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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 진 문공의 국가경영학

군정합일(軍政合一), 정평민부(政平民阜), 개방 인사로 내실 성장

  • 글: 박동운 언론인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 진 문공의 국가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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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험하디 험한 후계자 다툼 속에 여러 인접국을 유랑하며 집권의 순간을 기다려온 진나라 문공. 굶주리고 박대받던 19년 세월이 그에겐 현군(賢君)의 자질을 쌓는 값진 자양(滋養)이었다.
  • 그는 이를 토대로 집권하자마자 다채로운 국력 배양책을 쏟아냈는데, 특히 ‘초재진용(楚材晉用)’이란 성어가 생길 만큼 개방적인 인사정책은 그의 치하를 더욱 번성케 했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 진 문공의 국가경영학

일러스트 이우정

망명과 유랑 19년에 지칠 대로 지친 노구를 가까스로 추슬러 귀국하고는, 즉위하자마자 안정을 되찾고 신경지를 개척하며 부강조국을 이룩한 정치가가 있다. 춘추시대 두 번째 패자(覇者)로 등장한 진(晉)나라 문공(文公)이다. 그 성공의 비결엔 현대인도 배울 점이 많다.

원래 진나라는 고대 한(漢)족이 주로 모여 살던 중원(中原)의 제후국치곤 퍽 강대한 편이었다. 그러나 헌공(獻公) 재위시에 후계자 선정문제를 둘러싼 자중지란이 심화되면서 국세가 급속히 추락하고 말았다.

헌공도 중년까지는 퍽 똑똑한 편이었다. 그러나 아내를 여읜 뒤 그 자신 전쟁을 즐기며 정복지에서 소수민족 미인들을 ‘전리품’으로 수탈해 궁중에 들여놓고 익애(溺愛)하면서부터 탈선과 오판이 잦았다. 일찌감치 찾아든 노망끼 탓인지도 모른다.

특히 여산에 살던 융족 일부를 정복해 그곳의 미인 여희 자매를 얻어 몹시 사랑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 여희는 아들 해제(奚齊)를 낳았고, 그 동생은 아들 탁자(卓子)를 낳았다. 이에 앞서 헌공은 이미 선처와의 사이에 태자인 신생(申生)과, 둘째 중이(重耳), 셋째 이오(夷吾)를 뒀는데, 세 아들 모두 착하거나 똑똑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한편 여희는 야만족 출신으로 배운 것은 없었으나 머리가 좋았다. 그녀는 자기 소생인 해제로 하여금 태자가 되게 하여 정복자의 나라를 거꾸로 탈취하고자 결심했다. 그 기초공사로 우선 헌공에게 최선의 봉사를 다해 사랑을 받는 동시에 유력한 대신들을 포섭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노력엔 빈틈이 없었다. 그 바탕 위에 전형적인 궁중 음모 3단계 작전을 구상했다. 냉정하게 병법적 시각에서만 평가한다면, 단기적으론 성공작이었다.



우리 조선왕조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시도가 있었다. 앞으로도 유사한 시도가 있을는지 또한 알 수 없으니, 정치적 경각심을 갖도록 머리의 체조 삼아 읽어나가기 바란다.

궁중 음모 3단계 전략

[제1단계-라이벌 따돌리기] 여희는 자기가 낳은 해제를 새 태자로 결정할 생각이 헌공에게도 없지 않음을 알았다. 그러나 태자 후보 경선에 나설 경쟁자들이 만만찮음을 관측했다. 라이벌들을 먼 곳으로 따돌려 경쟁력을 약화시킬 필요성을 통감한 것. 그래서 유력한 안보담당 대신들을 뇌물로 매수해 헌공에게 건의케 했다.

“우리 진나라의 사활적 요충지는 곡옥(曲沃), 포(蒲), 굴(屈)인데, 나라를 수호하려면 유능한 공자님을 각기 현지에 거주시켜 다스리게 하는 방법이 있을 뿐입니다.”

헌공이 그 진언에 따라 태자 신생을 곡옥, 둘째 중이를 포, 셋째 이오를 굴에 보내 거주케 하면서 군사와 행정을 총람하는 임무를 부여했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살게 한 것이다(中華書局, 春秋左傳 註, 北京, 2000, 上 239쪽).

그런데 영국의 처칠은 “무대 가까이 있어야 등장할 기회가 많다”고 갈파한 바 있다. 음모를 방지하고 자기 세력을 심어두기 위해서도 최고 통치자 가까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라에 정치 중심지가 둘 있다면 먼 곳을 선택하는 것이 불리하고 위험하게 마련이다.

[제2단계-주적(主敵)의 제거] 적은 하나여야 한다. 공격할 때는 중점을 설정하고 거기에 힘을 집중 투입해야 한다. 이곳저곳으로 정신이 흩어지면 지고 만다. 양면(兩面) 작전은 패망의 선택이자 바보짓이다.

여희는 그 점을 잘 헤아리고 있었다. 세 공자가 합세(合勢)하지 않도록 유의한 것이다. 우선 태자 신생을 부추겨 간계에 말려들게 했다. 신생이 거주하는 곡옥의 전통음식을 헌상하면 부군께서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진상 음식이 도착하자 여희는 남몰래 음식에 독극물을 섞었다. 헌공이 식사하려 하자 여희가 말리면서 먼저 시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고는 한 조각을 개에게 던졌더니 먹자마자 개가 쓰러졌다. 이어 노예에게 먹어보라 했는데 역시 죽고 말았다. 여희는 통곡하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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