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성노련은 현재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법외노조지만 노조 회비를 걷고, 노조 규약과 사무실을 갖추고 있는 등 외형상 여느 노조와 다를 바 없다. 우리나라 첫 성노동자 법외노조인 셈인데,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홈페이지(cafe.daum.net/gksdudus)도 운영 중이다.
민성노련 위원장 이희영(25)씨를 만나기 위해 집창촌 한가운데 있는 노조 사무실을 찾은 시각은 저녁 7시경. 성매매 여성들은 물론 업소 주인들도 스스럼없이 노조 사무실을 드나들었다. 그러는 사이 어둠이 짙어지며 업소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업소 유리문 앞엔 흰색 탱크톱과 미니스커트를 입은 아가씨들이 손님맞이 채비로 부산했다.
평범한 옷차림과 생김새의 이씨에게 나이를 물으니 “81년생”이라며 수줍게 웃었다. 그가 홈페이지에 올린 글들은 꽤 전문적이고 논리적인데, 뜻밖에도 중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라고 했다. 자신이 노동자란 사실을 깨달은 후 책을 보며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강령 준수, 회비 납부
-성매매 여성들의 노조라는 게 아직은 생소하게 느껴집니다. 민성노련은 어떻게 만들어졌습니까.
“2004년 성특법 시행 때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처음엔 단속이 심해도 시간이 지나면 예전처럼 흐지부지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직업 특성상 이동이 잦아 흔히 집창촌이라고 하는 성매매집결지마다 친한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과 통화를 하면서 ‘우리가 나서서 시위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오갔어요. 그 과정에서 한터여성종사자연맹(한여연)이라는 전국 집창촌 여성들의 모임이 만들어졌어요. ‘한터’는 집창촌을 일컫는 말이에요. 아이러니하게도 성특법이 우리를 뭉치게 하고, 우리도 노동자라는 걸 일깨워준 셈이죠.”
-당시 성특법 반대 시위도 여러 차례 했죠?
“2004년 12월6일 정부청사 앞에서 소복(素服)시위를 할 때는 진짜 눈물이 났어요. 한겨울에 비까지 내리는데, 안에 아무것도 안 입은 채 소복차림으로 몇 시간을 앉아 있었으니 얼마나 추웠겠어요. 그래도 뜨거운 커피를 타다주며 ‘힘내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있어 힘을 얻었어요. 국회 앞에서 73일 동안 단식투쟁을 한 것도 기억에 남아요.”
-당시 집창촌 여성들의 시위가 자발적인 게 아니라 포주들의 강압으로 한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는데요.
“모자며 마스크도 맞춰 쓰고 시위도 체계적으로 하니까 업주들이 조종한 게 아니냐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거예요.”
-한여연과 민성노련은 어떤 관계입니까.
“한여연이 발전해 지난해 6월29일 전국성노동자연대 한여연(전성노련)이 정식 발족했어요. 이날을 ‘성(性)노동자의 날’로 정했고요. 우리도 당연히 가입하고 활동을 했어요.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까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와 같지만 활동방향과 생각이 조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탈퇴하고 민성노련을 만든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