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列國志 兵法 ⑧

오(吳)·초(楚) 전쟁의 희비 쌍곡선

전략전술로 압승, ‘복수무정’에 자멸

  • 박동운 언론인

오(吳)·초(楚) 전쟁의 희비 쌍곡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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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은 행동을 결정한다. 그 결정의 본질은 선택이다. 인생행로의 기로에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아른거린다. 학과의 선택, 직업의 선택, 직장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나아가 공격과 방어, 퇴각의 선택 등에 즈음하여 어느 하나의 선택지를 골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영국의 케인스는 “성격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가르쳤다. 고대 그리스의 헤라클레이토스는 숫제 “성격이 운명이다”고 갈파했다.

그럼에도 오자서가 가문과 성향을 강조해 백비와 같은 간신배를 천거한 것은 중대한 과오였다. 물론 군사 분야에서 ‘노력하는 천재’ 손무(孫武)를 발견해 천거한 것은 특기할 만한 성공작이다.

손무는 성격과 능력 양면에서 걸출한 군사가였으며, 이미 훌륭한 저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의 ‘손자병법’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명저로 손꼽힌다. 폭넓고 깊이 있는 전례(戰例) 연구에 입각해 인간 심리와 투쟁의 논리를 집약적으로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 스스로 드높은 수양의 경지에 도달해 지저분한 야망에 좌우되지 않았으며 진퇴가 깨끗했다. 합려왕의 대초(對楚) 전쟁 준비와 실전에 걸쳐 오자서와 더불어 공헌한 바가 자못 컸다.

오자서와 손무의 협력

오왕 합려는 즉위하자마자 전쟁 준비에 들어가 장비와 보급은 오자서에게 맡기고 전략·전술은 손무에게 위임하다시피 했다. 합려왕 자신은 국력 배양에 힘쓰면서 훌륭한 인재를 등용해 그 능력을 최대한 발휘케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경청 능력임을 헤아리고 있었다.



오자서의 장비 개선과 보급 창달 노력에서 높이 평가할 것은 수전(水戰) 중시와 함선 개량이다. 우선 그가 설계한 선체(船體)는 재래식과 달리 폭이 좁은 대신 앞뒤가 길고, 뱃머리와 선미가 높았다. 적의 화살 공격과 화전 공세에 의한 피해를 극소화하고 속도를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선상의 돛대와 키(舵)를 없앴다. 획기적인 착상이었다.

대신 선체를 상하 2개 층으로 나누고, 하층에는 좌우 두 갈래로 노를 젓는 사공을 배치했다. 상층에는 전투병력만 포진했는데, 모든 병사로 하여금 단검을 차게 했다. 사병의 무기 가운데 활과 세모창이 돋보였다. 세모창은 길이가 사람 키의 두 배 이상이었다. 아래층에는 전체 승원의 3분의 2(약 50명)가 배치됐고, 위층에는 전투요원 32명이 대기했다. 각기 맡은 임무가 명백해 거리낌없이 본분을 다할 수 있었다. 기타 육전병력도 혼란 없이 수용하여 신속히 전선으로 수송할 수 있었다(楊泓·李力 文武之道, 315쪽, 伍子胥 水戰兵法, 香港, 1991).

한편 손무는 전쟁이란 홀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며 동맹외교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때마침 박식한 손무에게 솔깃한 정보가 입수됐다. 당시 당(唐)나라와 채(蔡)나라가 표면상으론 초나라의 속국이나 속으로는 초나라 수뇌부에 대한 적개심에 불타고 있다는 정보였다. 두 나라 군주들은 소국답게 대국을 섬긴다며 초나라를 예방하면서 왕에게 예물을 바친 바 있었다. 그런데 왕족 출신의 대장군 자상(子常)이라는 교양 없는 욕심꾸러기가 귀한 가문의 자신에게도 왕과 똑같은 예물을 바치라고 강요한 것이다. 이외에도 무례한 협박이 많았다고 한다.

손무는 오왕에게 두 나라에 대한 비밀포섭 공작을 벌이자고 건의했다. 합려왕은 동의했고, 물밑 동맹외교는 마침내 성공했다.

손무가 노린 것은 대초 전쟁의 개시에 앞선 군사전략적 포석이었다. 즉 현대 용어로 ‘전략적 기습(strategic surprise attack)’이다. 적이 대비하지 않는 의외의 지점과 방향에서 아군 주력이 진격을 개시함으로써 압승을 거두는 것이다.

이는 독일군이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프랑스로 진격할 때 독·불 국경선이 아니라 중립국인 벨기에의 영토 통과했던 경우를 방불케 한다. 유사시에 오나라 군대 주력은 비밀 동맹국인 당나라와 채나라의 영토를 통과하는 전략적 우회를 강행하려는 것이었다. 즉 오자서가 준비한 수로를 이용한 함선 수송으로 대군을 투입하려 했다.

오자서와 손무는 나아가 오·초?결전에 앞서 ‘후고(後顧)의 염려’를 없애자고 건의했다. 즉 초나라의 속국이며 오나라에 적대적인 이웃 월(越)나라에 대한 예방적 일격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에 동의한 합려왕이 출병하여 월왕 윤상(允常)에게 통격(痛擊)을 가했다. 비록 월나라를 정복하지는 못했으나 최소한 오·초?전쟁을 수행하는 동안 뒤에서 장난질을 하지 못할 정도로 그 전력을 파괴한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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