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 3월.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직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했다. 딱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불안감이 엄습하자 시쳇말로 ‘아이를 맡긴 죄인’이라는 말이 실감났다. 친구와 지인들이 교사에게 촌지를 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학부모가 바로 서야 교육계가 맑아진다”고 극구 주장하던 터였다.
하지만 막상 학부모가 되니 사정이 달라졌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오늘 학교생활은 재미있었어?” 혹은 “손 들었을 때 선생님이 잘 시켜줬어?”하고 물어보았다. 행여 교사가 아이들을 편애하거나 차별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입학한 지 열흘쯤 지나 일부 학부모가 돈봉투를 들고 학교를 찾아가 교사를 만나고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적정가’는 10만~20만원. “거절하는 내색 없이 태연하게 받더라”는 부연설명이 곁들여졌다. 마음이 더 조급해졌다. 교사가 촌지를 건넨 부모의 아이와 촌지를 안 준 부모의 아이를 차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시집 속에 상품권 끼워 전달
그때쯤 ‘교사에게 촌지를 주는 것은 사회악’이라는 필자의 생각은 자라목처럼 쏙 들어갔다. 대신 ‘철없는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느라 고생하는데 약간의 촌지를 주는 것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현금을 건넬까, 백화점 상품권을 갖다줄까 고민하다가 결국 후자를 택했다. 촌지를 준다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떨쳐버리기 위한 나름의 선택이었다.
그런데 달랑 봉투만 건넨다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그제야 촌지를 줄 때 책과 케이크 상자가 적합한 ‘도구’임을 절감했다. 시집 한 권을 구입해 10만원권 백화점 상품권이 담긴 봉투를 넣었다. 교사와 대면했다.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대화를 나눈 후 가방을 열었다.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교사에게 시집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책갈피 사이에 촌지가 들어 있음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한 인사였다.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마치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처럼 그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심장 박동은 더 빨라졌고 화끈거리는 얼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인사를 한 후 재빨리 교실 문을 나섰다. 뒤통수가 당겼고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았다. 이후 더는 교사에게 촌지를 건네지 않았다. 주는 손과 받는 손이 모두 부끄럽게 여겨졌고, 두 번 다시 양심에 거리끼는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주려면 하루라도 빨리 줘라?
촌지에 대한 취재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년여 동안 ‘생활 속에서’ 만난 수많은 학부모와 교사가 취재대상이었다. 촌지를 건네는 과정과 갈등은 필자와 비슷했다. ‘불안감’ 에 촌지를 건네는 경향은 초등학교 입학 직후에 가장 두드러졌다.
촌지를 기준으로 학부모 유형을 분류하면 크게 세 가지다. ‘당연히 준다’, ‘교사의 성향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준다’, 그리고 ‘전혀 주지 않는다’가 그것. 초등학교 학부모 중에는 둘째 유형이 가장 많았고, 첫째와 셋째 비율은 엇비슷했다. 중·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는 ‘당연히 준다’는 쪽과 ‘전혀 주지 않는다’는 쪽으로 나눠졌다. 초등학교 때와는 달리 교사의 성향에 개의치 않고 소신껏 행동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매년 신학기가 되면 학부모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담임교사의 성향과 촌지수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학부모 모임이 잦아지는 것도 이때다. 인맥을 총동원해 교사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교사의 성향을 분석한다. 촌지를 밝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가정형편은 어떤지, 여교사의 경우 남편의 직업까지 도마에 오른다. 백화점 상품권과 현금 중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와 같은 사소한 정보도 교환한다.
지난 3월초, 경기도 분당의 전모(37)씨는 신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담임에게 20만원을 건넸다. 지난해 촌지의 ‘위력’을 경험한 후 주려면 하루라도 빨리 주는 게 좋다고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