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충격 비화

부시 전 美대통령, 2차대전 때 일본군에 인육으로 먹힐 뻔 했다

1945년 2월 오가사와라 제도의 참극

  • 글: 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부시 전 美대통령, 2차대전 때 일본군에 인육으로 먹힐 뻔 했다

2/4
장군은 내게 미군의 처형에 대해 물으면서 인육을 얻을 수 없겠냐고 했습니다. 그래서 인육과 술 한 되를 준비시켰습니다. 인육은 가토 대령의 방에서 요리했는데,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조금씩 맛보아야 했습니다. 물론 인육이 맛있다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치바나의 명령에 따라 마토바가 처형한 미군 포로의 처리에 대해 구두명령이 내려졌다. 괌 군사재판에 증거로 제출된 당시의 명령은 다음과 같다.

1. 대대(大隊)는 처형된 미군 조종사의 인육을 먹을 것.

2. 간(冠) 중위는 그 인육의 배급을 담당할 것.

3. 사카베(坂部) 군의관은 처형에 입회하여 장기를 적출할 것.



1945년 3월9일 오전9시

대대장 육군 소령 마토바 스에이사무

발령방법: 간 중위와 사카베를 직접 불러 명령 하달. 다치바나 여단장에게 보고하고 호리에 참모에게도 통고함.

마토바는 보조위생병들을 집합시켜서 포로의 해부 광경을 지켜보도록 명령했다. 데라키는 마토바의 지시대로 사체를 처리했다. 그리고 308대대의 장교 전원이 방공호 안에 있는 부대장실로 불려와 포로의 인육을 먹어야 했다. 다치바나는 젓가락으로 인육을 집어 옆자리에 앉은 데라키 군의관에게 먹이기도 했다. 대충 씹는 흉내를 내던 데라키는 곧장 화장실로 가서 모두 토해냈다고 한다. 해군의 요시이 대령도 구라사키 대위, 고야마 소위 등 부하 장교들과 함께 구금 중이던 미군 포로를 살해하여 장기와 인육을 적출한 뒤 이를 병사들에게 먹도록 했다.

호기심, 군사문화, 소영웅주의

2차대전을 통털어 인육사건이 등장한 것은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의 경우뿐이다. 열악한 군비와 부족한 식량으로 태평양의 크고작은 도서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일본군이 기아에 허덕이다 인육을 먹었다는 것은 당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전후 도쿄재판의 기록(1946년 12월11일)에 의하면, 1944년 12월 뉴기니 전선에서 제18군사령부가 “연합군의 인육을 먹는 것은 허락하지만 아군의 인육을 먹으면 엄중하게 처벌한다”는 지침을 내렸으며, 실제로 명령을 위반한 병사 4명을 처벌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치치지마의 경우는 기아나 식량부족이 원인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더욱 경악하고 분노했다. 당시 치치지마의 식량상황을 보더라도, 쌀 배급량이 5홉에서 3홉으로 줄었지만 본토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따라서 인육사건의 동기는 사기진작을 위한 소영웅주의나 엽기적인 호기심, 그리고 포로를 학대하는 일본의 군사문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데에 있는 것 같다.

이윽고 일본이 패전하고 1945년 9월2일, 치치지마에도 미군이 상륙했다. 9월3일 다치바나 중장과 모리 중장이 대표로 미군 함정에서 정식으로 항복했다. 항복교섭에서 미군은, 낙하산으로 탈출한 미군 조종사가 몇 명 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됐는지 알고 싶다고 했다. 교섭에 나섰던 호리에 요시타카 참모는 방공호에서 포로 전원이 폭사했다고 둘러댔는데, 그에 대하여 미군 대표인 스미스 대령은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이미 일본군은 전범으로 처벌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면밀하게 입을 맞추어두었다. 포로들의 가짜 묘도 만들고 전 부대원에게 침묵할 것을 지시해놓았다.

미군 지휘관인 해병대 렉시 대령은 의외로 일본군을 너그럽게 대했다. 일본군의 본토 귀환도 순조롭게 이뤄져 호리에도 안도했다. 그러나 마토바 부대의 귀환은 자꾸 연기됐다. 사실 그동안 미군은 일본 본토로 조사관을 파견하여 귀환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진상을 파악하고 있었다.

“국가를 증오하며 죽어갑니다”

1946년 2월 초, 마침내 셰퍼 미군 소령은 호리에를 불러 “잔학행위의 수괴는 육군의 다치바나와 마토바 그리고 해군의 모리와 요시이가 아닌가?”하고 다그쳐 물었다. 곧이어 일본군에 대한 체포가 이어졌다.

5월부터 9월까지 괌에서 군사재판이 열렸다. 치치지마 관련 피고는 다치바나 중장 이하 25명이었는데, 토라크 섬에서 자행된 포로 생체해부 등 중부태평양 각지의 만행에 연관된 전범용의자는 모두 63명에 달했다. 그중에서도 치치지마의 인육사건이 가장 주목을 끌었다. 심리 중에 처참한 증언이 이어졌는데, 특히 다치바나의 당번병이 인육을 먹던 일본군의 주연(酒宴) 상황을 묘사하면서, 다치바나가 “맛있다, 한 접시 추가!”라고 했다고 증언하자 법정은 물을 끼얹은듯 조용해졌다.

2/4
글: 이창위 대전대 교수·국제법
목록 닫기

부시 전 美대통령, 2차대전 때 일본군에 인육으로 먹힐 뻔 했다

댓글 창 닫기

2019/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