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뜸사랑’회원들과 함께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김남수 선생.
내가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민심이 천심이란 말을 명심해야 될 거다. 어딜 가서 들어봐도 똑같은 얘기들을 하고 있다’고 했더니 자기 생각도 그런데 경호실장 차지철이 강경하게 나와서 큰일이라고 해요. ‘부마사태 같은 건 한 200만명을 죽일 각오만 하면 다 해결된다’고 하더랍니다. ‘내일 삽교천 준공식에 다녀와서 다시 회의를 하겠지만 사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다’고 걱정을 합디다.”
10·26사태로 물 건너간 침구사 양성화
그랬는데 바로 이튿날 10·26 사태를 신문에서 읽는다.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경호실장 차지철과 대통령 박정희를 권총으로 쐈다는 경악할 사건. 구당 선생에게 그 총성은 침구사 제도 부활이 문턱까지 갔다가 물 건너가는 소리이기도 했다.
“대한민국 침의 운명이 그것밖에 안 되는 거죠. 다 포기하고 침뜸을 그만둘까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디 포기가 되는 일입니까.”
그날 물 건너간 침구사 양성화는 여태껏 제도화되지 못했다. 중국과 일본에서는 침구사 대학이 나날이 늘어가고 서양에서도 침과 뜸의 효능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며 대체의학으로 각광받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침뜸이 ‘불법 의료행위’다.
“물론 ‘한의사가 침을 놓고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하겠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의사는 침구사가 아닙니다. 침구사는 침과 뜸만으로 병을 고치는 사람이지만 한의사는 그렇지 않잖아요. 한의사는 침뜸을 전문으로 하는 침구사만큼 침술과 뜸술에 능할 수가 없어요. 설령 능하다고 해도 약으로 처방하는 것보다 훨씬 힘든 품을 팔아야 하고 의료수가가 훨씬 싼데 누가 침뜸만 하고 있겠습니까. 더구나 뜸은 자리만 알면 누구나 직접 뜰 수 있어요. 환자에게는 아주 좋지만 의사에게는 돈벌이가 전혀 안 되는 일이거든요. 뜸을 자꾸 권했다간 의사 폐업하기 십상이지요.”
원시적인 자연의술
침과 뜸은 가장 원시적인 자연의술이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사람은 본능적으로 아픈 곳을 누르거나 긁거나 도구를 이용해 자극할 줄 알았다. 돌이나 동물 뼈로 침을 만들어 스스로 제 몸의 병을 치료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뜸은 추운 지방에서 불을 쬐면서 찾아낸 의술이다.
침뜸은 중국 본토보다 동방과 북방지역에서 먼저 생겨났다는 기록이 ‘황제내경’에 나온다. 바로 한반도와 만주 일대다. 북부지역은 날씨가 매섭고 혹독하니 선사시대 사람들은 불을 가까이 하여 몸을 녹였을 것이다. 더구나 그들은 차가운 벌판에 살면서 양고기나 양젖을 먹고 살았을 테니 배탈이 자주 났고, 그럴 때 배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치료법이었을 터다. 처음에는 불에 데운 돌덩이를 쓰다가 차츰 건초를 몸에 붙여 온열치료를 하는 뜸법이 발전했으리라.
나 어렸을 적만 해도 열이 나거나 체할 때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 피를 내는 것쯤은 누구나 할 줄 아는 응급처치법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웃에 병원이 생기면서 우리는 어느새 손을 따기보다 약을 먹거나 주사 맞는 걸 더 신뢰하게 돼버렸다. 수천년 이어지던 그 방법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어느새 원시적이고 비과학적인, 배척 대상 의술이 되고 나아가 한의사 아닌 사람이 침이나 뜸을 뜨면 불법의료행위로 고발을 당한다.
실제로 구당 선생은 침과 뜸을 들고 산골이나 섬으로 소외된 이들을 찾아 봉사를 다니다 검찰에 고발당한 일이 여러 번 있다. 붙들려가서 기소유예 처분을 세 번이나 받았다.
“붙잡아놓고 벌을 주려고 해도 내가 돈을 받았어야 말이지. 불법 의료행위란 시술한 대가로 돈을 받아야 성립되는 거거든요. 조사관도 너무 안타까우니까 ‘선생님 이제는 봉사활동 좀 그만 다니십시오’ 그래요. 노화도에 가서 마을 노인들을 모아 침을 놓고 있는데 고발이 접수됐다면서 경찰이 나왔어요. ‘다 그만두고 해산시키라’고 합디다. 내가 하도 기가 막혀 ‘요즘 한의대에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몰린다던데, 한의사들은 왜 이리 멍청하냐’고 했어요. 우리가 매일 가는 것도 아니고 단 하루만 시술하고 떠날 텐데, 침뜸의 효과가 좋으면 결국 자기네 한의원으로 침 맞으러 갈 텐데 그걸 못 참고 안달할 게 뭐냐고 핀잔을 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