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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참물 목록」과 캄보디아

「여행 지참물 목록」과 캄보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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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지참물 목록」과 캄보디아

앙코르 롬 사원 앞에 선 필자(왼쪽)과 동료 학자들.

2년 전 터키 여행에서 나는 이스탄불의 웅장하고 고색창연한 회교사원들을 둘러보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성소피아 사원의 아름다운 건축미와 찬란한 내부 장식에 나는 경탄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그 때는 경탄과 약간의 신비감이 전부였는데, 이번에는 거기에 더해 이상야릇하고 무거운 감정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마치 길을 잃고 헤매다가 이교도의 거대한 성전에 허락 없이 발을 들여놓은 듯한 두려움과 경외심이었다.

이번 캄보디아 여행에서도 나는 새로 보완한 ‘여행 지참물 목록’에 따라 지참물을 빈틈없이 챙겼다고 여겼다. 그러나 나의 알량한 지참물들은 여행 첫날부터 빗나가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의 1월은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더운 날씨이므로 나는 가죽 샌들을 신고 갔다. 비는 내리지 않았으나 워낙 건조하여 사람들이 걸어다니는 흙길은 온통 묽은 흙먼지투성이였다. 운동화를 신고 갔어야 옳았다. 치약, 칫솔, 로션, 머리빗 등은 불필요했다. 호텔에 모두 비치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정전이 잦았다는데 이번에는 그런 적이 없어서 갖고 갔던 꼬마 손전등을 한 번도 사용하지 못했다.

또한 하루씩 입고 버리려던 러닝셔츠와 팬티, 양말은 도로 비닐백에 담아 가지고 돌아왔다. 그곳에서 목격한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상이 넉넉함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낡은 옷일망정 좀더 입지 않고 함부로 버리는 일이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졌다.

관광지의 길거리에는 초등학교에 다닐 나이의 꼬마들이 허름한 옷차림에 맨발로 몰려다니면서 관광객들에게 손을 내밀고 새가 우는 듯한 슬픈 목소리로 구걸했다. 이는 반세기 전 6·25전쟁과 그 후 얼마간 지속된 우리의 모습이 아니던가.



캄보디아를 떠나기 전 우리는 시엠레압에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동양 최대의 호수 톤레샵으로 이동하였다. 과연 호수는 바다처럼 넓지만 육지에서 호수로 통하는 수로변이나 호수 연변의 허름한 가옥에서 생활하는 수상촌 빈민들은 안쓰럽기만 했다. 수로의 물은 각종 오물로 혼탁했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투망으로 물고기를 잡고 아이들은 그 물에서 미역을 감고 자맥질을 했다.



하노이를 거쳐 돌아오는 비행기는 밤새 하늘을 날아 새벽 6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아 밖으로 나와 공항버스를 탔다. 달리는 버스의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도로는 넓고 깨끗했다. 주변의 새벽 경치는 흰 눈까지 내린 터라 더욱 신선해 보였다. 예전에 와보지 못한, 어느 잘사는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신동아 2005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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