿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의 행정부와 입법부에서 한반도 문제를 다루는 직책과 인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이들 외에도 네오콘의 산실로 불리는 미국기업연구소(AEI), 전통적 주류 외교전문가들의 산실인 브루킹스 등의 싱크탱크가 다양한 방법으로 한반도정책 결정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이들에 관한 설명은 지면관계상 다음을 기약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한국 정부나 정치권, 시민사회가 이들을 움직이거나 이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를 살펴보기 위해 우선 워싱턴의 역학관계를 설명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체인 이익집단을 들여다보고, ‘북한인권법’의 통과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짚어보기로 하겠다.

    각종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수백 개 단체가 사무실을 열고 행정부와 의회를 설득하기 위해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이익단체들의 힘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워싱턴에는 이들에게 전문적인 자문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며 살아가는 용역회사와 로비회사, 홍보회사들이 일종의 산업군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다. 각 이익단체는 평상시에는 워싱턴에서 이슈 로비를 벌이거나 지역에서 풀뿌리 로비를 벌이며 정치인을 압박하고, 선거 때는 조직력이나 후원금 모금으로 의원들을 관리한다.

    의회를 통과한 법률 뒤에는 이를 지지하는 막강한 이익단체가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법안을 지지하는 의원의 사무실에서 함께 밤을 지새워 전략을 논의하며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고 언론을 이용해 여론을 주도한다. 기업인협회, 노조, 친(親)이스라엘계 단체들이 워싱턴의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심지어 이들이 의원 보좌진을 대신해 법안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가운데 지난 10년간 꾸준히 성장해 2004년 대선에서 절정에 오른 단체가 바로 근본주의기독교그룹이다. 대선 직후 부시 대통령 승리의 결정적인 요인이 근본주의기독교 성향 유권자들의 집단적 투표였다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투표통계를 분석해보면 이들의 투표율이 예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높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중에 말을 갈아탈 수 없다’는 논리에 부동층이 흔들린 것이 더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근본주의기독교그룹은 언론을 통해 자신들이 대선 승리의 일등 공신이며 그 대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보내 백악관과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공화당의 보수그룹은 크게 세 축으로 분류된다. 근본주의기독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보수주의그룹과 국제사회에서 힘을 통해 미국의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네오콘, 조세제도 개혁과 정부지출 대폭감소 등으로 작은 정부를 구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제적 보수주의그룹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외교안보정책에 관심을 갖는 것은 앞의 두 그룹이다. 북한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자면, 이들은 평화적인 해결 노력보다는 강력한 대북제재 혹은 정권교체를 공공연히 거론해왔고 인권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언급 없이 북한과 타협할 수는 없다고 주장해왔다.

    2006년 중간선거를 신경써야 하는 공화당 입장에서는 이들의 주장을 무시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미 한국에서도 유명인사가 된 부시 대통령의 핵심브레인 칼 로브는 이들 보수그룹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며 ‘재선 대통령은 중간선거에서 자기 당 의석수를 잃는다’는 징크스를 깨기 위해 애쓸 것이다. 공화당은 2006년 중간선거에서 노스다코타, 플로리다, 네브래스카 등 보수성향 지역의 민주당 상원의석을 빼앗아오기 위해 벼르고 있으므로, 특별한 상황변화가 없는 한 이들 지역의 민주당 상원의원은 부시 행정부의 보수적인 정책에 반기를 들기 어려운 입장이다.

    북한인권법안 통과의 교훈

    근본주의기독교그룹 이익집단의 힘은 한반도 문제에서 이미 발휘된 바 있다. 샘 브라운백 의원이 북한인권법안을 제안할 때 이를 지원한 주 세력이 바로 이들이었다. 북한인권법안이 상원에 상정되자, 이 법안이 북한붕괴를 의도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룹에서는 통과저지를 위해 다양한 라인을 동원했다. 한국에서도 열린우리당의 일부 국회의원이 우려의 뜻을 담은 서한을 전달한 바 있다. 이들의 로비는 ‘말이 통한다’고 생각되는 민주당 의원들에게 집중되었고 한동안 ‘외교위원회 토론을 통해 2004년 선거가 끝난 뒤 처리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은 일사천리로 토론 없이 외교위원회를 통과했고 곧바로 본회의에서도 반대없이 통과되었다. 뒤이은 부시 대통령의 서명으로 법안은 발효됐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면 북한인권법안 통과를 반대한 그룹에서는 로비의 대상을 잘못 선정한 셈이다. 특히 누가 법안통과를 주도하고 있으며 그 주도세력에 영향을 받는 의원들은 누구인지에 대한 분석이 빈약했다. 북한 인권문제는 이미 근본주의기독교그룹의 중요한 어젠더다. 2006년 중간선거에서 격전을 치러야 하는 보수성향 지역의 민주당 의원들이야말로 이들의 영향력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톰 대슐 상원의원은 사우스다코타에서 정치생명을 건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었고 근본주의기독교그룹은 그 지역에 활발한 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원내대표의 3선(選)을 염려해야 하는 민주당 의원들은 섣불리 근본주의기독교그룹이 주도하는 북한인권법안에 반대할 수 없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슐 의원은 2004년 선거에서 낙선하고 말았다). 따라서 북한인권법안이 통과되면 북미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하는 의원들조차 당내에서 이의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에 관심이 적은 대다수 의원에게 명확한 대안도 없이 ‘북한인권 개선과 지원’이라는 명분을 내건 법안을 반대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순진하다고 할 만한 접근방식이었다. 워싱턴의 역학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로비의 대표적 사례다.

    한국의 워싱턴 움직이기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부시 2기 행정부의 시작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으리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한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조급한 것과 달리 워싱턴은 이 문제를 대책 없는 골칫거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부시 대통령은 올해 안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의 인준을 처리하겠다는 루거 상원 외교위원장의 제의를 거절하고 인준 시기를 새 의회가 구성되는 1월로 미뤘다. 국무부의 새 수장이 그만큼 늦게 자리잡는다는 것은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원하는 한국에는 실망스러운 일이다.

    1월에 장관 인준이 통과되어도 그 밑의 관료들이 인준을 통과해야 하고 그에 따라 새 실무자들이 자리잡아야 한다. 이들은 이후에도 몇 달간 정책검토를 거칠 공산이 크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희망과는 달리 수 개월 내에 북핵문제와 관련해 워싱턴의 활발한 움직임이나 구체적인 대안마련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부시 행정부가 아무리 ‘조속한 6자회담 개최’ 등의 레토릭을 띄워도, 워싱턴의 사정을 누구보다 유심히 관찰하고 있는 북한은 회담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평양을 움직이려면 우선 워싱턴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한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워싱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앞서 부시 2기 행정부의 출범이 한국에 낙관적인 일이 못 된다고 말한 바 있지만, 따지고 보면 1기보다 더 나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시 2기 내각의 주요 인사조치는 ‘이념 (idealogy)’보다는 ‘충성심(loyalty)’에 가중치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 같은 인물들이 내각의 전면에 포진하면 원칙의 문제가 되어 협상이 불가능해지지만, 이 경우에는 대통령의 이해관계에 따라 방향이 달라질 개연성이 있다.



    정치에서는 프레임의 설정이 중요하다. 누가 설정한 프레임이 담론을 주도하는지가 승패의 반을 좌우한다. 이미 정해진 프레임에서 한국이 미국의 한반도정책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는 ‘트랙I’으로 불리는 공식외교뿐 아니라 ‘트랙II’에 해당하는 민간외교의 다양한 활용방법을 강구해 둘을 조율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워싱턴 역시 최근 국제사회에서의 자국 이미지가 실추되었다는 데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점, 백악관 내에 민간외교부서가 설치되어 가동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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