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호

‘세계경영’ 조타수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처음으로 입 열다

“김우중은 관료들이 조종하는 채권단에 당했다”

  • 박성원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parker49@donga.com

    입력2005-07-28 11: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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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기업어음·회사채 발행 제한은 누가 봐도 대우 겨냥한 조치
    • 1999년 7월 대우가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은 금감위가 써준 것
    • 세계경영이 부실? 누가 공장설립부터 100% 가동하나, 그건 마술
    • 기업 살리는 데는 경제 관료보다 판사가 나았을 것
    • 급속도로 성장한 기업은 대부분 분식(粉飾)
    ‘세계경영’ 조타수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처음으로 입 열다
    “차나 한잔 하고 간다면…” 하는 전제로 만난 자리였기에 취재수첩을 꺼낼 수 없었다. 마주앉은 사람은 장병주(張炳珠·61). 그는 1998년 1월부터 1999년 11월까지, 그러니까 금융위기 이후 대우그룹이 본격적으로 자금 압박을 받을 때부터 해체될 때까지 그룹의 모태인 (주)대우의 사장을 지냈다. 장 전 사장은 김우중 전 대우 회장을 제외하면 가장 오랫동안 대우에 근무했으며, 또 하고 싶은 말이 가장 많았을 사람이다.

    갑작스러운 그룹 해체, 회장의 해외 도피, 이어진 채권단의 고발, 수감 생활, 세 번의 재판을 거치고 나니 6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3조1000억원의 추징금 통지서뿐이다. 물론 그만 고통을 당한 것은 아니다. 이상훈 전 (주)대우 전무는 추징금이 21조원에 달했다. 대우에 인생을 걸었던 수많은 대우맨의 고통은 또 얼마나 되는가. 한번쯤, 대우 패망의 원인을 털어놓고, 도피한 ‘주군’을 위해 변명이라도 할 법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살다보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더 많다”는 숙명론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대우그룹을 ‘금융위기의 주범’이자 재벌 경영의 폐단을 드러낸 ‘죄인’이라고 보는 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가 (주)대우 대표이사로서 실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사실 역시 입을 무겁게 했을 것이다. 주위 변호사들의 권고도 한몫 했을 것이다. 누구라도 꺼내보기 싫은 과거를 낯선 기자에게 털어놓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차분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한 그의 부탁을 결과적으로 들어주지 못했다.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뭘 후회해요?”

    대우그룹은 1999년 해체될 때까지 32년 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했다. 재계 2위까지 올랐던 그룹은 그러나 하루아침에 망했고, 여기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 대우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해체에 관여한 당시 경제 관료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다. 간헐적으로 인터뷰가 실렸지만, 정작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1998년 7월 대우그룹 자금 압박부터 1999년 10월 김우중 전 회장의 해외 도피까지 1년3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정부 고위 관료들은 그에게 어떤 약속을 하며 도피를 권유했는가. 관료들을 불신하며 법정관리까지 검토하던 김 전 회장은 왜 결국 무릎을 꿇었는가. 대우는 1997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나, 희생자였나. 장병주 전 사장과 두 시간 남짓 나눈 대화는 이런 물음을 풀어가는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김우중 전 회장이 요즘 귀국한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식구들 입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안됐잖아요. 몸 상태도 안 좋고…. 회장 본인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다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지금 와서 뭘 후회합니까. 우리 처지에선 귀국이 조금 빨랐으면 했는데….”

    ‘세계경영’ 조타수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처음으로 입 열다

    그는 김대중 정권 초기 DJ를 만나 구조조정 얘기를 나누었다.

    -왜 귀국한 겁니까.

    “지난 4월 대우 임원들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있었어요. 분식회계와 사기 대출, 그리고 국내 자금 해외 유출로 유죄 선고와 함께 23조원의 추징금까지 부과됐습니다. 나는 3조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는데, 이상훈 전무는 21조원 가까이 됩니다(여러 사람에게 중복 부과돼 총액을 초과한다). 믿어지질 않아요. 분식회계하고 그걸 기초로 대출받은 부분은 잘못했다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국내 자금의 해외 유출 부분은 억울해요.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지만, 아쉬움이 많아요. 외국 금융기관에서 빌린 돈 갚는 데 모두 썼지, 우리 주머니로는 한푼도 안 들어갔어요. 외환관리법에따라 해외에서 빌린 돈은 해외에서 갚아야 합니다. 이 돈이 한국에서 나갔다는 점이 법을 위반한 건데… .”

    -알면서 왜 위반하신 겁니까.

    “해외지사에서 돈 빌릴 때, 본사가 지급보증을 섭니다. 그만큼 이자가 쌉니다. 당연히 그렇게 하죠. 그런데 금융위기가 터지고 나서 해외 금융기관에서 돈을 갚으라고 하니 본사에서 안 갚을 수 없잖아요. 지급보증을 섰으니까. 대우라는 브랜드를 어떻게 쌓아올렸는데, 신뢰를 무너뜨릴 수 없고. 이런 사정이 있었는데도 담당 임원 한 사람에게 21조원이나 추징금을 물렸어요. 김 회장이 이런 사실을 알고 견디기 힘들었을 거예요. 자금 유출은 김 회장의 명예와 직결됩니다. 내가 알기로 김 회장은 개인 재산이 없어요. 재산을 해외로 빼돌릴 사람이 아니에요. 그런 누명을 벗고 싶어 들어왔을 겁니다. 해외 생활에도 지쳤을 것이고, 가족도 보고 싶고….”

    -김 전 회장이 이대로 주저앉지는 않겠죠?

    “글쎄, 그 연세에 뭘 하실까요(김 전 회장은 올해 70세다). 재기하기 힘들어요. 내 사업을 갖고 다시 일으키는 것이 재기인데, 쉽겠습니까. 여생을 마칠 때까지 어느 나라에 자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대우그룹은 ‘대우실업’이라는 무역회사로 출발했다. 그룹의 모태가 된 대우실업은 (주)대우로 이름이 바뀌고, 김우중 전 회장이 가장 아끼는 회사가 된다. 그룹의 핵심 실세는 대부분 (주)대우 출신이다. 그러나 1997년 금융위기가 터지고 재벌개혁이란 이슈가 등장하면서 (주)대우는 분식회계를 일삼은 ‘원흉’으로 지목된다.

    재판에 회부된 대우 임원들이 (주)대우 출신인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4월 대법원은 강병호 전 (주)대우 사장에게 징역 5년, 장병주 전 사장, 이상훈 전 전무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김영구 전 (주)대우 부사장, 이동원 영국법인장, 김용길 전 전무에게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국내 자금 해외유출 및 불법 외환거래 혐의와 관련해서는 대우그룹 임원 7명에게 23조35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1998년 7월 기업어음(CP) 발행한도 제한조치에서 시작된 대우그룹 자금 압박. 이를 견디다 못한 김우중 전 회장은 1999년 5월 그룹 법정관리 검토를 지시한다. 이에 놀란 정부는 금융감독위원회 주도로 1999년 7월 대우 유동성 확보 방안을 내놓으며 김 전 회장의 자동차 소그룹 경영권을 보장한다. 그러나 그해 8월 관료들은 여러 경로를 통해 김 전 회장을 배제시킨 채, 사실상 ‘김우중 사망선고’를 언론에 흘린다. 그리고 2개월 뒤, 관료들이 그에게 어떤 약속을 했는지, 중국 출장에서 돌아와 하루를 보낸 김 전 회장은 종적을 감췄다. 2005년 6월13일까지. 그 사이 대우그룹은 해체됐다.

    ‘책상물림’ vs ‘사기꾼’

    -최근 장 전 사장을 포함해 대우 전직 경영진 4명이 1999년 10월 김우중 전 회장 출국에 외압이 작용했다고 검찰에 증언하셨죠?

    “정황적인 얘기예요. 오래됐기 때문에 몇 사람이 모여 기억을 더듬어 정리했고, 그것을 검찰에 참고자료로 제출한 겁니다. 거론된 사람들은 검찰이 철저하게 조사한다고 했으니 결과를 기다려봅시다.”

    -누가 김 전 회장더러 나가라고 한 겁니까.

    “언론에 한번쯤 거론된 사람들이에요. 김 회장에게 ‘나가시오’ 하고 대놓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하다, 잠깐 자리를 비켜달라’고 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대우 관계자에 따르면, 자료에 거명된 사람은 당시 청와대, 금융감독위원회, 채권단의 고위 인사 5명이라고 한다. 이중 ‘언론에 거론된 인사’는 이기호 전 청와대 수석,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 이근영 전 산업은행 총재다. 나머지 두 명은 S씨와 O씨.

    -김대중 정권 초기부터 경제 관료들과 김 전 회장 사이가 불편했다는 점은 언론에 자주 보도됐습니다. 김 전 회장은 경제 관료를 ‘책상물림’으로 생각했고, 경제 관료는 김 전 회장을 ‘사기꾼’으로 대했다는 것인데요. 양측의 갈등이 증폭된 것은 김 전 회장이 1998년 무역흑자 5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밝힌 뒤부터죠?

    “김 회장은 연간 500억달러씩 2년 동안 무역흑자를 달성하면 IMF 관리체제를 졸업한다고 봤어요. 당시 정부는 20억달러 무역흑자를 예상하고 있었으니 김 회장의 주장이 터무니없게 들렸을 거예요. 그러나 김 회장은 국내 기업들이 실력은 있으니까 수출은 유지하면서 수입을 줄이면 500억달러 흑자가 가능하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려면 무역금융과 연불수출금융을 확대해야 한다고 정부에 주장했어요.”

    무역금융은 은행이 수출실적을 보고서 수출업체에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을 말한다. 연불수출금융은 설비를 수출한 업체에 운영자금을 빌려주는 것. 김우중 회장은 1998년 1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대중 대통령과 독대하며 6조5000억원의 무역금융을 지원해달라고 요청한 바 있다. 그러나 강봉균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의 반대로 김 회장의 요청은 거절당했다(‘한국경제신문’ 2001년 7월26일자).

    -정부가 김 전 회장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는 뭐라고 봅니까.

    “나라를 걱정하는 경제 관료라면 김 회장이 아무리 듣기 싫은 소리를 해도 옳은 얘기라면 받아들여야지. IMF에서도 수출에 도움이 되는 정책은 반대하지 않았을 거 아닙니까. 물론 당시 관료들이 대우가 수출한다고 해놓고 뒤에서 돈을 감출지 모른다고 우려했을 수는 있어요. 그런데 무역금융이나 연불수출금융을 지원받으면 어디에 쓰였는지 어디서든 확인할 수 있습니다. 관료들이 실무를 잘 몰랐다고 할 수밖에. 대우는 1998년에 수출 186억달러, 수입 43억달러로 143억달러의 무역흑자를 냈어요. 국내 전체 무역흑자 중 대우가 3분의 1 이상을 낸 거죠.”

    “누구는 손발 묶고, 누구는 약 주고”

    관세청이 1999년 1월 초 펴낸 ‘98년 수출입동향’ 보고서를 보면 1998년엔 390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수출물량은 13.7% 증가했으나 원화약세 탓에 수출단가는 하락, 총 수출액은 1997년보다 2.8% 감소한 1323억달러를 기록했다.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을 보면 반도체 집적회로, 승용차, 선박, 컴퓨터, 석유제품 순이었다. 총 수출액은 감소했지만, 1998년의 실적을 1997년의 그것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1998년의 경우 구조조정의 아수라장에서 힘겹게 지켜낸 실적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김 전 회장의 예측치가 옳았다는 점은 증명됐다.

    -실적은 좋았는데, 왜 부채가 늘었습니까.

    “자동차를 수출한다고 칩시다. 우선 해외 현지법인에 차를 넘겨줍니다. 이 실적을 들고 은행에 가서 돈을 빌려요. 이 돈으로 직원들 월급 주고, 협력업체에 납품 대금을 지급합니다. 현지법인이 차를 팔고 받은 돈으로 은행에서 빌린 원금과 이자를 갚아요. 그런데 IMF 비상 상황이라고 은행에서 무역금융을 늘려주지 않으니, 일단 본사 돈을 씁니다. 당시 국내 은행 금리는 연 20%가 넘었어요. 차를 팔면 팔수록 빚은 더 지고, 손해는 더 날 수밖에….

    기가 막힌 것은 이 와중에 정부는 도대체 뭘 했냐는 겁니다. 1998년 7월 CP(기업어음) 발행을 제한합니다. 이 기준에 대우만 걸려요. 그해 10월엔 회사채 발행한도까지 제한해요. 증자 못하고, 은행 대출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것까지 막으면 망하라고 하는 거지. 당시 노무라 증권에서 ‘대우에 비상벨이 울린다’는 보고서를 왜 썼겠어요? 누가 봐도 대우그룹을 겨냥한 발표였으니 그렇지. 경제 관료들은 “거 봐라. 시장이 대우의 부실을 파악하고 있다”고 떠들어댔는데, 그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누굽니까?”

    ‘세계경영’ 조타수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처음으로 입 열다

    인생은 한여름 밤의 꿈이었나. 대우의 세계경영이 펼쳐질 때 김우중 전 회장은 폴란드 대우자동차 공장을 방문하고, 햄버거로 점심을 때우면서 동유럽을 다녔다. 6년 도피생활 하다 지난 6월 귀국한 김 전 회장. (왼쪽 사진부터)

    -삼성그룹처럼 자금 유동성을 풍부하게 했으면 어땠을까요.

    “그렇게 하지 못한 건 우리 잘못이에요. 그런데 금융위기가 올지 누가 알았나요? 김 회장이 세계경영 한다고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유럽에서 자동차 공장 인수하고 해외투자하고 그랬잖아요. 대우가 국내에서 판 제품이 얼마나 됩니까. 전자제품도 수출이 80%였어요. 이게 대우의 특성이오. 해외 투자하고 수출하다보니 빚이 많아요. 뭐, 어디서 들리는 얘기처럼 정부가 대우그룹만 해체할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나 적어도 당시 정부는 대우그룹의 특성을 알지 못했어요. 꿰뚫고 있었으면 시장에 치명타를 입히지 않더라도 살리는 방법이 있었을 텐데….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 찾으려면 대우일 수밖에 없어요.

    대우가 금융위기를 초래했습니까? 국내 금융기관에서 단기로 자금을 빌려 장기로 아시아 국가에 자금을 빌려주다가, 빌려준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맞다보니 우리까지 영향을 받은 것 아닙니까. 이건 실력 없고 낙후된 금융기관 책임이고, 이를 감독하지 못한 관료들 책임이지. 이런 상황에서 어느 나라 관료가 특정 그룹을 겨냥한 제도를 만듭니까. 어떤 놈은 손발 묶고, 어떤 놈은 약 먹여가면서 뛰게 하고…이러니 싸움이 됩니까(그가 말하는 ‘약’이란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때 정부가 도입한 회사채 신속인수제를 뜻한다). 계열사 매각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3조~4조원 하는 업체를 매각하려면 실사(實査) 기간만 1년이 넘어요. 어떻게 3~4개월 만에 팔아요? 당시엔 살 사람도 없었고요. 관료들의 식견이 짧았다는 게 한스럽죠.”

    김우중이 자기 욕심만 차렸다고?

    -말씀대로 ‘관료의 식견이 짧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면.

    “한국 경제의 버팀목은 굴뚝산업인데도, 김대중 정권은 재벌 한두 곳 없어져도 벤처기업 몇 개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런 사고방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서 뭘 하겠어요. 일례로 당시 이헌재 금융감독위원장이 뭘 압니까? 수출을 해봤어요, 뭘 했어요? 이 위원장은 내 경기고 2년 선배예요. 미안한 얘기지만, (이헌재씨는) 경제 현장을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대우가 워크아웃 들어가고 회사 정리할 때, 이 위원장이 ‘대우건설은 괜찮은데, (주)대우의 무역부문(현 대우인터내셔널)은 꼭 없애야 한다’고 했어요. (주)대우가 계열사 금융 창구 구실만 했다는게 이유라는 겁니다. 사흘을 싸웠어요. 내가 물었죠. ‘대우의 무형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내가 100억달러를 줄 테니, 대우 브랜드를 중동이나 동유럽, 아프리카에서 알려봐라’고 했죠. 지금도 대우인터내셔널은 실적이 좋습니다. 계열사 판매액을 빼도 매출액이 5조원 정도는 될 겁니다. 그때 대우 없앴으면 미얀마 가스유전개발도 날아갔을 겁니다. 경제 관료가 좁은 안목으로 일을 처리하면 국부(國富)가 유출되고, 국민의 부담으로 남습니다. 국민은 이런 관료들이 끼치는 악영향을 잘 몰라요.”

    -당시는 금융위기라는 초유의 상황이지 않았습니까.

    “특혜를 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2000년 현대그룹 유동성 사태가 벌어졌을 때 정부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라는 새로운 제도까지 도입해서 현대를 살렸잖아요(만기 도래한 회사채 중 20%를 기업이 상환하고, 80%를 산업은행이 인수해 이를 다시 채권금융기관이 매입하도록 한 방식. 하이닉스 6980억원, 현대상선 6298억원, 현대건설 4936억원 등 현대 계열사들이 혜택을 봤다). 관료들은 ‘IMF 위기 상황이다, 상황을 총체적으로 봐야 한다’며 변명할 수 있겠죠. 그런데 왜 대우는 죽이고, 현대는 살리느냐, 기준이 뭐냐 하는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겁니다.”

    -대우를 손봐야겠다며 관료들이 내세운 명분으로 대우의 세계경영은 부실경영이었다는 것이 있습니다. 일례로 동유럽 공장의 1997∼98년 가동률이 30~40%에 불과했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국민을 호도하는 거예요. 말이 안돼. 과연 어느 기업이 해외에 공장 세워 초기부터 가동률 100%로 돌린다고 합디까? 그건 마술이지. 그래놓고 김우중이가 자기 욕심에만 눈이 어두워 멋대로 해외 투자해서 부실화된 것처럼 정부가 호도한 거지. 그래서 얻은 게 뭐가 있어요? 폴란드 자동차 공장에 투자한 12억달러, 시설비 빼고 순수하게 현금으로 12억달러가 들어갔는데 한푼도 못 받았잖아요.

    아직 초기 단계인 해외 공장을 실사하면 뭐합니까. 당장 수익이 나질 않으니 부실화했다고 평가받을 수밖에 없잖아요. 당시 대우에는 전세계적으로 500개가 넘는 해외지사가 있었어요. 그물처럼 짜인 수많은 지사를 금융기관이 어떻게 실사할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볼까요? 대우자동차 법인이 아직 있습니다.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목적으로 남아 있어요. 그런데 당시엔 도저히 받을 수 없다고 평가된 대우자동차 채권이 회수돼 1조원이라는 현금을 확보했어요. 그래서 임원들이 1000% 보너스를 받았다고 합니다. 얼마나 엉터리로 실사했으면 부실채권이 막대한 현금으로 돌아왔겠어요.”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자”

    -1998년에 수출은 잘 해놓고도 빚 때문에 유동성 위기에 몰렸고, 그 여파로 1999년 결국 대우가 해체되기에 이릅니다. 정부의 압박에 김 전 회장이 강하게 반발했던 1999년 5월로 가보죠. 김 전 회장은 법무법인 김&장을 대리인으로 법정관리를 검토하게 했죠?

    “1998년부터 1999년5월까지 은행, 투신 등이 대우가 발행한 채권 6조5000억원 어치를 회수했어요. 그러자 김 회장이 안 되겠다며 법정관리를 검토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김&장이 슬그머니 손을 뗐어요. 그래서 독자적으로 법정관리를 검토합니다. 그러자 정부가 얼마가 필요하냐며 유동성 개선 방안을 제안했어요.”

    -대우의 유동성 확보 방안이 1999년 7월19일에 나왔죠? 그때 장 전 사장께선 직접 ‘대우그룹 구조조정 가속화 및 구체적 실천방안’을 발표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김 회장 개인 재산(주식과 부동산) 1조3000억원, 그룹 담보(주식과 부동산) 10조1345억원을 내놓았습니다. 김 회장은 자동차 전문경영인으로 남고, 나머지는 경영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죠. 대신 정부는 4조원은 추가 지원, 6조원의 빚은 만기 연장하겠다고 했죠. 발표문은 사실 금감위가 써준 것이나 다름없어요. 그쪽에서 토씨 하나까지 고쳤으니까요.”

    -자동차 전문 경영인으로 남을 수 있었는데, 김 회장은 왜 3개월 뒤 돌연 해외로 도피한 겁니까.

    “정부가 교묘하게 워크아웃 제도를 변형시켜서 밀어낸 거죠. 워크아웃 제도는 기업이 구조적으로, 재정적으로 어려울 때 금융기관이 도와줘서 회생시키는 제도예요. 워크아웃 기업에 공적자금이 들어가면 안 되는 거죠. 금융기관이 도와주는 거니까요. 그런데 대우는 불행하게도 부실한 금융기관에서 도움을 받다보니 결과적으로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셈이 됐어요. 공적자금을 지원받은 금융기관의 돈으로 회생한 거니까.

    워크아웃 기업이 됐으니 형식적으로는 채권단과 상의해서 구조조정을 하게 됩니다. 1999년 8월16일에 채권단과 최종 구조조정 계약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요. 20여 개 계열사 중 대우자동차, 대우자동차부품, 대우캐피탈, 대우통신, (주)대우, 그리고 대우중공업의 기계부문 등 6개사는 김 회장에게 경영권을 줬어요. 자동차 관련 소그룹을 떼어준 거죠. 나머지 계열사는 채권단이 알아서 하는 것으로 했고. 이헌재 위원장도 채권단과 맺은 구조조정 계획은 계승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김 회장이 부평 자동차공장 가서 열심히 일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관료들이 채권단을 조종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이게 워크아웃 제도를 변형해 김 회장을 몰아냈다고 주장하는 근거예요. 김 회장 지분이 없는 회사에서 경영권은 형식적인 것이고, 그나마도 채권단 뒤에 숨은 관료들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워크아웃 기업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8월말 김 회장이 나를 청와대로 보내 이기호 경제수석에게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겠다’는 뜻을 밝히라고 한 겁니다.”

    박정희는 오너, 김우중은 전문경영인

    ‘세계경영’ 조타수 장병주 전 (주)대우 사장, 처음으로 입 열다

    1998년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 5단체장 회동 직전 김우중씨. 그의 눈빛이 날카롭다

    -왜 다시 법정관리로 방향을 틀었습니까. 워크아웃은 회생하면 경영권을 돌려받지만, 법정관리는 영영 경영권을 돌려받을 수 없잖습니까.

    “김 회장 판단에 당시 채권단은 허울이지, 모든 것은 금감위나 청와대 경제수석 그리고 재경부 장관이 뒤에서 조종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아예 정치권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 법정관리로 가자는 것이었어요. 경제 관료보다 차라리 판사가 낫다는 거죠. 관료들은 믿을 수 없으니까.”

    -회장은 없어져도 회사는 살려야겠다는 뜻입니까.

    “대우 자체는 국가경제에 이바지할 수 있으니까. 정권에선 김우중은 이미 신뢰를 잃었다, 제거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 같았어요. 그런데 김 회장이 뭘 잘못한 겁니까. 한국 경제라고 하면 박정희 대통령 시대 때 비로소 시작된 것 아니에요? 그때는 회사로 치면 박 대통령이 오너였지. 정주영, 이병철, 그리고 나이는 어리지만 김우중 같은 인물이 전문경영인이었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일하니 박 대통령이 인센티브를 준 거지. 그게 특혜예요. 오너 말 잘 듣고, 사리사욕 차리지 않는 전문경영인을 꼽으면 김우중 아닙니까. 자식들에게 돈 남겨주고 그런 게 다 사리사욕 아니에요? 김 회장 아들이 골프장 갖고 있는 것? 그건 다른 재벌이 자식에게 상속한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부인 정희자 여사에게 재산이 좀 있겠지만 얼마 안 됩니다.”

    -당시 이기호 경제수석은 법정관리 방안을 거부했죠?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그때 자동차 그룹 경영권만이라도 약속을 지켰으면 GM에 헐값으로 넘기지는 않았을 겁니다. 내가 1998년 GM과 협상할 때, 경영권 없이 50% 지분을 건네는 조건으로 50억달러를 내라고 협상했습니다. 물론 협상이 깨져서 할말은 없어요. 그러나 결국 어떻게 됐습니까. 김 회장 해외로 내보내고, 지분 100% 다주고, 부평공장도 주고, 고작 12억달러 받았어요. 시설 투자만 6조원이 들어간 회사입니다. 김 회장이 있었으면 30억~40억 달러는 받았을 겁니다.”

    -김 전 회장은 1999년 10월 중국에 출장 갔다가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하루 뒤 일본으로 도피한 뒤 잠적했습니다. 귀국했다는 것은 본인이 문제를 풀려고 왔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해외로 나갔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떤 약속을 받은 것은 아닙니까.

    “그 부분을 검찰에 얘기했더니, 자료로 내달라고 해서 그렇게 했어요. 검찰이 밝힐 겁니다. 검찰에서 먼저 얘기가 나와야 거기에 대해 내가 뭐라도 얘기할 수 있어요. 지금은 곤란합니다.”

    -관료들이 김 전 회장에게 분명히 약속한 게 있군요.

    “…그건 알아서 판단하세요.”

    세금 제하고 받은 월급 660만원

    -책임을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어찌됐든 공적자금 수혈로 회생했다는 점입니다. 국가경제에 커다란 피해를 준 부분은 인정합니까.

    “죄스러운 일이에요. 그런데 이런 점도 있습니다. 대우그룹에 투입된 공적자금이 29조원이라고 합니다. 이중 자산관리공사가 투입한 12조원 중 5조3000억원이 회수됐고, 나머지도 100% 회수 가능하다고 합니다. 예금보험공사가 투입한 17조원은 대부분 금융기관에서 대우에 출자한 것으로 대체됐어요. 1999년 10월 상장된 대우그룹 10개 계열사의 시가총액은 2조2700억원이었는데, 지난 7월 평가해보니 11조8500억원이었습니다. 따라서 예보가 투입한 공적자금은 대부분 회수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대우그룹에 대한 비판 가운데 ‘대우맨은 김우중 회장 혼자’였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김 회장 외에는 그룹 전반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고, 회장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다는 점입니다. 회장이 잘못 판단하면 그룹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데요. 그룹이 해체된 이유 중에 이런 점도 있지 않습니까.

    “판단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예요. 질 좋은 정보는 총수에게 가장 많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느 누구도 회장과 논쟁하기가 어려웠어요. 대우뿐 아니라 다른 재벌기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게다가 김 회장은 실무부터 시작한 사람 아닙니까. 회사를 설립하고, 물건을 팔아도 보고, 업무를 제일 잘 알아요. 그래서 그 사람 말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가령 분식회계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1996년까지는 분식규모가 크지 않았어요. 1997년 말부터 1999년까지 급증한 게 문제지. 환차손 때문에 그렇죠. 외화차입도 많았어요.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당시엔 분식회계가 용인되는 분위기였어요.”

    -바로 그런 관행 때문에 상황을 안일하게 판단한 것 아닙니까.

    “급속도로 성장한 기업은 대부분 분식을 했어요.”

    -국내 2위의 그룹 사장도 하시고, 정부로부터 산업훈장까지 타신 분이 재판에 회부돼 처음으로 구치소 생활을 했는데, 어땠습니까.

    “죽고 싶었지. 개인적인 비리로 들어온 게 아니다, 죄를 지은 게 없다고 생각하면서 버텼어요. 열심히 일했는데, 법은 위반했지만 당시 사정이 있었고…. 변호인 접견할 때 같이 들어온 대우 사람들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어요. 그나마도 스치고 지나가 손만 흔들었지. 내가 대우에서도 A급 사장이었어요. 그런데 세금 제하고 받는 월급이 660만원이었어요. 아무도 안 믿어. 예금보험공사나 검찰에서 재산 빼돌린 게 없나 조사했는데, 실제 나오는 게 없어요. 가외로 돈 챙긴 게 없으니까. 30년 동안 휴가도 한번 못 갔어요. 알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까지 일했는데 결과가 이러니 답답하다는 거지. 다른 기업은 사장 연봉이 수십억 원이라는데, 꿈나라 얘기로 들려요. 다만 열심히 일한 덕분에 해외여행 많이 했고, 저녁에 술 많이 마셔봤고, 그런 점에선 후회 없어요. 식구들한테만 미안하지.”

    -개인적으로 소송이 많이 걸려 있는 것으로 압니다.

    “나만 해도 15건의 소송이 걸려 있어요. 아파트 한 채 있는 게 전재산인데. 14개 금융기관이 소송해봐야 받을 수 있는 게 5억원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줄 수 있는 돈이 없는데. 5억원 받으려고 금융기관들이 변호사 비용 대고, 직원 월급 주고, 따져보면 20억~30억원은 쓸 겁니다. 이 돈 아끼는 게 공적자금 아끼는 거 아닌가?”

    장 전 사장은 두 시간 동안 쏟아내듯 말하고는, “그만하자”고 말했다. 지금은 말할 시기가 아니라고 다시 한 번 못 박았다. 그러나 그를 뒤로하고 사무실을 나오면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에도 쓰고, 다음엔 더 자세히 쓰자.’

    다음엔 김 전 회장이 한국을 떠나기 직전 김대중 정권의 관료들과 어떤 약속을 했는지를 밝혀내야 할 것이다. 김 전 회장이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바로 거기에 대우 해체의 진실이 담겨 있을 것이다. 대우 해체의 핵심이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몇 번 집에도 찾아가고, 전화로 메시지도 남겼지만 끝내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 그 역시 진실을 털어놓을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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