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작스러운 그룹 해체, 회장의 해외 도피, 이어진 채권단의 고발, 수감 생활, 세 번의 재판을 거치고 나니 6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갔다. 그의 손에 쥐어진 것은 3조1000억원의 추징금 통지서뿐이다. 물론 그만 고통을 당한 것은 아니다. 이상훈 전 (주)대우 전무는 추징금이 21조원에 달했다. 대우에 인생을 걸었던 수많은 대우맨의 고통은 또 얼마나 되는가. 한번쯤, 대우 패망의 원인을 털어놓고, 도피한 ‘주군’을 위해 변명이라도 할 법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살다보면 자기 뜻대로 안 되는 게 더 많다”는 숙명론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국민이 대우그룹을 ‘금융위기의 주범’이자 재벌 경영의 폐단을 드러낸 ‘죄인’이라고 보는 점도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사정이야 어떻든 그가 (주)대우 대표이사로서 실정법을 위반한 명백한 사실 역시 입을 무겁게 했을 것이다. 주위 변호사들의 권고도 한몫 했을 것이다. 누구라도 꺼내보기 싫은 과거를 낯선 기자에게 털어놓고 싶진 않았을 것이다. “다음에 차분하게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한 그의 부탁을 결과적으로 들어주지 못했다.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뭘 후회해요?”
대우그룹은 1999년 해체될 때까지 32년 동안 한국경제를 견인했다. 재계 2위까지 올랐던 그룹은 그러나 하루아침에 망했고, 여기엔 숱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 대우 사람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해체에 관여한 당시 경제 관료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다. 간헐적으로 인터뷰가 실렸지만, 정작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1998년 7월 대우그룹 자금 압박부터 1999년 10월 김우중 전 회장의 해외 도피까지 1년3개월 동안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정부 고위 관료들은 그에게 어떤 약속을 하며 도피를 권유했는가. 관료들을 불신하며 법정관리까지 검토하던 김 전 회장은 왜 결국 무릎을 꿇었는가. 대우는 1997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나, 희생자였나. 장병주 전 사장과 두 시간 남짓 나눈 대화는 이런 물음을 풀어가는 하나의 단서가 될 것이다.
-김우중 전 회장이 요즘 귀국한 것을 후회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식구들 입에서는 그런 얘기가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안됐잖아요. 몸 상태도 안 좋고…. 회장 본인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다 각오하고 들어왔는데, 지금 와서 뭘 후회합니까. 우리 처지에선 귀국이 조금 빨랐으면 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