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호

다문화 사회, 연착륙으로 가는 길

‘용광로’에서 ‘모자이크’로 ‘디아스포라’에서 ‘초국적인’으로

  • 글: 박화서 명지대 산업대학원 교수·이민학 hspark@mju.ac.kr

    입력2004-12-27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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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외국인 거주지역이 뿌리내리면서 한국도 다문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문화적으로 유달리 배타적인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무난히 진입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급격한 변화에 직면한 한국의 외국인 수용정책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다문화 사회, 연착륙으로 가는 길

    한국 문화체험 주간을 맞아 소고를 배우며 즐거워하는 울산 현대외국인학교 어린이들.

    최근한국은 외국인의 급격한 유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국내에 상주하는 외국인은 자그마치 80만명. 그중 상당수가 5년 이상 머문 장기 체류자이며, 정주(定住)를 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출산율 저하, 노령화로 노동가능인구가 감소하고, 3D 업종에 종사하려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외국인 노동자 수요는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비단 한국뿐 아니라 전세계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체제의 태동을 앞두고 있다. 20세기 사람들이 굳건히 신봉해온 민족국가 단위의 국제사회 기능은 쇠퇴하고 있으며 민족·국가·주권 개념은 재고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는 주체는 나라마다 생성된 다양한 외국인 군집지역이다. 다양한 이문화의 유입으로 국가는 새로운 정체성을 수립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자생적 외국인 군집지역

    오랫동안 단일민족국가의 명맥을 이어온 한국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외국인 군락이 본격 형성되기 시작해 경기 안산·남양주·용인, 서울 가리봉동, 인천 등지에 출신국별로 외국인이 모여들었고, 그들을 위한 상권도 형성됐다. 이 지역은 그들의 말로 된 간판, 그들의 색채와 음식 냄새로 가득하다. 그들의 거주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부동산업자, 고용주와의 교섭집단도 등장했다. 이 외국인 공동체는 모국과의 연락 거점으로 자리잡으며 한국 땅에 자생적 지역사회로 뿌리내렸다.

    특히 외국인 인권단체와 종교단체 등은 당국에 ‘다문화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단일민족국가 개념에 익숙한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거듭나려면 무엇보다 의식 변화와 제도 마련이 시급하다. 외국인 수민(受民)에 대한 온정적 접근은 오히려 혼란과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이제 외국인 인력정책과 체류정책을 긴 호흡으로 살펴봐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정부는 2004년 8월17일 외국인 인력 수민을 체계화하기 위해 고용허가제를 실시했다. 30만명을 상회하던 외국인 불법체류자에 대해서는 합법화 조치를 취했다. 한편 불법체류자를 철저히 단속해 매달 3000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강제 출국시켰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정부 차원의 통제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도 불법체류자는 한 달에 8000여명씩 증가하고 있다. 주변 저개발국 국민이 유입되는 인구이동 압력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과연 한국은 다문화 사회로 진입할 준비가 돼 있을까. 먼저 현행 외국인 노동자 수민정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 수민정책은 선진국이 일반적으로 채택하는 5가지 원칙 아래 이뤄진다.

    첫째, 노동시장 보완의 원칙이다. 국내에서 해당 분야에 필요한 노동자가 없는 경우에만 외국 인력을 받아들여서 우리 국민의 취업경쟁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둘째, 산업구조조정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 하이테크와 친환경을 지향하면서 경쟁력 없는 업체는 도태시키고 한정된 수의 외국인 노동자만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셋째, 외국인 노동자의 정주를 불허하고 정해진 계약기간 동안만 일하게 한 뒤 출국시킨다는 원칙이다.

    넷째, 이 맥락에서 외국인 노동자 수민은 순환원칙에 따른다. 계약이 만기된 사람은 출국시키고 새로운 인력을 받아들임으로써 외국인의 정주도 막고 우리의 기술과 상품을 해외로 진출시킬 교량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자는 것이다.

    다섯째, 외국인 노동자와 우리 노동자의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는 국제사회의 규정을 따라야 한다.

    “노동력이 아니라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우리 국민과 동등하게 대우하지만, 일시 노동력 이상은 아니므로 그들을 한국에 정주시키지 않겠다는 것. 한국 국민이 주인이고 외국인은 잠시 불러들였다가 내보내겠다는 의지를 담은 원칙이다.

    그러나 막스 프리시가 “독일은 노동력을 받아들였는데 들어온 것은 인간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외국인 노동자 수민은 원칙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독일은 1960년대부터 ‘게스트 워커(Guest Worker) 정책’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30여년이 지난 1990년대 초, 전체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800만명의 외국인이 독일에 거주하는 상황으로 변했다. 게르만 민족의 혈통주의에 근거한 단일민족국가에서 이민국가, 다문화국가로 정체성을 전환한 독일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일이 다문화국가로 이행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가령 독일의 극우파 청년들이 터키인이 모여 사는 지역에 불을 지르고 주민을 폭행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났다. 외국인의 모국 송금에 의한 국부 유출도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고, 외국인 범죄율 증가, 외국인 혐오증 확산, 정치 불안, 테러 집단의 은거 등 많은 문제에 시달리게 됐다.

    지금도 독일의 보수파 정당인 CDP는 ‘주류문화(Leitkultur)론’을 주장한다. 외국인은 모국의 문화, 종교 등을 포기해야 하며, 그들이 독일 주류문화에 흡수되지 않으면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 말은 ‘독일인이 주인이며 외국인은 주변인으로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차별주의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터키계 사람들은 이슬람 교리가 독일의 기독교 전통과 상충할 때 자기의 종교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터키 여성이 이슬람식으로 머리에 히잡을 쓰고 학교에 다니는 것이 학교 분위기와 맞지 않으니, 히잡을 쓰면 입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프랑스 교육부의 결정도 이런 맥락이다. 주류문화론은 인종차별주의, 문화차별주의를 공식화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전인구의 10%를 차지하는 인구를 차별할 수도 있다는 것은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최근 이민국가의 동화정책은 ‘용광로식’에서 ‘모자이크식’으로 변화하는 추세다. 용광로식 동화정책이란 과거 미국의 이민 정착정책으로 이민자들이 미국의 주류층인 백인, 앵글로색슨, 신교도 문화에 융합해 들어가는 형태다. 따지고 보면 이민자들이 언어적·문화적으로 항상 주류층보다 못한 위치에서 살아가게끔 만든 정책이다.

    그러나 이제는 모자이크식 동화정책을 펴 이민자들의 사회참여를 유도한다. 이것은 이민자들이 자신의 고유 문화를 간직한 채 거주국 사회에 잘 적응하게끔 돕는 정책이다. 모든 민족과 문화를 동등하게 보고, 서로 보완하게 하는 다문화 정책이다. 인류 문화의 다양성과 고유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문화는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는 인식에 근거한 이민정책이다.

    국가군(群) 따라 다른 수민정책

    한국이 어떤 형태의 다문화 사회를 형성해나갈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면 우선 ‘국가는 무엇인가’라는 개념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이민학에서는 민족, 국가, 주권에 대한 개념에 따라서 국가를 3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원초적 개념으로 형성된 국가다. 그 예로 이스라엘과 한국을 들 수 있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서 쫓겨나 전세계로 흩어져 떠돌던 유대민족은 1948년 영국과 세계 강대국의 묵인하에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로 밀고 들어가 나라를 세웠다. 그 땅은 오래도록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땅이었다. 2000년이 지나 나타난 유대인들은 “이곳은 신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다”며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쫓아냈다.

    한국은 반만년 전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의 후예인 한민족이 한반도의 주인이라 믿고 있다. 한국인은 영토, 민족, 국가에 원초적 소속의식을 갖고 사는 국민이다. 그리고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외쳐왔다. 수천 년 동안 순수 혈통을 지키는 것을 미덕으로 삼아왔다.

    둘째, 공화적인 국가 소속의식을 가진 나라가 있다. 유럽이 그렇다. 그들은 1815년 빈 회담에서 비로소 국제사회 개념에 합의해 민족국가라는 근대적 국가 단위로 유럽의 국제질서를 재편했다. 그래서 전쟁이 나면 영토가 임의로 나뉘거나 합쳐졌다. 때문에 유럽인들은 앵글족, 색슨족, 켈트족, 게르만족, 노르만족, 슬라브족, 라틴족, 훈족 등의 피가 다양하게 섞여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엔 혈통주의적 국적의식이 없었다. 독일도 2002년부터 국적 혈통주의 원칙을 버렸다.

    셋째, 전통적 이민국가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이 그런 나라다. 세계 각지의 다양한 민족이 들어가 개척하고 일궈낸 근대 국가들이다. 인구의 증가와 경제·문화 발전을 철저히 이민에 의존한 나라다. 이 나라들은 백인이 사회의 주류이던 시대를 1960년대 중반에 마감하고 이제는 다문화 사회라는 정체성을 내걸고 있다.

    이렇게 국가군(群)을 나눠보면 나라에 따라 외국인 정책의 성격과 한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각국의 외국인 수민정책은 이러한 국가별 성격에 따라 아주 신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다문화 사회 이념을 가장 잘 실현한 이민국가인 미국, 캐나다, 호주는 최근 들어 외국인 입국 절차를 오히려 강화했다. 원치 않는 외국인의 입국을 막고 이들을 강제 출국시키는 데 많은 예산을 편성했다.

    예컨대 호주는 이민성 직원만 4000명이고 1년에 국경수비 및 불법이민 관리 비용으로 3억9000만 호주달러를 지출한다. 미국은 9·11 테러사건 이후 이민성의 권한을 늘렸다. 국가에 위협이 될 외국인을 색출하고 과학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전산망과 첨단 기계를 도입했다. 소수민족 집거 지역에 대해서도 동향을 조사한다.

    이민국가는 아니지만 공화적 국적법을 실시하는 네덜란드도 3000여명의 이민업무 관련 공무원이 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여권 소지자인 안틸레스섬(서인도제도의 네덜란드 속령) 주민들도 비자를 발급받아야 네덜란드에 입국할 수 있는 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디아스포라’와 ‘초국적인’

    초국경적 인구 이동이 대규모로 벌어지고 범인류주의가 성장했지만, 한편으론 각 국가가 가장 편협한 국익 우선주의 정책과 주류층의 기득권 보호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제적으로 자신의 모국이 아닌 곳에서 사는 세계 인구는 1억명이 넘는다. 그들은 크게 두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디아스포라’와 ‘초(超)국적인’이다. 디아스포라는 옛 유대민족처럼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 환경파괴, 가난, 정치적 핍박 등에 의해 조국을 떠나야 했던 무리다. 그에 비해 초국적인은 선진 문명생활을 추구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해외에 거주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의식과 생활양식은 극과 극을 이룬다. 디아스포라는 배타적 민족주의, 귀소본능을 추구하며 혈통과 민족전통을 보존하는 특성을 갖고 있다. 해외에서 민족군락(ghetto)을 형성하여 자기들끼리 무리지어 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초국적인은 어느 나라에서든 자신이 가장 선호하는 환경에서 살고자 한다. 이민족과의 결혼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며, 민족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는 것보다 다양한 문화를 즐기는 데 더 관심을 둔다.

    디아스포라 유형은 단순 노동자에게서 많이 발견되고, 초국적인 유형은 IT(정보기술) 전문인 등 국제 엘리트로 여러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는 집단에게서 많이 발견된다. 디아스포라 집단은 애국심이 투철하고, 극단적인 경우 전쟁의 결과로 생겨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 반면 초국적인은 투철한 애국심이 없고 전쟁에선 해결사 노릇을 맡는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나라 입장에서는 초국적인형 외국인을 더 선호한다. 국제감각을 갖춘 전문인으로서 거주국에 붙박이로 있으면서 세금도 축내지 않고 거주국 문화와 갈등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 들어온 외국인의 다수는 디아스포라 체질을 가진 비숙련 노동자다. 그들은 더 좋은 환경을 찾아다니는 기동력을 지닌 초국적인이 아니다. 불법취업을 해서라도 송출대행업자에게 지불한 수수료를 벌어야 하고, 헐벗은 조국에 살고 있는 가족을 어떻게 해서라도 불러들여 한국에 머물게 하려는 사람들이다. 타국 문화나 언어를 습득해 그 나라의 주류에 섞여 사는 체질이 아닌 경우도 많다.

    국제사회의 추세를 볼 때 한국과 같이 통일된 소속감과 단일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근간으로 오랫동안 역사를 이끌어온 나라를 다문화·다인종 사회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이 가능한 일인지, 옳은 일인지도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자기 문화는 우월하고 타민족 문화는 열등하다고 주장하면서 외국인을 자기네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본국 문화 우선주의’의 다문화 사회는 위선적이며 인종차별주의를 양산할 뿐이다.

    그렇다면 한국이 타민족의 동등한 문화 권리를 수용하고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자이크식 다문화 사회를 감당해낼 수 있을까. 이문화에 유독 배타적인 한국에겐 무척 어려운 문제다.

    행정체계 정비, 전문가 양성

    우리와 함께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80만명의 외국인은 비록 우리 국민이 아니어도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고 우리 사회의 일익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이상 그들을 위한 행정체계를 시급히 갖춰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와 자녀의 의료, 교육, 주거, 보험, 신변 안전 등에 대한 복지행정의 틀도 마련해야 한다.

    또한 해당 언어 교육을 통해 번역사·통역사를 양성하고, 외국인 군락을 전담하는 전문인력을 키워야 한다. 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과 주민을 대상으로 외국인의 인권, 문화, 언어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불법체류자와 합법체류자의 차이 등 출입국 정책 전반에 관한 홍보와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그들이 지닌 다양한 문화와 전통에 힘입어 많은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요식업 등 주변의 관광관련 산업도 활기를 띠게 된다. 해당 국가와 교역을 증진하는 데도 이바지한다. 따라서 특성화된 관광상품으로, 세계적인 도시로 외국인 군락지역을 부각시킬 수 있다. 일본은 외국인 집거도시 국제화 정책으로 성공을 거뒀다.



    세계화는 여러 면에서 이중적 얼굴로 진행되고 있다. 가장 반대되는 두 가지 흐름을 균형 있는 안목으로 이해하고 정책에 반영해야 한다. 우리 국민과 동등한 기본권을 외국인에게도 보장해줘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우리 국민은 주인이고 외국인은 손님이다. 불법체류 외국인은 강력 단속 대상이면서 우리 지역사회의 현실적 주민이다. 그들이 주민으로 있는 한 그런 현실을 관리·감독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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