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면 2한국토지공사는 1995년 12월 완공예정이던 부산 녹산국가공단 택지 1단계 조성공사를 3차례 공기(工期)를 연기한 끝에 1999년 6월에야 끝냈다. 지반이 계속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보강공사 추가비용만 936억원이 들었다. 완공 이후에도 지반침하는 계속됐고, 입주업체들은 “이 상태에서 공장을 짓는 것은 무리”라고 항의했다. 녹산국가공단은 2003년 여름, 태풍 매미에 의한 해일로 입주업체의 절반 가량이 물에 잠겼다(피해액 572억원). 부산시의 조사 결과 녹산공단 방파제는 준공할 당시 높이는 1.4m였으나 그후 전체 지반이 40cm가량 내려앉아 1.6m 높이의 해일과 파랑을 견디지 못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엔 바닷가에 지어지는 국책시설이 유난히 많다. 이들이 들어선 지역은 원래 바다나 개펄이지만 흙으로 덮이면서 자연스럽게 매립지가 된 곳으로, 그 아래는 다량의 물과 흙이 혼재된 연약지반이다. 연약지반 위에 구조물을 세우려면 지하의 물을 빨아내고, 불안정한 지반을 다지는 작업이 필수.
이때 지하에 있는 물을 빠른 시간 내에 빨아내고 안정화시키는 공사를 ‘연약지반 개량공사’라 하고, 물을 빨아낼 때 쓰이는 자재를 배수재(排水材, PBD)라 한다. 만약 배수재 공사가 잘못되면 구조물을 짓기도 전에 땅이 꺼지거나, 건물이 들어선 후에도 지반이 가라앉아 수십억, 수백억원의 추가예산을 들여 재시공을 해야 한다. 심한 경우에는 건물, 도로 붕괴와 같은 대형 참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 국책시설 외에도 준공 후 연이은 지반침하로 홍역을 앓은 곳이 부지기수다. 경남 양산·물금택지지구, 인천국제공항 1단계 공사, 평택항 부두, 김해 내외지구 신도시, 서해안 고속도로 등이 그것. 매립지 연약지반 위에 세워진 국책시설에 대해 감사원과 국회는 부실공사 감사를 거의 매년 진행하고, 건설교통부와 해양수산부, 시공사의 정밀안전진단이나 자체 조사도 이뤄졌지만 지반침하의 원인을 속시원히 밝혀낸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원인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다 보니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이 있을 리 없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시공사 문건 ‘배수 안 돼 무너져 내릴 것’
더욱이 매립지 연약지반 위에 짓고 있거나 지을 예정인 국책시설은 이미 지어놓은 시설보다 오히려 많다. 신항(Pusan New Port), 인천국제공항 2단계, 전남 광양항, 목포 남악신도시, 인천 송도신도시, 군산 수송지구 택지 등. 과연 이 시설들은 지반침하 현상 없이 오랫동안 안전할 수 있을까.
지난 1월19일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지반침하 현상과 관련, 건설업계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의 골자는 현재 진행 중인 신항 연약지반 개량공사에 사용된 배수재의 필터링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것.
신항 배후부지와 민자(民資)부두는 연약지반 개량공사를 둘러싸고 부실공사 의혹이 제기되면서 2004년 검찰 수사와 국정감사를 거쳐 해양부, 건교부의 특별감사가 벌어졌던 곳이다. 그 중 2001년 11월 공사가 시작된 민자부두는 2009년 완공 예정으로, 총 9선석 중 3선석이 이미 지난해 말 공사를 마치고 올 1월16일 가동을 시작했다. 개항식에는 노무현 대통령도 참석했다.
이곳은 뒤편의 배후부지와 함께 지하 50m까지가 매립지로,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초연약지반. 이미 연약지반 공사가 끝난 민자부두에 들어간 배수재만 2만8000km(배수재의 양은 km 단위로 표기)에 달하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배후부지(2013년 완공)에는 2만4500km의 배수재가 이미 사용됐거나 사용될 예정이다. 지하 50m까지 배수재를 깔아야 하므로 엄청난 양이 소요된 것이다.