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호

프리츠커 프로젝트

콘크리트 미학으로 빚어낸 21세기형 한국 정자(亭子)

펜션의 진화, 그 정점 꿈꾼 ‘유 리트리트’

  • 글·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사진·홍중식 기자 free7402@donga.com 김재윤 작가

    입력2017-09-03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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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소    강원 홍천군 서면 한서로 1468-55   
    개관    2016년 5월 4일
    수상    201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대통령상),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건축물 best 7, 미국 아메리카 건축상
    설계    곽희수
    문의    033-433-2786



    강원도 홍천의 소리산 줄기, 사리골 계곡에 위치한 ‘유 리트리트(U RETREAT)’는 무엇보다 그 독창적 외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다. 우주선 같은 외형으로 TV 광고에까지 등장한 이 건축물의 용도는 과연 뭘까.

    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리트리트(retreat)라는 낯선 개념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리트리트는 가톨릭 신자들이 영적 쇄신을 위해 일상에서 물러나 묵상과 기도,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고요한 공간에 머무는 피정(避靜)의 의미를 끌고 온 개념이다. 지금껏 기업형 숙박·휴양시설은 여관-모텔-호텔-리조트로 진화해왔다. 리트리트는 한발 더 나아가 육체적 휴식과 편리함을 넘어 정신적 휴양의 의미를 더했다. 더블유(W) 호텔을 운영하는 스타우트 그룹이 자연과 하나 된 한 차원 높은 리조트 브랜드로 ‘더블유 리트리트’를 내세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 리트리트는 이에 대응하는 전략적 포석으로 작명됐다. 민간 차원의 숙박·휴양시설 역시 민박-펜션-부티크 펜션을 거쳐 정신적 휴양까지 포괄하는 리트리트로 진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는 동시에 더블유(W)보단 작지만 그에 필적할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유(U)를 붙인 것이다. 한마디로 자연과 하나 된 정신적 휴양 공간으로서 최상의 형태로 진화한 펜션을 지향한다는 의미다.

    이를 설계한 곽희수(50) 이뎀도시건축 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 사람은 쉬는 게 곧 노는 거잖아요. 그래서 휴가철만 되면 도시를 떠나 자연을 찾는다면서 실상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온갖 레저를 즐기기 바쁘죠. 가만 보면 도시 생활의 자극을 계속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이제는 자연과 하나 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진정한 휴식 시간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서 유 리트리트를 설계하고 작명하게 됐습니다.” 1997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건축가 스베레 펜은 말했다. “건축은 시간의 정지, 풍경을 드러내기 위해 지구 위에 쓴 철학이다”라고.

    자연과 하나 되는 지극한 휴식의 공간을 지향하는 이 건축에는 역설이 숨어 있다. 1600평 언덕 부지에 세워진 3개의 숙박동과 1개의 관리동이 모두 도시 하면 떠오르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지붕에 해당하는 공간이 잔디로 덮여 있고 저마다 다른 언덕 층위에 맞춰 물결치듯 지어진 데다 외벽이 워낙 매끄럽게 보여서 그렇지 분명 콘크리트 건축이다.

    이 선택은 세 가지 차원에서 빛을 발했다. 첫째는 스타일이다. 콘크리트 건물은 곽희수 소장의 트레이드마크다. 그가 지은 배우 장동건·고소영 부부의 경기 가평 신천리 주택과 배우 원빈의 강원 정선 주택도 콘크리트 건축이다. 그 특징은 단순하면서도 절묘한 건축의 외곽선을 살려내는 것이다. 핵심은 ‘외팔보’로 번역되는 캔틸레버의 극적인 활용이다.

    캔틸레버는 다이빙대처럼 한쪽 끝은 고정됐지만 다른 쪽 끝은 자유롭게 돌출시킬 수 있는 구조를 뜻한다. 유 리트리트의 숙박동 1층과 2층의 캔틸레버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고 그 대부분은 유리로 감싸여 있다. 개별 숙소마다 색다른 전망을 제공하면서 외부 시선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독립된 공간을 만끽하도록 한 설계다. 건축물의 하중을 분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둥들은 객실 내부로 집어넣었는데 높은 천장과 어울려 한결 고급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자아낸다. “콘크리트를 부어 지은 건물은 손으로 지은 건물이라 할 수 있다”고 한 안도 다다오(1995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일본 건축가)의 말이 떠올랐다.




    둘째는 주변 환경과 조화다. 유 리트리트는 사진으로 접했을 때와 현장에서 직접 봤을 때 느낌이 크게 다르다. 무엇보다 차 하나 오갈 도로를 사이에 두고 100m가 넘는 수직 절벽을 마주하고 있다. 수풀이 우거진 여름철엔 초록색 장벽이지만 잎이 다 떨어진 겨울철엔 잿빛 기암괴석의 절벽이다. 여기에 24시간 계곡물 소리가 들릴 정도로 바로 코앞에 홍천강의 지류가 흐른다. 주변 자연환경이 건축을 압도한다는 소리다. 곽 소장은 “조물주가 빚어놓은 건축물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질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그 위용에 짓눌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돌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전통의 재해석이다. 곽희수의 캔틸레버 구조는 뜨거운 햇빛과 거센 빗줄기를 자연스럽게 차단해주는 전통 한옥의 처마와 같은 효과를 발휘한다. 그래서 캔틸레버의 그늘 아래는 어김없이 계곡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 좋은 포치(porch)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주변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처마가 달린 돌기둥 집 하면 어떤 건축물이 떠오르는가. 그렇다, 유 리트리트는 콘크리트로 빚어낸 현대적 정자(亭子)다.

    서양의 리트리트가 수도원과 기도원을 그 원천으로 삼았다면 한국의 리트리트는 선비들의 휴양 공간으로서 정자를 21세기 공간으로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 곽희수 소장의 이런 발상의 전환이 유 리트리트 건축의 기저에 흐르고 있었다. 건축주인 서윤원 유 리트리트 대표는 “원래는 별장용 부지로 구입했는데 이 경관을 나 혼자 독차지하기보다는 다른 사람과 나누자는 생각에 곽 소장을 만났고 ‘아직 세상에 없는 휴양공간’을 만들어보자는 데 의기투합해 보통 3,4개월 걸리는 설계 기간에만 1년 6개월을 들였다”며 “그만큼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입됐지만 또 그만큼 보람과 자부심도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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