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시론

거국적 자강 결의 후 ‘숙의’ 플랫폼 구축하라

  • 김진현|세계평화포럼 이사장

    입력2017-09-10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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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 포기론’ ‘반도의 분단성’ 넘는 중심 창조의 길
    • 조공 사대 의존은 미래 평화의 길 될 수 없어
    • 자강 통해 4강 틈바구니 숙명 거부해야
    • 죽기 살기 각오로 자강 원년 출발 다질 때
    한반도는 ‘20세기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이 대격변의 21세기에도 오히려 20세기 체제가 더욱 고착되는 반(反)역사, 반(反)발전의 길을 걷고 있지 않은가. ‘한반도 통일 불가능’ ‘분단 고착화’ 체제가 전개된다. 20세기 체제라 함은 그 전반은 일제 식민 지배와 우리가 아닌 일제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 뒤처리의 낙진인 분단, 그리고 20세기 후반은 미·소 냉전과 그 낙진인 6·25전쟁이 연속해 쌓인 수동적 체제, 특히 자강·자립 없는 안보의 대외 의존 체제다.




    미국의 내부 분열과 기능 마비

    “미국은 세계경찰이 아니다(America is not the world's policeman).”(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2013년 9월 10일 시리아 화학무기 사용 시 보복 공약을 취소하면서 한 선언.) “나의 일은 세계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을 대표하는 것이다(My job is not to represent the world. My job is to represent the U.S.A).”(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017년 2월 18일 미국 의회 연설.) 

    7 월 28일~8월 8일 미국의 백악관, 국무부 그리고 이른바 저명하다는 ‘외교꾼’들이 보여준 작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시리아 보복 공약 취소 선언부터 실증되기 시작한 미국의 기능 결손, 즉 해체 현상의 시작이 얼마나 심각한지 증명하고 있다.

    약속 이나 했듯 대(對)북한 군사 옵션 배제론이 나왔다. 외교 거장인 헨리 키신저의 주한미군 철수론과 전 북한인권 특사였던 제이 레프코위츠의 ‘하나의 한국(대한민국 주도 한반도 통일) 포기론’이 이틀 간격으로 나왔다. 때맞춰 뉴욕타임스는 8월 1일자 통단사설(‘Drop the Bluster on North Korea’)에서 조건 없는 북한과의 회담, 국무장관이나 고위 인사의 평양 파견을 제의했다.



    가장 주목된 것은 8월 1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거동과 언행이다. 국무장관 재임 6개월 동안 국무부 브리핑룸을 찾은 적이 없는 그가 홀연히 나타나 ‘4노(4 NO) 원칙’을 똑 떨어지게 말했다. “우리는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정권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한반도의 통일 가속을 추구하지 않는다. 우리는 군사분계선 이북으로 우리 군대를 보낼 명분을 추구하지 않는다. (…) 그리고 우리는 북한에 (이 뜻을) 전달코자 한다. 우리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 당신들의 위협이 아니다. 우리들에 대한 수용할 수 없는 위협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이보다 더 분명하게 북한과의 대화 의지를 표현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무장관 기자회견 다음 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북한과의 직접 대화’는 현재의 카드가 아니라고 부인하고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김정은은) 밤에 편히 잠자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날 백악관의 세라 샌더스 대변인도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군사 옵션을 배제하지 않는 언급을 했다.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이 전한 말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장거리 핵미사일을 방치하느니 차라리 북한과 전쟁을 할 것이라고 했다. 더 끔찍한 것은 트럼프는 “김정은을 막으려는 전쟁이 나더라도 거기서(한반도) 나고 수천 명이 죽더라도 거기서 죽는 것이지 여기서(미국) 죽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8월 8일 “(북한이 계속 미국을 위협한다면) 이전에 보지 못한 화염과 분노를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이전과 다른 초강경 발언을 했다. 이에 질세라 북한은 미국령 괌 미군 기지를 포위 사격하겠다고 맞받아쳤다.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이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위대한 지도자는 행동할 준비가 끝나지 않은 한 적을 위협하지 않는다”며 “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행동을 취할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상의 작태를 보면 미국이 국가 정책 조정 능력이 있는 나라인지 의문이 든다. 동맹을 지킬, 자국의 안보를 지킬 국력의 집행 능력, 안보자원의 동원, 정책 결정의 유효성과 타이밍의 적시성을 확보할 수 있는 나라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주의, 지정학의 부활

    틸러슨의 특별 기자회견, 4 NO 원칙에도 사실상 통일포기론이 들어 있으니 핵 협상파는 모두 한반도 통일포기론으로 통일된 셈이다. 모두 북핵 제거-중국 역할-미·중 대타협의 논리에서 나온 결론이다. 북핵 해결을 위해서는 중국이 나서야 하고 그러려면 대한민국에 의한 통일을 포기하는 미끼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지정학적 세력 균형, 현실주의, 실용주의 외교의 논리적 귀결이요 현실적 진로다. 탈냉전 이후 특히 2008년 국제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아시아 태평양을 미국과 둘(G2)이서 분할 관리하자고 나올 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시진핑의 ‘중국몽’ 등장에서부터 표면화된 힘의 외교, 지정학의 부활이다.

    중국의 부상 이전은 단군 이래 중국을 이겨본 최초요 유일한 기록을 남긴 대한민국의 벨 에포크(belle epoque·좋은 시절)였다.  21세기 두 번째 10년의 끝자락을 가는 지금 대한민국의 벨 에포크는 갔다. 다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역류가 맹렬하다. 한반도는 4강이, 북한은 특히 미국과 중국이 요리하겠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꿈꾸지 말라 한다.

    김정은의 핵과 미국 본토에 이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확보, 시진핑의 중국 천하 ‘중국몽’, 푸틴의 황제 외교, 필리핀 두테르테의 총살 통치, 터키 에르도안의 터키식 유신 독재, 폴란드 헝가리 브라질 베네수엘라 등에서 보이는 민주주의 후퇴, ‘아랍의 봄’의 허망한 소멸…. 탈냉전 이후의 진보적 가치와 보편적 자유주의 질서가 깨지고 있다. 전체주의 일당지배 유교적 질서의 모델이 근대문명의 대안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대반동이 근대 질서의 주도자였던 유럽과 미국에서도 전개된다는 데 본질적 심각성이 있다. 국제 다자간 협조, 인권·평등·평화의 자유주의 질서가 그 본적지에서부터 구조적으로 분해·해체·단절되는 대혼동이다. 유럽의 극좌 및 극우화,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Brexit), 아베 신조라는 ‘전후 철저 부정’과 ‘전전 복귀’ 신화의 망가(만화)…. 괴물 트럼프의 등장과 소동은 미국의 국정 기능 고장으로까지 이어진다.



    자초한 코리아 패싱의 구조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와 김정은이 결코 코리아 패싱을 포기하지 않을 까닭은 많다. 첫째, 대한민국이 그간 오래오래 실증했고 바깥세상에도 너무나 잘 알려진 ‘적전 분열’의 국내 정치 때문이다. 둘째는 한국 외교의 골간이던 한미동맹의 동요 때문이다.

    미 국의 심층심리엔 대(對)북한 문제를 다룸에 있어 한국 무시 내지 의심의 두 요소가 있다. 하나는 한국이 정말 통일을 바라는지 하는 의심이다. 한국 주도 통일 포기의 선물을 중국에 주라는 레프코위츠는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한국이 민족주의적 이유로는 통일을 립 서비스’ 하지만 정말 통일을 바라는지 의심스럽다고 썼다. 진정 통일을 바라면 북한 다루기와 통일 과정 및 그 이후 전략에 대해 대한민국이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미국을 설득하고 미국이 지원하는 것이라야 한다. 우리 스스로 통일의 비용-혜택 계산, 과정과 목표 전략에 대한 진지성이 있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또 하나의 요소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나타난 태극기와 미국 성조기 합성의 등장이다. 게다가 이스라엘기까지 같이 꽂았다. 한국의 볼썽사나운 정치게임 현장에 미국기가 등장한다는 것은 미국의 외교적 이익에도 철저히 반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나 지성인들이 극도로 곤혹스러워하는 대목이다. 더구나 이런 극단의 미국 종속적 비(非)주체적 행태는 특히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민국은 별수 없는 조공 국가, 사대 국가라는 나쁜 이미지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이제 대한민국 자강에 달렸다

    우리는 결정적 갈림길에 섰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지정학의 숙명, 순환을 거부해야 한다. 거부할 수 있는 힘을 창조해야 한다. 대륙과 해양세력의 충돌, 한반도를 둘러싼 압도적 대국 간 전쟁 경험이 우리만큼 풍부한 나라도 많지 않다. 동남아, 중동, 아프리카의 제3세계 국가들은 세계 강대국과의 전쟁이라야 한 번이거나 대리전쟁으로 끝이었다. 한국과 베트남만이, 모두 세계 대국과의 전쟁이요 근대에 들어서도 네 번이나 치렀다.

    베트남은 철저한 자강 체질이고 한국은 사대 조공 체질이었다. 그 차이는 자기 뜻으로 치른 전쟁이냐, 남의 뜻에 휘말린 전쟁이냐에 있다. 한국이 치른 전쟁은 모두 자주적·적극적 전쟁이 아니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 중국과 차례로 자기 의지로, 자기 군대로 싸워서 모두 이겼다. 더구나 대한민국은 6·25전쟁 후 압도적 세계 부국인 미국의 풍부한 군사·경제 원조에 오랫동안 의존해 그것이 체질화·상습화됐다.

    탈냉전과 한국의 1980년대 이후 벨 에포크 시기에서부터는 안보, 외교의 자강으로 국가의 대혁신이 시작됐어야 했다. 총체적 정비여야 했다. 수도 한복판에 외국군 기지를 두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도착 증세를 탈각했어야 했다.

    이 런 나쁜 버릇은, 어차피 대명제는 즉 국가안보의 기본은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대국의 풍향에 달린 것이니 그 어려운 명제의 충실보다 5년 동안을 내 개인 내 캠프의 이익과 영광만 챙기면 된다는 심층심리, 반(反)국가 반(反)공동체 의식과 사대·의존 심리가 여야를 넘어 일관되게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숙명에의 패배다.

    이제 습관이 된 숙명을 거부해야 한다. 첫째, 가치체계·도덕·문화의 우위성에서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유럽 인도 이슬람 중 우리가 모델로 삼을 미래가 더는 없다. 미국·유럽의 서방이 가치나 과학기술 법치에서 중국·러시아보다 우월한 것은 사실이나 그 존재 방식과 기능 발휘의 틀에서 전환기적 혁신이 없으면 지속가능하지 않다. 단기 중기적으로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지정학 원리와 가치동맹적 골간의 공유로 미국과의 동맹이 지속돼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동맹은 불가능하다. 미국이 급속히 퇴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강할 수밖에 없는 새 숙명

    둘째, 단군 이래 처음으로 ‘세계적’ ‘국제적’ ‘지구촌적’ 규모로 커진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 성취의 열매는 우리가 하기에 따라 또한 역사상 처음으로 동북아시아(동해· 황해 지역)의 균형자·조정자·가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잠재력을 국가의 자강과 4강에 대한 결정적 균형 파괴력 또는 균형 회복력으로 결집할 수만 있으면 1990년대 이전엔 꿈도 꿀 수 없었던 동북아시아 중간자를 넘어 중심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제력, 국방력, 과학기술력, 교육·문화력, 해외 네트워크 등은 세계적 수준에 이르렀다.

    대한민국의 정치·사회 구조와 능력의 향상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변화, 무엇보다 지구촌 생존구조의 패러다임 시프트로 대한민국은 자강의 길로 나설 수밖에 없게 됐다. 버릇이 된 조공, 사대, 의존은 과거에도 그랬듯 평화의 길이 아니며 더구나 미래 평화의 길이 아니다.

    탈냉전 이후 대한민국이 누린 벨 에포크와 평화도 중국,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압도적인 힘 덕분이지 우리의 자강력 때문이 아니었음도 확실해졌다. 우리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미국 본토에까지 미쳐 북한이 명실공히 강대국 외교 특히 미·중관계의 게임체인저가 될 때까지 자기기만의 햇볕타령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연기를 축하하는 부끄러운 한미동맹 논리에 매몰됐다. 원교근공의 지정학적 원리와 1945년 이후 미국과의 동맹(군사동맹을 넘어선 가치·인적·종교적 네트워크)은 그 현상 유지가 불가능하게 됐다. 20세기 후반에 있은 휴머니즘이 가미된 이상주의 체제의 후퇴 및 추락과 물리력 강화의 반동, 한국 내부의 사회적·세대적 변화 그리고 무엇보다 미국의 고립주의로의 회귀, 국정분열 때문이다. 우리가 유지하고 싶어도 단기적으로는 어렵사리 유지될 수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미국만이 아니다. 근대 체제는 뿌리가 뽑히고 있다.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후퇴가 선명하다. 오히려 근대 체제를 부정하는 푸틴(크리미아, 조지아 침략), 시진핑(남·동중국해 영토 분쟁과 한국에 대한 압력) 터키의 에르도안(쿠르드족 폭압과 장기독재화) 김정은(3대 세습독재와 핵과 ICBM 개발) 등 이른바 가장 반(反)문명, 반(反)역사적 스트롱맨들이 승리하는 듯 보이는 허무한 세상이 돼가고 있다.

    대 한민국은 자기 실존의 안전과 생명의 평화를 위해 이제 자강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사대주의의 습관을 벗고 대륙 해양 사이의 반도성, 단층을 극복해 그 중심-조정, 매개, 가교, 균형추로 새로 나야 한다. 그러기 위한 자강의 힘을 만들어야 한다.
    대 한민국의 자강은 역사에서 배우되 나쁜 운명을 거부하고 새 운명, 새 표준을 창조해야 한다. 세계 4대 강국, 즉 이 세상 군사·외교·경제·문화의 기준과 규범을 지배하는 현실 세력을 뛰어넘는 새로운 차원의 힘을 창조해야 한다. 원천적으로 지정학의 부활을 거부하고 물리력의, 힘의 지배를 거부하고 지구촌 보편질서, 인류 보편윤리에 즉한 새 대안 질서의 선구자가 돼야 한다.


    자강의 새 길과 ‘숙의’ 플랫폼의 조건

    이제 이 넓고 깊은 우리 생존 문제들을 녹여서 자강의 부분에 초점을 맞춰보자. 국민은 왜 세금을 내야 하고 어떻게 하면 세금이 아깝지 않은지 자발적으로 따져야 한다. 국가는 어떻게 국민과 국경의 안전과 평화를 지킬지 끊임없이 실증해야 한다. 사회는 연대해 더 좋은 가치의 인간 공동체가 되도록 자각(自覺)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 그런 고전적·원형질적 기본의 나라, 한반도·한민족의 중심이 되는 길, 자강의 새 길을 닦는 일이다.

    첫째, 거국적 자강의 결의를 다져야 한다. 여야를 넘어 장기 기본 국가전략으로 사대의 습관에서 벗어나는 자강의 결의를 다짐하는 계기, 가장 시급한 적전 분열을 않겠다는 정치권발 다짐의 몸짓이 나와야 한다.

    둘 째, 그런 계기를 만들기 위해 정권 변동에서 자유로운 자강 ‘숙의’의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자강을 향한 장기적 동원 방략을 숙의하는 것이다. 한 정권 차원, 행정부 차원의 집행을 염두에 둬선 안 된다. 숙의를 거듭해 국가와 국민, 특히 정치권과 지도적 공공 및 민간 기관의 오래된 사대·의타적 습관, 몸짓, 심성을 고치는 방략을 거국적으로 세우는 것이다. 이 같은 거국 체제의 유도 장치가 자강 플랫폼의 역할이다. 

    셋째, ①플랫폼 위원은 좌우, 보수·진보의 프레임을 극복한 인사여야 하고 경험과 학식이 다양하게 풍부하며 편향되지 않은 소수로 구성하고(스웨덴 의회 옴부즈맨 또는 보통 원로원의 변형), 위원은 사망 시까지 어떤 정치권력, 경제적 이해관계 조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서약해야 한다. ②숙의 내용은 일정기간(예: 10년) 외부에 공표하지 않으며 ③이들은 안보·외교·경제 ·과학기술·문화와 관련해 민관 책임자, 핵심 기술자와의 접촉 또는 정보 요구 권한은 있으나 일상의 집행에는 일절 관여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④숙의 결과는 플랫폼의 집단 의견으로 대통령(현재 헌법 기준)에게만 보고하고 숙의 결과의 집행은 대통령에게 맡겨야 한다.

    넷째, 비록 대상과 실체는 달랐지만 국가개조, 비정상의 정상화, 적폐청산이란 용어(문제의식)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같았다. 그만큼 이 나라가 극단의 분열과 막다른 골목(aporia), 구조개혁 패러다임 시프트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처지로 몰렸다.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에서 과거 보수, 진보 20년을 뛰어넘겠다고 다짐한 문재인 대통령이니 자강 플랫폼을 주도해줄 것을 기대한다. 특히 워싱턴에서 트럼프, 베를린에서 푸틴, 시진핑 등을 만나고 한 고백, ‘현실적으로 (북핵을) 해결할 힘도, 합의 이끌 힘도 없더라’라는 탄식이 진정이라면 이 절망을 넘어 대한민국을 자강으로 탈바꿈하는 플랫폼을 주도하기 바란다. 만일 청와대가 안 나선다면 국회 차원에서 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 그것도 안 되면 미력하나마 민간 차원에서라도 토대 작업을 벌이자.



    코리아 패싱 막는 길

    다섯째, 지속적 숙의 과정에서 지쳐 쓰러져 희생되는 플랫폼 위원이 나올 정도로 여야 및 현재·미래 정치권과 숙의하라. 현재 진행 중인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자강’의 대의 기본 원칙과 규범만 다뤄야 한다.

    여섯째, 기존의 정치·행정·기업·기술·외교의 이해관계 틀에서 완전히 벗어나 대한민국의 연성력(soft power)과 경성력(hard power)을 집결해 국가 목표의 지향적 조정, 집행 가능한 안보, 외교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새 틀을 숙의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가 근대화 혁명에서 성취하고 또 현재 진행 중인 성과를 전략적으로 ‘연결’ ‘집중’ ‘목표지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우 리가 그렇게 자랑하는 정보통신 능력이라도 그것이 외국 IT업계의 실험장, 테스트 베드나 되고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국가의 안보 능력과 국방기술 향상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것이 국가가 해야 할 IT기술 정책이다. 그 낙수효과가 민간산업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선순위는 안보·자강의 과학기술 정책이어야 한다.

    201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민간 영화사 소니픽쳐스가 북한으로부터 해킹을 당했다. 김정은이 싫어할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북한에 예고하고 북한 행정 전산망을 마비시켰다.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미국이 아니라 정보통신 대국이라고 그리도 자랑하는 대한민국이 북한 전산망을 마비시키는 ‘힘’을 보여줬어야 했다. 그것은 단순히 북한만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그런 능력을 확보하고 집행했을 때라야 북한은 물론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대한민국을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이다. 코리아 패싱을 막는 길이다.

    스위스가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서도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이탈리아도, 이 두 나라와 싸우는 프랑스·영국도 스위스의 우월한 정밀화학(화약 폭탄)과 기계제품(탱크 대포 군함 등의 부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소프트웨어 없이는 미국 국방기술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이 이스라엘을 편드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외교·안보·과학기술·산업·교육·문화의 모든 역량을 국가 자강 우선으로 조정·연결 집중·재편해야 한다. 국방 개혁과 국방기술 개발 체제 개편은 너무 오랜 숙제이니 여기서 더 거론할 필요도 없다. 전략을 올바르게 세우고 동원 체제를 재편하면 북한은 물론 4대 강국에도 결정적 타격을 줄 수 있는, 즉 4대 강국도 우리를 꼭 필요로 하는 연성·강성력을 만들 수 있다.


    전면적 의식개혁 일어나야

    일곱째, 의식개혁이다. 공공, 민간부문 모두 너무 오랫동안 미국과의 안보동맹에 안주하고 ‘평화’ ‘민족’ ‘통일염원’에 취해 이 땅, 이 나라, 이 지구에서의 우리 삶의 생명·안전·평화의 진가를 무시하고 살아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장이요 이 나라 정통성의 큰 상징인 백범 김구 선생의 손자가 국가 정체성 관리부서인 보훈처장까지 지내고도 방위산업 비리 부패로 감옥에 있는 현실은 너무 슬프다. 2015년 6월 26일, 백범 66주기 그날 그 손자 김양 전 보훈처장이 구속돼 참석지 못하는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 1991년 이래 매년 추모식에 참석했던 나로서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강의 의식·목표·의무를 백범의 손자까지도 망각한 현실 앞에 이 나라 전체 자강의식이 얼마나 부패·퇴화했는지를 알 수 있다.

    의 식개혁과 적폐청산 없이는 외형적으로 물리적·통계적 능력이 아무리 충족되어도 자강은 불가능하다. 국민 사이에서 자강·자립과 관련한 전면적 의식개혁이 일어나야 한다. 세계 제일의 전력 소비, 최고 수준의 고급 외제 승용차 비율, 낭비 최고의 도시, 화장품과 전자제품 테스트 베드가 되는 사치, 쌀을 제외한 곡물을 거의 100% 해외에서 수입하는 철저한 반(反)자강의 국민이어서는 안 된다. 한국을 잘 아는 짐 데이터 하와이대 교수, 폴 케네디 예일대 교수도 공공연히 휴전선을 코앞에 두고 이럴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의식개혁 없이는 외형적으로 물리적 통계적 능력이 아무리 충족돼도 자강은 불가능하다.

    여덟째, 공동체로서의 국가와 시민으로서의 능력이 미·중·일·러보다 월등히 우월해야 한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지식 정보센터가 돼야 한다. 이 세계에서 4대 강국에 각각 50만~200만 이상의 교포를 두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근대사 비극의 퇴적층이지만 그 비극 위에서 국제적 인물이 등장했으며 해외교포 네트워크가 생겼다.

    진짜 친미, 친중, 친일, 친러 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위기에도 백악관, 중난하이, 크렘린, 도쿄의 총리관저와 바로 통화할 수 있는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한국 근대의 비극은 개화파 엘리트들이 외세의 앞잡이로 비난받았다는 데 있다. 진정한 친미, 친중, 친일, 친러파면서 지극한 애국자요 헌신하는 이타적 국가 엘리트를 키우고 가져야 한다.



    생각, 몸짓, 지향 바꾸자

    아홉째, 지금까지 제안한 플랫폼의 구성과 기능이 계몽주의적·폐쇄적·엘리트주의적 접근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의든, 직접이든 민주정치의 전제는 참여자가 충분한 정보와 판단 그리고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다. 세계 보통 사람의 상식을 훌쩍 뛰어넘는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자강 플랜의 역할은 시민직접민주주의 방식으로 접근하기 어렵다.
    대한민국이 동맹하는 쪽이 상대적이 아니라 결정적 우세가 되는 자강의 연성·경성 능력을 갖추면 대한민국의 정치는 확실히 시민민주주의를 촉진할 수 있다. 자강 플랫폼은 대한민국 국가·사회 공동체의 생명·평화에 대한 장기 기본조건과 목표, 그리고 힘의 결집만을 지극하고 차분하고 냉정하고 열성적으로 숙의해야 한다. 자강 목표와 결의가 나와도 그 실천 체제를 정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오늘에 만족하면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의 문제를 내일로 미루면 오늘은 걱정 안 해도 된다. 어제까지의 성공에 자족하면 오늘과 내일의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어제의 나쁜 버릇, 고착된 도착(倒錯)을 해방시키려면 오늘만 고쳐서는 안 된다. 내일의 조건과 시간에 맞추는 자기 탈각에의 충실로 가야한다. ‘한반도의 분단성’과 4강 틈바구니의 숙명을 거부하자. 인류 지구촌 문제 해결의 최고 밀집 집결지인 대한민국이 자강의 길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아시아·태평양 중심이 되는 것이고 게임 체인저, 균형자, 조정자가 되는 길이다. 생각을, 몸짓을, 지향을 바꾸자. 그 첫발로 모양내지 말고 소리 지르지 말고 자강 숙의 플랫폼을 구축하자. 죽기 살기 각오로 대한민국 자강 원년의 출발을 다지자.




    김진현
    ● 1936년 경기 안성 출생
    ● 양정고, 서울대(사회학과) 졸업
    ● 하버드대 니만펠로과정(경제개발) 수료
    ● 동아일보 논설주간, 상무
    ● 과학기술처 장관
    ● 서울시립대 총장
    ● 現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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