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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가리봉동 ‘옌볜거리’의 한숨, 서래마을 마담의 크로아상 향기

  • 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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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와툴이슬람코리아는 1990년대 초 재한(在韓) 방글라데시인들의 친목 도모를 위해 만든 단체예요. ‘다와’는 아라비아어로 ‘초대’를 뜻합니다. 말 그대로 많은 사람을 이슬람교로 초대하고 싶다는 뜻이에요.”

이슬람교도들의 식사 광경은 사뭇 엄숙해 보였다. 음식은 이슬람 향료를 넣어 튀긴 닭고기와 볶은 콩, 바나나 등 각종 과일이 주요 메뉴. 먹는 것 하나에도 경건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은 닭을 잡을 때도 이슬람의 가르침에 따른다고 했다. 한 방글라데시인이 건넨 이슬람교 안내책자엔 “피와 죽은 고기, 돼지고기를 먹지 말라. 하느님의 이름으로 잡지 않은 것, 목 졸라 죽인 것, 때려잡은 것 등을 먹지 말라”고 쓰여 있다. 한낱 동물의 생명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서툰 한국말로 “잘 부탁드린다”고 하는 이들의 맑은 표정에 ‘금욕’ ‘평화’가 ‘테러’보다는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가리봉동은 ‘통과관문’

‘외국인 자치구역’, 한국 속 작은 異國들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시장의 ‘옌볜거리.’

10월31일 점심 무렵, 서울 가산동 D반점엔 적막이 흘렀다. 빨리 음식을 달라며 보채는 손님도, 음식 나르기에 바쁜 종업원도 눈에 띄지 않았다. 사장인 조선족 여성 김모(36)씨는 연신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쉰다. 일요일인데도 통 손님이 없어서다.

2004년 여름 불법체류자가 된 그는 이 동네 터줏대감인 조선족 여성의 명의를 빌려 가게를 열었다. 이곳에 가게를 차린 사람 상당수는 위장 결혼 등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한 중국 동포다. 세련된 옷차림에 완벽한 서울말을 구사하는 김씨는 한참 만에 기자가 주문한 중국식 냉면을 내오더니 연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옌볜에 일곱 살짜리 딸과 남편이 있어요.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나서 한국행을 결심했죠. 고생고생해 돈을 모아 가게를 열었는데 벌이가 영 신통치 않네요. 하루 매출이 20만원은 넘어야 현상유지가 되는데, 손님이 많은 축인 주말 수입이 고작 8만원이니…. 얼른 계약기간이 끝나서 장사 접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은 (불법체류자) 단속이 심해져 조선족 손님들 발걸음이 뜸해졌어요. 한 핏줄인 조선족 동포를 그렇게 홀대하다니…. 따지고 보면 조선족은 한국 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의 일을 도맡아 하며 나름대로 경제발전에 기여했는데 말예요.”

D반점이 위치한 금천구 가산동과 구로구 가리봉동, 영등포구 대림동 일대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모여 살아 일명 ‘옌볜거리’로 통한다. 구로공단이 디지털단지로 탈바꿈하면서 공단 근로자들이 주로 거주하던 쪽방 밀집지역이 한국계 중국인들로 채워졌다. 중국인 거리가 본격적으로 조성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후반. 공항과 가깝고 월세가 저렴하며 일자리를 구하기 쉬운 이 지역은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 노동자들이 필수적으로 거쳐가는 코스다.

가리봉시장을 비롯한 가산동 거리는 골목마다 중국 식료품점과 음식점, 중국노래방, 국제전화방, 환전소 등이 즐비하다. ‘仲秋佳節萬事如意 - 加里峰商人聯合會’ 같은 플래카드나 ‘三八餃子館’ ‘中國飯店’ 같은 한자 간판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그러나 중국 문화가 뿌리내린 이곳에도 한국인과 중국인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존재한다. 가산동에서 20년 넘게 소규모 슈퍼마켓을 경영해온 류근호(54)씨는 중국인 중심의 상권이 조성되면서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말한다.

“가산동에서 중국전문 음식점의 비율이 40%예요. 방 하나에 부엌이 딸린 집은 거의 다 조선족이 점령했죠. 조선족은 한국 사람이 하는 가게를 잘 찾지 않아요. 최근엔 단속이 심해져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않고요. 더 큰 문제는 한국인들이 이 동네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00년만 해도 한국인 가정이 240~260가구였는데, 요즘은 160가구로 크게 줄었어요.”

조선족 노동자들이 유입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갖거나 범죄율 급등에 두려움을 갖는 이들도 생겼다. 구로경찰서 가리봉지구대 안홍석 경사의 말이다.

“이 동네 쪽방에 거주하는 한국인 노동자들이 ‘임금이 싼 조선족에게 일자리를 다 빼앗긴다’며 조선족 노동자들에게 시비를 걸어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대림동 조선족 여성 살인사건, 독산동 토막살인 사건 등 중국인과 관련된 범죄가 끊이지 않는 바람에 주민들이 몹시 불안해합니다.”

조선족은 조선족대로 자신을 범죄자나 불법체류자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못마땅하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중국의 가족에게 돌아가는 것이 목표일 뿐이라는 것. 가리봉1동 중국동포교회(목사·김해성)에서 만난 조용철(36) 집사는 “동포들에게 왕래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불법적 행위’는 결코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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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남희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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